그러나 정황과 증거, 증인이 올라와 있 었다. 무턱대고 음모론을 옹호하지는 않았 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말을 전적으로 신 뢰하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쌍방의 얘 기를 들어보고 결정하려는 경향이 생겼 다. 그동안 한쪽 말만 듣고, 다른 한쪽을 매도했던 것을 반성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 다 제 4장 전이되는 분란 (1)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다.
다른 지역에서도 랜덤 케이브가 개방되 었다. 인적, 물적 피해가 컸다. 오픈 시 파 동을 감지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8급 마 물의 전투력은 기존의 마물과는 격이 달 랐다. 구역을 담당하는 길드, 무문, 연합 의 유니크도 손실을 입었다
최초의 최상급 랜덤 케이브의 오픈임에 도 피해가 적었던 금강문의 대처가 또다시 부각되었다.
-결계를 치지 않아서 피해가 더 컸다더 라
-거봐, 결계를 먼저 쳤어야 했었어.
-금강문이 잘 막은 거잖아.
-구해줘도 욕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야
금강문의 이미지가 급격히 좋아지는 것 에 따른 반대급부도 많았었다. 특히 금강 문의 성장이 탐탁지 않은 길드와 무문이 견제를 했다. 피해자들을 찾아; 결계를 먼 저 치는 바람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다.
한데, 금강문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 하려던 주동자들이 더 큰 피해를 양산하 자 소문은 쏙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금강 문을 도와주어 꼴이 우습게 되었다. 결계 를 먼저 쳤던 것이 신의 한수로 평가 받았 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제 의사가 아니라, 이 장로가 낸 의견 이었습니다”
화천문주는 아들의 행동이 탐탁지 않
았다. 일전에 당한 패배로 인해 자존심이 상했다 해도,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다. 다시 회복하면 되었다. 그런데 구차 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금강문의 잘못된 선택으로 피해를 양산했다는 괴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금강문에서 자료를 보내오더구나.”
금강문이 분석한 자료는 화천문에서 파악한 정보보다 훨씬 정확했다. 아들이 금강문을 모함하려는 소문을 내자, 때맞 춰서 자료를 보내왔다.
그것이 권영일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었다. 겉으로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보낸 자료지만, 실상은 비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함을 하든, 하지 않든 관심 없다
화천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의 미로 해석이 되었다. 더욱이 일전 회합에 서 망신을 주었던 혹금단주가 직접 찾아 와서 건네주었다. 겁도 없이 단둘이서 본 문을 방문하다니, 실로 치욕스러웠다.
-피해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 시겠습니다:
-아 아드님의 상태는 괜찮습니까?
-혹, 전번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진 않
겠지요.
흑금단주의 뻔히 보이는 노골적인 위로 에 권영일은 폭발할 뻔했다. 조롱이 분명 한데도, 지은 죄와 보는 눈이 많아 화를 낼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 모든 원흉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 들에게 있었다.
시답지 않은 소문을 내고, 공적을 탐하 려다 케이브 진압 시 대응이 미흡했다. 8 급이 아닌 7급이라 그나마 피해가 덜했지, 금강문과 같은 8급 이었다면 끔찍한 사태 가 발생했을 것이다.
권영일의 눈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들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품고 있 는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소탐대실 (小貪大失)을 자초할 우려가 있었다.
“당분간은 대외적인 일에 나서지 말고 자중하거라”
“이번에 무문연합에서 단체를 만든다 고 들었습니다, 제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 가 나선단 말씀입니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욕심을 부 리는 것이냐?”
“아버지, 제 탓이 아닙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놈이 그래도!”
권영일은 끝까지 변명 일색인 아들의
태도에 큰 실망을 했다. 문파에 해를 끼쳤 으면 반성이라도 해야 하건만, 책임은커녕 끝까지 죄가 없다고 하다니. 그간 너무 오 냐오냐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 회에 좀 더 엄하게 다스려야 했다.
콰득!
집무실을 나온 권우현은 이를 갈았다.
‘그놈만 아니었으면!’
금강문의 흑금단주로 인해서 명성은 깎 일 대로 깎였고, 만회하려고 할 때마다 엉 망진창이 되었다. 이대로는 문파 내에서도 신망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미덥지 못하 다는 분위기가 장로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아버지의 집무실로 이어진 복도에서 동 생을 만났다.
권우화는 평소처럼 오빠를 맞았다. 딱 히 오빠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내지 않았 다 그녀와 달리 권우현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오빠일은다끝난 거야?”
“됐고, 네가여긴 웬일이냐?”
“웬일이긴, 아버지가불렀으니 왔지.”
권우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 린 시절부터 봐온 동생은 영특하고 재기 가 넘쳤다. 해서 문파의 대소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 해도 여자다. 소문주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요즘 들 어 아버지의 신뢰가 동생에게 향하고 있었 다
“너도 이제 혼인할 때가 됐구나.”
“그렇긴 해. 맘에 드는 사람도 있고, 확 가버릴까?”
“누군데? 있으면 데리고 와 보거라.”
“혹금단주라고, 꽤 괜찮은 것 같아”
“네가날 놀리는 것이냐!”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오빠는 내가 정 말 시집을 가야 한다고 생각해?”
권우현은 치밀었던 화가 싸늘하게 식었
다. 동생을 시집보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었다. 하지만 동생 은 화천문의 대소사를 관리해왔다. 본문 의 치부와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런 동생이 시집을 간다면, 그것도 금강문 의 혹금단주에게. 금강문에 약점을 고스 란히 갖다 바치는 격이다.
“여자인 네가 날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느 냐?”
“넘어서든 아니든, 중요한 건 아버지의 마음이잖아 왜 나한테 역정을 내! 내가 그 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일전에 권우화는 소문을 내지 말라고
했다. 랜덤 케이브에 대한 분석이 끝나지 도 않았는데 설레발을 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경고했었다. 이를 무시하고 강행 한건 권우현이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했다!”
“알았어, 나는 가만히 있을게.”
순순히 따르는 동생의 태도에도 권우현 은 답답함이 밀려왔다. 동생의 말대로 선 택은 아버지가 한다. 자신과 동생에게 결 정권은 없었다. 그 말은 아버지가 원한다 면 언제든 나서겠다는 의미가 되었다
‘내가이대로 있을것 같으냐!’
권우현은 권좌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
신은 화천문의 대공자다. 이 자리를 탐한 다면 혈육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답답하네.’
권우화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자리 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어야 한다. 지극 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다. 오빠가 뛰어나다면 언제든 양보할 수 있다. 하지 만 오빠는 본문에 피해를 주었다. 여자라 서 문주가 될 수 없다는 건 이 시대에 맞 지 않았다. 여자가 대통령도 되는 세상이 다. 문파의 주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순 없잖
아’
누군가는 말할 거다. 욕심을 부리지 않 으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권우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인정을 받기 위해 가문의 해가 되는 일을 주도할 마음은 없다.
‘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녀는 다크니스 길드에서 혹금단주의 파격을 보았다. 그를 중심으로 세상이 비 틀리는 것 같았다. 오빠의 마음을 알지만, 그와는 부딪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다. 감추고 있는 실체를 밝혀내기 전까지 는 섣불리 건드렸다가 우환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 인간, 알고 있는게 분명해.’
권우화는 흑금단주가 이유 없이 본문 을 찾아오진 않았다고 봤다. 오빠의 심기 를 어지럽히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 다. 그러나 분란을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 다. 오빠를 달래자고 모든 이권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중간하게 내 려놓는 척을 해 봤자, 통하지도 않을 테고.
‘그래도 계속 당하지는 않아:
흑금단주가 욕심은 난다. 하지만 화천 문에 해가 된다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녀의 의지다.
정우는 금강문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이다.
법인 차를 이용했다. 세제 혜택을 위해 김 총관은 금강문의 차량을 전부 리스로 전환해 놓았다. 일반 기업이 아닌 무문이 다 보니 구매 시 렌트보다는 리스가 낫다 고판단한 것이다.
운전석의 옆자리에 강천이 탔다
화천문을 방문하려면 최소한의 구색을 갖춰야 했다.
정우는 현재 혹금단주다. 금강문의 대 공자인 강현은 구색으로선 과한 면이 있 어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그에 반해 강천 은 금강문에서 직함이 없다. 살아 있는 장 식으로 데리고 다닌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가끔 헛소리를 해서 두들겨 팰 필요는 있지만.
“너도 이젠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 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나한 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냐?” 본격적이라니?
강천은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 쳐지나갔다.
유치원에서 정우를 만나 백전백패를 당
하고, 여태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콩쥐 팥쥐의 콩쥐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하다는 모진 구박을 받았다. 지금도 강해지기 위해서 훈련을 거르지 않 고 있었다. 여기서 훈련을 더하면 죽을지 도모른다.
피식!
정우는 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 어 살짝 식상했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면 그게 더 이상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강 천의 반발이 이해는 된다. 보통 사람이 강 천의 평소 훈련을 받는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골병들만큼 힘들다.
그러나 강천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잠 재등급 6급 이상이며, 속성력 중에서도 최상으로 평가를 받는 뇌기를 다룰 줄 안 다. 이호극의 전투본능과 자질을 몰빵 받 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나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이쯤에서 만족하는 것은 낭비였다.
“너 정도 재능이면 최소한 8급은 되어 야지.”
“최소한이라니! 8급이 무슨 개나 소나 다 오르는 동네 약수터냐, 그건 나보고 아 버지랑 맞짱 뜨라는 소리잖아!”
강천의 아버지, 현 금강문의 대빵이 유 니크 8급이다.
강천에겐 정우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넘 기 벅찬 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한판 뜨자는 아버지의 말에 오금이 저려 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아들과의 대련이 아버지의 로망이란다. 아들은 생 과 사가 오가는데. 힘 조절을 한다 해도 빈사상태는 각오해야 한다
“다 널 위해서야.”
“다들 그렇게 말하지.”
널 위해서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폭력
을 휘두른다고.
웃으면서 사람을 패는데, 그게 어쩔 수 없는 거라니? 무지막지한 아버지를 둔 강 천의 비애다.
‘어림없거든.’
강천은 정우의 달콤한 사탕발림을 믿 지 않았다. 저 말에 속아서 당한 사례만 해도 벌써 10번이 넘는다. 바보도 아니고 10번이나 당했냐고 놀리는 놈이 있다면, 한번 경험 시켜주고 싶다. 정우의 사탕발 림에 넘어오지 않을 위인은 이 세상에 없 다. 천만년 묶은 능구렁이처럼 어찌나 간 교한지 당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알면서도 당하는 나도 답답하다고.
강천은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맘 같아서는 귀를 막아 버리고 싶으나, 이 놈은 전설의 심어가 가능했다.
“싫으면 말고.”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포기가 빨라?”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건만, 예상치 못 한 정우의 포기에 강천은 당황했다. 쉽게 포기할 놈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집요 하기가 보통 아닌 곱빼기 그 이상이다. 하 지만 흔들리면 안 된다. 언제 훅! 치고 나 올지 모른다 정우와 대화를 섞다 보면 의 도와는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관심 없으니까”
“야, 인마 친구한테 관심을 가져야지. 내가 너와 보내 세월이 얼만데, 이 의리 없 는 놈아!”
“싫다며?”
“그래도 예의상 두 번은 권하는 거야 그게 한국인의 기본 예법이라고.”
“언제부터 그렇게 예법을 따졌냐, 난 그 냥 하라랑 놀란다.”
“인마, 난 18년이 되는 동안 솔로였다 고.”
“그래서 뭐? 관심 가져 달라는 거냐?”
강천은 말문이 막혔다. 이상하게 말리
는 기분이다. 관심을 가지면 괴롭고, 포기 하면 서운하고. 이런 계륵 같은 감정이 다 있냐.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한 이도저도 아니라서 더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휘말 리면 개고생은 따 논 당상이다. 짜증나는 일로 머리 굴리는 건 나답지 않았다. 화제 를 돌렸다
“화천문을 적으로 돌릴 필욘 없잖아”
“언제는 우호적이었고?”
그리고 보니 그러네.
정곡을 찔렸다.
한국 무림의 꼴통으로 불리는 금강문 이다. 사사건건 사고를 치는 아버지의 공 덕으로 김 총관님은 흰머리가 늘고 있었 다. 정우가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예전부 터 화천문과 수시로 으르렁거렸었다 이제 와사이좋게 지내자고 한들, 될 턱이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주변과 어울렸다고.’
강천은 금강문의 부리를 부정하지 않았 다. 역대 조상님들도 대대로 주변 문파와 는 분란을 일으켜왔다. 그럼에도 문파는 유지되었다. 뒤에서 말 많아봤자, 생까면 그만이고. 대들면 주먹맛을 보여주면 얌 전해졌다.
‘분란의 씨앗은 심어 놓았으니.’
화천문방문.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