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다크마스터 (1)
“거봐요, 만날사람은 만난다니까요.”
“그렇게까지 보고 싶다고 한 적 없는 데.”
과장이 섞인 몸짓에 손사래를 친다. 보 통은 귀엽게 넘어갈 수도 있는 행위지만, 몸뚱이는 일절 귀엽지 않았다. 저 몸을 보 고도 귀엽다고 한다면 뇌를 열어 올바르 게 수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대뇌와 간뇌, 소뇌, 척수, 연수의 위치가 바뀌어 있을공 산이 크다.
중년인의 부정에 청년은 가당치도 않은 개소리는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제 나타나는 거 냐며 들들 볶았으면서.”
“걱정돼서 한 소리지, 오해는 하지 말 자”
“오해라고요. 그러시다면 제가 먼저?”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거늘,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느냐’
대화를 들어보면 상봉을 고대하고 있 는 이산가족쯤 되는 줄 알겠다. 기대와 설 렘이 동반된 단어가 나열되었다. 나름 훈 훈한 분위기에 정감이 넘친다. 과거를 상 기하며 아련한 추억으로 물들어도 이상하 지 않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나 됐구 나.”
“전적으로 공적인 관계였죠.”
중년과 청년의 사정은 어긋나 있었다.
청년에겐 일하고, 봉급 받는 사무적인 관계일 분이었다. 선을 그어 놓고 넘어오 지 말라는 엄포였다.
이에 중년인은 서운함을 표현했다.
“공적이라니! 우린 이미 한 가족이나 다 름이 없어.”
“제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 만들진 마시 죠. 피를 나눈 것도 아니면서.”
가족으로 엮으려는 중년과 개수작 부리 지 말라는 청년의 실랑이.
공과 사의 모호함이 만연한 한국 사회 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화였다. 집 단주의를 옹호하는 중년과 개인주의를 선 호하는 청년의 대립이 명확하다. 한국 사 회의 현대화를 냉철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놈아, 나만 좋자고 이러는 거냐? 다
네 미래를 위해서야.”
“제 미래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젊음을 맹신해 철모르고 날뛰면 피 보 는 수가 있다:’
“어떻게 될지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중년의 집요함은 청년의 패기를 물고 늘어지는 끈질김을 내포했다. 현실은 젊 음이 아니라 중년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으 니. 능력이 출중해도 아재 잘못 건드리면 피눈물을 홀리게 된다. 그리고 그 청년이 아재가 되어 미래의 청년을 쥐어짜겠지.
꽈득, 꽈득!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
의도치 않은상황
섣불리 대응 못한 채 관전자로 전락했 다
다크마스터 최경환.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짜증나는 감정과는 별개로 복 잡한상념이 스쳐지나간다.
‘ 함정?’
일우그룹의 애송이로 인해 평생을 공들 인 길드가 어이없이 공중분해 되었다. 앙 갚음을 하기 위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채현우를 찾아냈다. 방 안에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애송이의 껍질을 벗겨 제 모 습을 감상시켜 줄 작정이었다.
한데, 예상치 못한자들이 등장했다 결 계를 쳐 기감을 방해한 걸 감안하면 자신 이 오는 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치고!’
놈들의 대화에 긴장감이 섞여 있지 않 았다.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자신이 누군 가? 한국 8대 길드의 한 축을 담당한 다 크니스 길드의 다크마스터다. 현존하는 한국의 최상위 유니크라 자부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다 잡은 물고기처럼 방치하 고 있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자존 심을 긁었다.
스윽!
최경환의 손가락 끝이 미세한 곡선을 그리려고 할 때였다
“이런, 사람 세워 놓고 우리끼리 얘기했 네.”
“너무한 거죠. 무시는 괄시보다 섭섭한 법인데.”
우연치고는 공교롭다.
방심하고 있다면 바라는 바였다. 최경 환은 살수를 펼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타 이밍을 알고 있다는 듯 목소리가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우연일 리 없다. 감각이 극도 로 예민한 놈들임을 직시해야 했다. 재차 손을 쓰기에는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가만, 이 원색적이고 저급한 목소리 는?’
전체적으로 풍기는 기세가 낯이 익었 다. 연관성을 찾으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현실과는 맞지 않는 본인만의 세상에 갇 혀 주변을 환장하게 만드는 족속. 상황 파 악이 안 된다기보다는 자신감이 남다르다 할 수 있었다. 국내에 그런 존재는 흔하지 않았다. 외모가 아는 바와 다르기는 해도, 변용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일단 질러 본다.
맞으면 좋고, 아니라도 본전이다.
“금강문주?”
“척이면 척이네.”
주고받음을 미학이라고 해야 하나, 변 용까지 했으면서 숨기지를 않는다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힘은 있었다. 이 호극은 자신을 알아봐준 최경환에게 상을 줄기세였다.
스륵!
이호극은 발을 내디디며 변용을 풀었 다. 기회를 잡은 맹수처럼 정우의 앞을 가 로막았다. 저놈은 내 몫이니 건드리지 말 라는 무언의 제스처다. 싸우고 싶어 안달 이 난 종자답다 평소엔 말귀도 어둡고, 굼 벵이처럼 느릿느릿하더니, 이럴 때만 빠릿 빠릿한 데다가 초음속이다. 찬스에 강한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회를놓치지 않네요.”
“나는 암말도안했다.”
“그렇게 티를 내는데, 모르는 게 등신이 죠.”
이호극은 변용을 하든, 하지 않든 누가 봐도 금강문주였다
100명이면 100명다 맞췄을걸.
못 맞췄으면 최경환은 의사와는 상관없
이 등신이 될 뻔했다.
스윽!
정우는 운이 좋다며 엄치척을 보내주었 다
“티 나?”
“엄청요.”
“변용이 쉽지 않아”
“감출 생각도 없었으면서요, 저니까 받 아주는 거예요.”
정우는 문짝보다 넓은 문주의 등을 보 고 명백한 의사를 읽었다. 시장에서 대충 고른 티셔츠를 관통하여 울퉁불퉁한 등 근육이 악마 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만화 에서나 나올 법한 등 근육이다. 통상 무식 하게 큰 근육은 오밀조밀한 맛이 없고, 기 형적으로 보이건만. 문주는 균형 잡인 체 격에 차돌처럼 탄탄했다. 상하체가 절묘한 비율이라 당뇨에 걸리지 않을 건강한 체형 이었다.
“할 수없죠.”
“짜식, 이래서 내가 너를 포기할 수 없 는거다.”
“말 또 이상하게 하시네요. 듣고 오해하 겠어요.”
“오해하라지, 어차피 소문낼 형편도 아 니잖아”
정우는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주도권을 잡은 이호극은 기분이 좋았 다.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 기회였다 절 로 실룩거리는 입꼬리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감정 표현이 화통하다. 한편, 소문내 지 못할 거라는 확신은 이 자리에서 끝장 을 내겠다는 호언장담이었다. 최경환을 완 전물로 본 것이다
‘그렇게 만만해 보이진 않는데.’
정우는 최경환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 았다. 그의 능력치는 결코 문주의 아래라 고 하기 어렵다. 드러내놓고 있는 문주에 비하면, 다크마스터는 진체를 감추었다. 자칫 최경환의 심기에 말리면 곤혹스러운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다 익혔나요?’
‘아 그거. 거의 다:
‘운행 가능하겠죠?’
‘그런 편이지, 한데 왜?’
‘그냥요.’
정우의 생뚱맞은 전음에 이호극은 고 개를 갸웃거렸다. 일전에 익혀보라고 준 심법이 있었다. 나브진 않은데, 직성에는 맞지 않았다 다만, 정우가 이유 없이 줬을 린 만무하니 익혀 놓기는 했다 혹시나 했건만.
빠드득!
최경환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금강문주의 실없는 소린 둘째 치고, 어 째서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났단 말인가? 금 강문주는 한국 무림에서 자타가 공인하 는 꼴통으로 유명하다 제멋대로인 데다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 무뇌(無腦) 인간으 로 통한다.
‘ 젠장!’
금강문주의 화려한 이력이 최경환의 화를 더부추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금강문주가 파 놓 은함정에 걸리다니. 집에서 기르는 똥개 도 금강문주보다는 똑똑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개만도 못한 놈보다, 금강문주보 다 못한 놈이 더 쪽팔린다. 오늘 일이 외 부로 퍼지면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건 한국에 발을 붙이지 말라는 협박보 다 무서운 진실이다.
“한가하게 이빨이나 갈고 있을 때가 아 니지. 자 와봐.”
“가만히 두니까, 네놈이 무서워서인 줄 아느냐:
“그럼 가만히 놔두지 말아야지, 지금 와서 개소리를 지껄이면 없던 폼이라도 생 기냐.”
“이 망할 놈의 꼴통! 오늘이 명년 네놈 의 제삿날이 될 거다.”
이호극의 투기는 어지간한 간담을 지닌 자도 마주하기 어려울 만큼 살벌했다. 그 러나 최경환의 살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파파파팟!
최상위 유니크의 살기 실린 투기에 공 기가 예리한 칼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서 로의 기세가 쇳소리를 내며 전력을 가늠 해나갔다.
솨아악!
가구와 집기가 견디지 못하고 베어져 나갔다 무형의 기운이 병장기보다 날카롭 고 단단했다. 곁에 있기만 해도 고깃덩어 리로 화할 지경이다. 방 안이 총알이 빗발 치는 전장보다 더 살벌했다 기격(氣擊)에 의한 가늠, 이호극은 짜릿 함을 느꼈다.
기맛(氣味)이 찰지다
“호오, 8급이 맞구나.”
“ 네놈도.”
최경환도 용호상박의 기격에 이호극의 무력을 감지했다. 설치고 다닐 만한 무력 이었다. 개한테 물리면 치료비라도 받지만 금강문주에게 찍히면 답도 없다는 소문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투에 등급이 전부는 아니지.”
“내가하고 싶은 말이다.”
일대일이라면 최경환도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일전엔 각 길드와 무문, 연합까지 합세 하는 바람에 작전상 후퇴했을 분이다. 8 급에 오른 이후, 내심 한국 최강의 유니크 라 자부했다. 그렇다 해도 금강문주를 가 볍게 여기진 않는다. 최강의 유니크라는 타이틀과는 별개로 최고의 꼴통은 분명 하다. 어딜 가나 평지풍파를 일으키고도, 탈이 난 적이 없는 걸 보면 능력은 진짜배 기다. 손봐주기 귀찮다는 말은 핑계에 불 과했다.
‘응‘?’
투기의 격돌이다. 그것도 최상위 유니 크가 살의를 숨기지 않았다. 방 안은 살벌 한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서져 버 린 가구와 달리 금강문주와 함께 온 애송 이는 멀쩡했다. 돌아가는 정황과 어울리 지 않은 여유로움과 드러나지 않은 존재 감으로 인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다 최경환은 다시 봐야 했다.
그러자 부조화가 보였다
‘아니!’
투기의 격돌로 튕겨져 나간 파편이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와중 에 놈은 침상에 누워 있는 현우를 보호했 다 제1 장 다크마스터 ⑵
최경환은 기감에서 놓쳤다는 걸 깨달 았다. 금강문주와의 기세 싸움에 집중하 고 있다 해도 이 좁은 방 안에서 움직임을 읽지 못하다니. 위험한놈이 분명했다.
그뿐이 아니다.
‘결을 쳐내?’
기격의 파편이 놈의 근처에서 방향이 틀어졌다. 1번은 운으로 친다 해도, 지속 적이다. 차라리 힘으로 막아냈다면 이해 라도 하지. 결을 쳐내기 위해선 투기의 흐 름이 보여야한다.
기격과 기격의 대결은 초 단위로 이루 어지고,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중구난 방으로 쏟아내는 기격의 파편을 최소한의 힘과 최적화된 궤적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는 아무나 하지 못하는 고도의 방어술 이다.
놈은 겉으로 보이는 나이를 초월하고 있었다.
“네놈은또누구……!”
최경환은 원하는 답은커녕 말을 채 잇
지도 못했다. 청년의 정체보다 마주한 상 대를 신경 써야 했다. 시선이 비틀어지는 찰나를 금강문주가 찌르고 들어왔다. 그 것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격렬한 패기를 실 어서. 생긴 것답지 않게 기습을 밥 먹듯이 한다는 모두의 충고대로였다.
이기면 장땡, 지면꽝
금강문주의 인생지론 이었다
꽈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기는 광포한 포효.
-금강팔격 7식.
- 금강멸혼(金剛滅魂).
시작부터 무지막지했다.
가지고 있는 전력은 논외로 쳐도, 한국 을 대표하는 7대무문의 한축인 금강문의 수장이다. 그럼에도 이호극은 기습을 부 끄러워하지 않았다. 전투에 수단방법을 가리는 것부터가 배가 불러 터진 거라 생 각했다.
그리고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는 강단이 포함되었다.
후아앙!
서늘한 밤바람이 방 안을 감돌았다.
금강멸혼의 위력이 선명하다.
벽면이 흔적도 없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문주답네.’
정우는 이호극의 선빵을 우연으로 치부 하지 않았다.
비겁하고, 생각 없는 기습처럼 보여도 문주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최경환이 나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 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되면 의식이 분산되고, 전투에 매진하지 못하 게 된다. 격렬한 사투에 목마른 문주로서 는 선호하지 않는 상황이다. 노리는 먹잇 감을 내주지 않는 맹수의 기질이었다
‘치고 나간 후.’
1대 1일구도가문주의 속셈이다
최경환의 입장에선 기습에 불과했다. 설마 전력으로 겨루기 위해 시선 분산을 원천 차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특히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를수록 문주의 사상을납득할수 없다 투콰아앙!
문주와 다크마스터의 전초전은 시작부 터 뜨거웠다. 한차례의 공수가 이어지고, 방 안에서 사라져 밤하늘을 시끄럽게 했 다
“후환을 남기면 뒷맛이 쓰지.”
혼잣말은 아니다. 정우의 읊조림을 누 군가듣고 있다.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현우가 눈 을 부릅떴다. 의식이 돌아온 시점은 다크 마스터가 방 안에 들어와 결계를 열고 나 서 부터다. 당연히 전후 사정은 모른다 아 는사실은깨어나보니 알수 없는방안 에 누워 있었다는 것분. 어쨌든 다크마스 터 최경환과 금강문주의 등장은 예상 밖 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야?’
현우는 기억을 되짚었다. 자신은 분명
정우에게 당해 기절했었다. 이후의 기억과 시간은 사라졌다. 최경환이 자신을 죽이 려 하고, 금강문주는 왜 또 막아섰는지 이 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 는낯선 사내도 그렇고, 의문투성이다.
“이대로 가면 섭섭하니, 짧게 설명해 주 지.”
정우는 그간의 사연을 일목요연하게 간 추렸다.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쏙쏙 박혔다. 스타강사가 부럽지 않은 요약정리였다.
부르르르!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낯선 사내는 정우가 분명했다. 그 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부서뜨리겠다고 친 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에도 현우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라고는 눈꺼풀을 떠는 일이 전부였다. 몸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목 아래에 감각이 없다.
‘악마 같은 놈!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을 테다!’
“몸부림 쳐봤자 기운만 빠지지 현실이 바뀌진 않아 크크크크!”
태연히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 정우는 담담히 웃어 주었다.
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분노에 이어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 다
“본문은 일우그룹의 후계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문파가 되겠지.”
전후의 사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 다. 별장에 일우그룹의 후계자가 숨어 있 었고, 다크마스터가 나타났다는 사실만 부각될뿐 주위에선 현우의 선택을 당연하게 바 라볼 것이다 사태를 악화시켜 다크마스터 의 추적을 받고, 가문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해 숨어 있다 비명횡사한 꼴이니까. 이 래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냔 말이닷!’
악을쓴다 한들.
현우의 외침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다
정우만이 유일한 청취자다.
호응은 제로지만
“왜라니? 당연한 수순이지.”
정우는 인과응보로 만족하지 않는다. 같잖은 짓을 하는 놈들에겐 편안한 최후 도 사치다. 죽어서도 괴로움을 않고 가도 록 원한을 새겨줄 필요가 있다. 특히 가족 을 건드리는 놈들에겐 그에 합당한 절망 을 선사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정의롭지 못하다고 해도.
‘호구는 사양이거든.’
가급적 사회적인 통념을 지키려고 노력 은 할 거다. 그러나 모범시민을 빡치게 하 면 곤란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사회 는 조용히 넘어가면, 호구 취급을 하는 경 향이 있었다.
“재물이라도 쓸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여 겨.”
정우는 항상 가족을 건드리는 족속들 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흑호문이 어이없이 사라진 것도 수연이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족 앞에서 단위는 중요하지 않다
“성불이나 개과천선은 바라지 않으마”
현우는 최경환을 끌어들이기 위해 살 려 놓았던 재물에 불과하다. 살아 있을 때 의 가치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부터 죽은 이후의 가치를 하면 된다.
손익을 따져 보면 나브지 않았다. 금강 문의 명성은 지금보다 더 상승하게 될 테 고. 일우그룹은 금강문에 빚을 지게 된다.
“진실은중요하지 않지.”
정우는 자식을 죽이고 그룹을 위태롭
게 했다. 그런데도 은인이 되는 웃기지도 않는 현실이었다. 후일 일우그룹이 전말을 알면 어떨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푸욱
현우의 심장에 비수를 박았다.
일전에 어쌔신나이트를 해치우면서 수 거한 물품 중에 비수를 빼돌렸다. 다크니 스 길드의 안가에 대한 권리를 금강문이 소유하고 있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팽가에서도 안가를 조사했겠지만, 얻 어낼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필요한 건 챙기고, 곤란한 증거는 지워 버렸다. 증 거인멸과 정보조작을 마쳤으니. 귀영각주 의 머리가 꽤나 복잡할 것이다. 설령 찾아 낸다고 해도 연관성을 이어 붙이기 어려울 테고.
‘?…이렇게…는…제발!’
현우의 간절한 바람은 심장이 뚫리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부릅뜬 두 눈에서는 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은 삶 에 대한 몸부림과 원통함 후회가 교차되 었다.
‘건드리…는게 아니었?…!’
정우는 현우의 피 눈물을 감상했다
“좋은데.”
육체에 새겨진 마지막 몸부림, 다잉메시
지(Dying-message)가 아주 훌륭하다: 원독 에 사로잡힌 죽는 순간의 연기가 화룡점 정을 채워줄 것이다. 아들의 원통한 죽음 에 일우전자의 사장이 미쳐 날뛸 공산이 크다.
하나 작금의 상황을 누군가 보고 있다 면?
“못 볼 걸 봤네그려.”
정우는 들고 있던 비수를 집어 던졌다. 휙!
어둠을 뚫어낸 비수가 벽면에 틀어 박 혔다.
시원하게 뚫려 있는 방안.
정우의 시선에서 좌측이다. 부서져버린 액자의 중앙을 비수가 꿰뚫고 지나갔다.
스멀스멀!
딱딱한 벽면에 잔물결이 형성되면서 사 람의 형태가 되었다. 사람이기는 하나, 투 영된 벽면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비수에 꿰뚫린 상태임에도 피가 흐르지 않는다.
정우는 내심 감탄했다.
“극성의 은영술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 겠다.”
은영술(隱影術)은 육신을 숨기는 고도화 된 은닉술이다. 극성에 다다르게 되면 은 폐장소 없이도 육신을 숨길 수 있다. 하지 만 방 안에 숨어 있었던 자는 은영술의 범 주를 넘어섰다. 동화되어 벽면, 그 자체였 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무생물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귀식대법을 펼쳐도 숨은 붙 어 있기 마련이다. 실로 완벽한 위장이었 다 부르르르!
다크스타의 일인, 구오.
다크스타의 구성원은 전원 고아로 최경 환이 데리고 와 직접 키웠다. 구오의 속성 은 동화로 그 어떤 형태로도 육신을 숨길 수 있었다. 천성이 최적화된 암살자다. 구 오가 나서서 해치우지 못한 목표가 없을 만큼, 그의 동화력은 감지가 불가능하다 그런 구오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떻게?”
“파동을 숨겼어야지.”
구오의 육신은 심장이 아닌 핵으로 운 행이 된다. 그의 육체를 구성하는 작은 핵 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육체를 이룬다. 속성을 각성하게 된 이후, 보통 사람과는 다른 구조가 되어 버렸다. 육체를 이루는 핵만 무사하다면 심장이 멈춰도, 숨을 쉬 지 않아도살수 있다.
그런데 중추 핵이 꿰뚫렸다. 중추 핵의 크기는 바늘구멍보다 작다. 그것을 정확 히 꿰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을 대비해 이중삼중으로 숨겨 놓았건만 핵 을 잘라낸 것이다.
“?…말도 안돼!”
구오는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핵 의 파동을 숨기라니, 그 미세한 파동을 인 간이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 같은 현 실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경환처럼 용의주도한 자가 순순히 응했을 린 없을 테고.”
중추 핵이 잘린 구오는 육체를 컨트롤 하지 못했다 컨트롤 되지 않은 육체는 응 집력을 잃은 건조한 모래나 다름이 없었 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놈의 심 기다. 금강문주가 마스터를 공격할 때 4명 의 다크스타가 뒤를 따랐고, 자신은 남아 있었다. 놈은 이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다
“?…네놈이었?…!”
구오는 길드의 몰락이 이자와 연관 있 음을 깨달았다. 세포의 파동마저 감지할 극도로 예민한 감각과 회피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비도술, 상대의 심리를 간파하 는 날카로운 직관까지. 어느 하나도 완벽 하기 어려운 능력을 종합적으로 갖추고 있 었다. 비범함을 넘어 섬뜩함을 가져다주었 다
마스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아니, 세상이 알아야 한다.
괴물이 웅크리고 있음을
그러나 구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푸스스스!
핵이 파괴되자 육신은 모래성처럼 허물 어졌다.
“별의별 속성이다 있네.”
정우로서도 이런 속성은 생경했다. 피 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세포의 중추 핵 만으로 움직이다니, 최경환의 성향을 파 악하지 않았다면 골치 아팠을 것이다.
순수 전투력만 놓고 보면 정우를 따를 자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면에 서는 굉장히 까다로울 수 있음을 직시했 다. 겉으로 드러난 전투력만 보고, 방심했 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