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공략하다 (1)
이호극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었다. 오 랜만에 죽여 버리고 싶은 노인네를 만났으 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10년간 정우와의 혈전으로 다져진 전투스 킬을 맘껏 펼쳐보고 싶을 뿐이다.
“혹금단주는나서지마라.”
팽기성 가지고서는 성에 차지 않은 이호 극이다. 합공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받아 줄수 있었다. 되놈들이 언제부터 1대 1을 선호했다고, 되놈답게 행동해야 했다. 그 래야 수준이 좀 맞았다. 한 놈은 간에 기 별도가지 않는다.
부들부들!
팽기성의 안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 렸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시하다니, 화 가 치밀어서 참기 힘들었다. 속성까지 발 휘할 마음은 없었지만, 이리된 이상 끝장 을 봐야 했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서라도 버릇없는 반도 놈을 꺾어야 한다.
“네놈의 껍질을 벗겨 갈아 마셔 주마!”
“원하는 바다. 물리기 없기다.”
이호극은 바라 마지않았다. 단전에서 활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는 뇌력광마신공 이 분출하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두두두!
이호극의 뇌기에 스파크가 일어나며 공 간을 옥죄었다. 여실히 자신의 능력을 선 보였다. 자신감 하나는 세계 1등이다. 허 튼수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포효하 는듯하다 자, 원하는 대로 까발렸으니 언제든 덤 비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쌔애앵!
이호극은 선수 양보 그딴 것 신경 쓰지 않았다. 팽팽한 대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팽기성의 제공권을 향해 돌진했다. 이어서 내지르는금강팔격의 뇌정금강(=金剛)이 폭화했다.
쿠르르르, 꽈아아앙!
천지를 흔들어 놓는 우레의 외침.
가공할 소요가 일어나며 반경 20m 이 내가 폭삭 가라앉아 버린다. 균열이 번져 가며 파괴의 범위를 넓혀 갔다.
入 O O O |
뇌정이 깃든극강의 권격.
그로 인해 벌어진 처참한 광경과는 대 조적으로 이호극은 물러나 있었다. 내지른 오른팔을 돌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 다.
“야, 인마. 막았어야지.”
“간섭하지 말라면서요.”
“끄응, 짜식이 이럴 때만 곧이곧대로 알 아듣네.”
“단주로서 명을받들뿐이죠.”
이호극이 정우를 향해 투덜거렸다.
방금 전 공수에서 이호극이 내지른 뇌 정금강은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마 지막 타격지점에서 방해꾼이 끼어들어 왔 다. 공간을 찌르고 들어와서 투로의 방향 을 바꾸어놓았다. 어지간하면 무시하려고 했는데, 오른팔이 뻑적지근할 만큼 강맹 했다.
하북삼도의 맏형, 건천도 팽우진.
그가 이호극의 공격을 방해했다. 대결 에 끼어드는 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이나, 방금 전의 공격은 위험했다. 자칫 팽기성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명분을 가진 전투라면 이해를 하나, 이런 식의 오 해로 피해를 입는다면 가문에서 입장이 난처해진다
“무례를 용서하시오.’
팽우진은 이호극에게 예를 취했다.
쩝!
이호극은 입맛이 썼다. 오랜만에 살풀 이 좀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상대가 응해 주지 않고 있었다. 먼저 사과까지 하는데, 막 나가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자고 로 사내란 쿨 해야 한다고 했다. 계집애처 럼 꿍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주먹 이 근질거렸다. 팽우진과의 간극을 확인 해 보고 싶은 무인으로서의 호승지심이 작 용했다
‘나만 나쁜 놈이냐.’
받아주고 싶지 않은 호승지심과 주변의
상황이 대치되자, 이호극은 아쉬움 가득 한 한숨을 쉬었다. 만약 여기서 주먹질을 하면 김 총관이 정말 가만있지 않을 것이 다. 그 노인네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잔소 리만 늘어가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속을 긁어대는 김 총관의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상대할놈도 아니고.’
팽기성과 팽우진은 다른 부류였다. 같 은 하북삼도에 속하지만 무력의 차이가 극명하다. 이는 좀 전의 공수로 충분히 경 험을 했다. 작정하고 싸우면 진다고는 생 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당히 대적할 상 대도 아니다. 엉망진창은 각오해야 했다.
“알면 됐어.”
심드렁해진 이호극은 돌아섰다.
빠?드득!
이호극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팽기성은 이를 갈았다. 낭패한 기색이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팽우진이 개입 을 했다 해도 충격의 여파를 완벽하게 분 쇄하지 못한 것이다. 순간의 전력, 속성을 발휘하면 승산이 있다 여겼건만, 격의 차 이만 확인하고 말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국의 무인이 소국의 무인 에게 굴욕을 당했다 여겼다.
“어째서 말린 겁니까?”
“싸우면 진다.”
“형님이 나선 이상 달라졌을 겁니다.”
“아니, 확실하지 않다.”
“그게 무슨?”
팽우진이 손바닥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팽기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건천장을 이렇게까지 간단히 파훼한 자는 흔치 않아 게다가 이 반진력은 경시 할수준이 아니다”
팽우진의 성명절기는 팽가를 대표하는 도법이다. 그렇다 해서 장법이 약하지는 않았다. 그가 펼치는 건천장(乾天掌)은 집 채만 한 바위도 가루로 흩어낼 수 있었다. 한데, 이호극을 두들기고 난 후 장력을 타 고 홀러오는 반진력에 내기가 흔들리는 충 격을 받았다
“우리가 함께한다면 가능하겠지, 하지 만 느껴지지 않느냐?”
“이건.”
안가를 중심으로 몰려오는 자들이 있 었다. 무리는 뒤늦게 소식을 접한 무문연 합이다. 이 자리에서 이호극과 전투를 벌 인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명분 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를까, 주변 여건이 불리했다. 그러나 소득이 아예 없지는 않 았다.
‘이호극이 이렇다면 다른 자들도 가벼 이 여겨서는 안 되겠군.’
단순히 무문연합의 등장 때문만은 아 니다. 이호극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 상 황에서 무문연합까지 상대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현실 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정우가 팽가의 무인을 데려왔다. 심한 고초를 당한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그대 로 남아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기는 했어 도, 족히 3개월은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고문이 심하지 않다고?’
‘이 악마 같은 인간!’
돌아서 가는 팽가의 두 무인은 치를 떨 었다. 다크니스 길드에 사로잡혀서 고문을 당했지만, 이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었 다. 몸 구석구석에 남은 상처는 자신들을 인도한 인간의 작품이었다.
이극은 두 사람을 맞았다.
“삼공자 고생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당분간은 고생을 더 해야 할 것 같습
니다.”
“알겠습니다.”
이극은 고분고분한 팽세기를 보고, 평 소와 다르다는 것을 파악했다. 눈빛에 고 생의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아무래도 심 한 고초로 인해 성향이 바뀐 듯하다. 어쨌 든 사태의 내막을 알려면 팽세기와 건곤 대주의 증언이 필요하다 후후.
정우는 속으로 히죽였다.
‘거짓이든, 사실이든.’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현실이다. 그러 면 호구 인증이 되니까 결국손을 쓰게 될 테고, 한국은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나아 가게 된다
흑호문을 괴멸시키고, 팽가의 무인을 납치한 세력이 드러났다.
다크니스길드.
당장은 반신반의했다 모든 일에는 인과 가 있기 마련이다. 다크니스 길드가 흑호 문을 공격한 까닭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유 없이 공격을 한들, 자칫 공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사태가 말해주고 있었다. 다크니스 길드의 안가에 팽가의 직계혈통이 사로잡혀 있었다. 이것만 해도 증거로서는 차고 넘쳤다.
금강문의 금강신룡과 두 형제가 큰 공 을 세웠다. 우연치고는 공교롭지만, 어쨌 든 무문연합이 하북팽가보다 먼저 사태를 해결하게 되었다 무문연합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속전속결, 팽가와 연수하여 다크니스 길 드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길드 연합에는 통보했기에 다크니스 길드를 지지할 입장 이 아니었다. 연합에서도 암묵적으로 중 국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어 중재는 어려 웠다.
다크니스 길드에겐 마른하늘의 날벼락
이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와 길드를 조사하 겠다고 하니 들어주기 어려웠다. 그간 해 온 일이 까발려지면 길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시간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무문연합과 팽가가 너무 빨랐다.
결국 충돌이 벌어졌다
다크니스 길드가 완강하게 저항하자 무 문연합과 하북팽가는 무력을 동원했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다크니스 길드였 다
충돌로 인해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통보를 받은 길드와 연합에서 인근을 통제하며 결계를 구축했기에 그나마 다행 이었다.
다크니스 길드의 전투력은 예상보다 강 했다. 그러나 무문연합과 팽가의 무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각 무문에서 파견된 무 인의 등급이 높았다. 이번 일에 금강문의 공적이 컸기에 그에 상응하는 공적을 쌓 아야 했다.
각 무문으로서는 다크니스 길드장, 최 경환을 사로잡아야 했었다. 다크마스터는 어둠의 재앙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실력 자다. 수가 많다고 해도 제압하기 어렵다. 최정예 무인을 동원해야 최소한의 피해로 사로잡을 수 있다 판단했다
‘공적에 눈이 멀었군.’
정우는 혹금단 1조만 이끌고 문주와 3 형제를 보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다크니스 길드는 거대한 성을 방불케 했다. 중세시대의 성을 모티브로 했다나.
“단주, 저희도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됐어.”
이호극은 아들들을 이끌고, 최전선으 로 파고들었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 을 만큼 살판났다. 오는 족족 길드원을 부 숴버리고 있었다.
각 무문의 수장이 뒷짐을 지고 사태를 관망할 때, 제일 먼저 뛰쳐나간 인간이 이 호극이었다. 전후의 상황 판단 따위는 하 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니 각 문파의 수장들도 가만 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호극의 무력 이 이전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경지에 올라서 있음을 깨달았고, 자칫 그가 길드 장을 사로잡기라도 하는 날에는 금강문에 공적을 전부 빼앗길 수 있었다
“법이 참우습지?”
“그렇습니다”
법치주의가 무너져 가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사람이 죽 어가는 전장의 터를 열어 버린 것이다. 이 번 단 한 번, 예외적으로 적용한다는 유니 크 연합의 공표가 있기는 하나, 선례를 남 기게 되었다
“무문, 길드, 연합이 단결하면 법 따위 야 언제든 제 맘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 지.”
“사람들이 불안해하겠군요.”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양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 니다.”
양용익 부단주는 사태를 태연히 관망
하고 있는 단주가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 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번 사 태는 저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전체의 판 을 주도하는 건 단주였다.
‘우린 양아치에 불과한데.’
양용익은 자신을 잘 안다. 동네에 거주 하는 양아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 다. 단주를 만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채 살고는 있지만 감히 넘보기 어려운 세 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들이 단 주가 바라보는 세상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같잖은 양심은 집어치우고, 너희 살 궁
리나 해.”
“ 명심하겠습니다.”
양용익은 두말하지 않았다. 단주가 그 러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한편 으로 모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단주가 과연 열일곱 살이 맞는지 불가사의 했다. 저 나이에 이런 능력과 심기는 사기 였다.
“얌전히 끝낼 사람이 아니지.”
다크마스터를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용의주도한 자다. 또한 독하다. 다크니스 길드가 해 온 일을 살펴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에 딱 한 번 등 장했다. 이후로 전장에서 사라졌다. 아마 길드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쇼일 것이다.
‘전면전은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때였다
꽈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정면으로 달려들었던 무인들 10명이 튕겨져 나갔다. 거칠게 저 항하는 자는 무려 20m나 되는 거인이었 다 속성을 발휘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저런 덩치를 가질 수 없다.
자이언트 스톤 강영학
다크니스 길드 서열 7위의 길드원이다.
그는 거대화 속성과 금갑공(金甲功)을 익 히고 있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최적화를 이루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능력의 소유자 다. 순수 능력만 놓고 보면 서열 5위 내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미친 듯이 치고 나가며 무문연합의 진형을 홑트려 놓았다.
“개잡놈들! 이대로 우리가 당할 성싶으 냐!”
강영학의 또 다른 별명은 크레이지 스 톤이다.
한 마디로 미친놈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쳤다고 해도 등급 7의 상위 유니 크다. 살의를 발산하며 무대를 무자비하게 휘젓고 유린했다. 사방으로 튕긴 무인 중 절반이 짓이겨진 채 숨이 끊어져 버렸다. 호랑이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의 형세 였다.
“포위해!”
“놈을 잡아!”
강영학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상위 무인 이 동원되었다. 7대 무문의 단주급 이상 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다. 나름 일선에서 차분히 명성을 쌓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 어 강영학은 단번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 릴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는 패왕문의 전룡 이경…… 크악!”
“새끼 말 많네, 자기소개 하러 왔냐!”
패왕문의 이경준은 제 소개를 끝내지 못하고 대가리가 터져 버렸다.
강영학의 스톤 펀치에 적중당한 것이 다. 덩치가 크다고 스피드가 느릴 거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강영학의 속도는 일반 무인이 따르지 못할 만큼 엄청났다. 게다 가 돌처럼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 과 달리 의외로 감각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