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114화 (114/500)

제 5장 공적을 쌓다 (3)

두둥

7단의 현천공을 드러낸 정우의 기세는 짙은 어둠처럼 묵직했다 타오르는 전의를 가라앉히는 가공할 위압감을 뿜어냈다 내가바로 현천의 지배자다.

크윽!

전의를 끌어올린 파이어와 아이스는 체감했다. 심령을 압박하는 기세가 전해 졌다. 분출하는 극양극한의 기운마저 위 축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세를 가지는 자는 흔치 않았다. 한국을 지탱하는 무문 길드, 연합의 수장이 아니고선.

‘빠득, 그럴 리 없다!’

파이어와 아이스는 쌍둥이라서, 영혼이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의 생각이 전이되어 의사를 합일시켰다. 이런 가공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전면에 드러나 있어야 했다. 여태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는 건 설득 력이 떨어졌다.

정우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빈틈이 많아 보이는 자세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 렇지 않았다. 언제든 대응이 가능했다.

왜냐고?

공수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었다.

파파파파팡!

쇠를 치는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정우와 파이어, 아이스가 어우러져 권 각을 나누었다. 나아가는 주먹과 발이 보 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극양극한이 실려 있어 부딪칠 때마다 공간이 얼었다, 녹았 다 반복했다. 한 번이라도 직격을 당하면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하나, 파이어와 아이어스의 공격은 정 우의 제공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맞물리는 물레방아의 톱니처럼 정우의 팔다리에 막혀 들어갔다. 단순히 스피드 에서 앞선다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는 이를 악무는 파이어와 아이스의 얼굴 에 쓰여 있었다.

‘제공권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다니?’

‘이렇게까지 완벽한 공수가 가능한 일 인가?’

파이어와 아이스는 속성분만 아니라 권각술에도 능히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 었다. 특히 합공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수의 밸런스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마치 손발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하는 위 치를 점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었다.

퍼억!

맞물렸던 권각이 어긋났다

파이어와 아이스는 얼굴과 배를 가격당 했다. 초염화와 초극한에 이른 육체는 닿 기만 해도 녹아내리거나 얼어붙는다 하지 만 상대는 속성을 무시하고 파고들어 와 오장육부를 흔들어 놓았다 크억!

파이어와 아이스의 신형이 비틀거리면 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까지 치 솟아 오르면서 격전을 벌였던 것치곤 허무 하기까지 하다 착

바닥에 발을 내디딘 정우의 신색은 여 전했다.

털썩

파이어와 아이스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부를 휘젓는 가공할 기운의 여파에 몸 부림을 쳐야 했다. 속성을 갉아먹으며 회 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어때, 나의 기경이?”

기경전이(氣勤轉移)의 수법, 기운을 상대 방의 육신에 집어넣는 고등기술이다. 속성 의 상극을 집어넣었기에 당하는 입장에선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내게는 화기를’

‘나에겐 한기를.’

파이어와 아이스는 내부를 파고들어 온 기운의 종류를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상성상 화기와 한기는 합일을 이루 기 어렵다. 그럼에도 합격을 이루어 전투 를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쌍둥이라는 이점 때문이었다.

그렇다 한들 내부에 파고든 극상성의

기운은 속성의 원천을 건드리고 있었다.

‘강하다!’

파이어와 아이스는 깨달았다. 상대는 거의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전투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믿어지지 않지만, 놈의 손바닥 안에서 재 롱을 부린 격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속 아선 안 된다. 어리다고 할 수 없는 전투의 능숙함과 연륜, 경험이 전해졌다

“끝을 내주지.”

시간 소비는 이쯤 했으면 됐다.

정우는 권형을 발출했다

슈아앙

허공을 격해 목표물을 격살하는 격공

권擊空호).

휘이잉!

무형의 기운은 나선을 그린다. 목표물 은 와류경(滑流幼)에 휘말려 갈가리 찢겨 버릴 것이다.

푸아아앙

공간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주변을 빨아들였다가 토해냈다. 와류의 흔적이 지면의 거죽까지 말아 올려 산산이 흩어 버렸다.

정우는 내지른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격공무형권(擊空無形호)이라 해도 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뻗어내면 나아가는 힘 과 동시에 성공인지 아닌지가 느껴진다. 공기를 타고 온 반진력이 주먹에 닿았다. 굳건한 방벽을 친 감각이 전해졌다 소요가 가라앉고 자리한 광경.

파이어도, 아이스도 아닌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존재감 또한 쌍둥이와는 비교 가 되지 않을 만큼완벽했다 뿌득뿌득!

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팔을 털자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곧, 정우를 내려다보았다. 190cm의 거구인 정 우보다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융합을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융합?”

정우는 설마 했었다. 속성이 천차만별 이라고는 하나, 합체가 가능한 일인가? 로 봇도 아니고. 더욱이 전혀 다른 개체가 되 어 있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하기에는 무리 가 따른다 주변은 결계가 쳐져 있고, 다른 놈?이 찾아온 걸 모를 만큼 감각이 무디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는?”

“그렇다, 내가바로.”

정우가 더 빨랐다.

“김말개똥이구나.”

으..

사내의 말문이 막혔다. 단순히 대답이 늦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이 파이어 와 아이스의 융합된 새로운 모습이라고 밝히려고 했었다. 하지만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둘이 하나가 됐으면 이름도 하나 로 합쳐야 하니. 순서대로 김말개똥이 맞 다. 그러나 융합된 모습이라고 해도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무엇보다 엄연히 새로운 이름이 있었다.

“내 이름은 언리미티드다.”

“아아그러셔요. 김말개똥씨.”

“융합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겨뤄보면알겠지.”

“잘난체도 여기까지다!”

“여하튼 서양 이름이라고 다 멋있지는 않아 한국말을 써야지.”

튀어 보려고 영어를 섞는데, 좋아 보이 진 않는다. 오히려 머리가 더 비어 보인다.

김말개똥이 토속적어서 더 정감이 있었 다

‘서열 3위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 랐네.’

다크니스 길드 최상위 서열 3위가 언리

미티드다. 하지만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다크마스터 최경환에 의해서 3위로 정해 져 있을 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파 이어와 아이스의 융합이 언리미티드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바로 눈 앞에서 본 정우도 솔직히 좀 믿어지지 않 았었다.

“남은 질량은 어디로 간거야?”

파이어와 아이스가 합쳐졌으면 저보다 는 더 커져야 했다. 그런데 반 배 정도 불 어났을 뿐이다. 그럼 남은 질량은 어디로 갔을까? 평생 저대로 사는 건 아닐 테고, 분리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나 있는 건가? 혹, 지금보다줄어드는 부작용 같은게 있는걸까?

이런 상황에서 별게 다 궁금한 정우였 다. 호기심이 상당했다.

슈아앙!

신호를 내기도 전, 정우와 언리미티드 가 부딪쳤다.

이전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고속공 방이 펼쳐졌다. 동서남북천지(東西南北天 地), 육방이 두 사람의 공간으로 변질되었 다. 순간 이동을 한 듯, 공방이 펼쳐지고 기파가 새어 나갔을 때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수의 조율이 완벽해졌잖아’

왜 언리미티드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 다.

일정 부분 우리의 말로 해석을 하면, 무 극(無極)이라는 뜻과 어울린다. 무극은 태 극의 극의, 음과 양의 이원화된 기운이 일 원일기(一元一氣)를 이루는 경지를 의미했 다. 무당파의 조사, 장삼봉의 완벽한 극태 극 무극을 완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좌수에는 극한을 우수에는 극양을 다 루네.’

파이어와 아이스였을 때도 합격은 완벽 한 편이었으나, 융합을 이룬 지금과 비교 를 하면 갭의 차이가 상당했다. 어른과 아 이의 수준 차가 보였다. 게다가 적절하게 극양극음을 다루고 있었다. 위력은 물론 효율적이기까지 했다.

‘꼼꼼하군.’

다크마스터의 성향이 파악되었다. 아마 팽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생각을 했을 것 이다.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했다면 모를 까, 현재로서는 의심하는 수준이었다. 이 런 때 만약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판단한 것이다. 아마 지금쯤 길드연합의 회합이 끝났을 테니, 부리나 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게 번하다

‘나브지 않아’

상대가 꼼꼼하고, 완벽할수록 덫은 더 욱 견고해진다. 그런 자일수록 주변의 누 구도 믿지 않는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 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놈이, 한눈을 팔아!”

상념을 깨우는 일갈

언리미티드의 좌수와 우수가 동시에 펼 쳐졌다.

하늘의 건(乾), 땅의 지*, 기둥을 세워 건곤지주(乾博支柱)를 완성했다. 순리를 따 르는 거대한 기운의 무리가 중첩이 되어 공간을흔들어 버렸다.

꽈득

정우는 제공권을 비틀어 원래의 흐름 을 찾아가려는 언리미티드의 건곤음양합 일기 (乾패陰陽合一氣)를 잡。■챘다.

“그게 뭐?”

“?…아니!”

건곤지주가 완성되었으나, 정우는 흔들 리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반격을 했다. 언리미티드의 완성된 기둥을 잡고 부수어 버렸다.

푸아아앗!

건곤지주가 부서지자, 언리미티트의 융 합된 기운이 크게 요동을 치며 흔들렸다.

상하체가 휘청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물러서게 했다.

“말?…도안 돼!”

언리미티드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 실이었다. 자신은 파이어도, 아이스도 아 니다. 융합을 이루어 차원이 다른 월등한 존재로서 태어났다. 그런 자신의 공격을 이토록 간단히 되돌리다니, 현실성마저 떨 어진다.

“무극을 이루면 다 되는 줄 아나 봐”

무극이 어떤 이들에게는 종착지가 될 수도 있지만, 정우에겐 지나간 과정에 불 과했다.

장삼봉 천마, 전생의 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이름이 좀 있었을 뿐, 같은 급으로 보면 섭섭하다. 그리고 언 리미티드는 융합으로 이룬 무극, 편법이었 다 완벽한 무극을 이루어 우주의 섭리를 파악하고 있다면, 좀 상대할 만하겠으나 진의와 형을 반쯤 익힌 반쪽짜리로 감히 현천공과 견주려고 하다니, 그거야말로 아무도 웃지 않을 코미디다.

“반이라도 익혔으니, 반-무극이겠지.”

“헛소리 집어치워라!”

언리미티드는 한 순간 스쳐 지나갔던

공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공포를 모르는 어둠의 학살자다. 저따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게 지지 않는단 말이 다.

- 일원일기무극강(?元?氣無極剛)!

현재 언리미티트가 발휘할 수 있는 최 강의 공격기다. 그의 전신에 남아 있는 합 일된 극양극한을 극대화하여 단숨에 발 출시켰다.

“그렇다면 나도.”

-현천삼도 절명순살(絶命解殺), 일보전 광

언리미티트와 정우의 신형이 빛살이 되

었다. 서로의 영역에 다가설수록 기운이 발출되어 천지사방을 뒤흔든다. 밀리지 않 으려는 기세의 싸움이 먼저였다.

쩌어어엉!

공간을 관통하는 기묘한 울림.

정우와 언리미티드의 신형이 반대편에 다가섰다. 폭발적인 격돌의 여파도 찰나에 잠잠해져 버렸다. 대결이 끝났음을 실감하 게 해주었다.

“?…어……떻게 너 같은 자가?”

언리미티드의 동공이 서서히 빛을 일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눈에 새겨진 의문 은 감추기 어려웠다. 마지막에 보인 수는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전 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런 괴물이 다크니스 길드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보 이지 않는 장막 속에 웅크린 괴물은 상식 을 가분히 넘어섰다

“?…그대였군.”

“그래.”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평화”

“?…헛소리!”

언리미티드는 끝내 숨이 끊어져 버렸다.

어찌 되었건 일격으로 두 명을 죽였으니, 일타쌍피이기는 했다.

‘닭살 돋는군.’

가족과 화목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였지 만, 과연 그것을 바라는 것인지 되새겨 봐 야 했다. 분란을 원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산 속에 숨어 유유자적 살수만은 없는 노릇 이 아닌가. 과거에 비해 현대는 놀 것도 많 고, 할 것도 많았다. 세상 속에 어우러져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되돌린 순 없잖아’

여기까지 와 버렸다. 비탈길을 굴러가기 시작한 바위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오 히려 더 힘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끝까지 가보는 것이 나았다.

‘이쪽이 내 전문 분야이기도 하고.’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선택해 야 했다 그래야 적성에도 맞고, 능률도 좋 을 수밖에 없다. 정우의 전생은 패도의 군 왕이었다. 밟히기보다는 밟아 왔던 존재 다. 이제 와 밟히는 삶을 살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호랑이 풀 뜯어 먹는 개소리 다

‘김 여사도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했고.’

그러고서 김 여사가한다는 말이.

-나도 나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란다.

역시 김 여사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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