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105화 (105/500)

제 4장

짜고 치는 고스톱(탄) (1)

의뢰가 들어왔다. 은밀하게 뒤를 캐고, 함정을 파는 일이다 이런 쪽으로는 우리가 전문이다. 건물 의 명판은 인력개발원, 즉 흥신소로 분류 되나 일반적인 흥신소로 보면 착각이다. 이런 말 내 입으로 하면 자랑 같지만 정재 계의 의뢰를 실패 없이 수행한 이력이 있 다

데리고 있는 50명의 애들 중 10명은 유 니크 등급 5급이다. 등급의 축에 속하지 못하는 흥신소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다 흑막(黑幕).

전국에서 우리의 진짜 이름을 아는 이 들은 극소수다. 의뢰를 수행하려면 비밀 엄수가 그만큼 중요하다. 돈이 더 된다고 해서 이름을 팔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돈이 아무 리 좋아도, 내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다.

“선수금으로 3억이라”

하는 일에 비해서는 나브지 않은 액수 다

목표물은 핏덩어리에 불과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 다 차라리 암살이 훨씬 간단하고 쉽다. 그 런데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의뢰 를해 왔다.

원한이 깊다는 의미다.

“이런 때일수록 꼼꼼할 필요가 있지.”

쉬운 일이라고 대충대충 한다면 직업의 식을 갖추지 못한 행동이다. 그리고 매사 에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해결사로 오 래 살고 싶으면 돌다리도 두들겨 볼 필요 가있었다.

일단 목표물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토대로 인원을 파견했다. 곧, 필요한 정보 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빠직!

탁상에 발을 올리고 거만하게 앉아 있 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

사전에 허락을 구하거나, 예약이 되어 있었다면 모를까. 주인의 꼼꼼한 성향을 모르고서 들어오다 된통 당한 녀석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런데도 문을 두드리다니, 요새 푸닥거 리를 하지 않은 듯하다. 단체를 다스리려 면 연례행사처럼 두드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빠릿빠릿하게 행동한다. 그럼 아랫 것들은 아무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린다 고 투덜대지만, 위에 있어보면 알게 된다.

드륵!

문고리를 돌렸다.

그는 기가 찼다. 들어오라고 허락하지 도 않았는데 문을 열다니, 매를 벌고 있었 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인생의 쓴맛을 새 겨주어야 했다. 처맞지 않으니 정신 줄을 놓고 다니는 것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코 베이는 세상이다. 하물며 해결사를 하려 면 만사에 철저해야 했다. 계산에서 어긋 난 행동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었다.

문이 대차게 열렸다.

“응‘?”

그는 흑막의 수장 박찬균이다

혹막에 소속된 개개인의 안면을 익히고 있다.

문을 대차게 열고들어온 놈.

낯은 익지만, 혹막에 소속되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은 5층 건물 의 최상층이며 엘리베이터가 없다. 각 층 마다 거쳐서 올라가는 구조다. 아무런 제 지도 없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한다.

그런데 버젓이 눈앞에 있었다.

“네가이건물의대가리냐?”

“?…뭐 이 새끼야”

들어오자마자 내뱉은 폭언에 박찬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욕이 튀어나왔다 살면 서 이런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봉변은 처 음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내가 누군?… 어?

너는?”

“낯이 익지, 안그래?”

낯이 익을 수밖에 없다.

탁상 앞모니터 영상

의뢰인의 목표물과 닮았다. 아니, 똑같 았다. 사진이 현실로 구현됐다고 보진 않 는다. 그러나 목표물이 왜 여기에 있는지 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조사를 위해서 인 원을 파견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다.

‘ 함정‘?’

함정이 아니고서야 납득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왜? 라는 의문점이 나온다. 의 뢰인과는 몇 년간 꾸준히 거래를 해 왔다.

이제 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의뢰인에게 도 좋지 않았다. 설마, 의뢰인에 대한조사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건가. 그럴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찬균은 토사구팽을 의심했지만, 그 도미심쩍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걸어 들어왔어.”

“어림없는 수작 부리지 마라!”

“그럼 답나왔네.”

허락을 받지 않고 최상증까지 무사히 올라오진 못한다. 혹막의 요원들이 가로막 을 게 번하다. 그런데도 올라와 있었다.

‘내가느끼지도 못했다고?’

박찬균은 6급의 유니크였다 싸움이 벌 어졌다면 감각에 잡혔어야 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놈은 고작 열일곱 살의 핏덩 이다. 이제 막 유니크에 발을 디딘 애송이 에게 특급 요원들이 당했다는 뜻이 되는 데,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다 혹막의 요원들 개개인의 전투력은 무문 이나 길드, 연합의 상위 유니크에 비해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됐고, 일단 맞자”

“?…뭐?”

“귓구멍도 막혔냐.”

이 바닥이 거친 욕과 잔혹한 수법이 난 무하는 곳이기는 하나, 새파랗게 어린 놈 에게 능욕을 당할 줄이야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죽고 싶은거?…크악!”

박찬균은 채 말을 끝내지 못했다.

문 앞에 있던 놈이 정면에 다가와 있었 다. 탁상을 두고 마주 선 순간, 눈에서 번 갯불이 번쩍였다. 아찔함이 눈두덩을 파 고 들어와 뇌를 크게 흔들었다 의식이 잠 시 끊어지면서 현실에서 벗어났다가돌아 왔다 멍!

고통은 둘째 치고, 방금 뭐가 지나간 거 지?

빛보다 빠른 새?

구태의연한 눈 깜빡할 샌가?

박찬균은 납득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 다 이해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목표 물은 잠재등급이 3급에 불과했다. 그런 애송이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처맞은 것이다.

“잡념이 맞네.”

...크악!”

사고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오른쪽에 이어 왼쪽 눈두덩에서 충격 이 전해졌고, 고개가 급하게 꺾였다. 원래 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양쪽 눈에 시퍼렇 게 멍이 들었다. 순식간에 모세혈관이 터 지고, 살이 부어올랐다. 정상적으로 수면 을 취하지 못하고 일어났을 때보다 족히 두 배, 벌에 쏘였다고 봐도 무방한 형태다.

“이젠 걸어 올라왔다는 말이 이해가 되 냐?”

박찬균의 안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유가 어떻든, 놈?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시각은 물론, 모든 감각에서 벗어나 있었 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혹막에서 가장 강한 유니크는 바로 자 신이다. 요원들이 달려들어 봤자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그렇더라도 나이도 어린 놈 이 다짜고짜 반말을 찍찍 하다니, 화가 치 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이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살아 있네 기세가.”

“허세 부리지 마라, 네놈은 이미 나에 게 걸려들었다”

이거 어디서 말이 들어본 말툰데.

죽었는데 산 척하지 마라, 그런 종륜가?

“헛소리를 잘도?… 어? 진짜네.”

정우는 육체를 옥죄는 기운을 감지했

박찬균의 속성은 그림자 묶기다. 얼떨 결에 두 방을 처맞은 후 곧바로 속성을 최 대한으로 끌어내 그림자를 제압했다. 일 단 걸려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몇 번 이득을 봤다고 여유를 부린 대가였 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봐라, 애송아!”

“생긴 대로 치사하게 노는구나.”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것도 여기까지 다 곧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게 해주마”

“꿈도야무지네.”

박찬균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속성에

걸리고도 여유 만만한 놈의 면상이 마음 에 들지 않았다. 주제를 모르고 있다면 가 르쳐 주는 것도 어른의 도리다. 어떻게 찾 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차라리 도망치 는 편이나았다.

“이래도?”

“어, 내 팔이 왜 이래?”

박찬균은 자기 손을 더럽히는 편이 아 니다. 목표물을 조종해서 제 스스로 숨통 을 끊도록 만든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 며 죽어갈 때 인간은 최악의 공포를 느낀 다. 또한 당한 대로 갚아 주어야 직성이 풀 렸다.

“젠장, 멋대로.”

의지를 벗어난 정우의 주먹이 목표물을 찾았다.

퍽!

고개가 팩! 하고 돌아갔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대상, 박찬균의 동공이 크게 혼들렸다. 왜? 라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속성을 발휘 했다. 그렇다면 놈은 제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어야한다.

“이런, 왼쪽으로 치려고 했는데 오른쪽 을 쳤네.”

“?…뭐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열이 확 뻗쳤다.

박찬균은 급히 속성을 재조정하고, 놈 의 육체를 통제했다. 등급이 한 단계 이상 높다 해도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저 애송이가 그림자 묶기에서 벗어날 능력을 가졌다고는 보지 않았다.

퍽!

고개가 돌아가고, 입술이 터졌다. 붉은 선혈이 벽면에 추상화를 그렸다.

그러고서 들려오는 자책의 말투.

“오른쪽으로 치려고 했는데, 왼쪽을 쳤 네.”

“이런말 같지도?…크악!”

박찬균의 고개가 좌우로 연이어 회전했 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피 분수가 터져 나오면서 사방을 붉게 물들였 다 방 안의 단조로운 구성과 결벽증에 가 까운 깨끗함이 대조되었다 퍽퍽!

정우는 좌우로 빠르게 끊어 치고 있었 다

복싱의 트리플-잽의 슈퍼 진화형, 헌드 레드-잽이다.

휙휙!

그럴 때마다 박찬균은 고개를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어야 했다. 맞고 있다는 사 실마저 잊은 빈사 상태가 되어갔다. 가랑 비에 옷이 젖는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었 다. 정우의 잽은 암반을 박살 낸다. 좌우 로 돌덩어리를 연속으로 처맞고 있는 중이 시다.

“자꾸 반대로 되네.”

의지와는 다르게 날아가는 주먹.

자책하는 겸손한 정우.

팩!

고개가 좌우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 운데 박찬균은 울화가 치밀었다. 저놈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게 분명했다.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귓구멍이 여느 때와 달리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었 다. 지나치게 또렷해서 육체는 물론 정신 까지도 괴롭힘을 당했다

“너 정말대단하구나.”

“?…크 ……그만!”

“이런, 멈추고 싶은데 멈춰지지가 않 아”

개 같은 소리를 잘도 하고 있었다.

본인은 멈추려고 노력한단다. 그럼 여태 까지 잘못 날린 주먹에 일일이 다 처맞고 있다는 뜻이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박찬 균이지만, 이런 상황은 생소했다.

더 이상 놈이 애송이로 보이지도 않았 다. 지저에서 막 올라온 뜨끈뜨끈한 악마 가 분명하다. 저 웃고 있는 비틀린 입꼬리 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저놈은 지금 즐기 는 중이다. 자신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부서져 버린 장난감에 불과했다 부서진 장난감의 최후는 보지 않아도 명약관화다.

퍼억!

박찬균의 의지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피하려고 해도, 막으려고 해도 불가능했 다 그뿐이랴.

위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맞아 죽는다는 걸 느꼈다

“죽이지 않아 걱정하지 마”

정우는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 장은 다를수밖에 없었다.

‘죽?…는다!’

눈앞에서 사람을 무자비하게 패는 놈이 다. 게다가 여태 내뱉은 말과는 정반대로 행동을 했다.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 죽인 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며, 이 사회 는 살인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괴물 은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박찬균은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괴물의 손에 걸린 파리 목숨임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삶이 힘들면 또 몰라 이 바닥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기에 극도의 공포가 밀려왔 다 왜? 라는 의문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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