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책임전가 (5)
반쯤 장난으로 시작되었던 대화, 우화 의 눈매가날카롭게 변했다.
“네 말대로 무인은 무공으로 가치를 증 명한다고 쳐, 승산은 있는 거야?”
“주둥이를 나불거린다고 될 일은 아닌 걸로 아는데.”
“확신은 없나 보네, 아니면 증명할 자신 이 없거나?”
“그런 식의 도발은 먹히지 않아”
“너야말로 생긴 대로 살지 그러냐.”
“나는 이미 생긴 대로 살고 있다.”
우화는 대화를 할수록 혹금단주가 보 통이 아님을 체감했다.
대부분의 사내들, 그들의 반응은 대동 소이한 편이었다. 화천문의 배경, 나의 화 려한 외모를 홈모했다. 여러 성향의 사내 를 살펴봤음에도 혹금단주는 특이하다. 단순하면서, 본질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 온다. 직관이 날카롭고, 냉철한 자의 특징 이었다. 또한 본인과 관계가 없으면 단호하 며,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맺고 끊음이 분 명하다 한번 아닌 건, 아닐 수도 있었다
“탐색은 끝나셨나?”
“눈치 깠어.”
우화는 우회적이기도 하며, 직선적이기 도 하다. 어떤 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실 과 허를 적절히 감추었다.
“칼 맞을 짓이야”
“그럴 배포는 있고?”
“네 오빠한테 물어보면 답 나올 텐데.” 화천문의 대공자는 현재 병상에 있었 다. 육체적인 상처는 회복이 되었지만 정 신적인 대미지가 컸다. 모두가 보는 앞에 서 한 방에 기절했으니, 살아생전 겪어 보 지 못한 크리티컬 대미지를 받은 것이다. 당분간은 명상을 통해 정신을 보양해야 했다.
“우리 집안은 다들 성격이 불같아 감당 할수있겠어?”
“본문은 어떻고?”
“거봐, 우린 잘맞는다니까.”
금강문과 화천문 성격적인 측면만 보면 화끈함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좋게 봤을 때다. 무문연합에서 말썽을 일으키 는 대표적인 문파였다 금강문은 왕꼴통.
화천문은다혈질.
두 문파와 섞여 봤자 좋지 않다는 의미 가 되었다. 우화는 이를 장점으로 승화하 여, 공통점으로 묶었다.
‘만만치 않은 계집이군.’
이런 타입은 요부가 되기에 딱 알맞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그렇지 않다. 요부를 좋지 않게 표현을 하는데, 예로부터 요부 는 머리가 뛰어났다. 단지 아름다운 몸뚱 이만 가지고 세상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 다. 아름다움에 비견되는 두뇌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사내지만, 사내 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이 왜 나왔겠 는가. 사내의 입장에서 요부는 가지고 싶 은반면, 가져서는 안 되는 부류다. 필요가 다하면 요부는 언제든 날카로운 독아를 드러내며, 잡아먹으려고 할 테니.
‘ 피곤하지.’
정우에겐 요부는 아니더라도, 신안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 부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신안이 극대화되 면 비밀은 사라져 버린다. 정우조차도 까 딱 잘못하면 신안에 까발려질 수 있었다.
“귀찮다고 너무 티 낸다. 매너 진짜 없
다.”
“모르는 여자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 는데, 웃으면서 답하라는 거냐?”
“그게 매너야”
“적당히 해라”
어설프게 기회를 주는 게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선을 넘지 않도록 희망을 사전에 부숴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날 수 있지. 정우는 효율성을 자신은 물론 남한테도 제안했 다
“여자친구 있으니까, 그만들이대.”
“어머, 자뻑도 심하셔라.”
“아니라면 다행이고.”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브네.”
“그런 말은 속으로 하는 거다.”
우화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냉철하지만, 감정에 솔직한 편이다. 애초 에 호기심에서 시작을 했는데, 대화를 섞 어 보니 나쁘지 않았다. 자주 만날 것 같 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와 오빠의 가부 장적인 성향을 비틀어 버릴 훌륭한 인재 였다. 가문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강단은 있어야 했다
“네가지향하는바가 뭐야‘?”
“ 패도.”
“좋네.”
“당하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까?”
“사내라면 응당 포부가 있어야지.”
“말이 안통하는군.”
“잘통한다니까 어쨌든 오늘은 이쯤할 게, 다음에 또보자.”
정우는 그녀가 화천문에 만족하지 않 을 여인임을 직시했다. 등급도 높은 편이 고, 무력도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솔직히 좀 놀랐다. 그녀의 무공 수위가 화천문의 대공자보다 적어도 한 수는 더 높다. 감추 고 있는 속성까지 감안하면 화천문의 후 계구도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염왕이 속깨나 썩겠군.’
무문의 후계를 일찌감치 정해 놓았지 만, 딸의 성취가 지나치게 뛰어났다. 천재 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자질은 후계구도 를 어지럽힐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딸 을 시집보내버리기도 아깝다. 문파의 대소 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 었다. 야금야금 자신의 자리를 꿰차며, 대 공자의 부재를 틈타 화천문주를 수행했 다
‘도와준 꼴인가?’
오빠의 부상을 틈타, 그 자리를 노리는 여동생.
일반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가 지고 있는 힘과 권력이 많을수록 가족 간 의 경쟁은 필연이었다. 일반 가정조차도 유산 때문에 싸움이 나고, 형제자매 간에 단절되기도 하니. 피는 물보다 진한 반면, 가혹할때가있다.
‘멍청한 것보다는 낫겠지.’
우화는 대화를 통해 정우를 가늠하고, 관심 있음을 표현했다. 이는 단순하지 않 았다. 주변에 관심사를 표현해 정우를 수 면 위로 완전히 끌어내 표적이 되도록 만 들었다 화천문의 꽃이라면 충분히 매력적 이다. 그녀를 탐하는 사내들이 있을 것이 다. 그들에게 있어 정우의 등장은 달갑지 않은일이었다.
‘재밌겠군.’
인과는 항상 대가가 있다.
그녀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정우의 선택에 달렸다.
‘가질 수 없으면 부수라는 말이 있었 지.’
잔혹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7대 무문의 회합
회의장 안에 모인 자들의 면면이 심각 했다. 금강문주만이 유일하게 심드렁하게 앉아 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팽가와 길드가 충돌을 했다. 양패구상을 당해서, 상황이 더 복잡하게 되었다. 누군가 의도 적으로 팽가와 길드의 충격을 조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가 뒤집어쓸 우려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사태에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표명 하고, 해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도해문주와 검선문주가 주장했다. 그 들은 온건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현재 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 다 팽가와 지속적인 마찰을 빚어 봤자 좋 지 않을 거란판단을내렸다
“입장을 표명하면 끝이 납니까?”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거요.”
화천문주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생각 을 달리하게 되었다. 팽가는 제멋대로 움 직여 사달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의 입 장에서 한국 무림은 전장에서 쓰고 버릴 패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유 리할까? 이번 사태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 지가아니었다.
“우린 팽가에 수사권을 넘겼습니다. 그
런데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분란은 커 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문은 물론 길드, 연합까지도 걸고 넘어갈 겁니 다. 그리되면 우린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 까?”
“그 말씀은 혹?시, 팽가의 작위적인 계획 이라는 겁니까? 그런 것치고는 피해가 큽 니다.”
“한국 무림, 아니 길드와 연합까지 감 안하면 수지타산이 크다고 볼 수 없지요, 고작 10명이 죽었을 뿐이니까요.”
대를 위한소의 희생, 대국이라 주장하 는 대륙인들의 특성이었다. 그들이 원하 는 결말을 위한다면 10명의 죽음이 아깝 지는 않았다. 10명을 죽여 한국을 흔들어 놓는다면 훌륭한 전략이었다.
“설령 그렇다고 합시다. 팽가와 마찰을 벌여 우리가 이득을 볼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빌미를 제공해 주는 꼴입니다.”
“이대로 끌려다녀서는 답이 없다는 겁 니다.”
연합과 길드의 요청으로 팽가에 수사 권을 넘겨주기는 했지만, 이를 원만한 합 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중국 정 부의 압력에 굴복하는 사대주의적인 성향 이 강했다.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중국 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정 문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7대 무문의 임시 수장인 천무문주의 의견을 물었다. 그의 의견이 여러모로 의 사 결정에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천무문주는 즉시 답하지 않았다. 심사 숙고를 하며 고민을 했다. 어떤 일이든 순 간의 결정이 판세를 좌우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봅니 다 무문의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그리되면 검선문주의 말씀대로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또다시 사고가 터지면요?”
“그때는 결단을 내려야겠지요.”
천무문주는 입장을 표명하고 관망하기 를 바랐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 합하기는 했다. 당장 날을 세우고, 팽가와 대치를 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었 다. 더욱이 다크니스 길드 하나라면 모를 까, 길드 연합에서 이 일을 물고 늘어지면 사태가 복잡해진다. 무문과 길드가 분쟁 을 벌이면, 자연스럽게 연합에서도 제재가 들어올 테고 한국은 총체적인 난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컸다
‘안물어보네.’
금강문주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침묵 으로 일관해야 했다. 끝나기 전에 잠깐이 라도 의향을 물어볼 줄 알고 안 쓰던 머리 를 굴렀건만
‘박쥐 같은 짓을 하면 결과는 뻔한데.’
팽가와 길드에 척을 지지 않으려는 계 획인데 취지는 좋지만 그게 말처럼 될까? 현재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치고 제대로 된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었다.
‘주먹 놔두고 뭔 짓 하는 거야’
힘을 보여줄 땐 보여줘야 한다. 개인에 게는 양보가 미덕이 될지 몰라도, 단체가 되면 그렇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