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책임전가 (4)
문주는 회의장에 들어가고, 정우는 남 았다
눈에 익은 자들이 꽤 있었다
스윽!
정우의 시선을 받은자들
인상을 썼다
그러나 예전처럼 도발하지는 않았다. 일전에 화천문의 대공자와 염화대주가 처 참하게 망가졌던 일이 회자되었다. 제2의 금강문주, 어쩌면 금강문주의 배다른 자 식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때 이후, 정우에겐 금강괴룡(金剛怪龍) 이라는 별호가붇었다. 별호에 괴(怪)가들 어가는건혼치않았다 휘
건드리면 피 본다는 걸 알기에 다들 시 선을 마주하기는커녕 먼저 돌렸다. 괜히 쳐다봤다 화를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화천문주의 일격을 받아낸 건 여전 히 의문투성이였다 성질이 급하기론 금강 문주와 버금가는 화천문주였다 애송이라 고 해도 사정을 뒀을 리 만무했다
“당시엔 인사도 못했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자가 있었다.
신룡문의 지검, 선검대주 강선일.
예전에도 화천문주의 강렬한 기세에 굴 하지 않고 사실대로 고한 강단이 있었다.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유외강 형이다.
“저야말로, 그땐 고마웠습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
했을뿐입니다?”
“살다 보니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더군 요.”
“맞는 말입니다 힘이 있든 없든 그렇지 요.”
“의미심장한 말이네요.”
힘이 없다면 사실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힘이 있어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다.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사 람의 마음이 그와 같다.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지검이라더니, 예리하군.’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고, 파악하고 있었다.
신룡문의 소문주가 따로 있기는 해도, 지검의 위상이 남다른 편이다. 신룡문주 가 편애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나란 혈연 중심이다. 못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뛰어난 능력이 오 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시기는 어지간해서는 사라지 지 않고,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 다
‘어쨌든 팽가의 감시를 맡긴 이유가 있
군.’
귀영각주는 머리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자다.
지금쯤 머릿속이 복잡해져 있을 것이 다
‘그럴수록 상황이 복잡해지지.’
성격이 급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신중 해도 문제가 된다 길드를 지목해 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팽가의 힘으로 눌러 버리면 그 만이다. 하지만 이극과 같은 자는 이용당 하는 걸 참지 못한다. 머리 쓰는 자가 머리 로 능욕을 당하면, 무인의 패배보다 더한 굴욕감을 느낀다.
‘침착함이 사라지면 똑똑한 놈도 별반 다르지 않지.’
냉철함이 무너지면, 독이 되어 돌아오 게 될 것이다.
“단주께선 어찌 돌아가리라 봅니까?”
“제 판단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우리끼리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자는 거지, 강요하는 건아닙니다?”
“그렇다면야 전 7대 무문이 고립될 거 라 봅니다.”
직선적인 걸 넘어 과격한 표현이었다.
팽가와 길드의 오해를 받게 될 거란 뜻 이다. 머리 좋기로 소문이 난 강선일조차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 채 망설였다. 설마 이렇게 곧이곧대로 말할 줄은 몰랐 던 것이다.
“지나친 비약입니다.”
“지나치다고요? 알려진 정황만 놓고 봐 도 무문연합은 불리한 현실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릴 궁지에 몬다 는 말입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집단은 정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대의명분에 따른다 고 표명을 할뿐, 실제론 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움직입니다. 자, 그렇다면 저들의 입 장에서 무엇이 더 편하겠습니까?”
“책임전가.”
“쉽고, 편하지요.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 지고요.”
강선일은 선입견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화천문을 상대할 땐 단순무식 에 과격하기까지 했었다. 모두를 적으로 만든 무모한 행위였다. 한데, 지금 보면 그 렇지가 않았다. 사태를 파악하는 눈이 놀 랍도록 예리했다. 저 나이에 단주의 직위 를 얻고, 금강문주의 신뢰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하긴, 너무서둘렀지.’
정보가 들어왔을 때, 성급하게 행동했
다 현장을 통제하고, 제대로 된 검증을 하 기도 전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를 보였 다. 단순히 길드와 팽가의 싸움으로 결론 을 내려는 것이다 이것을 과연 팽가와 다크니스 길드가 모를까?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전 단주는 어찌했으면 좋겠습니 까?”
“전 문주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하면 금강문주께선 어떤 선택…… 음.” 강선일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금강문주의 평소 성향을 보면 답은 명
확했다.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굽히지 않는 금강문주다. 하물며 죄도 없이 오해 를 받는다면 그 성격에 가만히 있을까? 그 럴 리 없다. 금강문주는 팽가가 아니라중 국 전체라도 달려드는 단순무식을 소유했 다 정우는 무인의 가치를 거론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말로 행위를 증명했 습니까. 힘이 곧 정의입니다”
“그로 인해 벌어질 상태는 안중에도 없 는겁니까?”
단순히 무인과 무인의 싸움으로 볼 수 없다. 국가와 국가의 경쟁으로 번질 가능 성이 크다. 그로 인해 피해 보는 것은 무고 한시민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승자 는다 갖고, 패자는 다 잃는 겁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맞는 말이나, 절 설득해봐야 헛수고입 니다.”
강선일은 언성이 컸다는 걸 그제야 인 식했다. 흑금단주의 과격한 발언에 흥분 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한단 말인가. 더욱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 려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효율로 따지다 니, 비인간적인 태도였다.
‘그럼에도 맞는 말이다.’
강선일은 상황이 연이어 꼬이고 있음을 실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7대 무문을 압박하고, 팽가와 길드의 의심을 부추기 고 있었다.
‘궁지에 몰릴수록 방법은 둘 중 하나지.’
정우는 7대 무문이 무인의 집단임을 자 각하지 못하고, 무사안일한 태도를 취해 왔다고 지적했다. 세상은 타협과 양보만으 로 움직이지 않는다. 듣기 좋은 허울일 뿐, 그런 식으로 해선 가지고 있는 것을 수탈 당할뿐이다 먼저 발 빠르게 일어서고, 강 하게 부딪쳐야 할 때다.
‘삼라만상의 흐름은 강자를 위해서 돌 아가지.’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왔다고?
호사가들의 입에 발린 말이다. 법이 모 두를 지켜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법이다. 법은 약 자가 만들지 않는다. 강자가 자신들의 권 익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테두리 가 법이었다. 더 나아가 국제법은 상식적 인 범위가통하지 않는다. 뉴스를 봐도 알 것이다. 말이 안 돼도 강대국이 하겠다고 하면 제재하지 못한다. 일례로 이산화탄 소 배출을 규제하자는 세계적인 합의에서 중국과 남미는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딱히 중국에 대한 제재를 못하고, 특허도 마찬 가지다.
‘그러니 강자가 되어야지.’
나, 내 가족, 내 조국을 지키고 싶다면 강자가 되어야 한다. 힘도 없이 저항을 한 들, 개죽음만 당할뿐이다. 이는 만고불변 의진리다
“유익한대화였습니다.”
“저야말로.”
정우는 돌아서 가는 강선일을 보았다.
그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들어 있었다. 삶 이 순탄치는 않을 운명이다. 오지랖만 넓 으면 다행이나, 자애롭기까지 했다. 위선이 아니라면, 인생을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 다 찌릿!
아까부터 노려보는 기세가 있었다.
상대는 타이밍을 쟀다.
휘
정우가 돌아봤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홍염의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띤다. 175cm의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타이트한 옷 사이로 발단된 근육이 인상 적이다. 뇌세적인 눈빛에서 강인함이 전달 되었다
“ 너냐?”
“그렇다면?”
“ 건방지네.”
“초면에 반말은 괜찮고?”
“까불지 않는게 좋아.”
“네 오빠처럼 되고 싶은 모양이지?” 소문대로 오만이 하늘을 찌르네.” 그녀의 이름은 권우화 화천문의 염화(炎華)다. 7대 무문을 대 표하는 여무인 중에 한 명으로 손꼽힌다.
보는 그대로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 다. 여인 특성상 화염 계열의 무공을 익히 기가 까다롭다고 알려졌건만, 그녀는 남달 랐다 부친의 염화일기공을 이어받은 진정 한 계승자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
“건방이 아니라 실력이지.”
“내 앞에서 까분 놈들이 어떻게 된 줄 알아?”
“알아서 뭐하게.”
“ 알려줄까?”
“어떻게?"
우화는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했던 흑
금단주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기에 까부는지. 한데, 이상 한 놈이기도 했다. 지검과 대화를 할 때와 지금은 또 달랐다. 도발에는 도발, 대화에 는 대화로 받아쳤다. 사람에 따라 카멜레 온처럼 변한다. 이는 감각이 뛰어난 자들 의 특징이다.
“너 제법 남자답구나?”
“욕하는 거냐.”
이런 걸로 남자답다고 하다니, 정우는 아연실색했다. 보통 여인이 아님은 분명하 다. 혹, 자신감이 지나쳐서 머리가 돌아버 렸을 수도 있고. 미친 놈년치고, 본인이 미 친 놈년인 줄 아는 경우는 드물었다 막말 로 자신을 아는 득도의 경지에 이른 무인 도 많지 않았다. 다들 제 잘난 맛에 미쳐 서 살지.
“설마 이런 남자 처음이란 개소리를 지 껄이는 건 아니겠지?”
“ 맞는데.”
보통 이런 식이면 아니라고 부정할 텐 데.
염화는 당당하게 Yes를 표명했다. 신인 류의 시대에 90년대에나 나올 법한 상투 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니.
“드라마를 많이 봤군.”
“보면 안 돼? 재밌잖아. 꿈과 희망은 있 어야지.”
권우화는 아침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 겨 보는 스타일이었다.
정우는 시간 낭비를 사양했다. 그녀와 의 대화는 알맹이가 없었다. 도발하는 줄 알았건만, 호기심이 가득했다. 가식이 느 껴지지는 않는 반면, 엮이면 피곤한 스타 일이다.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이 들이대 는 경향이 보였다.
“사람이 말을 하면들어야지?”
“헛소리는듣고 싶지 않은데.”
날 선 말투에도 염화는 끄떡하지 않았
다. 물이 끓어 넘치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선, 오히려 침착한 성향이었다.
“이런 식이면 너한테도 좋지 않을걸, 아 빠는속이 깊지 않은 분이시거든.”
“타인은 그렇다 치고 너는 그런 말 하면 안되지 않나?”
“나는 제법 객관적인 사람이거든.”
“생긴 대로 살지그래?”
그녀는 염왕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았 다. 꽤나 도발적인 외형이다. 타오르는 불 꽃과 같았다. 누가 봐도 지극히 개인적이 고, 이기적으로보인다
“내가 이래 봬도 아이큐 190의 멘사 회
원이라고.”
“영재를몰라봐서 미안하군.”
우화는 발끈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 의 시선에 일회일비하지 않았다. 불타오르 는 외향과 반대로 냉철함을 지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검과 어울리는 한 쌍이었 다 전면에서 활동하지 않을 뿐, 그녀는 화 천문 내의 의사 결정에 제법 중요한 역할 을 한다. 그로 인해 화천문의 대공자와 트 러블이 생기고는 있었다. 세월이 변했음에 도 여자가 가문의 중대사에 끼어드는 것 을 원치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