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책임전가 (3)
정우는 마법학과로 가지 않았다.
현우를 볼 겸, 겸사겸사 들렀다. 이번 MT에서 예상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학과 였다. 마침 가는 도중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어이.”
정우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과 아침부터 넉넉하게 식사를 한 후, 배를 두드리며 거만하게 걷고 있던 덩 치들.
여전히 건방짐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 었다. 하지만 정우를 보자 거만함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초식동물 사이에 서 기세등등한 하이에나가 시베리아 호랑 이를 마주한 격이다. 눈 돌아가는 소리가 100m 밖에까지 들린다.
꿀꺽!
면상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들은 그날 이후로 마법학과가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았다. 상기하 면 할수록 공포스러웠다. 한데, MT의 악 몽이 나타났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났더니, 절이 찾아와 반겼다.
“봤으면 아는 체를 해야지, 이러면 내 손이 굉장히 무안해지잖아 혹, 내가 그때 한말을 잊은거야?”
정우는 조곤조곤 말했다.
거리가 좀 있어서 들리진 않을 수 있었 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들었고, 봤다. 미간이 찌푸려진 정우의 표정 처리에 재빨 리 튀어 왔다. 도망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날도 튀다가 직격을 당해 맨몸으로 쫓겨 났었다. 그나마 케이브는 마물밖에 없지, 여긴 학생들도 많았다. 공공장소에서 노 출은 창피함+범죄다
“너희, 내가싫지?”
“?…아냐!”
“대답이 늦는데.”
“너무 반가워서 표현이 늦었을 분이야. 다른뜻은전혀 없어!”
“그렇다면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 마”
“?…고마워.”
넓기는 어디가? 태평양이 요강 안에 있
는것도 아니고.
그들은 육체변환학과의 유인권과 조원 들이다. 다들 굉장히 하드한 덩치라 반팔 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터져 나오려는 가 슴을 반팔 티가 힘겹게 버티고 있는 형국 이다?
“성적이 많이 올랐던데, 누구 덕일까?”
유인권과 조원들은 케이브에 들어가자 마자 정우를 만났다. 이후 최악의 상황에 서 MT를 치러야 했다. 원초적인 상태라 몸을 가리려면 마물이라도 있어야 했고, 마침 4급의 마물을 해치웠다. 그 결과 어 쩌다 보니 성적이 꽤나 좋아졌다. 슈트에 의존하지 않고, 속성 발휘가 능숙해져 이 전보다 월등히 강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정우의 덕이라고는 말하고 싶 지 않았다. 남의 물건을 강탈한 놈이 번번 함을 넘어 공치사까지 바라다니. 그때보다 더욱 상종 못할 놈으로 업그레이드가 되 었다.
“대답이 없네. 갑자기 배은망덕한놈들 의 최후가 떠오른다.”
심기 불편해진 정우의 말투에 인권과 조원들은 소름이 돋았다.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날의 악몽이 현실이 될 수 있었다.
“네 덕이야!”
“맞아, 너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좋은 성적을 얻었겠어!”
인권과 조원들은 살기 위해 한목소리 로 일심동체가 되었다. 수틀리면 사람의 팔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부러뜨리는 악 마 같은 놈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부러 진 팔이 시큰거렸다.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금수만도 못한 거야”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어, 우리는!”
“그런데 왜 안 찾아와?”
정곡을 찌르는 정우의 화술에 변명이
판을 친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어쩔 수 없었 어.”
“어머니가 아프셔서.”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다들 각자의 집에서 멀쩡히 잘살고 있 는 분을 환자와 고인으로 만들었다. 생긴 것과 달리 굉장히 구차한 놈들이었다
‘벌받는 거아냐’
‘아후, 쪽팔려!’
‘이놈만 만나지 않았으면.’
정우의 집요함에 인권과 조원들은 식은 땀을 홀렸다. 이놈은 그때나 지금이나 허 술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피를 말렸다. 악마는 세월이 지나도 악마 라고 하더니. 그 말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이거 돌려주려고.”
정우는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인권과 조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들부들
인권과 조원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 손 에 들린 물건은 슈트다. 강제로 뺏어간 슈 트가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원래 상태하 고는 거리가 멀다 못해 전혀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팔다리는 찢겨져 나갔고, 가 슴에는 마물과의 사투를 짐작케 하는 수 많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이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이 개새!’
차라리 돌려주지나 말지.
인권과 조원들은 속이 쓰리다 못해 폭 발할 지경이었다. 술을 왕창 마신 것도 아 닌데, 속이 뒤집어진다. 이건 해장도 소용 없다.
“뭐야 그 얼굴은? 한 대 치겠다?”
“……아니야. 우리 얼굴이 워낙 그렇잖 아!”
“하긴, 그 면상으로 결혼이나 하겠냐.”
“……그렇지. 우리 되게 불쌍한 사람들 이야!”
맘 같아서는 한 대가 아니란 수백억 대 라도 치고 싶다.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이자, 악마 같은 놈 이었다. 지금도 슈트를 빌미로 도발하는 게 분명했다. 저놈의 유인책에 넘어갔다가 임오는 팔이 부러졌었다. 마법학과가 아니 라도, 이놈은 강했다. 대체 마법학과에는 왜 갔는지 여전히 불가사의다.
“유용하게 잘 썼다고 하더라 좀 닳기는 해도 꿰매서 쓰면 괜찮을 거야.”
“어, 알았어!”
정우는 피식거렸다
훗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참다니, 애들이 보살이 다 됐다. 아무나 보고 도발을 하기 에 성급함을 고치지 못했나 걱정을 했건 만, 다행이었다.
“나처럼 착하게 살아”
다른 놈도 아니고, 정우에게 이런 말을 듣자 인권과 조원들은 울화가 치밀어 얼 굴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며 구겨졌다. 화가 나는데도 토해내지 못하는 웃지 못할 광경 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이탈하지 못한 채 망부석이 되었다.
어젯밤 단서를 찾기 위해 귀영 2조를 보냈다. 한데, 하룻밤 사이에 귀영 2조 전 원이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이극이 현장 에 도착했을 땐 귀영 2조와 다크니스 길드 원이 주검이 되어 있었다.
주검의 상흔과 현장을 되짚었다. 전투 는 치열했고, 전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문 의 절기인 혼원벽력도가 구사되었다.
‘양패구상이라’
사건의 주도자로 다크니스 길드를 지목 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기는 한데, 증거가 지나치게 미약하다. 그들이 흑호문을 멸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마치 잘 짜인 계획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일이 꼬이는군.’
이극의 손발이 되어주는 귀영대는 가주 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된 팽가의 정 예 무력대 중에 하나다. 유니크 등급도 상 위에 속하며, 무공은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영 2조가 다 크니스 길드원과 양패구상을 당했다.
설령 다크니스 길드가 범인이라고 해 도, 만만치 않은 전력임을 시사한다. 게다 가 이리되면 7대 무문을 걸고 넘어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처음부터 무문은 길드를 의심했고, 그대로 홀러가는 형세다.
드륵!
문을 열고 대원이 들어왔다.
“ 알아냈어?”
“제보자를찾지 못했습니다.”
“그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점점 더 일이 꼬여갔다. 제보가들어왔 는데, 제보자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시간에 부른 것 이다. 아니라면 무문과 길드가 동시에 나 타날 수 없다. 마치 누구도 현장을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았 다
‘어찌한다?’
이대로 시간을 끌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비공식으로 이루어진 작전이기는 하나, 다 크니스 길드와 조우한 건 사실이었다 그 시간에 귀영 2조와 대치한 연유를 알아내야 했다.
‘어떤 놈들인진 몰라도 후회하게 해주 마’
다크니스 길드를 지목해 책임을 전가하 는 동안, 혼란을 틈타 장막 뒤로 숨어 버 린 사건의 배후를 찾아내야 했다.
이극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세가를
위해 주변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이용당 한 적은 없었다. 귀영각의 명예를 위해서 라도 대가를 뼛속 깊이 새겨 주어야 했다.
“귀영대는 이 시간부로 제보자를 찾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존명.”
화성시 인근.
인적이 드문 이름 없는 산에서 다크니 스 길드 길드원과 하북팽가의 무인이 죽 었다.
제보를 받은 무문은 서둘러 인원을 파 견했고, 주변을 통제했다. 현장은 충돌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하북팽가와 다 크니스 길드를 대표하는 전투스킬이라 부 정하기는 어려웠다.
7대무문은 회합을 가졌다.
연락을 받은 이호극과 정우도 참석했다.
“분위기가 초상집이네요.”
“잡것들 몇 놈 죽었다고 벌벌 떨다니, 한심하구나.”
이호극에게 있어 목숨의 가치는 평등하 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쓰레기 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비싸다 여 긴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 같다고 여기는 것부터가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였다 이는 정우의 견해와도 일치했다.
인간일 때는 존중하나, 인간을 벗어난 다면 마물 취급도 아까웠다. 아니구나, 마 물의 사체는 쓸데라도 있지. 인간쓰레기는 화장을 해도 돈이 더 들어간다.
“죽을놈。] 죽은 거아닌가요?”
“그러게 말이다. 암살자면 암살자지, 동 안은 개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 었다.
등급 7의 최상위 유니크가 마물이 아 닌 인간을 300명이나 살해한 것이다. 체 포 당시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단죄하고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천명했었다. 처음에 는 반반한 얼굴과 죽은 자들의 추악함에 가려 떠받들어졌지만, 실상은 본인의 소아 성애를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음이 들통났 다. 그럼에도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남아 무죄 석방하라고 요구를 해 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살인자도 얼굴 반반하면 대우받는 세 상이긴 하죠.”
“미친 거지. 하긴, 미친 세상에 살고 있 으니 미쳐야살지.”
금강문은 길드와도 심심치 않게 마찰 이 있어왔다. 이호극은 길드, 무문 연합을 가리지 않고 깝죽거리면 잘근잘근 밟아 주었었다. 성정상 배알이 꼴리는 일을 묵 과한 적이 거의 없다.
회의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이호극은 주변을 돌아보며 금강문의 신 조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건드리면 밟아 알지?”
“총관님은 제발 조용히 좀 살자던데 요?”
“네 나이 땐 싸우면서 크는 거야, 총관 은 엄살이 너무 심해. 그 인간, 나이 들더 니 잔소리만 더 늘었다. 계집애처럼 어찌 나 조잘대던지.”
“그렇다고 해두죠.”
엄살이라고 하기에는 문주의 행동 패턴 이 과했다. 툭하면 사고를 쳐서 김 총관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곤 했었다 그러 면서도 모든 탓을 김 총관에게 돌리다니, 문주의 사고관도 만만치가 않았다
‘나완잘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