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93화 (93/500)

제 7장 불을 지피다 (3)

할아버지와 정우의 신경전에 하라는 심 장이 조마조마했다 부모님에게 구원의 손 길을 보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하라 의 일에는 적극적인 편이나, 상대가 할아 버지라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정우와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 지 알기 어려웠다. 허락도 없이 정우의 집 안을 조사했다면 그것도 실례였다.

‘훙,괘씸한 녀석!’

유만식은 정우의 맹랑한 대꾸에 인상 을 찌푸렸다. 다른 때라면 대범함에 칭찬 을 했을지 모르나, 손녀의 배경을 노리는 놈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어떤 부모 가 집안을 보고 달려드는 날파리를 좋아 할수있겠는가.

“네가투자자라더구나. 말이 된다고 생 각하느냐?”

“예상과 달리 저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

군요.”

“하면 수십억에 달하는 투자금을 네가 무슨 수로 마련을 했단 말이냐?”

유만식은 돌려 말하는 성격하고는 거리 가 멀었다 하지만 정우도 만만치 않게 직 선적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지 않습니까?”

“이젠 내 정보력까지 의심하는 것이더 냐!”

“능력 없는 자들을 신뢰하시는 모양입 니다.”

“겁이 없구나, 네가 어리다고 해서 봐줄 사람으로 보이느냐!”

“저는 누가 봐주고, 봐주지 않을 사람

이 아닙니다. 설령 할아버님이라고 해도 요.”

날카로운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인사를 와서 한 말치고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오고 가는 말마다, 칼만 안 들었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진짜 어쩌려고!’

할아버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도 부족한 판국에 대립을 하면 어떻게 하냔 말이다. 하라는 답답함 마음을 감추지 못 했다. 지금 개입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 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할 아버지가 완강하게 제지를 했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게다가 정우가 잠자코 있 으라고 전음을 보내왔다.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하고선, 뭐 하는 거야’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노발대발 역정을 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불같은 성향의 할아버지가 지 금까지 참고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하라에게 돈을 빌렸다고 생각하신다 면오햅니다”

“오해라, 아니라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전 누구한테 손을 벌릴 만

큼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믿을 만한 증거를 내놔 보거라:’

유만식은 이쯤 되니 이상한 기분이 들 었다. 뒤가 구린 놈치고는 지나치게 당당 하다. 하는 말마다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 고. 자신감이 없는 자는 하기 힘든 대범함 이다.

그러나 증명하지 못하는 현실은 입만 산 개소리에 불과했다. 살면서 그런 놈들 을 많이 봐왔다. 끝까지 허세를 버리지 못 하고 주둥이만 나불거리다가 신세망치는 누 = O in s =

“보여주지 못할것도 없죠.”

“만약, 증명하지 못하면 하라의 옆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신, 증명하면 교제를 공인해 주십시 오.”

“ 약속하마”

“남아일언 중천금입이겠지요.”

“사설이 길다.”

정우는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사면서 포장박스 1개를 더 달라고 했다. 그 안에 뭔가를 은밀하게 집어넣었다. 마치 유만식 회장이 집에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준비해온 것이다.

정우는 포장된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선물로 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냐‘?”

“어떤 선물이냐에 따라서 다르지요. 그 리고 이건 선물이 아닙니다”

유만식은 선물에 혹하는 속물이 아니 다 거래라면 또 모를까, 손녀의 사람 보는 눈을 기대했건만 실망이었다. 신안을 가지 고서도 걸려내지 못하다니,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정우는 포장을 풀러 상자의 뚜껑을 열 었다.

스윽!

상자에서 빛이 홀러나오고 있었다. 자

연히 시선이 상자 속에 쏠렸다. 안에는 연 분홍 빛깔을 띠고 있는 보^이 자리했다.

“이건 설마?”

보통 사람들은 정우가 내민 보석의 가 치를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석 을 본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유만식은 극소수에 속하는 인물이다.

“네가이걸 어떻게?”

“그러니까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회장님은 절 모르신다고요.”

유만식이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상자 안의 보석은 마물을 사냥하고 나온 일반 적인 에너지 스톤하고는 거리가 멀다. 에너 지 스톤이야 급이 높다고 해도 유만식의 감정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 하지만 이 안 에 있는보석은 급이 다르다.

-7급의 케이브 코어.

케이브 코어도 등급에 따라서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7급의 케이브 코어는 부르 는 게 가격일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7급의 케이브 코어를 확보 하려면 길드나 무문, 연합에서 심혈을 기 울여야 할 정도다. 개인이 케이브 코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유만식 조차도 7급의 케이브를 눈으로 본 적은 이 번이 처음일 정도다. 케이브 코어에 대해 알려진 시기를 감안하면 의문은 더욱 깊 어진다.

‘도대체가’?’

유만식은 정우를 다시 봐야 했다. 7급 의 케이브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자신 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 해야 했다. 게다가 조금 전 말투가 바뀌었 다. 할아버지라 불렀던 정우가 회장님이라 지칭했다. 아쉬울 게 없다는 의미였다. 뇌 물인 줄 알았더니, 선물도 다시 포장해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소문을 낸 사람은 접니다.”

“뭐라?”

이젠 한술 더 뜬다.

소문을 내다니, 어째서 소문을 냈을까? 마치 누군가 걸려들기를 의도했다는 뉘앙 스였다. 그렇다면 보기 좋게 이용을 당하 고 걸러냈다는 의미다. 또한 자신은 정우 가 홀린 정보에 휘둘려 부화뇌동한 꼴이 된다.

“남의 약점을 부풀리는 자를사위로 점 찍으시다니,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약점을 찌르는 사람이 누군데.

허를 제대로 찔린 유만식은 말문이 막 혔다. 살면서 오늘처럼 당황한 날은 처음 이었다. 눈앞의 애송이는 보통 수준을 넘 어 요물에 가까웠다. 더욱이 주변에 휘둘 리기 보다는 주도해 나가는 통제력까지 갖 추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을 떠나 누가 이 놈을 17살의 핏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까?

“정체가 대체 뭐냐?”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에게 내 손녀를 주라는 것이냐?”

“한 입으로 두말을 하시는 겁니까?” 정우는 증명을 했고, 유만식은 약속을 했다.

공인을 해줄 차례다. 아니면 스스로 한

말을 되돌리거나.

둘중하나, 아주쉽다.

유만식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걸 극도 로 혐오한다. 사내가 되었다면 약속은 반 드시 지켜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었다. 그 런데 지금은 그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정 체가 모호한 녀석을 단순히 증명을 했다 고 해서 허락할 순 없지 않은가. 세상에 어 떤 부모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을 허 락하겠는가. 그런데 인정하면 정보망에 구 멍이 있다는뜻이 되고, 두말한 사내가 된 다 이는 신념의 문제였다

“안된다.”

“신념에 어긋나는 일일 텐데요.”

유 회장의 선언은 의외였다. 하지만 그 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라는 내손녀다.”

“혈연에 연연해선 큰일을 못합니다.”

“나는 큰일 따윈 한 적이 없다. 내 울타 리 안에 있는 녀석들의 행복을 위해서 노 력했을뿐이지.”

“이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군요.”

“내가 너를 잘못 알고 있듯, 너도 나를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세상에는 까칠하고 완고한 회장으로 소 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유만식의 본심은 가족에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가족 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회사도 잘되면 더 좋고.

‘꼴이 참우습구나.’

유만식은 낯간지러운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식들이 하나같이 어려워했다. 하지만 정우로 인해 의도치 않게 본심을 털어놓고 말았다.

하라는 물론 부모님도 할아버지의 본 심에 감격했다. 그룹을 위해서라면 가족 조차도 희생양으로 생각하시는 줄 알았건 만 잘못 알고 있었다

“강요를 한다면 어쩌실 겁니까?”

“누가 나에게 강요를 할수 있단 말이더 냐.”

“저는 할수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주가 뛰어나다 하나, 아 직 어리구나. 내가 독한 맘을 먹으면 네가 감히 버틸 수 있을 거라 보느냐?”

“회장님을 수행하는 3명의 유니크가 제 법이기는 하나, 제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처리할 수 있습니다”

유만식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그를 지키는 비밀 경호원이 있었다. 그중 3명은 유니크로 최상위의 전투수행능력을 갖추 었다. 특히 은신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신안을 갖춘 손녀의 제공권마저도 가볍게 벗어나 있었 다

“ 정말이냐?”

-그 ? 렇습니다. 실로무서운자입니다.

유만식의 물음에 대기하고 있던 3명의 수행원이 힘겹게 대답했다 정우가 진심을 드러내자 감히 항거할 엄두가 나지 않았 다. 전투 시뮬레이션을 펼친 찰나간, 한 번 도막지 못했다.

“허, 기가막히는구나.”

“과찬입니다”

7급의 케이브 코어를 운이 좋아 획득한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능력의 범주 를 확인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손녀의 안 목을 한순간 의심했건만, 어디서 이런 괴 물 같은 녀석을 데리고 왔단 말인가.

알려진 정보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 렇다면 철저히 본인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 가 되었다. 17살의 핏덩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농락을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 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해본 적이 있었나싶을 지경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구 나.”

“몰랐다면, 케이브 코어를 준비할 이유

가없지요.”

“능구렁이 같은 녀석.”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처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어쨌든 능력 하 나는 기가 막힌 놈이 아닌가, 지금도 이럴 진대 앞으로가 더욱 무서운 놈이었다. 적 이 된다면 가장 상대하고 싶지 않은 껄끄 러운 녀석이기도 하다.

“저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 다.”

“그래도 손해를 본다면?”

“화가나겠지요.”

“무서운 놈이구나.”

정우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고, 아 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만식은 손녀와의 교제를 공인해야만 했다. 가만 히 있었다면 둘 사이의 관계가 어찌 되었 을지 몰랐을 텐데,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다.

“다들 네 녀석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었 구나.”

“선택은본인의 몫입니다.”

“그렇긴 하지, 선택을 했다면 책임도 져 야하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유만식은 손녀를 봤다. 오늘의 선택이 과연 손녀에게 화가 될지, 복이 될지 계산 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손녀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 녀석은 무서운 놈이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우를 선택 했겠어요.”

물어보기가 무섭게 선택했다.

손녀의 빠른 답변에 유만식은 허탈함이 밀려왔다.

“하아, 벌써부터 남자에 빠져서 할아비

의 걱정을 외면하다니, 너무하는구나.”

“할아버지와 평생 살순 없잖아요.”

“이놈 닮아가는구나.”

유만식은 백기를 들었다. 무서운 놈은 맞지만, 손녀에게 보인 마음은 진심이었 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켜줘야 했다.

“ 허락하마”

“할아버지 최고!”

“이때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요.”

“말이나 못하면.”

유만식은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눈 앞에 있는 녀석은 파란을 몰고 올 상이다. 자신을 건드리는 상대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지. 현재에 만족을 할 녀석도 아니고.

‘말년에 고생길이 훤하군.’

손녀가 선택을 했으니, 할아버지로서 정우의 후원자가 되어야 했다.

정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가만있진 않겠지.’

현우는 부름을 받고, 사장실에 들어섰 다

의자엔 살이 붙은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가 일우전자의 사장 현우의 아 버지 채철민이다. 현우와는 닮았지만, 세 월의 흔적으로 많이 지워져 있었다. 연상 하기 어려울 만큼 몸이 비대해 무거워 보 인다. 그러나 현우에게는 할아버지를 제외 하고 가장 어려운 분이기도 하다.

철민의 시선이 차갑다.

‘뭐지?’

현우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어렵 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었다. 항상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내왔다.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유 회장이 직접 혼사는 없던 일로 하자

고 요청해왔다”

“유회장님이요?”

“네게 실망이구나, 계집의 마음 하나도 얻지 못하다니. 이번 일로 인해 나는 물론 그룹 전체가 우스갯거리가 되었어.”

현우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한그룹의 유 회장에게 소문이 홀러들어갔다. 그렇 다면 당연히 계획대로 되어야 했다. 그런 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유 회장은 깐깐하고 완고한 성향을 가 지고 있었다. 배경을 보고 달려드는 속물 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선택을 했다면 뒤를 돌아보지 않 는 불도저였다. 놈을 인정한 이상 되돌리 기는 어렵다.

‘무슨수작을부린 것이냐?’

하라를 볼모로 잡고, 유 회장을 설득했 을 가능성이 컸다 하찮은 놈에게 목을 매 는 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녀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단순히 그룹을 위한 차원을 넘어, 극양(極陽)을 지 니고 태어난 자신에게 있어 극음지력(極陰 之方)을 지닌 그녀가 있어야 했다.

‘이리된 이상 방법은 하나다’

유 회장과 하라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다크니스 길드에 연락을 넣어주십시 오. 반드시 원하시는 결과를 가져오겠습 니다.”

“그래야 할거다.”

사장실에서 나온 현우의 얼굴은 무섭 게 일그러져 있었다.

벌써 4번째다.

‘후회하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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