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90화 (90/500)

제 6장

규모를 키우다 (3)

귀영각주이극.

그는 안내를 맡고 있는 무인의 전신을 훑었다. 게이지 수치에 나타난 등급을 전 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4급을 넘지 않 았다 그런데 위화감이 들었다.

‘감이 좋네.’

안내인은 정우다

아침에 출근해 귀영각주를 접객실로 안 내했다. 진신의 내력을 감추고 있음에도 이극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본능적으로 위 화감을 느낀 것이다. 적정 수준을 조절했 다 해도 감이 예리하지 않고서는 파악하 기 어렵다.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자다.

“나이가 몇이지?”

“25입니다”

이극은 겉으로 보이는 외양으로 나이 를 평가하진 않는다. 격변의 시대가 오면 서 외양은 나이를 대변하지 않았다. 특히 무공을 익히고 있을수록.

“그 나이에 단주라니, 실력이 뛰어난 모 양이군.”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본문은 예로부 터 강자를 숭배하였으니까요.”

실체의 허를 알기 위한 이극 나름의 시 험이었다. 대결을 통한 방식이 확실하기는 하나, 심중을 파악하는 데는 대화만으로 도 가능했다. 사람은 은연중 본인도 인식 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러나는 성향이 있 었다.

‘아직 젊군.’

순간의 빈틈, 기운의 꿈틀거림이 느껴 졌다. 그리고 서둘러 틈을 메웠다.

이극은 흑금단주가 어리기는 해도 발 전가능성이 크다 봤다. 무인으로서의 호 승지심과 더불어 실수를 인지하고 곧바로 수정하는 건 평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 성된 무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무인이란 본시, 능력의 3할을 감추어야 했 다. 칼밥 먹는 세상에 살면서 설익은 과일 은 과시를 해선 안 되었다.

‘감정을찰나에 읽어내는군.’

이극과 마찬가지로 정우도 탐색하고 있 었다. 기를 열어 능력을 과신하려다가 급 히 갈무리했던 일련의 과정도 이극을 시험 하기 위한 장치였다. 짧지만 서로를 알아 가는 치열한 탐색전이었다.

‘거짓은 아니었어.’

팽세기와 팽위관을 통해 들은 정보 그 이상으로 이극은 뛰어난 자였다. 직접 보 니 느낌이 왔다. 오늘의 의도적인 만남을 통해 상대를 파악할 유익한 시간이 되었 다 접객실에 당도했다.

이극은 타 문파의 중심에 와 있으면서 도 평정심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태를 냉철히 보는데다가, 자신감도 있었다. 세 가에 대한 자부심의 발론이었다

‘얼마나 갈진 궁금하네.’

정우는 접객실에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호극과 김 총관이 접객실로 들어섰다 주인이 왔는데도 이극 은 일어서지 않은 채 주어진 차를 느긋하 게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예의가 없 다고볼수 있었다.

김 총관은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내었 다 하나 문주에 비하면 양호하다.

이호극도 거론하지 않았다. 예의 없기 로 따지면 본인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내가 지키지 않으니, 너도 지키 지 말라, 아주 쿨 하다. 그러다 사고 나면 알아서 책임을 지라고 했다.

이호극과 김 총관이 의자에 앉았다.

정우는 접객실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이호극은 본론부터 꺼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려고 단잠을 깨웠다면 가 만두지 않겠다는 불편한 심기를 포함해.

“어쩐 일이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 을 귀찮게 불러 세운 거야?”

“귀하가 행한 일을 모른단 말이오?”

“내가 뭘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금강문에게도 이

롭지 않을것이오.”

떼놈이 아침부터 찾아와서 심문을 하 니, 심기가 틀어져 버린 이호극이었다. 가 뜩이나 무문연합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제는 별의별 잡것들이 다 설치 고 있었다. 이놈들이 대국이라 지켜 세워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새끼들, 좀 처맞았다고 그새 가서 일러 바친 거냐”

“말조심하시오, 그들은 팽가의 무인이 오.”

“마치 건드려서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는 말처럼 들린다?”

“한국 무림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을 했소. 그런데도 금강문주께선 세 가의 무인을 상하게 했소이다.”

“수사를하려면 할 것이지, 남의 뒤꽁무 니를 졸졸 따라다녀도 된다고는 안 했어. 그리고 부르면 왔어야지, 감시당하는 것도 기분더러운데.”

평소의 김 총관이라면 격화되는 분위 기를 중재했을 텐데, 오늘은 좀 달랐다. 문주의 말투가 거슬리기는 해도 틀린 말 은 하지 않았다. 수사권을 가졌다고 해서 남의 뒤를 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망할 놈의 인간이기는 해도, 이호극은 금강문 의 어엿한문주였다.

“끝내 사과를 하지 않겠단 거요? 그럼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가만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한번 해보 겠다는 거야!”

심사가 뒤틀린 이호극은 분기를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 로 강하게 나왔다. 배포 하나 만큼은 천하 무적 (식) 이었다.

이극은 문주와 정반대였다. 불편한 말 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상황을 냉철히 살 피고 있었다 이호극과 이극, 이름 하나 더 있을 분인

데 성향은 극과극이었다.

‘실제는 소문보다 더하군.’

이극이 조사한 금강문주의 성향은, 실 제를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본 세가를 상 대로 이토록 막무가내인 경우는 처음이었 다. 대륙에서도 이런 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만만치는 않았다. 뿜어 져 나오는 기세가 굉장했다. 온몸을 찌릿 하게 만드는 가공할 위압감이었다.

‘이런자는물욕이 없다:

혹호문의 괴멸과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 보았지만, 금강문주는 그런 부류와는 거 리가 멀었다. 제3세력의 개입으로 어부지 리를 얻었음에도 협상력 부재로 인천 지 역의 흡수에 난항을 겪는 것만 봐도 확실 하다. 한마디로 주어진 복도 걷어차는 유 형이다

‘그렇다 하나:

이극은 반전을 위해 방향을 틀었다. 사 실 부하들의 부상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 었다. 금강문주를 자극하기 위해서 감시 범위를 좁혀 놓았었다. 대놓고 감시를 하 는데, 감정이 상하지 않을 무인이 어디 있 겠는가. 금강문주처럼 대책 없는 무인은 더더욱 그렇다.

“흑호문과는 사이가좋지 않은 걸로 알

고 있소이다.”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혹호문의 괴멸로 가장 많은 이득을 챙 긴 문파가 금강문이 아니오? 어느 누구라 도 의심할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소.”

정우는 돌아가는 상황이 재밌게 되었 음을 간파했다

‘무문과 입을 맞추었군.’

이번 사안을 빌미로 금강문의 영역 확 장을 우려하는 연합무문에서 하북팽가와 사전에 말을 맞추었을 가능성이 크다. 의 도치 않은 사건일 수 있지만, 연합무문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자신들에 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팽가에 힘을 실어 주면서,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다. 기득권 을 챙기기 위해 외세와 협상을 하다니, 자 중지란이 따로 없다.

이해는 간다. 어느 세상이든, 자기 밥그 룻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러다가 밥상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가 그딴 말을 해!”

“아니라면 조사를 방해할 이유가 없지 않소.”

애들 교육 좀 시켰다고, 방해라니. 터무 니없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거야?”

“끝까지 방해하겠다면 금강문이 흑호문

사태의 배후에 있었다는 의미가 되겠지.”

“말이면 단 줄 알아! 내가 팽가를 무서 워할 것같아!”

“본 세가는 물론 연합무문까지 척을 진 다면 과연 금강문이 버텨낼 수 있을까?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이호극을 향해 이극도 물 러서지 않고 경고했다.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금강문을 배후 세력으로 간주해 버리겠다는 엄포다.

“차는 잘 마셨소.”

이극은 할 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정우는 귀영각주를 정문까지 배웅을 했다

“본 문을 배후로 보시는 겁니까?”

“그건 두고 보면알 일이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나는 귀영각 주다.

정우는 충분히 뜻을 알아들었다.

‘원하는 대로해주마’

접객실로 돌아온 정우는 실랑이를 벌 이고 있는 문주와 총관을 봤다.

반말과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일문을 책임지는 수뇌부의 품격 있는

고상한 대화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시정잡 배도 한 수 접어줄 막말의 향연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산다!”

“너라니, 말이면 단 줄 알아! 김 씨!”

“김 씨! 내가 너보다 미역국을 먹어도 20그릇은 더 먹었어! 문주라고 지켜 세워 주니까, 위아래도 없냐!”

“이제 막가자 이거지! 한번 해보자 이거 요!”

“아까부터 해보긴 뭘 해봐! 그래 쳐라, 쳐!”

얼굴을 들이밀어 쳐 보라고 한껏 기세

를 살리는 김 총관이었다.

이를 칠까 말까 고민하는 이호극이다. 지은 죄가 있어서 차마 날리진 못하고 있 었다. 아버지의 친구만 아니면 정말 가만 안 있었을거다.

‘설마치겠어?’

‘총관새로 봅을까?’

문주의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 때 총 관의 동공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서로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진짜로 때 리면 그땐 뒷감당을 하지 못한다는 걸 알 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다.

“그만하세요, 다큰 어른들이 뭐하시는 거예요.”

적절한 때 정우가 개입해 줬다.

둘 다 말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문주와 총관이 얼씨구나 하고 받아 챙 겼다. 이때가 아니면 감정싸움의 판이 커 져 버린다. 그럼 사소한 일로 돌이킬 수 없 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크홈, 호법을 봐서 참는 거요.”

“사위 때문에 산줄아시오.”

김 총관은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가는 사태를 관조했다. 그리고 정우를 봤다. 태 연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비자금의 추 적이 이루어졌고, 문주가 사고를 치자마 자 나타났다. 우연한 사고가 연이어 벌어 지면, 우연이라고 할수 없었다 정우는 오해를 원하지 않았다

“수사 범위에 금강문이 포함되지 않은 건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문주님에 게 사람을 붙였죠. 그것도 지근거리에서.”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는 거냐?”

“시간이 문제였죠. 아닌가요?”

“나도 아무 때나 사람을 패진 않아!”

문주의 부정에 김 총관이 코웃음 쳤다

“행여나 그러시겠다.”

“거참 말끝마다!”

이호극의 주장에 김 총관은 고개를 저 었다. 저 인간이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고 는 믿지 않는다 순간, 순간의 감정에 따라 서 예상 밖의 행동을 꾸준히 해왔다. 금강 문의 역사를 봐도 이토록 대책 없는 문주 는 없을것이다.

“본문의 확장이 다른 무문에게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아마 팽가와 합의를 본 후 견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요.”

“이것들이 나 모르게 지들끼리 작당한

거였어!”

엎어버리겠다는 이호극을 정우는 만류 했다. 이호극이 무문연합으로 달려가 으 름장을 놓게 되면, 오히려 도와주는 꼴이 다

“당분간은 저들의 요구대로 해주는 편 이 나을 거예요. 공식적으론 오해였다고 하고요.”

“난못 해 내가왜?”

“그래야 의심의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 나기 때문이죠.”

김 총관은 아연실색했다.

어쩐지 좀 이상하기는 했었다. 문주가

대책 없이 저지른 사고로 인해 혹호문 괴 멸의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결과 가 되었다. 귀영각주가 찾아온 것은 사과 를 받으려는 의도분만 아니라, 문주의 성 향을 파악하고 떠보기 위해서다.

소문보다 더한 문주의 행태를 보고서 도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 른다. 게다가 모두가 보는 가운데, 대놓고 손을 썼다. 한밤중에 쳐들어가 혹호문을 무너뜨린 수법과는 괴리감이 컸다.

‘작은 사고로 대형 사고를 막으면 그게 더 이득이긴 하지.’

하북팽가의 계획대로 문주는 언젠가

크게 사고를 터뜨릴 것이다. 그 전에 사고 를 쳐서 미연에 방지 한다면 나브지 않은 손익이다.

‘판을 넓혀주마’

정우의 속셈은 금강문에 있지 않았다.

귀영각주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안 에 동생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었다. 최대 한 가족과의 연관성은 거리를 두어야 했 다. 정우는 조금의 가능성도 간과하지 않 았다. 가족은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조금이라도 연관이 된다 면 설령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끊어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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