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규모를 키우다 ⑵
정우는 집으로 가지 않고 혹금단의 비 처에 들렀다. 비밀장소라고 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하진 않았다. 일반 가정집 다세대 빌라 한 동을 활용했다. 부동산의 추이를 감안해서 공시지가가 상승할 만한 장소를 사들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땅은 배신하지 않았다
“불편한건?”
“ 없습니다”
대답을 하고 있는 자들. 흑금단에 새로 이 투입된 막내단원이다. 그들은 시종일과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나, 답변이 늦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과거는 하북팽가의 삼공자와 건 곤대의 대주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혹금단의 막내일 뿐.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두드려 패는 인간 말종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리고 그 인간 말종들도 단주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에 대해서 말해봐.”
“저희 세가는 대륙의 5대 가문에 속합 니다. 세가연합에서 남궁세가에 밀리면서 위세가 과거에 비해서는 빛이 바래기는 했 지만, 아버지께서 가주의 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팽세기와 팽위관은 가문의 비밀을 술 술 털어놓았다. 세가의 공자와 대주라는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진 지 오래였다. 가 해진 금제와 지속적이고도 집요한 구타는 정신에 영향을 주어 복종하게 만들었다.
“아는바가별로 없군.”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 딱히 기대하진 않았으 니까”
팽세기와 팽위관은 초라함을 느꼈다. 가문에서도, 혹금단에서도 가치를 입증하 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단주의 금제는 특이했다. 기본적으로 생각은 자유롭다. 그러나 막상 거부하려고 하면 의지가 생 기지 않는다. 자유로운 반면,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금제였다. 그래서 더 무섭기까지 하다.
“이극이라는 자를 알아?”
“귀영각의 각주로 가주께서 신임하는 자입니다. 이번 일에 그가 나섰다면 단주 께서도 각별히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내가 준비할 이유가 있을까?”
“귀영각주는 가주의 명으로만 움직입 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 을게 분명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려고 했다면, 시간을 끌어 유야무야 흐지부지되도록 놔두었을 것이다. 하북팽가가 포기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오대세가의 쟁투에 한국 무림을 칼받
이로 쓰려고?”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종합하면 하북팽가는 흑호문 사태를 확대시켜, 한국 무림 내에 세력을 확장하 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흑호문 사태의 진범을 밝혀야 한다는 전제가 남는다. 한국 무림 이 먼저 손을 쓴다면 하북팽가는 명분이 줄거나, 잃게 된다. 그렇기에 가주의 신뢰 를 받고 있는 귀영각주가 움직인 것이다.
“이극의 능력은?”
“저희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사태 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합니 다. 그 증거로 귀영각주가 나서서 해결하 지 못한사안이 없었습니다.”
하북팽가의 가주는 실패를 용납하는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목적한 바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다. 귀영각주는 그런 가주의 신임을 얻고 있었 다 능력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북팽가에 8급의 유니크가 몇 명이 나있지‘?”
“최소 3명입니다?”
드러난 수가 그렇다면, 숨겨진 힘은 배 이상으로 봐야 했다. 대륙의 저력을 체감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과연 인구빨을 무 시하진 못했다. 수가 많을수록 인재의 수 도 많았다. 단순 인구 비율로 부자의 수가 전체의 1%면, 우리나라가 50만인데 비해 중국은 1천만이 넘는다 예나 지금이나 국 가의 힘은 영토와 인구에서 나왔다.
정우가 부단주에게 물었다.
“놈들의 동향은’?”
“그게좀이상합니다.”
“어떤 점이?”
“처음에는 무문과 길드를 감시하더니, 이제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누굴 찾는데?”
“워낙 신중히 움직이는 데다가 무문에 서 통제를 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치 않았 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좀 더 밀착감시를 하겠습니다.”
“아냐, 그럴 필욘 없다”
단체가 아니라 사람을 찾는 다면, 목표 물이 축약되었음을 의미한다. 단서를 획 득하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다 지지부진한 한국 무림과 다른 발 빠른 조치였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군.’
통상적인 방식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 운 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니면 혹호문 과의 거래를 통해 단서를 찾아냈거나. 그 렇다면 흑호문을 무너뜨리기 이전에 하북 팽가와 전언을 주고받았느냐가 중요하다. 받지 않더라도, 목록이 남았다면 비교가 가능했다. 빠진 목록을 위주로 사람을 찾 는다는 가정을 세웠다.
‘좁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위험할 수 있 겠어.’
상대의 수를 정확히 모르는 이상, 당장 은 계획을 완벽하게 구상할 시간이 필요 하다 정우는 하북팽가의 가주가 되어서 생 각을 해 봤다 그는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 할줄도 알고, 처세술도 뛰어난 편이다.
‘집요한구석이 있단말이야.’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 것이었으면, 중 국 정부를 통해 한국을 압박하지는 않았 을 터. 한국 무림을 먹어치울 기회를 호시 탐탐 노리고 있었다. 대륙을 지탱하는 오 대 세가임에도 만족을 모르는 자이기도 하다
‘남의 구역에서 설치는 걸 두고 볼 순 없지.’
한국 무림엔 금강문이 포함이 되고, 그 안에 자신이 있었다. 금강문은 연봉 3억에 성과급을 꾸준히 지급해 주는 직장임과 동시에 안전한 방패막이다. 소 잃고 외양 간을 고치는 건 어리석다. 사전에 방비를 해야한다.
‘때마침 거치적거리는 놈도 있고.’
구상을 마친 정우의 입꼬리가 올라갔 다
크크크!
부단주와 단원들은 단주의 미소에 오 싹한공포를 느꼈다 저 미소를 짓고 난후 에 벌어지는 일은 언제나 대형 사고였다.
? * *
혹호문 사태 이후로 금강문을 주시하 는 시선이 늘어났다. 영역이 확대되고, 규 모가 늘어난 만큼 당연한 현상이다. 흑호 문의 괴멸에 연관성이 없다 해도, 구실을 만들어 금강문이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 도록 차단하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렸다 일례로 금강문의 구역 확장을 진상 조 사를 이유로 질질 끌고 있었다. 그렇다 해 도 금강문은 한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똘끼 충만한 문파다. 행여나 마찰을 빚으 면 손해를 보는 입장은 정해져 있었다. 해 서 무문이나 길드는 감시의 범위를 최대 한 넓혀 놓았다. 마찰은 피하고, 공식적인 입장 표현을 하는 선이다 하나, 한국 무림의 실정을 알지 못하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설령 조사를 했다 해도 부딪쳐 보지 않으면 사람은 알지 못 한다.
아니면 고의적이거나.
“야,이리와봐”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거구의 사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정장을 입은 3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까딱거리는 손가 락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3초 안에 튀 어오지 않으면 피 똥싸게 될 거라고.
흠!
지적질에 시선을 갔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선글라스를 쓴 사내들이다. 그 들은 대기하라는 명을 받았다. 똥개 부르 듯 한 행동이 기분 나쁘기는 해도, 명을 따라야 했다. 각주의 명이 아닌 이상 행동 하지도 않았다.
“이것들이 내 말이 X같이 들렸나 보 네!”
이호극은 오늘 심사가 아주 불편했다. 아내한테 숨겨 놓은 비자금을 들키고 말 았다 어떤 놈이 고발을 했는지, 의심 가는 대상은 있는데 증거가 없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부터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 는 놈들이 있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 당연 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은 사안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눈에 띄지 말아야 했다. 게다가 말을 했는데 무시하고 있었다. 그 것도 본인의 안마당에서.
이러면 화가나, 안나?
게다가 성질 급한 이호극인데.
파앙!
공기가뚫리면서 파공성이 울렸다. 호극 의 신형이 공간에 일직선을 그었다. 이어 서 내지른 주먹질에 피륙이 부딪쳤다.
퍽!
예상하지도 못했고, 설령 예상을 한다 고 해도 막지 못할 스피드와 파워였다. 선 글라스가 깨져 나가면서 안면을 강타당한 사내가 지면에 꽈당 했다
“무슨짓…크악!”
팔꿈치와 무릎이 서 있던 사내의 배와 턱을 강타했다. 입 안에 터지면서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나갔다.
쿠다당!
단 3방에 사내들은 비 맞은 개처럼 부 르르! 떨다가 기절했다.
탁탁!
호극은 간단히 손을 털고 돌아섰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새끼들이 정장 입고 폼만 잡으면 다냐!”
설익은 주먹질을 했더니, 기분이 가시기
는커녕 오히려 더 달아올랐다. 이럴 때는 시원하게 한판 떠 줘야 했다. 예로부터 스 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제대로 치고받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사고쳤네요.”
“마침 잘왔다!”
학교를 마치고 온 정우를 보자 반색하 는 호극이었다. 스트레스를 풀 적임자로 정우만한 상대가 없었다. 이제는 케이브 안에서 전투가 가능해져, 총관의 잔소리 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건물 좀 부쉈다고, 어찌나 닦달을 하던지.
“저렇게 놔둬도 돼요?”
“괜찮아 무인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 야”
틀린 말 같지는 않는데, 굉장히 무식한 발언이었다. 더욱이 싸웠다는 표현을 하 기에는 선글라스 사내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일방적으로 처맞은 걸 목격했는데 도 불구하고, 호극은 정당방위라고 우겼 다 죄책감보다는 한국인으로서 우월감을 보였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무슨일인데요?”
“김 총관 이 사람이 치사하게 비자금을 아내한테 꼰질렀다니까!”
“총관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혹 열 받
게 했나요?”
“아니긴, 확실해! 그리고 요새 얌전히 지냈다고, 술도 줄이고.”
“상대해 줄 테니까 화푸세요.”
“역시 날 이해해 줄 사람은 너밖에 없 다”
정우는 쓰러진 사내들을 보며, 알 듯 모 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예상에 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문주를 보며, 총관의 답답함이 이해되었다.
‘오겠지.’
금강문은 분주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김 총관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 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새벽부터 연 합 무문의 빗발치는 항의전화를 받으니, 골이 지끈거렸다. 잠에서 깬 아내도 이럴 거면 일 그만두라고 했었다. 여편네가 잠 좀 자자고 어찌나 성화를 하던지, 누가 보 면 잠을 못 자게 하는 줄 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잠만 퍼질러 자면서, 할 소린가.
‘이 인간을그냥!’
며칠 전 정우가 문파의 자금 내역에서 비는 부분을 찾아내 보고했다. 어디서 빠 졌는지 추적을 해 보니 망할 놈의 문주가 카드깡을 한 것이다. 양주를 마시고 카드 로 계산을 한 후, 현금으로 받아 챙겨 비 자금으로 활용했다.
일전에 법인 카드를 많이 쓴다고 해서 한도를 제한했더니만. 정우가 아니었으면 자금이 계속 새어 나갈 뻔했다. 망할 놈의 문주는 항상 ‘적당히’를 모른다. 아마 가 만히 놔두었으면 문파의 초석까지 날려먹 을 인간이었다. 그래서 사모님과 공조해 비자금을 차단했더니,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내가 환장해서 쓰러지는 걸 보려는 게
분명해.’
김 총관은 다짐했다. 문주의 자금을 철 저히 추적해서 피를 말리겠다고. 문파의 재정에서 한 푼도 쓰지 못하도록 차단해 버릴 것이다.
김 총관은 문주의 방으로 갔다
방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잠 에 취해 있는 이호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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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명나게 대결을 펼치고, 정우가 술을 쐈다. 술집의 술이 동이 날 때까지 마시고 새벽 3시에 들어왔다. 세상의 근심 걱정이란 아무것도 없는 인간의 표정이 이 러할까? 문주의 상판 떼기를 보고 있자니, 겨우 억눌렀던 총관의 화가 폭발하고 말 았다.
“야이! 개새끼야!”
화가 치민 김 총관이 이성을 상실하며 쌍욕과 함께 곤히 자고 있는 문주의 면상 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금강팔격의 일로 금강을 시전했다. 아주 작정하고 날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꽈아앙!
괴열한 파공성과 함께 방 안이 들썩였 다. 강도 9.0을 견디는 내진설계가 되어 있 는 건물의 구조가 아니었다면 무너졌으리 라
“뭐야? 아침부터!”
겨우 눈을 뜬 호극이 벽면에 붙어 있는 껌 딱지, 아니 김 총관을 보며 인상을 썼 다. 일어나자마자 보고 싶지 않은 면상이 었다. 부스스 일어난 여편네를 마주 봐도 괴로운데, 고문 중에 상 고문이다.
‘이... 인간[’
주먹을 날린 당사자, 김 총관은 허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날린 주먹질이었다. 그런데 내 리친 주먹이 닿기도 전에 반탄진력이 발생 했다.
‘더 강해졌어’
자신의 무공이 비록 문주와 제대로 맞 짱 뜰 수준은 아니나, 이렇게나 차이가 벌 어졌을 줄은 몰랐다. 정우에게 심법을 받 고 난 이후, 강해지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더라도, 기습 공격에도 끄 덕하지 않은 문주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 이 터진다. 강해진 만큼 앞으로 더 막나갈 그림이 상기되었다. 자기 세상인 줄 알고 설치겠지.
“아침부터 웬 병풍 짓이야, 깨웠으면 말 을해야지.”
“지금몰라서 묻는겁니까?”
“총관이 보기엔 내가 아는 것 같아?”
“모를 것 같다 이 화상아!”
“씨부럴! 눈 뜨자마자 욕이야! 진짜로 병풍 뒤에서 향내 맡고 싶어!”
남의 속을 뒤집을 줄이나 알지. 문파 돌 아가는 사정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 었다.
김 총관은 끝까지 화를 내려다가 참았 다. 이번 일은 문주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 다. 상대도 문주를 직접 봐야겠다고 강력 하게 요청했다. 대형 사고를 치고도 태연 히 잠을 퍼질러 자는 문주의 무사안일주 의에 답답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