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분란엔 기름을 부어야 제맛 (4)
주르륵!
선택을 강요받은 임철수는 등 뒤로 식 은땀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싸워보지도 않고, 말부터 막힐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꼬리를 말자니 저 능글맞게 웃고 있는 놈 의 낯짝을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서 있을 작정이냐?”
망연히 서 있어야 했던 임철수의 분노 에 친히 기름을 부어주시는 정우였다. 이 런데도 가만히 있으면 학과 내에서도 무시 당할수 있었다.
“자신 있으면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증 명해맛!”
“결국 길드, 무문 연합 학교를 믿지 못 하겠다는 뜻이지?”
정우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대충 속 시원하게 싸워 버리면 그만인 상황을 매우 어렵고, 지루하게 만들어 버렸다.
임철수의 바람대로 화끈하게 싸우자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우같은 놈:
현우는 애초의 생각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이놈은 상당히 영악한 놈이었다. 모 두가 적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대범하게 역공을 취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렇게까 지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이 뭐겠는 가?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주변을 끌 어들이지 않아도 된다
‘투명거울이냐, 훤히 보인다.’
정우는 현우보다 두 수, 세 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쯤에서 현우가 나서리란 것도 예측했
다
“네 실력이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빡 빡하게 굴지 말았으면 좋겠다. 같은 1학년 이니 호승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 냐:’
“하긴 한창 혈기왕성할 때라 천지분간 못할 때긴 하죠. 그렇다면 저도 넓은 마음 으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승낙은 했다. 그러나 임철수는 한순간 에 천지분간 못하는 혈기왕성한 애송이가 되어 버렸다. 이는 단순히 임철수분만 아 니라, 금속조종학과 전체를 싸잡아 비판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돌려 말했다 해 도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부글부글!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서지 못할 분. 자 리하고 있는 모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놈을 절 대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앞 에서 비참하게 망가뜨려야 속이 시원할 것 이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는데, 산 사람의 소원 못 들어주겠습니까”
정우가 엉덩이를 일으켜 세웠다.
참으로 무거운 엉덩이였다
하라는 정우가 많이 참고 있었다는 사 실은 안다. 이 인간의 평소 행실을 감안하 면 충분히 예상되는 결말이었다. 말려봤 자 거세게 반발할 뿐이니 속이 탄다. 그런 데도 기대되는 감정이란, 역시 팔은 안으 로 굽는 모양이다
‘내 인생의 극딜 캐릭터라니까?’
아무래도 정우의 여자친구는 극한직업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니 면 누구도 캐리할 수 없는 캐릭터. 그래서 더 끌리는지도 모른다.
정우와 요즘은 사라진 국어 캐릭터 철
수가 마주했다.
철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모욕의 대가는 확실하게 치러주마”
“모욕이라니, 내가 언제? 생사람은 잡지 말자”
좀 전까지 돌려 깎은 양악처럼 마구 깠 던 주제에 면전에서 부정해 버렸다. 철면 피가 따로 없다. 철수는 울화가 치미는 걸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어찌 되었든 이렇 게까지 된 마당에 더 이상은 회피하지 못 한다 실력으로 꺾어 주면, 앞선 말들은 모 두 개소리가되어 버린다
“어떤 말을 해도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거다!”
“말 돌리지 말고,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잖아. 어디가 모욕을 했다는 거야? 이의 제기를 한 사람은 너고, 판단은 길 드, 연합, 무문, 학교에서 내렸어. 명백한 현실을 부정한 사람은 내가 아닌 너야 그 걸 밝혔을 분인데 모욕이라니. 토론에서도 이의를 제기한 자는 정확한 팩트에 기반 을 둔 증거 자료를 제시할 의무가 있어, 이 는 대화의 기본자세야. 너는 그 나이 먹도 록 대화를 그딴 식으로밖에 배우지 않은 거냐?”
이 와중에도 논리를 따지는 정우의 화
술이었다.
철수는 바보처럼 눈만 껌뻑거렸다. 설 마 구구절절 설명을 다 할 줄이야 대화의 수준까지 거론하며 인격 모독을 당했음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매일 치고받는 수련만 했지, 화술을 배웠겠는 가. 대가리에 똥만 가득 들어찼다고 인증 하는 꼴이다.
“잡설은빼고, 어서 덤비기나하라고!”
“성급하긴, 시시비비는 확실히 가려야 지. 우리나라와 같은 법치국가에서 폭력 으로 해결을 보려는 것부터가 비이성적인 행동이란 걸 모르는 거냐. 최후의 수단으 로 폭력을 쓰더라도 정당성이 부여가 되어 야 해, 그래야 사회통념에 위배되지 않는 다고. 알겠어?”
알긴 뭘 알아?
철수는 속으로 포효했다. 당장에라도 주먹으로 쳐 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 고 있었다. 분하다고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놈이 과정 을 꼼꼼하게 영상으로 저장하고 있기 때 문이다.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인증하고 있었다 인증을 더럽게 좋아하는 놈이 아 닐 수 없다. 그러니 여태 공인인증서가 사 라지지 않았지.
‘이 정도 했으면 눈치는 챘겠지.’
명분은 정우가 쥐고 있었다.
철수는 명분에 놀아나고 있는 장기 말
에 불과했다.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우가 하자고 해야 철 수는 행할 수 있었다. 이도저도 못하고 있 는 철수는 안절부절못했다.
“걱정하진 마라 대결은 할 테니까.”
“그렇다면 어서 덤비라고(입 좀 닥쳐맛)!”
“그 전에.”
“또뭐(이새끼가)?”
싸우기도 전에 혈압으로 쓰러져 버릴 것처럼 홍시인 양 붉게 달아오른 철수다.
보고 있는 사람도 지쳤다
정우를 꿰어 왔던 현우도 끓어오르는 염화를 다독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 다. 대결은 하지 않고 도입부로만 A4 용지 100장을 채우고 있었다. 책을 쓰는 작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로 먹는 광경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몰입도는 최고였다 주 변의 시선이 정우와 철수만을 향하고 있 었다.
“대결 중에 죽거나 부상을 입을 수도 있잖아”
“사내대장부라면 죽음 앞에서도 태연해
야하는 거다!”
어디서 본 건 있나 보구나.
삼국지에 나왔나?
정우는 삼국지를 읽지 않아서 잘 모른 다. 한국인의 필독 도서에 속한다고 알려 졌지만 떼놈들의 얘기는 별로 감홍이 없 다 뭐랄까? 인구빨의 대책 없는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항상 보면 인구 많 은 놈이 승리해온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겠 지만
“내가 오해를 했구나, 진짜 사내다운 상 대를 만난 것 같다. 모쪼록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란다”
“너야말로 물리지나 마라!”
대결의 장이 마련되었다
현우는 하라에게 안심하라고 했다.
“큰 사고는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겠죠.”
난 댁이 더 걱정인데.
하라는 정우를 걱정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런 데다 상 대방이 물러서지 못하도록 양념까지 친절 하게 발라 주었다. 바비큐를 만들기 위해 서 부단히 양념장을 멧돼지에 발라 정성 을 들이는 것처럼. 제대로 먹기 위한 노력 의 산물이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저 상황 에서 뒤로 뺄 수 있는 인간이 있기나 한 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정우와 철수는 5m의 거리를 두었다
“마법사는 원거리가 특기라고 하던데.”
“꼭 그렇지는 않아”
“가깝다면 거리를 벌려 줄 수도 있어.”
“아냐 여기가딱알맞0h”
철수는 초장에 끝을 낼 심산이다. 길게 끄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속성을 운 용해 lm크기의 강철봉 10개를 정면에 배 치했다.
‘무인이 봤다면 기절초풍할 광경이긴
하군.’
내공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놈이 이기 어검을 다루고 있는 꼴이었다. 그것도 하 나도 아니고 10개나 되는 봉을 만약 속성 을 몰랐다면 정우도 꽤 놀라운 광경으로 취급해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기어검을 다룰 만한 내공도 깨달음도 아닌 철수의 타고난 천성일 분이다.
“시작한다.”
“ 얼마든지.”
정우도 철수와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파이어볼.
의념이 심장의 원과 교류를 하여 대자
연과 동화된다. 그러자 허공에 마법의 염 화가 피어오른다. 작은구에서 점점 더 염 화가 커지더니 직경이 2m가 되었다.
화르르
맹렬한 화염이 공간을 뜨겁게 달군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화력에 모두의 얼굴 에 놀람이 가득하다 화력의 수준만 봐선 전투력을 알기 어렵지만,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다 MT에서 드러난 평가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나타냈다.
휘익!
손짓을 하자 파이어볼이 철수를 향해
날아갔다.
푸아앙! 화화활!
떨어져 내린 파이어볼이 공간을 태우며 주변을 녹였다. 화염의 파워는 확실히 대 단했다. 가공할 열기에 수영장 안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비산한다. 닿기만 해도 화 상을 입을 만큼 강렬한 열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a. O O O|
철수의 강철봉 일부도 파이어볼의 영향 을 받아 붉게 달아올랐다. 열기 하나만큼 은 굉장히 위험했다.
“푸하하하, 마법이 정말 대단하네.”
철수는 웃고 있었다.
“하나, 속도는 형편없어.”
파이어볼치고는 상식을 불허하는 파괴 력이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수련을 쌓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위험할 수 도 있겠지만 철수는 육체수련도 꾸준히 해왔다. 과목에 육체 단련을 위한 수련법 도 있었다.
“그런 속도로 5급을 마물을 잡았다고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그럼에도 잡혔지, 잊으면 곤란해.”
“끝까지 입만 살았구나, 하지만 이젠 어 림없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
철수는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놈의 날 카로운 혓바닥에 속아 주눅이 들었다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전후 사정 살피지 않고 대범하 게 행동했을 것이다: 후후.
정우의 미소를봤어야 했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주었 다
- 홀드(Hold).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철수는 두 눈 을 부릅떠야 했다. 공격을 하려던 자신의 모든 것들이 일시에 정지되어 버렸다. 발 버둥을 치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럼 굳이 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지, 안그래?”
파이어볼이 형성되었다.
정우는 주저하지 않고 철수를 향해 던 졌다.
바르르!
날아오는 파이어볼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철수다.
찰나의 순간 걸려 버린 홀드.
속성이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고, 몸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벌벌 떨었다. 뜨 거운 열기가 온몸을 덮쳐 오고 있었다.
“진정한 사내대장부를 볼 수 있겠어. 크 크크크.”
철수는 봤다.
파이어볼의 화력에 일렁이는 정우의 미 소를. 그것은 보통 사람의 미소가 아니다 흡사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와 같았 다
‘죽…는다!’
파이어볼의 속도는 형편없을지 몰라도, 위력만큼은 엄청났다. 정통으로 맞으면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홑날리게 될 것이 다
‘죽고 싶지 않아!’
17세의 나이에 화장(火葬)으로 생을 마 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가 오는 파이어볼 앞에 철수는 죽음을 생생 히 전달받고 있었다. 마치 지구 종말을 고 하며 디데이를 세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하는 거야?”
“왜 그래?”
“어서 피해!”
“장난치지 말고!”
피하지 않고 멍하니 선 철수
그제야 모두는 이상하게 바라봤다. 여 유롭게 관전 중이던 현우와 경환도 상황 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파이어볼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파이어볼은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보다 더 몇 배는 더 느리다. 그럼에도 철수는 아예 대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살 ?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