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분란엔 기름을 부어야 제맛 (3)
‘너한테 어울리는사람은 나다.’
하라는 간단히 승낙한 정우의 담담한 태도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인간이 대체 뭘 꾸미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 다 신안(神眼)을 이용해 은밀히 정우에게
메시지를 보냈q:
-꿍꿍이가 뭐야?
-꿍꿍이라니, 초대를 거절하는 것도 예 의가아니라고.
-언제부터 예의를차렸다고!
_거절한다고 물러설까 여기까지 와서? 알면서 왜 그래.
-안 되겠어,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 뵈러 가자.
현우 선배의 태도를 보니, 시간을 끌수 록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컸다. 정우가 평범한 인간이면 또 몰라, 얌전히 당해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말0}이드 한다. 자 칫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제발, 조용히 좀살자’
하라는 이제부터라도 정우의 내조를 해 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멋대로 설치다가는 주변이 다 망가져 버릴 수 있었다 이 인간 은 그리하고도 남을 위인이기에 항시 주시 해야만한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현우의 검은색 대 형 세단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문 옆에 대기했다
“ 타지?”
“차가지고 왔습니다”
정우의 차는 식당 주차장에 똑바로 주 차되어 있었다.
현우는 정우의 차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레벨의 차이는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차의 급수가 달랐다. 그런 차로 되겠냐는 의미가 섞여 있었다.
정우는 현우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덥석!
하라의 손을 잡고 차로 데려가 문을 열 어주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그럴 듯한 자세가 나온다.
“타요, 공주님.”
“낯간지러운말하지마”
평소엔 하지도 않던 정우의 정중한 태 도에 하라는 어색해하면서도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보통 연인들처럼 하고 싶었 기 때문이다. 자기 남자가 세심히 관심을 기울여 주는데, 싫어할 여자는 없었다.
빠직!
현우는 본색을 드러낼 뻔했다. 차의 레 벨을 보고서도 담담히 웃고 있는 걸 보 고 있자니, 화가 치민다. 알고 있다면 비웃 는 것이 되고, 모르고 있다면 승자의 미소 가 된다. 아무리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도, 아름다운 꽃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듯.
현우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다스린 후에
야차에 탔다
별장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별장이라서 그런지 크고 화 려하며, 최첨단 시설까지 구비되었다. 적 지 않은 사람들이 참석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현우의 금속조종학과 선후배가 한자리 에 모였다
금속조종학과는 말 그대로 금속을 조 정을 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속성을 가 르친다. 실제 생활에서 다루는 모든 기기 에 금속이 들어 있어 활용범위가 컸다.
물론급수에 따라서 다룰수 있는금속 이 제한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금속 1종 은 3급, 2종은 4급, 3종은 5급 순차적으 로 구분되며 8급에 이르면 모든 금속을 다룬다고 알려졌다. 유니크 등급이 높을 수록 종류도 많아지고, 강도가 강해진다 MT에서 금속조종학과는 탑5에 들었 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금속조종 학과는 매년 최상위에 드는 실력자로 구 성이 되었다.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렸냐?”
“아닙니다. 선배님.”
강인한 인상의 사내는 같은 학과 4학년 이경환으로 학과 내에서 현우의 수족을 자처하고 있는 자다. 금속조종학과에서 현우는 가장 강하고, 세력도 컸다.
“유하라잖아!”
“와, 실물이 더 예브네!”
꾸미지 않았음에도 하라는 눈이 부시 는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방송계의 스타, 국민여동생의 등장에 환호하지 않을 사내 가 어디 있겠는가. 현우가 그녀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을 했다 하라는 그렇다 치고, 그 옆에 있는 정우 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대단한 녀 석이기에 국민여동생의 팔짱을 멋대로 끼 고 있는지를.
“이쪽은?”
“우리처럼 이번 MT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마법학과의 1학년이다. 내 초대로 왔 으니 정중히 대해주길 바란다.”
“아 그렇군요.”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마치 잘 짜인 연 극을 보고 있는듯하다. 말로는 잘 부탁한 다고 하지만, 마법학과를 거론함으로서 시 선을 집중시켰다. 항상 꼴찌에서 맴돌았던 마법학과의 약진을 곱게만 보지 않았다.
“마법학과 1학년 하정우입니다. 현우
선배의 초대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와보 니과연 좋군요.”
정우는 자기소개를 한후, 현우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음악이 흘 러나오고 있었다 학생들이라 분별없이 시 끄럽게 엉망진창으로 놀 거라 봤는데, 그 렇지는 않았다.
식탁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고가의 재료를 이용한 음식으로 가득 들어차 있 었다. 재료도 재료지만 요리사의 솜씨도 뛰어났다. 한식, 중식, 양식, 퓨전을 가리 지 않고 식탁의 크기에 따라 배분을 해놓 았다
“평소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서,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색다르고 좋네요.”
네까짓 게 이런 고급 요리를 먹어봤냐 는 뉘앙스지만, 정우는 대수롭지 않아했 다. 마치 음식밖에 자랑할 게 없냐는 말투 다
‘°1 자식이.’
정우가 담담할수록 현우는 기분이 나 빠졌다. 식탁에 있는 재료는 가격도 가격 이지만, 흔하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 식재료인 캐비아와 국제법상 포경이 금지된 고래 고기를 준비 했다.
이를 특급 요리사가 조리를 했다. 가격 으로 따지면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재력 의 차이를 보여, 주눅 들게 하려고 했건만 통하지 않았다.
‘거머리 같은놈’
현우는 정우가 하라를 이용한다고 확 신했다. 보잘것없는 놈이 돈 맛을 보더니, 신분을 망각하고 있었다. 돈이란 게 그렇 다, 돈의 맛에 중독이 되어 버리면 현실을 망각할 때가 많다. 마치 자기가 계속 돈의 세상 속에 살 수 있는 것처럼.
‘맛 좋네.’
정우는 딱히 맛을 가리지 않는다. 몸에 제공할 영향소만 채워진다면 족하다. 그 렇다고 고가의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생의 정우는 패도 의 극에 이른 절대자다. 주변에선 항상 최 고의 요리를 대령해왔다 간혹 가다 독이 들어 있기는 해도.
‘상관없지.’
별미니까.
독에 당할 정도면 인생 헛산 것이다. 혹 시라도 중독되면 진강백 그 진지한 놈이 배꼽 잡고 웃을 수도 있었다. 나도 쪽팔려 서도 칼 물고 자살할지도 모른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진강백 그놈에게 비웃음은 사 고싶지 않다.
찌릿!
현우와 사인을 주고받은 경환이 나섰 다
사전에 약속된 멘트를 날렸다.
“5급의 스톤을 얻었다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5급의 스톤은 5급 마물을 사냥해야 얻 는다^
1학년은 최대가 4급 마물로 한정되어 있었다. 5급의 마물을 사냥하려면 최소 3
학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번에 조 평가에 서 마법학과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그 대상이 정우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1학년에서 3학년까 지 정우의 능력을 궁금해했다
“운만으로 5급 마물을 사냥하진 못하 지. 혹, 전투 영상을볼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투영상이 없습니다?”
자, 원하는 대로 밝혔다.
어쩔 거냐.
정우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쯤 되면 성질 급한 놈들 중 1명이 나설 수밖에 없다. 특히 같은 학년일수록, 현우 에게 잘 보이고 싶은 놈일수록. 영상이 없 다고 했으니,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변명 으로들렸겠지.
‘내 이럴 줄 알았어!’
하라는 의도대로 끌려가는 정우의 고 약한 심보에 골이 지끈거렸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인간이라면 몰라, 돌아가는 분 위기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고 말릴 수 도 없는 현실이다. 정우를 몰아가는 현우 선배의 계획이 얄미웠다
“이 자리에서 그 실력을 좀 보여줄 수 있을까‘?”
금속조종학과의 1학년, 임철수
신입생 중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잠재 등급을 인정받았다. MT에서도 발군의 성 적을 올린 실력자다. 벌써 2종의 금속을 다루며, 강도를 3도까지 끌어올렸다. 같 은 학년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있 지만, 상대가 마법학과라고 하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법학과가 쓰레기란 사실은 학교 내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같은 급 수에 놓인다는 것 자체가 수치였다. 그런 쓰레기들이 운이 좋아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이다.
“싫다면?”
정우는승낙하지 않았다.
나답지 않다고?
모르는 소리, 초보자나 바로 응하지.
이때는 답답함이 필수다. 그래야 주변 의 반응이 달아오르고 조급해진다. 빼는 모습을 보일수록 상대는 의기양양의 극치 를 보여주거든. 마치 제 실력이 뛰어나서 꼬리를 빼는 줄 아니까 또한 굳이 입을 더 놀릴 필요도 없다.
와락!
정우는 하라와 밀착하며 주변 사내들 의 질투심까지 유발시켰다. 나이프로 자 른 고기를 포크로 찍어 하라의 입 안에 넣 어주었다.
“ 맛있지?”
“맛은 있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라는 정우 편이 다
부창부수가 딱 어울린다.
“나중에 또 사줄게.”
“정말?”
“물론이지.”
주위를 집중시키며 등장했던 임철수가 한순간에 아무도 모르는 듣보집으로 전락 하는 순간이었다. 꿔다 보릿자루보다 못한 신세가 되니 화가 치미는 건 당연지사. 본 인이 잘났다고 생각할수록, 무시에 대한 반발력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이 자리에 있는 놈들 대부분이 잠재등급을 인정받 아, 능력자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었 다. 하늘 밖의 하늘을 모른채, 우물 안개 구리들이었다.
“겁이 나는 모양이지, 아니면 속임수를 썼던가.”
걸려들었다.
강태공은 임철수가 아니라 정우다.
주객이 전도되면 곤란하지.
모욕을 하려면 대상의 범위를 좀 더 늘 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빼도 박도 못한다.
정우는 이런 식의 도발에 유연했다. 지 금부터 언변의 마술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도발의 진수를 보여주마
“MT는 학교와 길드, 무문, 연합에서 관리를 해. 속임수를 썼다면 과연 그분들 이 몰랐을까? 혹시 네가 그들보다 뛰어나 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인 정해주마”
모아도 너무 모았다.
비유를 하자면 A컵이 F컵이 될 때까지.
움찔!
기세 좋게 도발했던 임철수는 말문이
닫혔다.
걸고 넘어가려고 하자니 무문 길드, 연 합 학교를 모두 다 건드리는 꼴이 된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정우는 좀 전부터 녹 음을 하고 있었다. 당차게 밀고 나갔다가 길드, 무문, 연합, 학교를 모두 건드리고 쪽박 차는 수가 있다 세상이 변해도 한국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을 무시하지 못한다. 찍히는 순간, 사 회에서 매장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리고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창 젊은 나이에 인생 종치고 싶은 인간은 없 을 것이다. 이는 17세의 임철수도 마찬가 지다.
‘저 새끼가!’
계획을 주도했던 현우와 경환도 이때만 큼은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느 정도 선까지는 자신들이 커버가 가능 하지만, 그 이상을 벗어나면 곤란했다. 이 쯤해서 타협점을 찾아 계획대로 이끌어야 한다
‘어림없는 수작이야.’
현우가 나서기에는 모양새가 빠지니, 경 환이 중재를 하려고 했다.
정우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왜냐고?
주시하면서 시간을 재고 있었으니까.
“대범하게 등장한 것치고는 실망이네 난 또 학과의 명예를 짊어지고 나선 줄 알 았지 뭐야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봐.”
나..우”
말할 타이밍을 놓친 경환은 당황과 분 노를 동시에 느꼈다. 임철수는 학과의 후 배다. 아니라고 한들 제살을 깎아 먹는 꼴 이었다.
‘이 망할놈이!’
임철수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파고들어가 보면 금속조종학 과 전체를 모욕한 꼴이었다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고 넘어가면 길드, 무문, 연합, 학교를 싸잡아 욕한 것이 된다. 호박씨를 까도 들 키지만 않으면 사회는 용인한다. 하지만 대놓고 욕을 하면 체면상 제재를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각 단체의 명예, 자존 심과 직결된다.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녹음은 필수죠, 나중을 위해서라도. 오해가 생기면 서로가 피곤하잖아요.”
정우는 현우와 경환이 주도하지 못하도 록 밑밥을 깔았다. 또한 임철수에겐 어디 이런대로 지껄여 보라는 의도가 담겼다. 말 몇 마디로 여러 마리의 토끼를 궁지에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