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민설현 (4)
“화를 낼때가아닐텐데.”
여왕개미의 처절한 포효와 강력한 사념 파에도 정우는 반응을 하기는커녕, 히죽 거린다. 아예 통하지 않고 있었다. 정우의 정신력은 여왕개미가 넘볼 수 있는 수준하 고는 거리가 멀다. 진화를 했다 해도 여왕 개미는 5급에 불과하다.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것도 개미 생산에 차질을 빚지 말라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래야 조원들을 좀 더 혹독하게 굴리 지.
“하긴 그 몸으론 도망도 불가능하겠구 나.”
여왕개미는 항상 알을 품고 있다. 움직 임이 둔할수밖에 없다.
틍
정우는 알을 하나 더 바닥에 깔고 발로 살짝 튕겼다. 마물과의 의사소통은 불가 능하지만, 보디 랭귀지는 만국공용어였다.
이는 마물에게도 통용이 되었다. 알이 터 질까 봐, 당황하는 여왕개미를 볼 수 있었 다
“참고로 말하지만, 악감정은 없다.”
어디가?
사념파에서 벗어난 설현은 할 말을 잃 었다. 갑자기 등장한 사내로 인해서 완벽 히 소외를 받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위 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서 남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작금의 상 황은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 다. 알을 인질로 삼아 여왕개미를 협박하 고 있었다 마물이라 해도 이 순간만큼 여 왕개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미로서의 포효가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윈드커터.”
정우의 마법이 발동했다.
스왁!
공기가 쪼개졌다.
반으로 갈린 날카로움이 공간을 장악 한다.
그 중심에 여왕개미가 자리했다. 단단 한 껍질로 보호를 받고 있던 여왕개미의 미간부터 서서히 금이 가더니 미끄러져 내 려갔다 저항이라는 의미가 실종되어 버린 허망한 최후였다.
저벅저벅!
정우는 가볍게 해치우고, 여왕개미가 품고 있는 에너지 스톤을 뽑아냈다. 진화 를 해서 그런지, 품고 있는 에너지가 꽤 알 차다.
“그리고 너.”
정우의 부름에 설현은 움찔했다.
‘설마?’
자신은 아이돌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숱한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둘만이 자리한 공간이었다. 더욱이 여왕 개미의 독에 당해 몸이 자유롭지 않았다. 나쁜 마음을품는다 해도 저항할수 없는 상태였다
“이건 내가 가져갈게, 불만 없지?”
“.2”
“여왕개미는 며칠 전부터 내가 찜해 놓 은 거야, 그러니까 억울해하진 마”
“아!”
정우는 조원들의 훈련을 위해 여왕개 미를 살려 놓았다. 그리고 오늘로서 훈련 이 끝난다. 여왕개미는 당연히 자신의 몫 이 되어야 했다. 이번 MT에서 좋은 점수 를 받아야 한다. 마법학과를 폐쇄하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모두에게 실력을 검증해야 할 입장이다.
후우우!
혹시나 불순한 마음을 품지 않을까 걱 정했던 설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 아이돌이에게 불미스러운 스캔들은 치명 타였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스캔들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봐왔다.
저벅저벅!
목적을 달성한 정우는 미련 없이 돌아 섰다.
아
설현의 상념을 깨웠다.
사내의 등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가
까이 다가오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는데, 멀어지니 이건 이거대로 심각했다
“이봐요!”
“왜?”
개미굴의 출구로 향하던 정우는 고개 를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오지 말라며.”
“제가 언제 그랬어요?”
“표정은 그랬던 거 같은데.”
뜨끔한 설현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생각은 했다. 그러 나 생각일 뿐, 드러내진 않았다 남의 생각 을 멋대로 읽어서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 도 부끄러웠다. 위험한 사람인 줄 알고 의 심하고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손을 내미 는 건 몰염치한 행동이었다
“그럴수 있어.”
정우는 일정 부분 인정했다. 여왕개미 에게 생포당한 충격으로 인해, 현실 파악 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명확히 알면 된다.
“여왕개미의 독은 독이 아니니까, 착란 과 마비는 5시간이 지나면 풀릴 거야. 그 리고 오는 동안 사막개미를 처리했으니 걱 정하진 않아도 돼. 그럼.”
정우는 안심하고 제자리에 있어도 된다 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오는 동안 개미 굴을 지키고 있는 사막개미를 모조리 다 도륙했다. 개미굴이기는 해도 통풍 잘되 고, 따뜻한 편이라 5시간은 거뜬히 지낼 만했다. 지내기는 사막보다 개미굴이 훨씬 안락할 것이다 정우는 충분히 납득을 했으리라 보고, 걸었다
“잠깐만요!”
정우의 발목을 또다시 잡아채는 설현이 다. 납득한 얼굴하고도 거리가 멀다. 전혀 납득하지 않은, 분함이 한 가득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걸음을 멈춰 세우니 정우도 귀찮음이 밀려왔다. 혹, 여 왕개미의 에너지 스톤을 탐하는 거라면, 헛꿈 꾸지 말아야 한다.
설현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에너지 스 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또 왜?”
또라니.
설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대 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다분함을 읽었다. 지나친 관심도 답답하지만, 지나친 무관 심도 사람 환장하게 만들었다.
“이대로가만안되죠!”
“5시간이면 해독이 풀린다니까.”
“그래도 그렇지, 여자를 개미굴에 놓고 그냥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성 유니크의 대부분은 자존심이 강 해서 남자의 도움을 원치 않는다고 하던 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시대가 바뀌면서 양성평등을 넘어 여 성의 자주적인 존재의 확인이 중요시되고 있었다. 남자가 하는 일은 여자도 할 수 있 다는 독립심 강한 여성이 대두되었고, 그 중심에 여성 유니크가 있었다.
‘전생에서도 간혹 있었지.’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그럴 바에는 애초에 연결고리를 끊어내 고 내 갈길 가는 게 최선이다. 물론 내 앞 에서 그런 짓을 한 계집은 살아남지 못했 었다.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 년들은 살려 두면, 두고두고 골치 아프기 때문에 삭초 제근은 기본이었다.
“여긴좀 그렇잖아요.”
설현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자신이 지양하는 바를 그대로 읊었다. 그 래도 그렇지, 이건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
“됐고, 원하는걸 말해.”
정우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목적을
물었다.
“저도데리고나가줘요.”
“알았어.”
여자는 낯선 사내의 접촉을 원치 않는 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우는 굳이 손을 대지 않았다.
두둥!
허공으로 낚인 설현은 헛바람을 삼켰 다.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을 들었다. 좀 전 의 망설임이 허무할 정도다. 이런 능력이 있으면 혼자 가지 않았어도 되잖아. 한편 으로 사람을 가볍게 드는 사내의 능력이 궁금했다
“ 저.”
“또 왜?”
이 사람 진짜대하기 어렵다.
설현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낯설음의 연속이었다. 이제까지 누가 되었든 자신에 게 부담스러울 만큼 관심이 많고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자신은 짐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 늘처럼 무생물 취급을 당하기도 처음이었 다 설현은 속상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 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할 말이 없어지자 좀 전부터 거슬렸던 부분을 거론했다
“아까부터 왜 반말이에요?”
“같은 학년이잖아”
“그래도 초면인데.”
“너도말 놓으면 되지.”
은근슬쩍 말 놓으면서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이 사람은 그런 부 류가 아니다. 그냥 말 올리기 귀찮아서, 반 말한것이다.
설현도 오기가 있었다
“나몰라?”
“ 알아”
“그래, 모를?…? 안다고?”
이거 몰라야 되는데, 왜 알고 또 지랄이
야.
“레드아이즈의 민설현이잖아 널 모르 는 사람도 있냐? 그런 놈이 있다면 사기꾼 이지.”
몰라서 막 대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서도 막대한 것이다.
설현은 이 사람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졌 다. 도무지 종을 잡기 어려운 난감한 타입 이었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이리저리 막 그냥! 정신을못차리게 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마법학과 1학년, 하정우다.”
“마법학과라고?”
“놀랐냐?”
“ 당연하잖아”
유니크 전문학교에서 마법학과는 탈꼴 찌를 면하기 어려운 학과다. 반면에 정우 는 5급에 준하는 여왕개미를 일격에 반으 로 쪼개버렸다. 5급을 간단히 죽인다면, 최소한이 6급이었다. 그런 존재가 마법학 과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 당장 케이브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고 다녀도 될 능력자 가
“아까 여왕개미를 쓰러뜨린 수법도 마 법이었어?”
“윈드커터라고 분명히 주문을 영창 했
는데, 귀가 어둡냐?’
듣기는 들었지만 설마 했었다
정우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설현은 속 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걸그룹 계의 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자신을 막대한 건 둘째 치고, 무시를 해서 화를 돋운다. 그렇다고 반박하기도 어렵다. 대꾸하기 궁 색하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 녀석이 아닐 수없었다.
“?…구해줘서 고마워.”
“아니 다행이다.”
말을 해도 꼭.
곱게 좀 받아주면 안 되냐!
사람이 고맙다고 하는데, 그걸 당연하
게 받아들이니 재수가 없다. 어렵게 꺼낸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설현이었다.
‘여자 취급은 아니더라도, 사람 취급은 해줘야지.’
이 인간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말을 걸 때마다 귀찮음이 다분했다. 모르는 사람 이 연이어 말을 걸었을 때와 똑같았다. 상 황만 놓고 보면 귀찮아하는 게 당연한데, 그 대상이 본인이 되니 답답함이 밀려왔 다. 다른 이들과는 완벽히 구분되는 짜증 나는 독특함이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번한 사
람한테, 위로 좀 해주면 안 되냐!”
정우가 늦게 왔으면 설현은 여왕개미에 게 잡혀 먹혔을 것이다. 얄밉기는 해도 고 맙지 않다면 후안무치였다. 목숨을 구해 준 만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 리라 마음먹었다.
“늦기는 아까부터 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여왕개미에게 속성을 발휘할 때부터 있었다고. 그러니 타이밍이 늦을 리 없지.”
이 인간이 정말!
여왕개미한테 당하기 전부터 있었다면, 충분히 구해주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런 데도 싸우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뜻
이 되었다
“독에 당하는 걸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 던 거야?”
“ 당연하지.”
“ 당연하다고?”
어떻게 그게 당연해.
사람을 구하는 건 인지상정이잖아.
“도중에 개입하면 네가 순순히 양보해 줬을까?”
“?…그건!”
설현은 할 말을 잃었다.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곱씹어 봐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 지 않았다. 전투 중에 정우가 개입을 했다 면 방해하지 말라고, 타박했을 자신이 연 상되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빼박이었 다
‘양보 안 했으면 기절시켰겠지.’
여왕개미의 분전에 나름 설득력이 생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