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민설현 ⑴
이극은 혹호문을 조사했다. 한국 무림 이 흑호문 일대를 통제했기에 단독 조사 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곳곳의 흔적을 하나씩 이어 나갔다.
혼적이 남겨진 거리, 파괴된 범위가 넓 어 애를 먹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현장을 이어 붙이는 능력이 탁월하다. 뇌리에서 사라진 흔적을 메우고, 변환하여 원래의 자리를 찾아나갔다.
실마리를 얻어냈다.
이극은 놀라워했다.
왜냐?
곳곳에 남은 흔적들은 많았지만, 하나 의 선으로 이어졌다 그 말은?
흑호문을 홀로 무너뜨렸다는 의미가 되 었다. 변방의 소국에 불과하다 하나, 혹호 문을 과소평가하진 않았다. 문파의 힘은 능히 대륙의 무문과 견주어도 될 정도다.
특히 반도의 마제로 불리는 박영천은 예 사롭지 않은 위인이었다. 세가 내에서도 열 손가락에 드는 무력을 소유했다. 게다 가 여우같은 자라 결코 승산이 없는 일엔 나서지 않는다.
“사방을 통제하고, 단신으로 제압을 한 다?”
이극은 의문이 들었다. 홀로 혹호문을 제압할 동안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범상치 않았다. 개인이거나, 단체이거나 섣부른 대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가능한일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극의 사고는 답을 색출해 내기 위해 맹렬히 회전했다. 그가 품고 있는 지식을 보태, 현장을재현해나갔다.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와서 답은 모호해 졌다.
습격자는 기억을 되짚어 올 것을 가만 해서 흔적을 남겼다. 남은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서 더 이상은 답을 구할 수가 없었 다
“보통놈■이 아니군.”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면 좋
았을 테지만, 소득은 있었다 습격자는 최 소한 7급에 올라선 절대경의 무인일 가능 성이 크다 소국이라고 얕보았는데, 재야에 숨어 있는 고수가 많은 듯하다.
그렇다면 왜?
이극은 습격자의 의도를 유추해 봤다.
정체를 숨기고, 오인하도록 유도했다. 본인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 다. 그렇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흑호문 이 무너지고 가장 큰 이득을 본 문파는 금 강문이다. 하지만 금강문을 조사해 보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무림 내에서 고 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꼴통 문파다. 대국 에서 골치를 섞이는 정파의 무문, 백인문 (白刀門)과 비슷했다.
“도망가는 자들까지 죽였다.”
흑호문이 사라진다고 해서 이득을 챙길 곳은 많지 않았다. 그랬다면 일을 이토록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
이극은 원한관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절대경의 고수를 화나게 할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일정한 범주를 벗어난 고수 의 분노를 샀으며, 이문과는 관계없는. 특 히 몰살의 경우 혈족이 관여된 불구대천 의 원수일 공산이 크다.
“각주님.”
“들어와”
직속수하가 들어와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엔 흑호문과 거래한 내역이 적혀 있 다. 이를 세가의 거래 내역과 대조했다. 맞 지 않는 부분을 찾고, 원인을 하나씩 분석 해 나갔다 귀영각은 이런 종류의 일에 관 해서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을 만큼 완벽했 다 예로부터 모든 일은 사소한 것에서 시 작한다고 했었다. 바닥 아래를 무시하고 건너뛰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법이 다
“거래 일자는 있는데, 비는곳이 있군.”
“그렇습니다.”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해볼까?”
“알겠습니다?”
이극은 세가에 연락을 취했다. 습격자 의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 왔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실마리를 찾았을 때, 이극은 한통의 전 화를 받았다.
‘확실히 골칫거린가보군.’
거래로선 나브지 않았다.
* * *
어둠이 내려앉았다. 검게 물든 하늘에 선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 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선명했다. 공기 가 오염되고,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고 생하는 도시의 하늘에선 좀처럼 보기 힘 든 화창한 밤하늘이다.
화르르르!
불이 피어오르고, 고기가 익어가고 있 었다. 입과 항문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고 기의 신세와는 대조적이다. 양념이 잘 밴 고기에서 육즙이 떨어져 내리고, 소나무 를 태운숯이 향을 입혔다
꿀꺽!
입 안에 침이 고이다못해 비집고 홀러 내렸다. 노릇노릇하게 껍데기가 익어 가는 데, 냄人fl가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다.
5일 동안 배 속에 들어간 것이라곤 가 져온 간단한 전투식량이 전부였다. 그것 도 양 조절을 못해서 남아 있는 식량이 거 의 없었다. 하루하루가 언제 죽을지도 모 르는 살벌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식량을 남겨봐야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끝까지 살아남았다.
“너희들, 내가싫지?”
정우가 묻었다.
잘 읽은 바비큐를 앞에 놓고.
바르르!
주먹이 저도 모르게 쥐어지고 이가 갈 린다. 조원들은 말하고 싶었다. 저 악마 같 은 자식 때문에 자신들은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개미만 죽이고 있었다. 옆집에 사 는 스님이 살생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개 미만 계속 죽였다. 꿈에서도 개미가 나와 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아 침에 일어나면 또 개미를 죽여야 했다.
바사사
고춧가루를 부려 먹으면 더 맛있으려나.
입 안 가득 살을 물으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체인점 에서 공수해 온 육수의 적절한 배합이 고 기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해 주었다. 삼매 진화는 덤, 화덕에서 구운 듯 골고루 배분 했다 주르르르!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난 둑을 보고 있 는 듯하다. 입술이 침을 담지 못해 좔좔! 흘러내렸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침이 모 래를 흥건히 적셨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어 고기를 강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 다
그러나 고기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 닌 정우다. 홀로 수백의 개미를 도륙하고 멀쩡히 돌아온 괴물, 개미도 고통을 느끼 는지 알고 싶다며 눈앞에서 해부실험을 하는 잔인한 놈이었다 소독용 알콜에 중 독된 개구리 신세가 되고 싶으면 덤벼도 된다
“하긴 조장으로서 너무 무책임했지. 다 내 불찰이다 그치?”
계속 묻고 있었다
조원들은 다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되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는 멧돼지는 저놈의 배 속 으로 처 들어간다. 저 많은 양을 혼자 처 먹을 만큼 무식한 대식가였다. 배 터져 죽 으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배는 멀쩡하기만 했다.
우적, 우적!
혼자 잘도 먹는다.
넌 동기들이 보이지도 않냐?
저 자식은 말하고 있었다.
먹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고.
이럴 때일수록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줄어가고 있는 멧돼지 바비큐를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보고 있자니 참기 힘 들었다
하루만 지나면 나갈 수 있으니 참으라 고?
2일이나굶어봐, 그딴 말이 입에서 나오 나. 게다가 이 일대는 알고 봤더니 개미 군 락이었다. 이 자식이 가는 공간마저 개미 가 나타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우가 있 는 장소에선 그나마 편안히 쉴 수 있었다. 낮 시간 동안 전투를 치르면, 밤에는 쉬어 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로 과로사 한 다
“우리는 한시도 너를 조장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너 아니면 이런 고생도 흐I?지 않았을 거야), 안 그래, 애들아?”
“맞아, 맞아! 정우가 있어서 우리가 이 렇게나 강해졌지(죽을 둥 살 둥 살고 싶진 않 았다고).”
속마음은 속마음일 뿐이다.
내색하면 쫄쫄 굶는 수밖에 없다. 마물 과 싸워보면 헝그리 정신도 소용없다는 것 을 깨닫게 된다. 입에서 단내나 나도록 마 법을 펼치고 난 후, 피로감은 둘째 치고 밀 려오는 공복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배고파서 잠도 안 온다. 우리가 닭도 아니 고, 여차하면 모래도 파먹을 것 같다.
“너희가 그렇게까지 내 깊은 뜻을 헤아
리고 있을줄은 몰랐어, 감동이다?” 감동은 너나 하고 조원들의 관심사는 하나뿐이다.
“이제 먹어도 되지?”
“내가 언제 먹지 말라고 그랬냐.”
먹으라고도 안 했잖아
정우를 무시하고 달려들 만큼 이성을 상실하진 않았다. 줄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현실에 조원들은 비참함을 느꼈다. 마치 사육사가 먹이 주기를 기다리고 있 는 돼지가 된 기분이다. 오늘의 수모, 울분 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껍데기부터 먹어봐, 이건 형제 아니면
안주는 거다”
형제는 무슨, 평소에 너는 형제를죽음 으로 내모냐!
상종 못 할 인간이네!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경찰에 신고할 거야!’
‘나 진짜 사람 쓴다!’
정우가 위하는 척을 할수록 조원들은 속으로 치를 떨었다. 잘 대해준 다음 날은 오늘보다 심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사사
조원들은 눈치를 보다가 한입 베어 물 었다. 껍데기의 바삭한 식감이 입 안을 맴 돌다가 정신을 황홀하게 한다. 껍데기에 배인 양념의 적절한 조화가 천하일미(天下 ?味)라불려도손색이 없다.
주르르!
조원들은 눈물이 났다.
“맛있어!”
“최고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엄지척이 저절 로 세워진다. 이게 대체 뭐라고 이다지도 맛있단 말인가? 하늘이 고생하는 자신들 을 위해 내린 보배로운 바비큐였다 우걱우걱!
체면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다. 조원들
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멧돼지 바비큐에 심취했다. 눈빛들이 거의 돌아버리기 직전 이었다. 말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식도락에 빠져 들었다
‘시장이 반찬이지.’
정우의 요리가 제법이기는 하나, 만화 에서 나올만한 극찬을 할 정돈 아니다. 하 지만 죽을둥 살둥 고생하고, 쫄쫄 굶어 봐라. 세상 천지에 맛없는 음식은 존재하 지 않을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없다 고 투덜거리는 인간들에겐 케이브를 추천 한다 식사에 소모되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았다. 꽤 큰 멧돼지였음에도 순식간에 뼈만 덩그러니 남았다.
꺼억!
성장기의 소화력은 대단했다. 먹고 나 서 곧장 트림이 나왔다. 조원들의 표정에 서 세상을 다 얻은 환희가 감돌았다. 정우 에 대한 악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울 분에 대한 맹세와 다짐은 10분을 넘기지 못한것이다 그제야 정우가 시야에 들어왔다
“미안 우리가 다 먹었지!”
“괜찮아,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
먹기 전과 먹고 난 후의 감정이 이렇게
나 다르다니, 이 순간의 정우는 하늘이 내 린 부처님처럼 자애로웠다. 그런데 이상하 기는 했다. 정우는 대체 어디서 멧돼지를 구해 온 것일까? 왜 그걸 이제야 생각을 했지.
“멧돼지가 어디서 난거야?”
“멧돼지가 어디 있는데?”
“.2”
당사자가 부정을 하니, 상황이 어색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