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슈트 좋네 (1)
3급 케이브의 환경 설정은 사막이었다.
발을 내디뎠을 분인데 벌써부터 열기가 덮쳐오고 있었다. 실상 케이브의 변화는 케이브 코어를 관리하는 관리자에 의해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었다. 당장은 사막 일지 몰라도, 곧 한겨울의 북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관리자의 속성과도 무관치 않 다
일단걸었다.
같이 들어온 다른 학과의 조도 있었다. 눈에 띄는 녀석들이 꽤 보인다. 능력도 남 다른 편이다. 본인들의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인지 몰라도, 마법학과를 경시했다.
“마법학과네, 무사하려나.”
“오줌이나 싸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러게.”
육체변환(Body-change)을 다루는 전투 학과의 조원들이 정우와 조원들을 보며 히죽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육체변화는 급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일반적으로 다른 학과보 다 강하다. 변환된 육체, 특히 근력강화계 열에 속할수록 전투력이 강한 축에 속했 다 또한 내공이나 마나에 면역력이 있어서 꽤나 까다롭기까지 했다. 전문학과 내에서 도 상위권에 속하는 만큼 자부심이 있었 다 그들이 정우를 알아봤다. 신입생 중에 서 정우는 유명한 편이다. 소혹호 박기호 를 제압해 유명세를 탔다 그들은 정우의 유명세를 못마땅하게 생
각하는 부류였다. 왜냐? 자신들은 신입생 을 대표하는 10명에 꼽히지 못했다. 10걸 에 속한 소혹호를 제압하면서 정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등급도 높지 않은 놈■이 운이 좋아 신진십걸에 포함이 됐다고 여겼 다. 막말로 3급이 10걸에 들었다는 말은 역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입학 식 날부터 속이 좋지 않은 과민성대장증 후군의 박기호가, 또다시 탈이 났을 수 있 다고 판단했다.
육체변환학과의 3조장 자이언트(Giant) 유인권이 나섰다.
그냥 가면 매우 섭섭한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다. 장소도 딱 좋고. 어쭙잖게 꿰찬 자리 를 뺏어오고 싶은 기색이 완연하다. 정우 를 제압해 쾌조의 스타트를 끊고 싶은 욕 망을 불태웠다.
“야 너 그놈이지‘?”
놈?
초면에.
“말투가싸가지 없네.”
“어쭈 똥싸개를 이겼다고 뵈는 게 없냐. 투박한 주둥이 좀 곱게 갈아줄까?”
“멀쩡히 훈련 끝내고 싶지 않은가 보구
나.”
정우는 유인권의 도발을 도발로 받아 쳤다. 이죽거리는 입모양이 유인권의 속을 긁었고, 함께 있던 동기들까지 불타오르 게 했다.
부르르!
마법학과 조원들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도발의 상대는 육체변환학과의 사 고뭉치들이다. 자신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상대가 되지 않는 데다가 저 앞에 있는 유 인권은 과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자였다.
성깔도 더럽다고 소문이 자자한 인간인 데, 도발을 서슴없이 하니 심장의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차라리 무책임한 조 장이 낫지, 걸어 다니는 폭탄은 사양하고 싶었다. 명색이 조를 대표하는 조장이면서 마물을 보기도 전에 사고부터 치고 있었 다
“이거 아주 웃기는 새끼네, 죽고 싶은 거냐!”
“웃겨? 어디가? 앞에서는 짖지도 못하 는 것들이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 야”
유인권과조원들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 그러졌다. 시비를 걸어도, 적당히 물러설 거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를 더 욱 돋우고 있었다. 조금 유명해졌다고 천 지분간을 못하고 날뛰었다.
투득!
유인권이 주먹을 말아 쥐자 뼈 으그러 지는 괴열한 음향이 들렸다.
정우도 190cm의 거구지만, 그는 2m 가 훌쩍 넘는 거인에 근육으로 무장되었 다. 외견상으로 보?면 이호극의 배다른 자 식으로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인상이 죽 여줬다. 분노가 얼굴로 모여들어 흉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비도 유인권에 비하 면 가녀린 미소년이라 불려야 했다.
“오늘이 네놈의 명년 제삿날이다! 새끼
야!”
유인권은 생긴 대로 놀았다. 성질 참아 가며 대화로 풀지 않았다. 애초에 한번 손 을 봐주려고 했는데, 때마침 잘됐다는 심 정이었다 곧장 거리를 무시하고 유인권이 달려들 었다.
내딛는 발뒤축에 힘이 실리자 모래가 파이며 비산했다 슈아앙!
130kg의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거리를 축약했다.
정우의 정면을 가득 메웠다
‘ 빠르네’
정우의 시선은 유인권이 아닌, 조원들 에게 있었다.
어느새 조원들은 거리를 20m이상 벌 렸다. 겁이 많은 것과 비례해 생존본능도 뛰어났다. 위험에 대처하는 반응속도가 LTE급을 넘어섰다.
“이 새끼가 어디서 한눈을! 죽엇!”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정우의 태도에 인권은 머리뚜껑이 열렸다. 말하는 투는 물론 하는 행동마저도 속을 긁어댔다.
쩌어엉!
나아가는 탄력을 격하게 받아 주먹을
뻗었다
인권이 자랑하는 솥뚜껑 펀치였다. 이 주먹을 맞고 멀쩡한 놈은 거의 없었다. 대 부분이 어미애비도 알아보지 못하는 병신 이 되었다. 이번엔 저 분별없이 나불대는 주둥이를 제대로 겨냥했다. 강냉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고른 치아야말로 오복(五福) 의 하나니까.
파아앙!
힘이 실린 펀치다. 충격이 원을 그리자 모래가 맹렬히 회전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 갔다가 흩어졌다.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며 비산했던 모래가 가라앉았다.
정우와 인권이 드러냈다
“누구 제삿날이라고?”
귓구멍을 가까이 들이대며 다시 한 번 말해보라는 정우다.
부들부들
인권의 떨리는 동공과 벌어진 입이 상 황을 대변해 주었다 내려다본 시선 속엔 불신이 섞여 있었 다. 뻗어낸 주먹은 막혔고, 명치에 팔꿈치 가 꽂혀 있었다. 언제, 어떻게, 왜? 라는 삼 단 의문이 생성되었다. 무엇보다 상대는 마법학과였다.
그런데 웬 팔꿈치? 게다가 방어와 동시
에 역공이 이루어졌다. 이는 어지간한 박 투술을 익히지 않고서는 펼치기 어려운 난이도 높은 반격기다.
속았다.
유인권은 속이 부글부글 끊었다.
“…이 자식!”
“턱이 비잖아:”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의 제공권을 되찾 아왔어야 했다. 정우는 인권의 제공권을 파고들은 데다가, 안에 있었다. 공간 활용 이 좀 더 수월하다.
퍽!
짧게 끊어 쳤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연속으로 허를 찔린 인권, 턱이 들렸다가 제자리를 찾기 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턱 을 제대로 맞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그래도 뇌는 있는 모양이네.”
턱은 뇌와 연결이 되어 있어, 맞으면 균 형이 무너진다 하는 행동을 봐선 무뇌(無 腦)인 줄 알았건만 충격을 받았으니 유뇌 인증(有腦認證)이다. 하지만 뇌가 있음으로 서 충격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퍼어엉!
정우는 주저앉는 인권을 발로 차 버렸
다
푸아앙!
왔던 거리를 리플레이(되감기)이 하듯 되돌아가 모래바닥에 처박히는 인권이었 다. 상체가 반쯤 모래에 파묻혀 버리고 말 았다. 조원들이 급히 인권을 모래에서 빼 내었다.
푸악
모래를 뱉어낸 인권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상태를 회복했다. 그리 고 황당함과 창피함이 밀려와 분노를 부 추겼다. 어처구니없이 당하고 말았다. 모 두가 보는 앞에서 마법학과에게 박투로 처맞은 것이다. 어디 가서 말도 못할 쪽팔 린 경험이었다.
“이새끼가 나를속였겠다!”
“속여? 어디가?”
초면에 싸가지 없는 말투를 지껄이기에 고대로 되받아주었을 뿐.
달려들었던 대상은 유인권이었다. 정우 는 딱히 사기를 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 권에게 사기를 쳐서 얻어낼 것도 없다. 한 줌이라도 있어야 털지, 개털을 먼지 날리 게 누가 턴다고.
“마법학과주제에 치사하게 박투를 사
용했겠다!”
“배웠으면 쓰는 거지, 네 말대로면 수학 과는 영어 쓰면 안 되겠네.”
“헛소리 지껄이지 마. 나를 기만한 대가 를 치러줄 테다!”
“그러니까 마법학과면 마법만 쓰라는 거잖아”
뭐, 이런 병신 같은 발상이 다 있냐
인권의 주장은 생사가 걸린 마물과의 전투에서 가지고 있는 수를 한정해서 싸 우라는 소리다.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저 렇게 생긴 유형들이 단순하고 무식하다. 게다가 고집도 세서 말로 해서는 들어 처 먹지를 않는다
-육체변환, 거대화
인권의 속성은 거인화(巨시匕다.
일반적으로 육체를 키우면 파워가 느는 대신 속도가 느려진다. 반면에 인권은 속 도를 유지한 채 파워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일수도 있었다.
인권은 10m의 거인으로 화했다. 단순 수치계산을 하면 5배는 더 강해졌다고 봐 야한다.
“더 이상은 방심하지 않는다!”
“바시으 드L스’’
그나마 정우가 살살 다루고 있으니까, 여태 주둥이를 자유롭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가만 보면 꼭 실력도 없는 쭉정이 들이 입만 살았다. 솔직히 처음의 한 방으 로 유인권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이라는 족속은 죽어봐야 제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5번 이나 죽었던 정우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한 놈을 죽이면, 나머지는 말을 잘 듣 더라고.’
그것도 최대한 처참하게 찢어죽일수록 공포가 각인되어 감히 덤빌 생각을 못했 다. 전생에 자주 써먹었던 수법 중에 하나 이기도 하다. 효율성 면에서는 끝내준다.
그러나 이제 막 1학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시기다.
‘협객행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지.’
실력 검증을 위해 협객행이랍시고 날뛰 다가 비명횡사를 자주 당한다. 주입식 교 육의 폐단이다. 옳은 행동이라도 자신의 주제에 맞게 설쳐야 하는데, 분수도 모르 고 나대니 칼맞고 뒈지지.
정우는 전투 초년생의 호기를 감안해 주었다.
“어쨌든.”
마법학과로서의 본분은 다하기로 했다.
“마법을 보고싶다면야.”
보여 달라면 보여줘야지.
정우는 컨트롤에 자신 있는 마법을 꺼 내들었吐 파이어마스터(Fire-Master)로 불 리는 리차드 교수의 제자로서 염화계열의 마법을 선보였다
“파이어볼.”
심장에 머물고 있던 마력이 의지를 받 들어 대기와 조합을 이루자, 불덩어리가 형성되었다.
화르르!
4륜의 파이어볼로 크기는 직경 70cm 가량이었다. 나쁘지 않은 화력이다. 뜨거 운 사막의 열기를 조금 더 데워주었다
“하하하하하, 그런 보잘것없는 불덩어
리로 뭘 하겠다는 거냐!”
인권은 여유를 되찾았다. 방심으로 인 해 부지불식간 망신을 당했지만, 받은 층 격도 거인화를 이루면서 해소되었다. 무 엇보다 파이어볼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았 다. 육체변환을 이루면 기본적으로 마나, 내공, 속성에 저항력이 강해진다. 어지간 한 화염으로서는 자신의 몸에 홈집을 내 지 못한다. 저 정도 크기의 불덩어리는 얼 마든지 무시하고 달려들 수 있었다.
“하긴 그렇지.”
성능 괜찮은 파이어볼이긴 한데, 거대 화를 이룬 유인권을 태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성냥개비로 암반을 태우는 격이 다. 역시 규모의 경제를 이기려면 규모로 승부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규모 & 규모.
정우는 정석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