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66화 (66/500)

제 5장 엮이다 (5)

‘역시내 사위야’

이호극은 유유자적 관망하고 있었다. 당연히 벌어졌올 사태였다. 호승심 강한 무인들이 정우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 고 보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우도 당하고 는 못 사는 성격이다 10년을 봐온 정우는 건드리면 언제든 시원하게 폭발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혹호문을 박살낸 것만 봐도 견적은 딱나온다.

‘불쏘시개야 얕보면 큰코다친다.’

혹호문의 마제(魔帝) 못지않게 염왕과불 패금강도 사이가 좋다고 보긴 어렵다. 젊 은 시절엔 붙어서 치고받고 싸운 적도 있 었다. 승률로 따지면 이호극이 조금 더 높 기는 했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어디 얼마나늘었나보실까.’

염왕과 흑금단주의 대치를 훙미롭게 관 전하는 이호극의 태도에 함께 서 있던 문 주들은 골이 지끈거렸다. 상황을 말려도 부족한 판국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나이 가 들어서도 여전히 대책 없는 인간이 아 닐수 없었다.

‘도대체 뭘 믿고?’

‘참으로 상종 못 할 위인이구나:

자신들이 나서서 말리기도 어렵게 됐다. 화천문주의 분노는 당연했다. 문파의 무 인과 아들이 볼썽사납게 당했는데, 두고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끝난 상 황에서 무인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있었 다. 연유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행동이었 다

“이보게 자네.”

“왜 그러십니까?”

보다 못한 천무문주가 나섰다. 이대로 사태를 관전하다가는 대형 사고가 터질 것이다. 무인 간의 겨룸으로 사람이 죽어 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무문연합은 결성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압으로 인해 시 끄러운 이때에 문파 간 다툼을 한다면 무 문연합은 와해되어 버릴 것이다. 하북팽 가에서 보내온 공식적인 항의에도 문파 간의 다툼이 거론된 이 마당에.

“자초지종은 둘째 치고 이대로 있다가 는 자네 문파의 신성이 죽을지도 모르네.”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겁니다. 그

러다 뒈지면 하는 수 없고요.”

상스러운 말투는 그렇다 치자, 이게 일 문을 책임지는 문파의 수장이 할 소린가!

천무문주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말년 에 무문연합의 수장을 맡아 제대로 좀 해 보려고 하는데 이 인간이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제대로 초를 치고 있었다. 주변에 서 듣고 있던 문주들도 의도치 않게 휘청 거리고 말았다.

“예로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 라고 했습니다. 그게 뭐더라, 갑자기 생각 하려고 하니 떠오르지가 않네요 ?…. 먼저 말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으니까?… 아!

알았다. 결자해지, 참좋은 말아닙니까.”

간만에 한자 좀 썼더니 기분이 참 좋아 진 이호극이다. 알고 있는 단어가 많지 않 아 상황상 어울리는 한자가 좀처럼 떠오 르지 않았는데, 시기적절했다. 본인이 무 식하지 않다는 증거를 자랑할 수 있어 행 복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이 인간이 정말!’

‘우리가 화병 나 죽기를 바라는 거 아 냐?!’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닌 줄은 알고 있 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주변의 돌아가 는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어떻 게 이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하무인 이 심해지고 있었다.

‘빼…… 버리던가해야지!’

이번 사태가 혹호문이 아니라, 차라리 금강문이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그렇더라도 사건의 당사자인 금강문주 가 나서지 않는 이상 사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자신들이 나서게 되면 화천문과 마 찰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괜히 옆에 있다 가 불똥만 세게 처맞는 짓이었다

“백 문주!”

“아, 이 양반들이 미쳤소!”

평소 화천문주와 티격태격하는 검선문 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서서 고양이 목 에 방울이라도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지만, 검선문주가 대가리에 총을 맞 지 않고서야 나설 이유가 없다.

두둥!

화천문주와 마주선 정우는 조여 오는 압박감 속에서도 태연하기만 했다. 응당 정당한 대가를 치렀기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조차 없었다. 그 태연함이 주변을 더욱더 험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굽히지 않았다.

“연유라면, 살의와 암습입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염왕의 일갈에 공간이 출렁거리며, 팽 창했다. 사방을 뒤흔드는 일갈은 홉사 사 자후에 비견되었다. 어지간한 간담이 아니 고서는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 것이다. 그 도 그럴 것이 녀석의 발언은 정도를 걷는 화천문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었다.

“모두가 지켜본 대결입니다. 제가 굳이 거짓을 입에 담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분노한 염왕 앞에서도 정우의 세 치 혀 는 날카롭기만 했다.

염화를 베는 예리한 화술이었다.

멈칫!

불같은 노성을 토해내던 권영일의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이성을 잃을 만한 상황이라 해도, 그는 문파의 수장이 다. 자조지종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나 설수는 없다

“혹금단주의 말이 사실이더냐?”

권영일이 묻자 모두가 망설이는 가운데 한무인이 나섰다.

신룡문의 선검대주, 지검(知劍) 강선일이 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강단이 있는 자 였다.

나서기 전 그는 문주와 전음을 주고받

았다.

“본대로만 말해라”

“예.”

강선일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염왕은 인 상을 찌푸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정당한 대결에서 암즙을 가했다는 점은 문제가 되었다. 감 정적으로만 해결해선 안 되었다. 아들의 성급한 행동에 실망감이 앞섰다. 게다가 대결에서 살기를 발출했다면 그것 또한 문 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또 나서게 되면 화천문의 명성에 제 스스 로 먹칠하는 격이 된다.

부르르!

이성적인 판단은 내렸다. 그러나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비록 염화대주 와 아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하나, 놈의 행동도 과했다. 쓰러져 있는 무인의 팔다 리를 부러뜨리는 짓은 마도(魔道)였다 그럼에도 염왕은 사과를 했다.

“염화대주와 아들의 분별없는 행동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시니 다행이네요.”

기껏 화를 누그러뜨리며 사과를 하는 염왕이었다. 그런 염왕의 사과를 저런 식 으로 받아들이다니, 다들 혹금단주가 죽 지 못해 안달이 난 놈으로 보였다.

‘금강문은 진정 상종 못 할 문파구나!’

‘어찌 저리 하나같이 다 똑같단 말인 가!’

모두의 생각과 달리 정우는 당당했다. 염왕의 행동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에 성질부터 내고, 위압을 가했다 더욱이 사 과를 받는 입장에서 굽히고 들어갈 이유 가 없지 않은가. 저들의 원성은 피해자 보 고 엎드려서 절까지 받으라는 소리나 다름 이 없었다

“하나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무인이라고 하면, 세상의 법과 는 다른 무인의 법을 따른다. 이것이 무인 을 대변하는 원론이다. 이를 부정한다면 스스로가 무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

“화를 돋우는구나.”

“또 출수하시게요?”

염왕은폭발하는분노를 느꼈다. 어린 놈을 상대로 이토록 화가 나기도 처음이 다. 한편으로 자신 앞에서도 기세를 꺾지 않고 답하는 놈의 맹랑한 강단에 감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이호극을 능가하는 놈이 아닐 수 없다. 시세에 타협 해 패기 없는 요즘의 무인과는 달랐다. 더 욱이 이미 일수를 출수한상태였다. 전력 이 아니더라고 후기지수에게 또 다시 위해 를 가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 한 번으로 끝을 냈다면 모를까

“오늘만 날은 아니니, 다음을 기대하 지.”

“무인의 복수는 100년도 이르지요.”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가급적 빠른 시일이었으면 좋겠습니

다”

앙금은 남아 있겠지만 일단락이 되어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금단주의 전투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고는 하나, 염왕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염왕이 혹금단주와 대결을 벌인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자 칫 흑금단주가 죽는다면, 금강문주가 나 설 테고, 그리되면 문파 간의 대결이 될 수 있었다.

“좋은 구경 못했네.”

다들 안도하는 가운데, 혼자만 아쉬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호극이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금강문주의 만행에 문주들은 골이 지 끈거렸다. 맘 같아서는 금강문을 무문연 합에서 빼 버리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걸 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개 단주의 무력이 10룡을 넘어서다 니.’

‘저런 자를 숨겨놓고 있었다는 건가.’

천무문주와 신룡문주는 혹시 금강문 주가 일부러 이 사태를 만들지 않았을까, 의심을 했다. 무력의 인증만큼 문파를 홍 보하는 방법은 없다. 일종의 무력시위였 다. 하지만 대결을 끝까지 못 봐서 아쉬워 하는 걸로 봐서는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 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염왕을 이길 거라고 보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저 인간이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 거란 기대를 하는 것부터 엄청난 패착 이었다. 몸뚱이만 무식하게 강할뿐, 머리 는 장식이었다.

정우가 운전을 하고 옆에 이호극이 앉 았다. 워낙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다 보니, 일반 차는 타기 힘들어서 주문제작을 해 야했다.

“아쉽게 됐다.”

“제가 꼭 싸워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 쯤에서 멈추는 게 여러모로 낫죠.”

“불쏘시개도 젊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들면 변하기 마련이지요.”

“사람은 변하는 순간 죽는 거야.”

그 나이 먹고서도, 젊은 시절의 성질 그 대로면 병원 가 봐야 했다. 이호극은 본인 이 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이 변했다 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 하나는 끝내주었다. 한편으로 그런 문주와 사는 성 여사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한 놈이라도 죽였으면 불쏘시개도 주

변 눈치 안봤을 텐데 말이야.”

“누구 좋으라고요.”

“알고 있었구나.”

“문주님은 연기파가 아니니까요.”

정우는 문주의 속셈을 탓하지 않았다. 어차피 문주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꿍꿍 이하고는 거리가 멀다. 김 총관이 문주의 배후에 있었다. 그러나 김 총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도 혹호문을 괴멸시키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호극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으 니까. 따져보면 주고받은 것이다.

‘명성이 필요하기도하고.’

앞일은 정우라 해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북팽가의 정보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 면 파고들어 올 가능성도 있었다

“결정은 났나요?”

“맘에들지 않아”

“넘겨주기로 했군요.”

“빌어먹을 떼놈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눌러주어야 했는데.”

국수주의의 최고봉 일명 국봉 주사를 제대로 맞은 이호극이었다 대한민국이 세 계제일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 었다.

“떼놈이 아니라 되놈■이 맞는 표현이에

요.”

“떼놈이나, 되놈■이나, 짱깨들이잖아.”

정우는 문주의 사고관에 대해 터치하지 않았다. 지나친 국수주의도, 사대주의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한 민국의 국민이라면 국수주의를 가지고 있 는 것도 나브지 않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헬조선이라는 말도 나오 지 않을 테니.

정우라면 나라를 원망하기보다는 원하 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힘을쓸 것이다.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다 엎어버리면 되 잖아요.”

“그럴까?”

“어른이라면 뒷감당도 알아서 하시고

요.”

“에잉! 매정한 녀석!”

정우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무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실익을 따 지는 것은 좋지만, 본질을 외면하고 있었 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무문연합을 결 성한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상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문주의 발 언을지지한다.

‘손이 근질거려 죽겠다.’

참아야 하는데.

금강불괴라 바늘이 들어가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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