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엮이다 (4)
그때였다.
흐]아아'!
정우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주먹을 내
질렀다. 방법이 없어 자포자기식의 주먹질
처럼 비쳐졌다
빠아아악!
그럼 헛손질을 해야 마땅하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누군가가 허공을 맥없이 날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에겐 날개가 없다. 만유인력으 로 인해 낙하하는 사과가 되어 버렸다.
철퍼덕!
바닥에 엎어진 주호명의 동공은 혼돈 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 았다. 약 5초의 시간이 흐르고 난후 혼탁 해졌던 동공이 원래의 자리를 찾았다.
응?
주호명은 사태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
다
‘내가 왜?’
분명히 공격을 성공시키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켰다. 그런데 재차 공격을 하려는 찰나 의식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 다 퉤
뱉어낸 침에 선혈과 부서져 나간 이 조 각이 섞였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 나 팔짱을 끼고 여유만만하게 서 있는 놈 을 보자 고통보다 분노가 앞섰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조롱하 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여 버리겠다!”
속임수를 썼다 여긴 주호명은 속성을 극대화했다. 이번에는 10명이 아닌 20명 이었다. 지금처럼 속성을 전부 개방한 적 은 문주를 제외하고 처음이다. 설령 속임 수를 또 다시 쓴다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 다
“잘생긴 것도 아닌데, 많이도 늘어났 네.”
똑같이 생긴 놈들이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형을 아주 잘 짜놓았다. 맞물리듯이 하나의 생각으로 움직이니 일원화되었다. 소림의 십팔동인 (十八銅人)처럼 홀로 진을 구축한 것이다.
주호명이 구사한 최강의 무공, 멸혼진
(滅魂陣)이었다.
혼연일체가 된 멸혼진의 기세는 엄청났 다. 주변이 흔들리며 거친 파동을 일으켰 다 주호명은 포위하듯 돌진했다.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정우의 사방을 가 로막았다.
고립되었음에도 정우는 태연자약했다
“지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어서 내지른 주먹은 해일처럼 밀려오
는 멸혼진을 두드렸다. 정우의 권격은 아 까와 다르지 않은 일로금강이었다 그러나 주호명에게는 재앙을 선사했다.
푸아아앙!
주호명의 신형이 파리채에 얻어맞은 개 구리처럼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사지가 경 직된 채 낙법조차 잊고 바닥에 떨어지는 시간이 한없이 느려보였다.
의식이 사라져 가는 와중 주호명은 깨 달았다. 왜 자신이 처맞았는지를. 하지만 알면 알수록 말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정우의 주먹은 일격이었다. 그러나 무지
하게 거대했다. 공간을 장악하고도 남은 무형권이었던 것이다. 분신을 만들던, 환 영을 만들던 상관하지 않을 만큼 거대해, 주호명은 어디를 가든 처맞을 수밖에 없 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1방이지.”
금강문의 무식함을 대변해 주는 일격.
관전하던 무인들은 의아한 기색이 완연 했다. 무형권의 진의를 읽어내지 못한 것 이다. 그럴 만한 눈깔을 장착하지 못한 자 들이다. 그러니 주호명이 제 스스로 튕겨 져 나간듯이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대가는 받아야지.”
시험을 하려고 했다면 끝까지 살기를 감추어야 했다. 제 주제를 모르고 이빨을 드러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은 당연하 다 살의에는 살의.
정우는 주호명의 앞으로 다가갔다
혈을눌러 깨웠다.
크윽!
주호명은 아찔한 통증과 더불어 무방비 가 되어 버린 육체를 체감했다. 무심히 내 려다보고 있는 놈의 눈을 보았다. 웃고 있 지만 그 안에 담긴 진의는 분명했다.
“무슨짓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진 마”
넓은 아량을 발휘해 팔다리를 으스러 뜨리고, 단전에 충격을 가하는 정도로 끝 내겠다고 설명해 주었다. 단전을 보존해주 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부들부들!
주호명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다. 아무 렇지 않기는, 어디가 아무렇지 않다는 말 인가. 단전에 충격을 받으면 최소한 1년을 요양해야 원래대로 돌아온다. 한편으로 설마 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대담 한 짓을 벌일 수 있다고 보진 않았다.
하나,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다.
우드득!
주저하지 않고 다리를 밟았다. 뼈가 으 스러지는 통렬한 파열음이 관전 중인 무인 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마치 자신들이 당 하고 있는 듯 생생함을 전달받았다.
“저……런 짓을!”
“잔인한!”
“너무하지 않은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지탄했다. 대결의 성패는 정해졌다. 이만 끝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복을 가하고 있었다. 이는 무 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행위였다. 법에서 도 이에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주변의 아우성에 정우는 피식거렸다.
‘당신들은 경찰에 신고를 못 해.’ 설령 자신들이 죽어간다고 해도.
웬 줄알아
자신들이 특권층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 문이야. 무인으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데다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 즉시 무 능을 용인하는 꼴이 된다. 길드와 연합에 서 이를두고 말이 더 많아질 테고.
정우는 그런 무인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부드득!
왼발을 마저 으스러뜨렸다 주변에서 짖
든 말든, 하던 일을 마저 진행했다. 약속을 했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웠다. 이래야 원성을 받고, 쥐새끼처럼 뒤에 숨어 있는 놈을 끌어내 지.
참고로 정우는 돌아서 있어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다.
“멈추지 못햇!”
일갈과 동시에 정우의 등 뒤를 노렸다
화천문의 대공자 화룡일수(火龍?手) 권 우현이다. 염화대주는 자신의 지시를 받 았다. 놈의 만행은 화천문을 무시하는 짓 이다. 다행이 놈이 지탄받을 짓을 태연히 벌이고 있어, 등 뒤를 노린다 한들 구애받 을 필요는 없었다 실상 놈의 능력을 정확 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정면 대결 은 위험하단 판단을 내렸다.
쌔애앵!
염화일기공의 공부가 상승의 경지에 올 랐는지, 위력이 상당했다. 망설이지 않고 등 뒤를 점해 일장을 내질렀다. 화천문의 일기일장(一氣一掌)으로 대표하는 염천장 (炎天掌)에 염화의 속성을 가미했다.
푸아아앙!
거친 굉음과 더불어 사방을 불태우는 격렬한 화염이 뒤덮었다. 화염풍이 사방을 휘저어 놓았다. 겹겹의 원을 그리며 퍼지 는 불의 파편은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까 지도 강렬할 화염을 동반했다.
부르르르!
일장을 뻗은 권우현.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믿지 못할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화염에 휩싸여 한줌의 재가 되어야 할상대가 버젓이 서 있었다
“암즙을 했겠다.”
권우현은 넋을 놓고 있어선 안 되었다 빠아악!
권우현의 육신이 허공을 맹렬히 회전하
다 벽에 처박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10룡 의 일인인 화룡신수의 의식을 끊어 놓았 다
“이놈부터 끝내고, 너도 똑같이 해주 마?”
모두를 허탈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았 다. 염화대주를 쓰러뜨리고, 화룡일수를 일격으로 끝내 버렸다.
“화천문의 대공자를!”
“저게 말이 돼?!”
“대체 정체가 뭐야?”
금강문 소속 혹금단의 단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일개 단주의 무력치고는 지 나치게 강했다. 성정 또한 왕년의 금강문 주를 보고 있는 듯해 나서기도 꺼림하게 만들었다. 자신들도 화룡일수나 염화대주 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아니 그리되 고도 남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꼴통, 금강 문주의 또 다른 재림이었다.
정우가 심어준 강렬함에 말만 많을 뿐, 정작 나서는 자는 없었다. 그들로서는 타 문파의 싸움에 나서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기면 또 모를까, 나서다가 지면 스스로 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짓이 된다
‘자존심 따위가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
지.’
정우는 실리를 추구한다. 자존심을 챙 겨야 할 땐 챙기겠지만, 목적을 위해서라 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관전자의 웅성거림만 팽배할 때였다.
분노에 찬 기세가 터져 나왔다.
우우웅!
염화대주와 화룡일수의 화염과는 비교 되지 않는 극강의 염화. 불의 정수를 담은 극한에 도달한 화염이었다.
불의 색에 따라서 강렬함이 다르다. 청 화(靑火)를 피웠던 화룡일수의 화염을 넘 어서 불의 극, 백화(白火)였다.
후아아아앙!
화염이 용솟음치며 솟구쳐 올랐다가 퍼 져나갔다.
무인들은 화염풍을 이기지 못해 밀려나 가고 말았다. 격이 달랐다. 화염이 육신을 태우다못해 일그러뜨렸다. 목표물이 아니 었기에 다행이었다. 휘말렸다가는 한줌의 먼지가 되어 홑날렸을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수증기를 발생 시켰다.
정우와습격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둥!
당당한 체구에 타오르듯 솟구치는 적 발 염화를 머금은 안광이 공간을 지배했 다. 일대를 모조리 다 불태워버릴 기세를 품고 있었다. 염화의 극의 이룬 가공할 존 재감이 시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급이 되 지 않은 자들은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심 약한 자는 의식마저 혼몽해지고 있었다 화천문의 문주 염왕(炎王) 권영일.
그가 나타난 것이다.
꿀꺽!
무문을 대표하는 10명의 최강자들, 그 안에 손꼽히는 3왕의 일인 염왕 권영일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입 안을 메우 는 침이 어느새 바짝 말라 혓바닥이 가뭄 의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더냐, 제대로 설명 하지 못하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염왕의 엄포가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 다. 간담이 서늘해 졌다. 무인 중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한 채 지켜봐야 했다.
‘도대체가?’
권영일의 내심은 당황하고 있었다. 회합 이 이루어지고 있는 와증,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이는 각 문파의 문주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크게 신 경을 쓰진 않았다. 무인 간에 실력의 겨룸 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그런데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와중 염천탈혼공의 극의가 발산되었다. 일이 심 상치 않게 홀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 다 급히 회의장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고 목도한 광경은 예상을 가뿐히 넘어버렸다. 염화대주가 쓰러졌고, 아들까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문파의 촉망받는 기재이 자, 자신의 뒤를 이를 아들이 당한 것이다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인과다 게다 가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아들과 염화대주 의 사지를 부러뜨리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이놈은?’
혹금단주의 만행을 멈추기 위해서 발 출한 수법은 단순한 권격에 불과하나, 6성 의 내력이 실려 있었다. 한데도 놈은 자신 의 권격을 받아내고, 염화를 와해했다.
‘금강문에 이런 놈이 있었던가?’
금강문의 일개 단주치고는 지나치게 강 력한 무력이었다. 심기가 복잡해졌다. 세 력 확장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더니, 금강 문주는 엄청난 놈을 키워낸 것이다. 지금 도 이런데, 시일이 지나면 감당하기 어려 운 대적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