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63화 (63/500)

제 5장 엮이다 ⑵

7대 무문의 회합에선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하북팽가를 흉수로 지목하기에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연합이나 길드에 서도 원하지 않았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 중국 정부에서 압박을 가해왔다.

-한국 무문 간의 다툼으로 인해 하북 팽가의 직계가 죽고, 무인이 실종되었다. 이에 대한 모든 수사권을 양도하길 바란 다 무척이나 무례하고, 오만한 요구였다. 수사권은 그 나라의 고유한 권한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대 국을 무시하는 처사다. 독립국가로 인정하 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 하물며 수사권 까지 달라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그럼 당당하게 X까 라고 해야 하나.

정부나 유니크 연합에서는 중국 정부 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경 제 전반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 다. 국제적인 마찰이 빗어지면 정부로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 유니크 연 합 길드에서는 무문에서 중국 정부의 요 구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시간 끌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천무문주의 요청으로 급히 회합을 가 졌다.

“하북팽가에서 중국 정부에 압력을 행 사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리 나올 줄은 몰랐소이 다:’

하북팽가는 혹호문과 불법적인 계약을

맺었다. 쉬쉬해도 부족한 판국에 선수를 쳐 압박을 가해왔다. 적반하장임에도 불 구하고 7대 무문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격이 되었다. 문장의 서두에 한국 무문 간 의 다툼을 거론한 것도 의도가 있음을 시 사했다.

“우리가 사태를 지나치게 방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서둘러서 명명백백하게 밝혀 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하북팽가의 농간 에 놀아나고 말 것입니다:’

화천문주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이다. 혹호문 사태를 밝 히고, 하북팽가를 은연중에 압박했어야 했다. 시일을 끄는 바람에 하북팽가에 기 회를 제공해 준 꼴이 되었다. 무엇보다 불 법적인 계약이라도 방법에 대해서는 흑호 문의 자의적인 선택이라, 하북팽가에서 부정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서화된 증거 에도 하북팽가에 공격적으로 항의를 하지 못한까닭이다.

“흉수를 찾았어야 하건만.”

“이리되면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벌인 꼴이 됩니다?”

하북팽가가 관여했다는 증거자료를 서 둘러 공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흉수를 찾지 못하더라도, 하북팽가의 개입을 미연 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지 레 겁을 먹고 머뭇거린 분위기가 되어 버 렸다. 실리는 실리대로 찾지 못하고, 모양 새도 갖추지 못한 격이다

“하북팽가에서 흉수를 찾으면 그것도 문제가 됩니다.”

하북팽가에 수사권을 넘겨주라고 정 부 연합 길드에서 압박을 가해왔다. 무문 의 일로 규정해서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신룡문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팽가의 가주는 냉철하고 무서운 자입

니다. 혈육의 정에 연연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빌미로 국내 진출을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북팽가는 현재 오대세가의 세력 싸 움에서 남궁세가에 밀리는 형세입니다. 혹 호문과의 연합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 한 대안 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신룡문주 진호성은 무공보다 지략이 뛰 어난 자로 정평이 나 있다. 무문연합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았다.

“흉수를 찾을수 있겠소?”

“현재로선 단서가 부족합니다. 흉수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지 않고서는 수사의 방향을 잡기도 난항입니다. 설령 길드를 지목한다 해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우호적 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와중, 이 호극은 입이 근질근질했다. 흉수가 회의 장 지척에 있는데도 다들 뻘짓을 하고 있 었다.

‘내 사위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들 자빠 지셨네.’

그 손바닥 안에 본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호극은 무시했다. 있든 없든, 그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 식구끼리 서로 이 용을 좀 해도 된다고 보는 주의다.

‘그나저나, 지나치게 얌전하단 말이야.’

무문연합에서 회의가 있을 때마다 김 총관과 짜고, 정우를 데리고 온 호극이었 다. 이쯤 됐으면 정우도 무림에서 별호가 생길 때가 되었다. 소싯적 불패금강으로 불릴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재 고, 따지며 실리를 찾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슬슬건드릴때가됐는데.’

김 총관이 말하길, 본문의 구역이 넓어 지는 걸 다른 문파가 관망하진 않을 거라 고 했다. 혹호문이 사라지면서 인천 지역 외에 그 주변 지역까지도 명목상 관할 구 역이 되었다. 구역의 확장은 문파의 힘을 상징한다. 7대 무문에서도 독불장군으로 낙인이 찍힌 금강문의 세력 확장을 달갑 게 보지 않을 것이다.

‘잘들 시험해 보라고.’

정우가 흑호문을 혼자서 무너뜨린 이 상 무력은 검증이 되고도 남는다. 또한 이 번 사건의 원흉이 정우였다. 원래 자기 일 은 자기가 알아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 법 이다. 그것이 무림의 법이다.

‘하하하하하!’

기분이 좋아진 이호극이었다.

금강문주의 좌우에 앉은 검선문주와 도해문주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저 인간하고 얽혀서 잘 되는 꼴을 못 봤기에 더욱 그렇다. 단순 무식하기는 해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위인이 금강문주였다. 이 인간의 직선적인 행동이 큰 화를 불러 오기는 해도, 현재까지 금강문이 건재한 것만봐도 알수 있었다.

‘뭔가있는게 분명한데.’

‘더럽게 찜찜하네.’

정우는 문주를 보필한 후 대기 중이었

다.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심각한 분 위기지만, 연연하진 않았다. 한국이든, 중 국이든 무림은 약육강식, 강자지존이다. 힘이 약한 것이 죄악이었다.

‘어디까지 파고들수 있을까?’

한국 무문이 흉수를 찾지 못하는 근본 적인 원인은 흑호문과 하북팽가의 거래 내 역을 상세히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 라서 관점이 달라진다. 분산된 단서 속에 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주가 말하지 않는 이상 어려울 테

고.’

문주가 비록 단순 무식하기는 해도, 의 리 빼면 시체다 간혹 분별없이 말을 내뱉 기도 하지만 아예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 니다. 일문을 다스리는 위치임을 망각하진 않을것이다.

‘팽가는 최대한 계약 내용을 감추려고 하겠지.’

하북팽가는 국내 진출을 원하고 있었 다. 혹호문은 그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한 국 무림을 먹어 치운 후 오대세가와의 경 쟁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이 분명하다. 한 국 무림을 중국 무림의 세력 싸움에 칼받 이로 쓰려는 것이다. 나브지 않은 차도살 인지계다. 팽가의 입장에서 한국 무림은 한 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사냥개에 불과 했다. 이를 빌미로 반한(反韓) 감정까지 이 끌어내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 다

‘잘 엮으려 들텐데, 어쩐다?’

정우는 하북팽가의 입장이 되어서 고 민을 해 보고 있었다. 그들의 전략은 적절 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이용해서 압 박을 가해오고, 수사권을 빼앗아 제 입맛 에 맞도록 정보를 조작할 것이다. 사실 흉 수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지목 해서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그것만 해도 팽가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책임을 한국 무림으로 돌리고, 정당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게 줄 때 잘 받아먹었어야지.’

정우는 일부러 하북팽가의 흔적을 남 겨 두었다. 시간만 적절히 활용했다면 하 북팽가의 진출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 다. 제 잇속을 챙기느라고 역공의 발판을 제공해준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파고들어야 할 거야.’

정우는 앞으로를 예상을 하고 있었다.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넘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 줄 작정이다: 누군가 뒤를 캐면, 찜찜하고 기분이 더 러워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흥분되네.’

적당한 긴장감은 삶을 살아가는 활력 소를 제공해 준다. 한편으로 이게 본성일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굳이 혹호문을 절단 내 버릴 필요까지는 없었을 지도. 수뇌부만 찾아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렸으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혹시, 내가사고유발잔가?’

에이, 그럴 리가.

내 동생을 건드렸잖아

친족이 납치당할 뻔했는데, 제정신을 유지할사람이 어디 있어.

난 지극히 정상적이야

실제로 혹호문은 마땅히 죽을죄를 졌 다. 무인의 세상에서 건드렸으면 그 대가 를 달게 받는 것이 당연했다. 혹호문은 일 처리를 그리해왔고. 막말로 적당히 손봐 주는 선에서 끝을 낸다고 혹호문이 수긍 하고 물러설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웠다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무인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하다. 아마 끝까지 뒤통 수를 노리겠지. 그럼 결과는 마찬가지다.

흑호문 따위가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이봐”

정우를 부르는 자가 있었다.

검은색의 스마트 정장을 차려입고, 선 글라스를 낀 사내였다. 단련된 무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슈트빨이 잘 받았다. 하지 만 풍기는 분위기가 거만해 보인다. 상대 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 불렀냐?”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군.”

정우는 현재 혹금단의 단주, 전호경으 로 신분세탁을 한 상태다. 그럼에도 나이 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상대는 적게 잡 아도 서른살이 넘었다.

그는 화천문 소속 염화대의 대주 주호 명이다. 유니크 등급 6급으로 알려져 있지 만, 기세는 상당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실 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금강문은 예절교육을 받지 않는 모양 이지.”

“무인에게 예절은 주먹에서 나오는 법이 지.”

금강문과 타 문파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항상 시비를 몰고 다닌다고 봐야 했다. 문주부터 타협하지 않은 강골 이니, 아랫사람으로서 배운 바는 확실하 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문주는 타문파의 무인에게 빌빌거리는 꼴을 두고 보지 않는 다. 강단 없는 놈은 돌아가서 1년 내내 갈 굼받는다.

“이제 갓 대주가 된 놈이 까부는군.”

“상대를 몰라보는 눈은 달고 다닐 필요 가없지.”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돌아가는 정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신생 대주와 기 성 대주의 대치구도를.

주호명은 신경을 긁으려다가 되레 당하 자, 안면의 근육들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금강문이 꼴통이라고 불리지만, 이런 식 으로 막나올 줄은몰랐다. 자신을 안다면 더더욱. 전호경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 은 무력대의 단주에 불과했다. 이름도 알 려지지 않은 애송이가 무문 서열에 거론 되는 자신을 막대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기가 차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금강문 주야 워낙 하는 짓이 꼴통으로 분류되고 있다지만 아랫것들까지 사리분별을 못 했 다

“내가누군지 모르는것이냐?”

“주인의 말을잘 따르는 심복이겠지.” 주호명의 선글라스로 가려진 눈빛이 날 카로운 안광을 토해냈다. 놈이 만만치 않 음을 직시해야 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무 문연합 회의에 번번이 금강문주를 보좌하 기에 내력을 조사했다. 하나, 흑금단의 단 주라는 걸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속성과 무 공의 수준도 밝혀지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기에 의문이 쌓일 수밖에. 가뜩이나 금강문은 외공을 전문 으로 하기에 직접 부딪치지 않고서는 내력 을 알기가 어려운 상대다. 해서 대공자의 명을 받고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신을 말 잘 듣는 강아지 취급을 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나이를 봐도 이제 막 무인의 세계에 발을 들인 초 짜에 불과했다. 지닌 능력이 뛰어나도 경 험이 쌓이지 않은 무인은 살아남기 어려 운세상이었다.

“예의를 모른다면 가르쳐 주는 수밖 에.”

“말 참 많네. 내 내력을 알고 싶다면 그 냥 덤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누가 건방떠는 건진 곧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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