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62화 (62/500)

제 5장 엮이다 (1)

덜덜덜!

움직일 때마다 몸이 떨리고 있었고, 핏 발이 선 육신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도 그 럴 것이 팔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은 물론 호흡하기도 힘이 들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고 나서야 겨우 일어섰다 앉았다가 가능했다. 기본적인 스쿼드 동작임에도 막대한 심력이 소모된다. 100kg의 역기를 등에 메고 1분에 100개 이상의 스쿼드가 가능한 육체였건만, 오늘은 상한선을 한 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학대였다.

“ 힘드냐?”

“나?…놀리는거야?!”

염장 제대로 지르고 있었다.

하는 말도 가관이다

“오빤 진지하다.”

“진……지는 개뿔!”

수연에게 오빠의 방은 운동장보다 넓었

다. 한 발자국을 들어서 옮길 때마다 소모 되는 체력과공력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숨구멍도 좁혀져 있어 소모되는 속도가 빨랐다.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방바닥 에 볼품없이 쓰러져 버린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 악마?!”

“오빠에게 악마라니, 서운하구나.”

“예?…고는 했어야지.”

“전에 한걸로아는데.”

수연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오빠의 수련방식은 효 율성의 극대화를 이루었다. 받을 때는 죽 을 것 같이 힘들어도, 적응되면 몰라보게 발전했다. 지금도 그렇다. 오빠가 해놓은 금제를 적응하고, 풀어내기만 한다면 4단 에 머물러 있는 현천공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무공을 배운 이래 강해지고 싶다 는 욕구가 극대화된 상태다. 한마디로 벗 어나기 어려운 깊은 수렁이다.

그래도 그렇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다 짜고짜 난이도를 최상으로 높여 놓으면 어 떻게. 동생의 괴로움을 즐기는 변태 오빠 가 아니고서야 똥줄이 타들어갈 만큼 힘 이 드는데 정작 가해자는 한가롭게 과일 을 먹고 있어서 열불이 더 터진다.

아삭아삭

사과가 참 맛이 좋았다.

“너도 먹을래?”

“죽?…여 버릴 거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전혀 없는 정우 의 표정이다. 수연의 오기를 부추기는데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패륜이다.”

“닥?…쳐!”

정우의 수련 방식은 간단했다. 금제 적 응, 해제의 3단계로 거친다. 육체에 금제를 가해 제어를 한 후 적응력을 테스트하고, 금제를 풀어내는 운용방식을 스스로 터득 하도록 한다. 정체된 벽을 깨기에 가장 확 실한 방법 중에 하나다.

아침 훈련이 끝났을 때 수연은 녹초가 되었다.

현재 시간 아침 7시.

수연은 금제가 풀렸음에도 바닥에 엎 어진 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겨 우 숨이 트여 가브게 헐떡거렸다. 매일 마 시는 공기를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근래엔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산 소의 대량흡입을 통해 지친 근육을 풀어 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빨리 일어나야 씻고 밥 먹지. 지각하면

어떻게?”

“걱……정하는 척하지 말라고!”

수연은 바닥을 어기적거리며 기어서 화 장실까지 가야 했다. 팔다리에 힘이 돌아 오려면 시간이 필요한 상태다.

“지렁이 흉내 내니?”

“ 엄마!”

가뜩이나 힘든데, 엄마까지 보태니 짜 증이 치미는 수연이었다. 게다가 오빠라는 작자는 한술 더 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겨우 화장실에 도착해서 일어났건 만, 기력이 빠져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인내는 쓰지만 성취감은 달달할 거야.” “똥? … 싸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시원하게 볼일을 본 정우는 급히 화장 실을 나왔다. 물을 내리면서도 이게 사람 의 몸속에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랍다 마 치 살아 있는 용이 승천을 위해 인내하는 형상이었다. 작품명, 비상하는 황룡이다.

“아! 냄새!”

열린 문 사이로 흘러나온 구수한 향기 가 수연의 콧구멍을 괴롭혔다. 지친 피로 감을 날려 버리는 흉포한 악취였다.

“대체 뭘 먹은 거야?”

“식구잖아”

“닥치리고!”

“말버릇이 그게 뭐야, 혹시 훈련이 만 만해서 이 오빠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거 니‘?”

만만하게 보고 있다니, 수연은 순간 오 한이 들었다. 오빠는 대마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훈련에 있어서는 지독 했다. 그리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극한 훈련을 한 자신에게 할 소린 절대 아니었 다. 초딩의 자존심을 뭉개는 오빠의 잔인 함을 엄마에게 고발해야만 했다. 엄마는 반드시 진실을 알아야 한다.

“ 말하려고?”

“아?…냐!”

속내를 들킨 수연은 입을 닫았다. 오빠 의 웃는 모습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아 동학대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오빠의 이중적인 자태를 고발하겠다는 다짐은 연 기처럼 사라졌다. 오빠는 남매간의 의리 를 중시했다.

“이 오빠는 너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 애하고 있단다.”

“괴롭히려는 건아니고?”

“사랑하는 동생에게 그럴 리가 없잖아”

“두 번 사랑했다가는 동생 죽이겠다!”

정우는 동생의 몸을 만져주었다. 추궁

과혈로 몸의 근육을 풀어주고, 소모된 진 기를 회복시켰다. 이대로 학교에 가서 못 볼꼴을 보이게 놔두지는 않았다. 자신은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내 동 생을 손가락질하면 그 손가락을 다 부러 뜨릴 것이다. 그만큼 동생을 아끼고 사랑 한다. 어떤 놈이 내 동생을 데려갈지 모르 지만 참으로 좋은 형님을 두게 생겼다. 이 렇게까지 동생을 위하는 오빠는 드물 테 니까 흐물흐물

수연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빠의 추궁과혈은 마약과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중독되 어 버렸다 받고 나면 몸이 개운할 뿐만 아 니라, 진기의 융통이 몰라보게 원활해졌 다

“넋 놓고 있을때가아닐텐데.”

“아! 진짜!”

급하다

추궁과혈로 인해 괄약근까지 흐물흐물 해져 버렸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화 장실 문턱에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 다. 자기 할 일을 끝내고 가 버린 오빠의 매정함을 탓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아파트 정문에 두 여인이 대치 중이다.

둘 다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한쪽도 기울지 않은 주변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할 외모. 충분히 주변 의 시선이 쏠릴 만도 한데,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여기 있는거야?”

“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야”

“내가 왜 관계가 없어, 정우는 내 남자 친구라고.”

“정우에게 농락당한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찾아왔을 뿐이야 그러니 오해는 하 지 마”

하라는 꽃다운 17세에 뒷목을 잡을 뻔 했다. 오해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해할 만 한 단어를 구성해 놓고 있었다. 이러고서 본인은 죄가 없다는 뜻인가? 웃기는 소리 다. 예전에 막장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적 이 있었다. 착하기만 한 주인공 역인데 악 역보다 더 욕을 먹었었다. 본인은 오해할 짓을 다 하면서, 아니라고 항변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동안 암-하 라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솔직히 병신 같 은 역이라,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괴롭 히는 역할이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상황 이었다.

“당하기는 뭘 당해. 정우가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잖아”

“정우한테 농락당한 건 명백한 사실이 야 아직도 이해가안 되거든.”

하라의 신안은 공간을 읽어낸다. 윤정 의 말이 사실임을 느꼈다. 하지만 윤정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어내지는 못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생각하기에 따라 서 얼마든지 오해할소지가 다분하다.

“혹시 정우하고 대결한 거야?”

“그래.”

“그럼 그렇게 말을 해야지. 너 일부러

나 오해하라고 단어를 뺀 거 아냐?!”

“?…그건 아냐.”

윤정은 순간 대답할 타이밍이 늦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나 싶었다. 그날 정 우에게 맥없이 당한 이후로 매일같이 그 날이 복기되어 괴로웠다. 방법을 찾으려고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체 감했었다. 꿈이 아니라 악몽인데, 계속 생 각이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는 내 알 바 아니지 만 버젓이 임자 있는 사람 앞에서 얼쩡거 리는 것만큼 나쁜 짓은 없어. 너답게 지극 히 객관적으로 살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극을 받지 않았 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하라의 지적이 옳았다. 아직은 감 정적으로 그 어떤 판단도 하기 어려운 상 태였고, 하라와 정우는 오랜 기간 만나 왔 다. 무엇보다 자신은 강해지기 위해서 정 우를 찾았다. 사적인 감정을 가질 때는 아 니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정우에게 무공 을 배우기로 한 이상 찾아올 수밖에 없잖 아”

“공과사는구분해야겠고, 어쨌든 정우

한테 도전한 건 무모했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고.”

하라도 정우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서 도전한 적이 있었다. 나름 물이 올랐을 때라 대결의 형태는 갖출 수 있을 거라 판 단했었다. 하지만 대결이 시작되고 명백한 오판임을 깨달았다. 정우는 어릴 때도, 그 때도 제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것이 다. 천원일기공으로 컨트롤한 신안을 극대 화했음에도 읽어내기는커녕 수를 읽다, 도 리어 당하고 말았다. 왼쪽인 줄 알았더니 오른쪽이고, 아래인 줄 알았더니 위였다. 정우와 대결을 할 때는 신안이 오히려 방 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바둑을 둘 때도 정 우가 장난쳤음을 깨닫게 했다. 정우의 한 계를 밝혀낸다면 노벨상을 줘도 아깝지 않다

“그러는 너는?”

“나는 조강지처잖아”

첩년들이 지랄을 해 봤자, 조강지처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조강지처의 매운 맛을 보고 싶다면 지랄을 계속 떨어도 된 다. 드라마의 물세례나, 싸대기는 애교인 줄알라고.

“선을 넘은것도 아니면서.”

“곧 넘을거야”

17살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굉 장히 높았다. 어떤 선인지 몰라도 넘게 되 면 검열에서 삭제당하기 딱 좋은 규격 외 대화였다.

하라는 혼자서만 가슴에 품고 끙끙 앓 는 병신 같은 주인공들과 달랐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확실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고 보면 방송에서 보여주는 천사 같 은 모습은 하라의 성향과 정반대였다. 방 송이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환상을 심 어준 것이다.

“금강문의 아저씨로도 벅차니까, 너까 지 그러지 마라. 이건 친구로서 하는 경고 이자 부탁이야”

“금강문이라면 8대 무문을 말하는 거 야?”

“그 아저씨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을 썩 었는데.”

“굉장히 복잡하구나, 너희도.”

하라는 효린이 자신의 상대가 될 거라 고 생각하진 않지만, 금강문주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식하게 생겨가 지고 앞뒤로 꽉꽉 막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생각이 너무 잘 읽혀서 짜 증이 난다. 속에 의도를 숨기고 있는 능구 렁이라면 속여 넘기기라도 하지, 금강문주 는 훤히 다 보인다. 정말로 자기 딸을 정우 와 맺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 대보가 신안을 가진 자신이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상대임을 직시하게 했다. 단순한 데, 강하기까지 하니 환장한다.

“너희 여기서 뭐해?”

정우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를 몰고 나와 윤정과 하라의 옆에 댔다. 굳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서 둘이 설전을 벌 이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다. 할 말이 있 으면 인근 커피숍에 가서 하던가.

“너 보러 왔지.”

“일단타”

하라가 차문을 열고 옆자리에 앉았다

윤정은 뒤에 타면서 아쉬운 눈빛을 보 냈다. 마법과 무공의 상성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하는데, 하라가 방해되었다. 아무 래도 물어보기에는 뒷자리보다는 옆자리 에 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윤정이하고 있었다며, 왜말 안 했어?”

“질투하는 거야?”

아름다운 여자의 질투는 남자의 자존 감을 높여준다. 정우는 하라의 시샘을 즐 기고 있었다. 그러나 하라도 만만하진 않 았다. 정우와 함께한 10년의 시간은 하라 의 정신력을 단단하게 무장시켰다. 실상 정우의 옆에 있으려면 어지간한 강단으로 는 어림도 없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함 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라의 정신력은 수직상승했다. 이젠 웬만한 일로는 놀라 지도 않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서 서리 가 내린다고 했어. 날 나쁜 여자로 만들지 마”

“무공을 가르쳤을 분이야, 사적인 감정 은 없어.”

“믿어도 되는거지?”

“내 성격 알잖아.”

알기에 더욱 복잡했다. 윤정이 정도면

연예인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외모와 몸 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무공을 배운다는 핑계로 같이 몸을 부딪쳤을 텐데, 공적으 로만 대했다니. 믿어지지 않은 일인데도, 믿어져서 답답하다.

“혹시 너.”

“생각하는 거아니다.”

시샘은 자존감을 살리지만 오해는 자 존심 상한다. 특히 사내의 자존심을 건드 리면 여자라고 해도 봐주지 않는다

‘흥!’

윤정은 뒷좌석에서 소외된 채 방치되었 다. 끼어들 타이밍을 하라가 주지 않고 연 이어 끊고 있었다. 딱히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것도 말문이 트이지 않은 이유였다.

“금강문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내가 더 좋은 알바 소개시켜줄게.”

“얼마나 줄건데?”

“얼마 받는데?”

“3억 플러스 알파로 100억가량”

“.2”

이거 아빠한테 부탁했다가는 쫓겨나기 딱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탑 아이돌인 나보다 돈을 더 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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