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언니가 잘못했네 ⑵
꿀꺽!
총관, 장로들은 폐부를 깊숙이 파고들 어오는 섬뜩함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무 모한 짓이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한편으로 정우의 과감한 결단력과 상식의 초월하는 전투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이런데, 시간이 더 지나 면 대적할 자가 많지 않을 듯싶었다.
“순순히 응할 때부터 이상하다 했더니, 무문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구나.”
“보고 배운바는 확실하죠.”
“그러면서 200만 원이나 달라고 한 것 이냐!”
“다다익선, 겸사겸사죠.”
정우의 용의주도함에 총관과 장로는 깊 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전투력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처세술도 완벽에 가까웠다. 어느 누가 정우를 흉수로 생각이나 할까? 다들 헛다리 제대로 짚고 있었다
“정우야 섭섭하구나. 나한테는 말을 했 어야지.”
“지금이라도 말해주는 걸 감사해야지 요.”
정우의 결단력과 전투력이 소름 돋기 는 해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끝까 지 숨기고자 한다면 아무도 알지 못했을 비사다. 스스로 털어 놓았다는 것은 금강 문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적이라면 가장 무서운 상대겠지만, 아군이라고 생 각하니 든든했다
“박영천 그 새끼는 여우같은 놈이라 만
만치 않았을텐데.”
“다중속성을 지니고 있더라고요.”
정우는 박영천과의 대결을 바둑의 계가 처럼 하나하나 짚어주려고 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방법을 바꾸었다. 입으로 일 일이 설명을 하기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집무실에 놓인 화병을 허공섭물로 들 어 올린 후, 가루로 홑어냈다 정우는 가루 로 화한 화병을 활용해서 자신과 마제의 모습을 만들어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가루는 끈기가 없어 조금이라도 기의 컨트롤이 무너지면 흩어져 버리는데, 놀랍 도록 정교한 컨트롤을 선보이고 있었다.
정우와 박영천의 미니어처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의 풍광도 그려 내고 있어 전투의 현장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진짜라면, 박 영천은 만만치 않은 정도를 벗어났다 8급 의 유니크에 다중속성이며 가공할 심기를 갖추었다. 문주라고 해도 결코 쉽사리 제 압하기 어려운 상대다. 상성상 거의 극 상 성을 띠었다. 전력 대 전력이라면 문주의 우위를 점치겠지만, 박영천의 심기를 이겨 내기 어려울 듯싶었다.
한데, 그뿐이 아니다. 박영천의 아들까 지 합세해서 정우를 공략했다. 저런 함정 을 만들었다면 누구라도 걸려들 수밖에 없다. 만약 정우가 아니었다면 속성은 물 론 생기까지도 빼앗겼을 것이다.
“이 새끼는 하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싸우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드 네.”
“그런 말은 패배자나 하는 겁니다”
정우는 비겁한 수를 당했다고 해서 변 명하고 싶진 않았다. 진강백의 집요함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냉철했 던 심기는 인정했었다.
헐!
박영천과 박기철을 처리하고, 하북팽가 에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것까지. 의 도와는 거리가 멀었을 텐데도, 그 짧은 시 간 완벽을 기했다.
가장 무서운 사실은 더 있었다. 흑금단 은 관여하지 않고, 방어에만 동원되었다. 홀로 혹호문을 기멸시킨 것이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상상한 범위마저 초월하는구나: 김 총관은정우의 강함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혹호문을 괴멸시키고도 문파로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한 걸 상 기하면 더욱 소름이 돋는다. 잔부상조차 입지 않고 흑호문을 완벽하게 처리한 것이 다
‘더군다나 납치도 아니고, 미수만으로 문파를 도륙하다니.’
흑호문의 악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벌을 받아 마땅한 짓을 했다. 하지만 사람 의 목숨을 지나치게 가벼이 본 것이 아닌 지 걱정이 된다. 수백의 무인을 도륙하고 도 정우는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 런 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아수라장의 험난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더욱 정우를 이해하기 힘들다.
“회의 끝났으면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 다”
“그냥 가려고? 오늘 같은 날 마셔줘야 지.”
김 총관은 문주의 무책임에 고개를 저 어야 했다. 저 인간은 상식적인 잣대로 재 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미성년자 에게 술을 권하는 것도 그렇고. 정우의 잔 혹한 손속과 엄청난 전투력에도 기가 죽기 는커녕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문주로서 기죽지 않고 나아가는 도전정신은 본받을 만하지만 그거 하나다. 주변 사람들 환장 하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났다.
“문주께서는 저와 마저 끝내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빠드득)!”
남은 것 없다고 하려다가 호극은 입을 닫았다. 총관이 존대를 해줄 때 받아야 한다. 괜히 딴죽을 걸면 하루 종일 피곤해 진다? 솔직히 이 가는 것 봤다.
“하던 거 마저 하세요. 전 이만.”
정우와 장로들이 빠져나가고, 총관과 문주만 집무실에 남았다 둘 사이의 브로맨스를 기대했다가는 큰
코다친다.
하암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정적인 고요함 과는 어울리지 않는 문주의 따분한 하품 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정우 때문에 그러는거요?”
“문주께서는 정우가 정상이라고 보시 는겁니까‘?”
이 인간에게 물어보고 나서 바로 후회 가 되는 김 총관이다. 정상적인 사람한테 물었어야 했는데, 답답함에 내뱉고 말았 다
“받은 대로 갚아줬을 분이잖아”
“그래도 도가지나칩니다.”
“총관의 말도 이해는 가. 하지만 우린 무인의 세상에 살고 있어.”
한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법으로 죄를 심판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원초적인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법이 라는 테두리 속에서는 사자도, 사슴도, 토 끼도 같이 살아갈 수 있으나 틀이 점차 깨 지고 테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관이 생각한 걸 정우가 몰랐 을까?”
“그건…… 맞습니다.”
김 총관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쯤은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의 가족을 건 드리는 대상은 그 누가 되었든 가만히 두 지 않겠다는. 금강문 역시도 예외일 수 없 다
‘가족이란 말인가?’
김 총관은 정우를 인정하고, 다음을 계 획해야 했다. 이젠 금강문에 있어서 정우 의 가치는 문주를 넘어서고 말았다. 싫든 좋든, 정우와함께 해야만한다. 하지만호 법이란 지위로 정우를 묶어 두기에는 너 무나 미약하다. 무인이라면 호법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지만, 정우는 언제든 벗어던지고, 나가 버릴 수 있었다
“어쨌든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군 요”
‘公 뒷걸음이라니. 이런 걸 두고 선견지 명이라고 하는 거야.”
7살 꼬마에게 패하고 난 후, 호극은 정 우의 가치를 더욱 높게 봤다. 아니었다면 밤새 그 고생을 하면 아내를 괴롭히지 않 았을 것이다.
‘선견지명은 개불!’
김 총관은 문주의 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인간이 이런 날이 올줄알고 혜안을 발휘했다고는볼수 없 다.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짜증나는 것은 들어맞아 가 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은 머리 싸매고 고 민을 해서 답을 겨우 내는데, 말 같지도 않 은 행동이 답을 찾아낸 격이다.
‘우문에 현답이라니, 진짜 때려치워야 겠다?’
강인하고 매서운 인상에 힘이 느껴지는 육신. 시위를 압도하는 존재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패자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내, 하북팽가의 가주 팽우경이다. 현 중 국을 대표하는 대륙의 10걸에 꼽히는 도 의 제왕이다.
대전에 버금가는 넓은 공간의 상좌, 팽 우경은 턱을 괴고 있었다. 만인을 내려다 보는 시선 속에 예를 올리는 사내가 잡혔 다 사내는 보고를 올렸다
“건곤대의 부대주는 사망했고, 3공자 와 대주는 실종되었습니다.”
자식의 실종에도 팽우경은 자세를 풀 지 않았다. 하지만 번뜩이는 안광은 작금 의 돌아가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음을 표 현했다.
“흉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귀영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나?”
“송구합니다”
사내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귀영각의 각주로서 팽가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자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 보의 중요성은 전투력 못지않게 중요했다. 팽가의 경우 정보의 부재로 인한 손해를 자주 봐왔다. 이를 해결하고자 팽우경은 귀영각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한국의 동향은‘?”
“본 세가를 흉수로 지목한 상태입니다”
팽우경은 한국 무림이 항의할 것이라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 무림의 대응은 예상이 되 었다. 한국의 대응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혹호문을 발판 삼아 한국 무림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계획이 시작부터 어 긋나 버렸다 오대세가 중에 남궁세가의 영향력이 강 해지고 있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 한 국을 선택했다. 알고서 방해를 했다면, 똑 같이 되갚아주어야 한다.
“정부에 힘을 써서 압박을 가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한국 무림이 알아낸 정보를 가지고 손 을 썼다면 곤란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끈다면 이를 물고 늘어질 기회가 생긴다. 약자는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반대로 강자는 작은 빈틈 을 가지고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었다. 막 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