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사후 처리 (5)
웅성웅성.
정우와 호극은 남포동에 있는 곰장어 집에 들렀다. 허름한 외관이기는 한데, 손 님이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의 뒤로 섰다. 앞에 15명 정도가 있었다 주춤!
20대 여자들 뒤에 당당하게 섰다.
시선이 쏠렸다. 주변의 관심을 즐기진 않지만, 이호극은 2m가 넘는 거구에 온 몸이 흉기인 데다가, 소통과는 거리가 먼 울퉁불퉁을 자랑했다. 입고 있는 티셔츠 가 불쌍할 지경이다. 보통 사람 앞에 서면 문짝 하나가 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옆에 서 있는 정우도 만만치는 않았다. 호극과 나란히 서서 평범해 보일 분이지, 정우도 190cm에 균형 잡힌 몸매 의 소유자다. 앞에 선 여자들과 비교하면 상당한규격 차이가 있다.
늘어선 줄이 5명가량줄어들자, 의자에
앉을수 있었다.
“너무작잖아”
앉아서 기다리려고 해도 사이즈가 작 았다. 의자 3개를 합쳐 놓아야 겨우 앉을 수 있을까 말까 했다. 기어이 않는다면 말 리지는 않겠지만, 엉덩이가 의자를 먹을 기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건 봐 주기 힘들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다 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속으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너무 큰 거예요.”
보통은 말 걸기도 어려운 외모의 호극 이다. 한데, 아가씨 중 당차게 생긴 단발머 리가 핀잔을 주었다. 어지간한 담력을 지 닌 사내도 호극을 보면 제 발을 저리건만, 꽤나 놀라운 장면이었다. 주변의 사내들 이 움찔거리며, 줄에서 이탈을 고민해야 했을 정도다.
‘뭐하는 애들이지?’
정우는 그녀와 그녀 친구들이 들고 있 는 각종 장비에 시선이 갔다. 곰장어 먹으 러 온 것치고는 불편한 행색이다.
스윽!
여자는 문주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몸만 봐서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징을 치 는 사람 같이 보인다.
“보디빌더예요?”
“아니.”
“아니면서 근육을 왜 이렇게 무시하게 키워요? 아주 그냥 옷을 잡아먹네, 잡아먹 어.”
“아가씨는 안 잡아먹으니, 안심해도 돼.”
“보디빌더가 아니면, 유니크예요?”
“ 맞아”
“몇 급인데요?”
“8급.”
김 총관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대화 내용이었다. 일문의
문주라면 응당 품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입이 무거워야 했다.
문주의 전투력은 문파의 힘을 상징한 다. 하물며 이호극은 금강문을 지탱하는 최강의 살인 기둥이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국가 기밀이듯, 문주의 전투력도 기밀 사안이었다 외부에 드러내놓고 자랑 을 하는 건, 나 죽여 달라고 광고하는 꼴 이다. 자신만만함이 도를 벗어나 있었다.
‘과연.’
정우도 문주의 솔직함에 1방 제대로 먹 었다 호방함의 끝판왕 생각 없는 무뇌 종 자의 결정체였다. 또한 자신감의 발로이기 도 하다.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존 재는 없다는.
실상 그리 걱정할 만한 사안과는 거리 가 멀다. 유니크 8급이 오가다 만나는 사 람도 아니고. 약간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 람들이라면 쉬이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8급의 유니크는 손가락에 꼽는다고요.”
“내가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야. 이 몸이 바로 금강문의 문주거든.”
“.2”
8대 무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이 제 거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크 집 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문의 주인을 실제로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연예인이 나, 아이돌이 아닌 이상 젊은 여자들이 인 상착의를 기억할 리도 없고.
“정말이에요?”
“이 아저씨가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이 니?”
단발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덩치에 어 울리지 않게 줄을 서고 있어 호기심에 말 을 걸었는데, 그냥 이상한 사람인 듯했다. 자신감은 좋지만 허언증은 심각한 질병이 었다. 정신과에 상담을 받아 봐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호극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은 그의 안중에 도 없다. 일일이 따지고 살만큼 용의주도 하지도 않고.
정우와 호극의 차례가 됐다.
“몇 분이죠?”
“둘이에요.”
자리는 좀 불편했다. 가게의 정중앙이 었다.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게 다가 조금이라도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테이블 간 간격이 좁은 편이었다 정우와 문주는 보통 사람보다 규격이 커서, 더 좁아보였다.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20인분하고, 소주 5병.”
“예?”
“좀 적으려나? 25인분에 소주 7병하고 맥주잔 2개가져와.”
종업원은 주문을 받다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고개를 돌려 손님이 더 오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더 올 기미가 보이지 않 는다. 덩치가 보통 사람보다 커서 대식가 임은 알겠지만, 1인분도 아니고 25인분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허세도 이 런 허세가 없었다. 배 터져 죽으려고 작정 을 하지 않고서야, 감당하기 어려운 양이 다
“괜찮겠어요?”
“그럼.”
종업원은 힘이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 로 주문을 받으면 그만이다. 나중 일은 가 게 사장님의 몫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50 대 아주머니도 한번 줘 보라는 듯한 뉘앙 스다. 어디 얼마나 먹는지 지켜보겠다는 심보다.
곧 곰장어가 나왔다.
탑처럼 쌓인 곰장어의 무시무시한 양 에 질린 기색이 완연하다. 평소에 내어 주 는 1인분의 양보다 더 많이 담았다. 가게 사장님의 넓은 아량이라고 보기는 힘들 다
‘저거 좀오버 아니야?’
‘튀고싶은 모양^지.’
‘덩치는 이미 튀고 있는데.’
‘아까도 이상했어.’
‘이래선 우리가 밀리잖아:
‘우리도 질순 없지.’
방금 문주에게 관심을 보였던 여자들 의 수다가 시끄러웠다. 발성이 꽤나 좋은 편인 데다가, 톤이 높아 시끄러운 와중에 도 또렷했다 치이이익!
정우는 곰장어를 굽는 데만 집중했다.
고기의 쫄깃함을 유지하고 육즙이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특히 연탄구이를 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 야 한다. 자칫 양념이 타서 맛이 변질될 수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뒤집어서 판이 타지 않도록 유의했다.
“ 한잔해라.”
“감사합니다.”
보통은 술을 주는데 망설여야 정상이 나, 호극은 평범한 사람과 뇌구조가 아예 달랐다. 17살에게 맥주잔을 주어 1병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 담대한 배포와 나이 를 가리지 않는 무심함은 알아줘야 했다.
평소 호극의 소신을 알 수 있는 태도다. 남 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들면, 평등하게 대할 사람이었다.
정우도 술을 마시는데 거리끼지 않았 다. 육체는 이미 어른을 넘어섰고, 정신연 령은 수백 살이다. 게다가 현재는 혹금단 의 단주로 세팅한 상태다. 가게 입구에 설 치된 미성년자 자동 색출기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었다.
후루룩!
정우와 호극은 입가심으로 소주 1병을 완샷했다. 맛을 느끼기보다는 털어 넣었다 는 표현이 적당했다. 입을 소주로 헹궈 혀 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혀에 낀 백 태와 불순물 제거에 소주만한 음료가 없 다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냐고 물었 더니, 대충 알아들으라는 문주의 명언이 있었다.
적당히 익은 곰장어를 먹기 시작하자 주위가 집중되었다.
아득아득!
자칭 미식가라면서 문주는 곰장어에 원수진 사람처럼 먹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릇에 있는 곰장어를 다 먹고, 소주 5병 을 해치웠다. 이어서 소주를 5병 더 시켜 서 식탁에 빈 병을 일렬로 세웠다. 이대로 가면 소주병으로 연병장 4바퀴를 돌릴 기 세다. 소주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지 복분자까지 추가로 주문했다
“어떠냐?”
“좋네요.”
곰장어 25인분, 소주 5병을 시킬 때만 해도 다들 객기 부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빈 소주병만 늘어나고. 둘 다 멀쩡했다. 술을 저렇게나 마시고서 도 취하지도 않고 맨 정신이라니 기가 찼 다.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제정신 같지는 않아 지금이 더 멀쩡해 보인다.
‘아까 유니크라고 했지?’
‘그러게. 속성이 해장인가?’
정우와 호극은 곰장어를 다 먹고 난 후 양념에 밥 5공기를 볶았다. 호극의 가공할 홉입력에 가려져 있을 분이지, 정우도 곧 잘 따라가고 있었다. 종업원의 질린 표정 이 폭식 사태를 대변해 주었다.
“쟤들도 좀 불쌍하네요.”
“뭐가 불쌍한데?”
“보고하기 난처하잖아요.”
“본 그대로 보고하면 되지 뭐가 힘들 어.”
“그게 힘들다는거죠.”
호극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내진
자들. 회동이 끝나고 다들 문파로 돌아간 것과 달리 호극이 따로 움직였기에 미행을 붙인 것이다. 그들은 수시로 보고를 올리 고 있지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의문이 들 고 있었다 내용이 가관이었다.
-곰장어 25인분
-소주 7병.
-곰장어 20인분추가.
-소주 10병 추가:
-곰장어 10인분추가.
-소주 10병 추가.
-복분자 5병 추가.
-볶음밥 5인분.
보고를 올리고 있는 자들은 깊은 한숨 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우리가 뭘하는 거냐?’
‘몰라 인마’
정우와 호극은 미행을 신경 쓰지 않았 다. 쥐새끼처럼 훔쳐본다고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자들이다. 물론 개입을 한다면 불판위의 곰장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히잉, 망했어!”
정우와 호극의 바로 옆, 여자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 그녀들은 개인 방송을 하는 BJ 로서 먹방계에서는 꽤나 유명하 다. 예브고, 가녀린 외형에도 불구하고 대 식가로 불리며, 먹방 퀸의 자리에 올라와 있다. 그런데 실시간 방송을 하는 와중 정 우와 호극의 만행으로 인해 별점을 거의 못 받고 말았다. 불협화음이 들리고, 주변 에서 정우와 호극의 먹방을 찍어 올리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의 대부분이 정우와호극에 대해서다. 그녀들의 처지는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뱃속에 거지가들었나!
-먹방의 신이 강림하셨다!
-신은무슨 걸신이다
-보릿고개 때도 저러지는 않았겠다!
-일사후퇴 때도 아닐걸!
-임진왜란 때도 아닐걸!
-지금까지의 먹방은 다들 소식(小食)이 었네
?■?덩치를 봐라!
-먹은 게 다 근육으로 갔나봐
-근(筋) 먹방!
-진정한 근육 돼지들!
먹방계의 자칭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녀들은 오늘 하루 공을 치고 말았다. 또 한 오늘 일은 두고두고, 개인 방송의 레전 드로 남게 되었다. 이후로도 곰장어 55인 분 도전기가 계속되었지만, 아무도 깨지 못했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어 벽면에 액자로 걸어 놔서, 가게는 대 박행진을 했다 호극이 계산을 마치고 다음 집으로 가 려던 때.
김 총관의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서 깊 은 빡침이 전해지고 있었다. 띠링! 울릴 때 마다 조여 오는 재정의 압박이 스트레스 를 주었다.
-그만 먹고 올라오시죠. 언제까지 거기
있을겁니까?
“족발냉채만 먹고 올라갈게.”
겨우 부여잡았던 도화선에 제대로 불 을 붙이는 호극이다. 과연 주변 눈치를 전 혀 보지 않는그다운 무성의함이다.
-이런 씨부럴 회의하러 간 게 아니라 처먹으러 간 거냐!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 그래?!”
-치사해? 네가 법인 카드로 긁은 게 얼 만줄 알아
김 총관이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 했다. 문주고 나발이고, 화가 나면 전후를 따지지 않는 금강문의 관례였다. 이를 가 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호극도 대단했다.
대범함과 무덤덤함으로 김 총관의 속 을 잘도 뒤집어 놓는다.
“입가심도 못 하고 가네. 총관이 아니라 상전이라니까.”
호극의 아쉬운 토로에 주변은 쓰러질 뻔했다. 그렇게 처먹고, 족발을 먹으러 간 다고 했을 땐 상식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 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