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사후 처리 (4)
“혹, 길드와 연합을 의심하시는 겁니 까?”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소.”
회의장 안이 더욱 무거워졌다. 무문이 힘을 잃고, 와해되면 이득을 보는 곳은 길 드와 연합이었다. 하지만 연합은 정부의 주도하에 움직인다. 가능성은 희박했다. 있다면 길드일 공산이 컸다. 표면적으로는 길드와 무문이 상호협조관계를 유지하지 만, 이권이 자주 부딪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해도 혹호문이 안 방에서 넋 놓고 당했다면 소수정예의 특 급 유니크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단일 길드가 아닌 연합이라는 뚯입니 까‘?”
일리 있는 전제다 길드의 수장 급에 달 하는 자들이 대거 동원되었다면 시간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길드 간 대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 이 힘을 합쳐서 공조했다고 하니, 쉬이 납 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공조해야 할 필요성 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문파 간의 연합도 고려해 봐 야합니다.”
길드가 아니더라도 무문을 노리는 흉적 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조심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각 문파의 주인 들은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부는 천무문주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임시가 아닌 진짜로 만들려는 건가?’
‘역시 방심 못할사람이군.’
천무문주는 회동의 임시 수장이다. 하 지만 연합을 찬동하는 순간, 임시가 아닌 진짜가 될 수 있었다. 의도되지 않았던 사 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었다.
“금강문주께서도 가만있지만 말고 한 마디 하시오.”
모두의 시선이 금강문주 이호극에게 향 했다. 실상 혹호문이 괴멸당하면서 인천 지역의 이권은 금강문에 귀속될 공산이 컸다. 아무래도 각 문파는 지역을 거점으 로 둔다. 인천에 거점을 두고 있는 금강문 이 거리상유리했다.
“강하면 사는 거고, 약하면 뒈지는 거 지, 별거 있소.”
참으로 이호극다운 발언이었다.
일례로 금강문주는 자신을 삼쾌로 부 르라고 했다.
호쾌, 상쾌, 통쾌.
하지만 다른 이들은 삼무로 통한다
무식, 무모, 무통
꼴통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해서 어지간해서는 상종하지 않는다. 각 문파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하 나 우호적인 문파도 있기 마련인데, 금강 문은 예로부터 혼자 놀았다.
쯧
각 문파의 문주들은 조금이나마 금강 문이 관여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다가 혀를 차고 말았다. 금강문주는 이권 따위 에 관심을 가지는 종자가 절대 아니었다. 그의 특기는 주먹, 그 하나로 끝난다. 나머 지는 부수적인 영역이었다. 자기 것도 귀 찮아서 달고 다니지 않은 자가 흑호문의 이권을 탐한다, 그거야말로 개도 안 믿을 일이다.
“뭐요, 그 눈빛들은. 기분 나브게.”
“아무것도 아니니, 금강문주께서는 신
경 쓰지 마시오.”
“언제는 신경을 썼나.”
금강문주는 회의 내내 조용했다. 듣고 만 있었다 간혹 볼 때마다 눈 감고 있기에 자는 줄 알았다. 게다가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될 만큼 따분한 표정 이다.
점입가경으로.
혹호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나,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의심이 더 안 간다. 하는 말마다 혹호문은 잘 망했다고 떠벌 이니, 용의자라고 하기에는 신빙성이 떨어 진다.
“회의 끝난 거면 이제 가도 되는 거요?”
“대강의 합의는 봤으니, 편한 대로 하시 오.”
금강문주가 입을 열 때쯤이면 회의가 막바지에 왔다는 뜻이 된다. 묻지 않으면 끝까지 입 다물고 있다가 가는 경우가 허 다했기 때문이다
“따분해 죽는 줄알았네.”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금강문주 였다.
“많이 기다렸냐?”
“사람구경하고 있었죠.”
이호극의 수행비서로 정우가 같이 왔
다. 총관과 장로들은 흑호문의 괴멸 지경 에 처하면서 바빠졌다. 그나마 한가한 사 람이 정우였다. 마침 주말이라, 시간도 비 고.
문주가 딴 데로 새지 않도록 감시하라 는 총관의 부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주란 인간은 방콕 주제에 나가기만 하 면 사고를 치고 다닌다. 불패금강과 쌍벽 을 이루는 별호가 걸어 다니는 대형 사고 다 한 번 칠 때마다 깽값 물어준 걸 상기하 면 문파를 하나 더 짓고도 남는다 그렇다 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힘들다. 문 주를 감당할 인간은 총관을 제외하고 정 우분이다. 청금단이 문주의 만행을 만류 하다가 10명이 병원으로 직행한 사건은 문파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어쨌든 총관의 사정이고.
정우에게 시간은 금이다.
주 5일 근무라, 시간 외 특근으로 치는 것은 당연했다 정우는 1년 연봉을 하루 단위로 계산 했다. 1년에 연봉 3억이면, 1달에 2500만 원이고, 하루는 83.333만 원인데 어거지 로 반올림해서 84만 원이다. 하지만 근무 시간 외이기에 당연히 2배가 되고, 여기서 반올림은 100단위로 올린다.
해서 결정된 금액이.
-200만원.
-200만 원이 무슨 애들 이름이냐, 벼룩 의 간도 빼먹을 놈아!
-벼룩의 간은 빼먹어도, 총관님 간은 안빼먹습니다
-나도 이제 많이 늙었단다. 좀 봐줘라
-늙은 생강이 무서운 법이죠. 뒤통수도 잘 치고.
■너만 하겠냐. 그리고 어린 녀석이 벌써 돈 돈거리는 거 아니다.
.어릴 때부터 금전관계는 철저해야 된
다고 배웠거든요. 게다가 문주님이 사고 쳐서 돈 나가가는 것보다는 싸잖아요. 막 말로 큰 거 1장 부르려다가 총관님 사정 봐줘서 깎아준 겁니다
-이 징그러운놈 주면 되잖아
총관에게 선금을 받은 후에야 정우는 호극의 수행비서로 부산에 내려왔다. 나 중에 따로 챙겨준다는 총관의 말은 믿지 않는다.
“회의는 어땠어요?”
“따분하기만했지, 해결책은 없고.” 지난번에 했던 회의를 상기할수록 답 답해하는 이호극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건 적성에 맞지 않 았다. 현장에 나가서 의심 가는 문파를족 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가지고, 사람들 이 어렵게 간다고 생각했다
“혹호문과의 분쟁 구역에 대해서는 간 섭하지 말라고 주장하셨어야죠.”
“그거 없다고 굶어죽지 않는다.”
굶어죽을까 봐 물어보지는 않았다. 흑 호문이 사라진 이상, 분쟁 구역은 무주공 산이 되어 버렸다. 금강문의 관할구역으 로 흡수하면 이권은 물론 세력 확장에도 유리하다;
반대로 말하면 누구든지 혹호문이 지
배했던 구역을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8대 무문이 협력관계라고는 하나, 한 문파가 독식하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 다 그러나 정우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 었다. 잠시나마 김 총관의 속내를 대변해 주었을 뿐이다 시치미 뚝 떼고 물었다.
“흉수는 밝혀졌나요?”
“하북팽가가 유력하기는 한데, 증거가 너무 확실하다나. 그리 확실하면 족쳐 보 면 될 것 가지고, 이것저것 재고 난리더라 고.”
정우는 총관의 부탁 이전에 돌아가는
정황을 살피기 위해서 내려왔다. 문주의 말을 들어보니, 회의장 내의 분위기를 파 악할수 있었다.
‘ 제법인데.’
일문의 수장들다운 판단력이다. 드러난 정황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상을 파악했 다. 그분인가. 흑호문 사태를 이용해 원하 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분이지.’
하북팽가를 흉수로 지목하도록 유도하 는 데는 실패했지만, 시선 분산은 확실하 게 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혹호문을 괴 멸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조사를 한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러고 보면 금강문이라는 감투가 꽤나 효 과적이었다 단순무식이 욕처럼 들리지만, 모략을 세우진 않는다는 뜻이 되었다. 각 문파의 수장도 금강문은 용의선상에 올 려놓지도 않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데도, 가장 멀리 보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상황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정우는 거리끼지 않았다. 혹호문의 괴 멸은 동생의 납치 미수로 빡쳐서 벌인 짓 이기는 하나, 8대 무문을 가늠해 보고 싶 은 호승심도 작용했다.
물론 흑호문을 전체로 보는 일반화의 오류는 범하지 않았다. 다만 수준을 감안 해 전력을 대비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한땐 천하 최강자의 칭호를 받았다. 시 대와 차원이 변했다고 해서, 제자리에 머 물고 싶지는 않다.
“일 끝났으면 올라가죠.”
“섭섭한소리를 하는구나”
섭섭하다니, 어디가?
일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 하잖아 회의에 열중한 것도 아니고. 집에 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 친구 성 여사의 얼 굴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여자의 평균수명 이 남자에 비해서 높다고는 하나, 자기 멋 대로 사는 문주가 성 여사보다는 오래 살 것같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겠다는 말이더 냐!”
짐짓 근엄한 분위기를 잡는 이호극이었 다. 지방에 내려왔다면 그 지방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원하는 게 뭐예요?”
“배가고프구나.”
“회의 전에도 먹은 걸로 아는데요.” 누가 보면 점심을 거른 줄 오해하겠다.
이호극은 삼시세끼를 거르지 않는 성격
이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이십(三十)세끼는 되는 듯하다. 자잘한 간식을 포함하지 않 더라도. 요즘 맛 프로그램 중에서도 최고 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맛나는 녀석들보다 많이 먹는다.
“어허, 시간이 무려 3시간이나 흘렀어.”
“어련하시겠어요. 그럼 근처에 아무 데 나가시죠.”
이호극이 오른손 검지를 까닥거리며, 한심하다는 듯 정우를 바라보았다.
맛의 오묘한 세계를 알지 못하면 진정 한 사내가 아니라나.
“미식가에게 아무 데나라니, 그거야말
로 큰 결례다.”
생긴 건 소도 한입에 잡아먹을 것처럼 생겨가지고, 궁극의 맛을 찾는 미식가란 다. 그러나 설득력이 제로가 아닌 마이너 스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봐도 문주는 미 식가하고는 어울리지 않은 체형이다.
궁극의 대식가라면 모를까.
정우는 문주와 설전을 벌이지는 않았 다 한발 양보했다. 살면서 제일 치사한 행 동이 먹는 것 가지고 타박하는 짓이었다 그거 얼마나한다고.
“어디로 가게요?”
“오기전에 블로그를살폈지.”
“맛이 있을까요?”
“최소한 평타는 치겠지.”
호극의 주장이 타당했다. 맛있다고 소 문이 나도, 취향에 맞지 않으면 맛이 없는 거다. 그래도 맛집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면 검증은 어느 정도 됐다고 볼 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