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사후 처리 ⑵
퍼퍼퍼펑!
작정하고 날린 도격에도 뚫리지 않자, 그들도 다급해졌다.
죽기 살기로 칼을 휘둘렀다
도기는 강기의 형태를 띠었다 완전하지 는 않더라도 파괴력은 상당했다.
그들은 흑호문의 빈객이다.
박영천이 죽기 직전, 세가 불리해지자 재빨리 도주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전투 는 그들에게도 하늘 밖의 하늘이었다. 도 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 차이였다. 멀 뚱히 서 있다가는 타국에서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었다. 대국의 무인으로서 자존심 이 상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어서 뚫지 않고 뭐하는 거야?”
“결계가 지나치게 촘촘합니다!”
가문의 절기를 전력으로 부려대고 있으 나, 결계는 출렁거릴 분 문을 열지 않았다.
뒤에서 괴물이 쫓아오고 있기에 똥줄이 타고 있었다.
“이것들이 살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 나!”
“우리가 간단히 죽어줄 것 같아!”
양용익과 단원들도 사생결단의 각오였 다. 뚫리면 저세상으로 곱게 직행하지도 않는다. 사체라도 온전하게 유지하고 싶으 면 막아야 했다. 결계에 본원지기까지 쏟 아내며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다.
“뇌정만천!”
“ 건곤연환!”
“벽력파섬!”
뇌기를 머금은 도기가 난무함에도 결 계는 부서지지 않았다. 부서지려고 하다가 계속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서 화병 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헉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서두르는 바 람에 공력 소모가 지나치게 많았다.
저벅
느긋한 발자국 소리가 빈객의 귓구멍 속으로 살포시 들어가 고막을 울렸다. 안 간힘을 쏟아내던 자들은 거짓말처럼 우뚝 서고 말았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율 이 치고 올라가폭파되었다
멈칫!
돌아서기 두려운 마음이 크다.
그런데 몸이 저절로 돌아섰다.
씨익!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방금까지 격렬한 사투를 벌였다고는 믿 어지지 않을 만큼 멀쩡했다. 호흡의 기복 은커녕, 갈무리된 기운이 일체 감지되지 않았다. 치열함을 거짓말로 만드는 평온 함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어이, 떼W!”
이리 오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다 불현듯 중학교 때 국어수업이 떠올랐다.
“아! 되놈이 표준어인가? 아무려면 어 때. 어서 오랄때 오는게좋을거야.”
혹호문의 빈객은 인상을 구겼다
빠직!
자신들이 부르면 달려오는 똥개도 아니 고.
그전에 대국의 무인에게 떼놈이라니!
자존심을 잘도 긁어대고 있었다. 냉철 한 심기를 지닌 박영천이 혼들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 지고 있으면서,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야말로 시종잡배를 다루듯 무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우릴 모욕하지 마라!”
“떼놈을 떼놈이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 됐어? 그리고 곧 죽어도 자존심을 지켜달 라는 거냐.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우릴 건드리면 세가에서 가만있지 않 을 것이다!”
“팽가 따위가 뭐라고.”
전생에서 팽가는 정우의 먹잇감에 지나 지 않았다.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저들끼리 호쾌하다고 평가를 하는데, 웃기는 개소 리다. 좀스러운 것들이 뭐라도 되는 양 으 스대는 꼴이 하도 꼴 보기 싫어서 본보기 로 박살을 내주곤 했다.
‘좀심했었나? 아무렴어때.’
전생할 때마다 팽가를 부셨다. 4번째 전생에서 왜 가만히 있는데도 건드리냐고 했을 때, 전생에 죄를 지었다고 말해주었 다 그때 팽가주의 표정을 봤어야 했다.
“네놈이 감히!”
“감히 뭐 이 새끼야.”
정우의 주먹이 공기를 쳤다
보통 사람이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 면 맨땅에 헤딩이 되겠지만, 절대고수쯤 되면 무형권(無形호)이 된다.
퍽!
팽가의 3공자, 팽세기의 당찬 얼굴이 팩! 하고 젖혀졌다.
‘어떻게?’
뭔가 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방어는 불 가능했다. 젖혀진 얼굴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선혈이 인중을 타고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이놈!”
팽세기를 보좌하는 자들
팽가의 10성에 속하는 건곤대의 대주 와 부대주인 팽위관, 팽모수다. 그들은 벼 린 칼을 봅아들며 달려들었다. 대륙의 무 인 중에서도 제법 유명한 자들에 꼽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우의 정보력에 없 는 무명, 한마디로 듣보잡이다.
“뭐 이런 병신들이 다 있냐.”
살기 위해 도망친 놈들이 현실 파악이 부족했다. 삶을 가벼이 보고 달려드는 부 나방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현실감각을 키워줘야지.
파아앙
건곤보를 펼치며 맹렬히 돌진했던 팽위 관과 팽모수는 원래의 자리보다 멀찍이 나 가떨어졌다 쿠다다당!
바닥을 심하게 구른 후 일어섰을 때 팽 위관은 기혈이 크게 진탕되었다. 믿어지지 않는 불합리한 현실의 극치였다. 비록 팽 가의 방계 출신이기는 하나 무력을 인정 받았다. 그런 자신이 단 일격에 몸을 가누 지 못할 지경이라니.
이분이면 그나마 비참하지는 않다. 놈 은 제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고 서 있었 다 부들부들!
팽위관이 기혈을 다독이려고 애를 쓰 는 그때, 팽모수의 육체는 요동치고 있었 다. 온몸에 돋은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어서 핏줄의 탄력이 버티지 못하고 찢겨지며 사방에 붉은 선혈 을 부렸다. 마치 물을 세게 틀어 놓은 호 스의 끝을 틀어쥐었을 때처럼. 선혈을 분 출하며 핏빛 공간을 연출했다.
촤아아<川
한정된 핏물을 털어낸 팽모수의 동공 은 잿빛으로 변했다. 영혼은 떠나갔고, 기 력이 다한육신은 맥없이 고꾸라졌다 충격적인 광경은 슬로모션처럼 팽위관 의 동공을 강타했다.
“부대주!”
그는 팽모수의 허무한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대주는 팽가에서도 무력 을 인정받은 무인이다. 타국에서 이리 허 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었다.
“네 이놈! 감히 팽가의 무인을 죽이고 도 무사할 성 싶으냐!”
“무사하지 않으면 네놈이 어쩔 건데?”
현실을 파악이 느리면, 말이라도 곱게 해야할텐데.
곱게 죽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노옴!”
“주둥이만 깝치면 현실이 달라지냐.”
하북팽가가 중국에서나 명문이지, 정
우에게는 몇 번이나 무너뜨렸던 허접한 백 도문파에 지나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조절 했기에 망정이니 아니었으면 부딪치는 순 간 홑어진 살 조각을 찾아야 했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떠들고 있 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이놈들은 변하지를 않았다.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주둥이만 천하제일이었다. 그만 큼 멸문당해 봤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지.
“죽여 버리겠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하는 수 없지.” 정우는 달려든 팽위관의 멱살을 잡아 챘다. 대충 허공으로 손을 뻗었을 분이지 만, 팽위관은 접인지력에 휘말려 의도와 는 상관없이 안착했다.
바동바동!
숨통이 막힌 팽위관이 얼굴이 홍당무 처럼 달아올랐다. 핏발이 선 동공은 언제 라도 터져 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정우는 팽위관을 종잇장처럼 좌우로 흔들며 물었다
“죽인다며?”
“크으으윽!”
“벙어리가 되셨나?”
“크으으윽!”
팽위관은 말문까지 막혀 있었다. 전신
을 옥죄는 가공할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박영천과 대적을 하고도 괴물은 멀쩡했 다. 상대는 자신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 다. 팽모수의 허망한 죽음도 당연했다. 자 신도 괴물이 살려주었기에 삶을 연명한 것 이다. 개미가발악을 한들, 인간에겐 한낱 밟아 죽일 개미에 불과했다.
“어이, 너.”
“?…(움찔)!”
정우에게 지적당한 팽세기가 뒷걸음을 쳤다. 비록 팽가의 3공자라고 하나, 팽위 관과 팽모수를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실 력은 아니다. 그들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런 팽위관과 팽모수를 저항불가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 괴물이었다.
“살고싶지?”
“살?…려 줄 것입니까?”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이 난 팽세기였지 만, 사람 나름이었다. 정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 것이다
“이걸 삼키고, 내가 알려주는 구결을 익혀.”
정우가 내민 환약을 보고 팽세기는 멈 칫했다. 결코 좋아 보이지 않은 무광택의 검은 환약이었다. 먹는 순간 평생을 저당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몸에 좋은 보약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게 뭡니까?”
“알면 뭐하게?”
“이건 지나친 처삽니다. 자고로 무인은 모욕을 주지 않는다 했습니다!”
“새끼들, 정말말많네.”
먹으라면 먹을 것이지.
성질을 잘 돋운다.
정우는 강제했다. 입을 벌려 친절히 환 단을 털어 넣어 주셨다 목 안으로 넘어 들 어간 환약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자 팽 세기는 절망했다.
“너도 먹고.”
팽관위까지 친히 챙겼다. 삼키고 소화 가 된 상태에서 구결을 외우게 한 후, 기절 시켰다. 중간에 구결을 틀리게 외우려고 하자, 최상급의 분골착근 코스를 선사해 주었다. 강단이 있어도 당하고 나면 순한 양이 되어 버린다
“깨고나면알지?”
“물론입니다.”
“위계는 엄중해야 하는 법이야”
자고로 선착순이다. 먼저 들어와서 강 해진 놈이 장땡이다. 순서를 깨려고 한다 면 선임의 다구리를 감당해야 한다. 일대 일이면 지지 않는다고? 그딴 말은 들어주 지 않는다. 전에 무슨 일을 했든 혹금단은 무조건 선착순이다. 물론, 선착순임에도 실력이 떨어지면 저세상 구경보다 더한 지 옥이 기다린다.
“단주께서 명하면 발가락이라도 핥게 만들겠습니다”
“지저분한 입을 누구 발가락에다가 대 려고?”
“시……정하겠습니다.”
이로써 혹금단의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 게 되었다. 하북팽가에 대해서 알아보려 면 이들이 필요하기는 했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땅덩어리만큼은 지나치게 커서 조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잘 조교 된 떼놈의 입으로 직접 들으면 시간과 노 력을 절약할 수 있었다
“흔적 지우고, 이놈은 저쪽에다 갖다 놔”
“예, 단주.”
이번 일을 하북팽가와 흑호문의 대결구 도로 몰아갈 계획이다 친히 혹호문 곳곳에 하북팽가의 도식 을 새겨 놓았다 도법이 다 거기서 거기고, 비슷하게 흉내는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여기에 신빙성을 기하기 위해서 팽모수를 죽이고, 팽세기와 팽관위는 데려가기로 했 다. 다 죽이기보다는 실종이 끼어 있어야 신빙성을 높일 수 있었다.
흑호문에서 팽가의 무인이 죽었으니, 무문과 길드, 연합에서도 제대로 된 조사 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북팽가에서도 직계가 실종되고, 방계가 죽었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다.
“때마침 잘 나타나줬어.”
하북팽가의 개입으로 작업이 수월하기 는 했다. 하지만 없다고 해도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