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은 속성뿐만 아니라, 공력과 생 기까지도 흡수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속성흡입과 생기흡혈로 인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는 하나, 능력은 상 당했다. 방금 정우의 감각을 뚫고 들어올 때 공간이동, 가속, 육체강화를 동시에 사 용했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정우는 공력과 생기를 빼앗겨, 미라가 될 것이다 제 3장 사후 처리 ⑴
“뭐지?”
박영천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위화 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 즉시 암천을 걷 어내려고 했다.
한데,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다. 암천이 통제되지 않은 채 시야를 가렸다. 익숙했 던 흐름이 전혀 다른 흐름으로 변해 있었 다
지잉!
암천을 되찾아오기 위해 애를 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어둠은 박영천을 철저히 배제했다
“설마?”
박영천은 애써 부정했다. 홉기공은 빈 객의 세가와 계약을 맺으면서 얻어낸 흡성 마공(吸星魔功)이었다. 일단 시전이 되면 체 내의 생기가 모조리 다 빨려 들어갈 때까 지 멈추지 못한다 하물며 기철은 속성 강 탈과 흡성마공으로 유니크 8급에 올라섰 다. 괴물 같은 놈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한 다
그때였다
암천이 걷혔다.
부릅
박영천은 자신을 향해 서 있는 아들을 봤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 생기 를 잃고 쭈글쭈글해진 피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앙상한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마치 흡기공에 당해 생기를 잃어버린
목내이(미라)처럼.
꺼억!
포식자의 경쾌한트림 소리.
기철의 뒤로 서 있는 자, 정우였다 생기 를 잃기는커녕 피부에서 반짝반짝 광택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피부는 관리보다 천 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 다. 공력을 피부에 양보한 듯하다
“잡다하게 많이 먹어서 그런지, 정제하 는데 꽤 걸리네.”
정우는 자신에게 흡기공을 펼친 기철의 행동에 피식거렸다. 본인들 딴에는 회심의 연수합격인지 몰라도 무모한 짓이다. 정우 의 전생은 대혈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그 시절 흡기공을 배우지 않았을 것 같은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부가적 옵션이 홉기공이다. 백도의 협객은 흡기공을 배척 하고, 사도의 방술로 취급할지 몰라도 흡 기공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무공이었다 최악의 상태에서 흡기공만한 무공은 드 물었다 생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잡다하게 익힌 흡기 공을 펼치진 않았다. 현천의 흐름으로 정 리, 홉자결을 운용하면 얼마든지 생기를 빨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 정우를 향해 근본도 없는 천한 흡
기공을 사용했으니, 제 스스로 먹잇감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흡기공의 경우 무 공의 우열이 크게 작용한다.
박영천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고, 암천이 제멋대 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어둠은나의 친구거든.”
현천의 극의를 이룬 정우에게 암천을 발휘한 것부터가 에러다. 무차별적으로 무 형도강을 난사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암천의 흐름을 잡아먹을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흐름을 읽어내는 순간, 숨어 있는 쥐새끼를 끌어내기 위해서 빈 틈을 내주었다. 박영천이라면 최후의 수 를 가지고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것이 아 들이었고, 강탈 능력자인 줄은 몰랐지만.
“원천까지 흡수됐으면 마나를 홀라당 털린 뻔했네.”
속성도 공력과 마찬가지로 선천지기에 해당하는 속성 원천이 존재한다. 이것이 사라져 버리면 속성을 사용하지 못한다.
강탈자에서 피탈자가 되었을 때 인간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더 탐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허해진 정신과 육 체를 견딜 수 없다. 미라가 되어 버린 기철 이지만, 살아 있었다. 곧 죽을듯 숨을 헐 떡거리면서도 속성과 공력을 탐했다
“내……놔?….내공력과속성을?…!” 정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잡다하다는 의미를 떠올리면 답이 나 온다. 기철은 미숙하지만 저 나이에 유니 크 8급에 올라섰다. 걸맞지 않은 능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상당한 수의 유니크가 기철의 흡기공에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 상태로도 흡기가 가능한 걸 보면, 마공이겠지. 이런 종류의 잡다한 마공은 한국에서 좀처럼 구하기 어려울 테니.”
정우의 기감에 잡힌 자들, 익힌 내공을 살피니 견적은 나왔다. 차원이 다르다 하 나, 익히고 있는 무공의 기질은 바뀌지 않 았다.
꽈악!
정우는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기철 의 얼굴을 잡았다. 기철이 마르기는 했어 도, 원래라면 상당히 큰 키라서 꽤 무거웠 다. 하지만 생기를 흡수당한 상태라서 종 잇장보다 가벼웠다.
“연구가 필요하니, 살려는 드릴게.”
강탈 능력자를 발견한 이상 연구를 해
봐야했다.
“이놈!”
기철을 빼돌리려고 하자, 박영천이 가 만있지 않았다. 강탈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가면 흑호문의 존폐가 위험했다
“늦었어.”
정우가 더 빨랐다. 거리도 가깝고, 기철 은 속절없이 문파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거리와 궤적을 계산에 넣었으니 알아서 받아야 했다 받지 못하면 그에 준하는 험 준한 대우가 기다린다.
“다 치우고 나니 훤하네. 이제야 제대로
붙어볼수 있겠어. 크크크크!”
정우의 히죽거림에 맺힌 살의는 진심이 었다.
오늘의 콘셉트는 복수다. 그 의미에 걸 맞게 살의를 풍겨주셨다. 전투를 즐기다 이제야 상기된 동생의 납치 미수에 미안 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수연아 미안’
모처럼 만나는 친근함에 취해서, 흥이 돋았다. 게다가 뜻하지 않았지만 근래에 대두되었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 다
“네놈이 감히!”
“아직도 감이 안 으나;
정우와 박영천의 병기가 교차했다
쿠아앙!
충돌이 일어났다.
박영천의 신형이 거침없이 흔들리더니 멀어져 갔다. 힘에서도, 공력에서도, 상대 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검형이 도형을 넘 어서지 못했다.
파팟!
정우는 멈추지 않고 쫓아가 박영천을 압박해 나갔다. 한 손으로 도를 휘두르며 검로를 막아섰다. 어디로 가도 박영천은 도의 그물망에 갇혔다.
차아악!
베어진 상처가 벌어지며 핏물이 튀었 다. 이어서 나아가는 칼의 궤적에 박영천 은 속수무책이었다. 상처가 아물지를 않 았다. 재생력을 넘어서는 날카로운 예기와 살의였다. 피부와 뼈를 관통해 심령을 파 고드는 살의는 섬뜩함 그 자체였다. 이제 껏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살의. 말이 되지 않았다.
“네?놈^대체
“ 알잖아”
심령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살의였다. 박영천은 경천동지할 살의에 모골이 송연 해졌다. 넘어서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뎅강!
팔이 잘려 나갔다.
파닥파닥!
생기가 빠져나가지 않은 오른팔은 뭍에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렸다. 그럼에도 박영 천은 잘려진 팔을 신경 쓰지 못했다. 왼쪽 다리가 잘려나가며 중심을 잃었다. 사지가 모두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몸뚱이와 머리분 이었다.
크아아아악!
사지가 잘려나간 현실에 박영천은 절망 했다. 이건 현실이 아니어야 한다. 고작 1
명으로 인해 흑호문이 박살나고, 자신은 처참지경에 처했다.
“몸 안에 코어를 박으셨네.”
박영천의 능력치가 생각보다 강한 이 유였다. 한편, 금강문의 정보 부재를 절실 히 깨닫는다. 다른 무문에서는 코어를 활 용하거나, 몸에 부착하기까지 했는데 금강 문은 이제 걸음마 단계였다.
뜨득!
정우는 심장에 박아 놓은 코어를 뜯어 냈다. 생살이 뜯겨져 나가고, 능력치가 반 감되자 박영천은 비명을 질렀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보잘 것 없는 몸뚱이만 남았다.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을…… 크악!”
정우는들어주지 않았다
개소리를 지껄이는 박영천의 입을 발로 차서 뭉갰다. 다행히 재생력이 남아 있어 서 회복이 되고는 있었다. 떨어져 나간 팔 다리도 핏물이 멎은상태다.
“너무진부하잖아”
죽어서도 용서를 하지 않으면 어쩔 건 데? 현실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박영천이 죽인 자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 았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마지막 유 언이라도 들어주지. 차라리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에게 구걸이라도 하는 편이 현 실적이다
“좀 더 참신한유언을 남기라고.”
박영천은 치가 떨리도록 수치스러웠다. 모든 것을 잃고, 사지가 잘려 나간 것보다 놈의 세 치 혀가 더 고통스럽다
“치욕을주지 말고 어서 죽여맛!”
“그래.”
정우는 주저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뎅강
몸과 분리된 박영천의 동공은 불신이 담겼다. 죽이란다고 바로 죽여 버릴 줄은 예상 못한것이다.
데굴데굴!
잘린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부드득!
정우는 가볍게 지르밟아 주었다. 혹시 라도 재생하거나, 미련이 남으면 곤란하다. 허연 뇌수와 붉은 선혈이 바닥을 차분히 적셔 주었다
“분리수거를 좀해야겠지.”
정우는 시체 처리까지 깔끔했다. 죽어 버린 시체의 상태대로 차곡차곡, 사연을 만들어 놓았다. 죽음을 조작하는 중이다.
왜 이렇게까지 정성을들이냐고?
만사불여튼튼
별의별 속성이 다 있는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 행여나 현 장기억 속성을 가진 자가 나타나면 곤란 했다.
흑호문의 외곽
결계를 치고 있었던 흑금단은 날아오는 물체를 받아 들어야 했다. 갑자기 던져 놓 고, 어떻게 받냐는 논리적인 항변은 무의 미하다. 이유를 막론하고 단주가 받으라면 받아야 한다 그것이 혹금단의 처지다.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그
즉시 칼을뽑아오는 족족 베어 버렸다. 불 입불출(不入不出). 벌레 한 마리도 새어 나 가서는 안되었다 촤악!
베고, 또 베고.
그수만족히 30명이 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도망치다 죽은 자들은 혹호문의 무인이 다. 제 문파를 놔두고 죽기 살기로 도망친 다는 점이 현실을 대변했다.
“흑호문을 박살내신 거네.”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겠죠?”
“너 같으면 믿겠냐?”
“아니요.”
단신으로 8대 무문에 속한 혹호문을 부셔버렸다. 단주의 나이를 거론하면 비현 실의 극치를 달린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 니라는 소리다. 지금도 이런데, 망할 놈의 단주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더 강해지고, 또 강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혹금단은 최선을 다해야 했 다. 단주가 빡치면 지옥은 그나마 안락한 공간이 된다.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단주가 죽 기를 바라기도 어렵다. 단주의 사망은 혹 금단의 고통스러운 몰살이었다. 차라리 죽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평생 고통받을
수도 있었다
양용익과 강태산은 결계를 향해 쇄도 해 들어오는 자들을 봤다. 좀 전 약 맞은 바퀴벌레처럼 불뿔이 흩어지던 혹호문의 무인들과는 다른,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다르지 않았 다. 다급함이 잔뜩 묻어 나왔다.
꽈아아앙!
결계를 확인한 자들은 지체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공력이 실린 칼에서는 도 기가 뻗어 나와 결계를 두드렸다.
“모두달라붙어!”
뚫리면 죽는다
양용익과 단원 30명이 결계에 공력을 극한으로 퍼부었다. 절대 뚫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