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시각의 차이 (3)
‘시간정지를 전력으로 펼쳐.’
‘예, 대주!’
성난 황소처럼 돌진하던 연천우. 기세 와 달리 냉철했다. 흑호살검을 구사하는 동시에 상대를 옭아맬 전술을 펼쳤다. 공 격하는 자들 중에 시간을 일정한 타이밍 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대원이 있었다. 등 급과 능력의 차이가 크면 속성이 발휘되 지 않을 수도 있지만, 3명이 동시에 시간 정지와 그림자 묶기를 발휘했다. 자신을 필두로 공격을 펼치는 10명의 대원과 상 대를묶는 10명의 대원이 나뉘었다.
“제법인데.”
그림자가 발목을 잡아채고, 시간이 어 긋났다:
정우라도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어긋난 시간을 갈라내며 연천우의 검이 목에 닿기 일보 직전이다. 시간의 어긋남이 주는 흔들림, 방심을 절 묘하게 꿰뚫었다
“죽어탓!”
진기유입을 활용한 연천우의 속성은 강 현과 비슷한 가속이었다. 방심을 찌르고, 타이밍을 어긋나게 하고, 속도를 높여 단 숨에 끝장내는 연천우의 필살기다 말살검 (扶殺劍)으로 불리는 그의 별호가 이를 대 변한다.
스왁!
연천우의 검이 정우의 목을 긋고 지나 갔다.
무방비나 마찬가지, 목에서 붉은 선이 이어지며 잘려 나가야 한다 부들부들!
연천우의 두 눈은 불신을 머금은 채 심 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식선을 아득히 벗 어난, 전혀 예기치 못한 전개였다 푸스스스!
반 토막이 된 검신(劍身), 검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예기를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검 날이 부식되어 녹아들어 가더니 검의 손 잡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검의 재질은 자 이언트 코불소의 뼈와 티타늄 합금이었 다. 현재 나와 있는 검의 재질 중에서도 최 상위에 속했다. 그럼에도 엿가락이 녹아 들듯 부식되었다 부들부들!
연천우의 두 눈은 불신을 머금은 채 심 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식선을 아득히 벗 어난, 전혀 예기치 못한 전개였다.
푸스스스!
반 토막이 된 검신(劍身), 검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예기를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검 날이 부식되어 녹아들어 가더니 검의 손 잡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검의 재질은 자 이언트 코뿔소의 뼈와 티타늄 합금이었 다 현재 나와 있는 검의 재질 중에서도 최 상위에 속했다. 그럼에도 엿가락이 녹아 들듯 부식되었다.
는 애송이와는 다르다. 전투 스킬은 물론 경험과 연륜에서도 연천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케이브의 독을 좀 개량했지. 맛이 어 때?”
“쿨럭!”
연천우는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쳤다.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검은 핏 물을 연신 토해내었다. 오장육부가 순식 간에 녹아들어 생기를 잃어갔다.
“제?…기랄!”
내공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독이 통
하지 않는다. 하물며 연천우와 같은 강자 가 이토록 간단히 중독되어 쓰러지다니, 경악할 일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천우의 공간에 청호대가 포함되었다. 그들은 이미 독수가 되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시큼하고 역한 독기가 사방을 메 워갔다. 때맞춰 분 바람이 공간을 장악하 자 100명의 무인이 삽시간에 물처럼 녹아 내렸다 재빨리 물러서며 공력전이로 공간을 차 단하지 않았다면, 무인들은 전멸을 당했 을 것이다. 불과 3, 4m를 사이에 두고 벌 어진 삶과죽음의 경계였다
부르르르!
적호대주와 청호대주의 죽음에 이어 100명의 무인이 황천길을 따랐다.
“말도안되는?!”
기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상식 밖의 상식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단 말인가? 제압되어 살려달라고 비굴하 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것이 지극히 합 당한 현실이다. 하지만 놈은 혹호문을 쳐 들어와서 무인들을 독수로 녹여냈다. 자 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가공할 무력시 위였다.
스윽!
눈을 마주친 기호는 뒷걸음을 쳤다: 놈 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100명을 죽이고 서도 태연자약했다. 고작 17살의 나이로 가능한 일인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 본 자만이 저리 태연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고작 100명에 쫄기는”
비릿한 미소에 생명경시사상(生命輕視思 想)이 잔뜩 묻어 나온다.
정우에게 있어 저들은 살아 있는 고깃 덩어리에 불과했다. 개돼지는 일용할 양식 을 제공해 주지만, 이놈들은 하등 쓸모없 는 사회의 해악이다. 그렇기에 마음의 불 편함은 티끌도 없다.
설령 아니라고 한들 관심 밖이다. 수만 의 무인을 죽이고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우다.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어 불성설, 그것이야말로 위선이었다 정우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바로 악행을 저지 르고도 위선을 떠는 놈들이다. 무당의 검 선이 그랬었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 행세하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수많은 사 람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 게 발뺌하는 걸 보면 낯짝도 두꺼웠었다. 끝까지 뻔뻔하게 일관성은 있어서 대우는 해주었다.
“입은적을수록 좋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고 하나, 살인멸구야말로 비밀 보장의 필 수요건이다. 정우의 의지가공간을 잡아챘 다 우웅!
마음의 칼이 그려졌다. 그러자 어둠에 물든 무형의 칼이 바짝 날을 세웠다. 동시 에 위화감이 공간 전체를 압도한다
“설마?”
“모?…두피햇!”
무형도(無形刀)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문
주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들 이 막아낼 부류가 아님을 직시한 것이다. 하물며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도망가기에는 늦었다.
휘잉!
무형의 칼이 공간을 휩쓸었다. 일정한 영역이 피의 부름을 받았다. 막아선 자들 과 막지 못한 자들의 경계가 뚜렷하다.
철퍼덕!
모인 수의 3분지 2가 무형도에 난자되 어 고깃덩어리로 화했다. 그나마 살아남 은 100명의 무인도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 리가 멀었다. 칼을 막아낸 충격으로 인해 기혈이 뒤엉키면서 심맥에 타격을 받았다.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가운데, 월 광이 비추어 지니 정육점 분위기를 풍긴 다 홀로 우뚝 선 정우는 정육점 주인 같았 다
1근씩 잘라서 파는.
“호오, 막았네.”
정우는 가식 없이 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섬뜩함을 맛보았다. 쳐들어왔을 때만 해도 분수를 모르고 설 친다 여겼건만, 단순히 광기에 젖은 광인 이 아니었다. 무모함을 뒷받침할 가공할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이 알 려지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니, 믿 기 힘든 현실이었다.
“도?…대체 네놈은누구냐?”
“어째서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한 서린 외침이 절절했다.
무인의 연대가 강한 편은 아니더라도, 한솥밥을 먹고 동고동락했던 자들이 한줌 의 혈수와 독수로 사라졌다. 이유라도 알 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놈은 재미로 자 신들을 죽이고 있었다. 맥없이 당하고 있 는 판국에 연유를 모르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다들 억울한가 봐 이유라도 알고 싶은 거야?”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우릴 죽이려 는것이냐!”
속 시원한 해명을 원하는 눈빛들이다.
정우는 동조해 주었다. 망자(亡者)의 소 원도 들어준다고 했는데, 예비 사망자의 소원을 풀어주기로 했다.
“내 동생을 납치하려고 했기 때문이 야”
“미?친! 납치도 아니고 고작 미수로
수백을 죽인단 말이더냐!”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고역이기는 하다. 자기들 주제를 모르고, 감히 내 동생과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살 아서 주둥이를 나불거린다고 다 같은 사 람인 줄 착각하는 것들이 싫다
“고작이라고?”
정우에게 있어 가족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물며 버러지보다 못한 하등 생물 따위가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지 껄이고 있었다.
“내 동생과 고깃덩어리를 비교해? 이거 더럽게 기분이 나브네.”
“고?…깃덩어리? 이놈!”
자신들이 정육점에서 파는 150(90kg) 근의 돼지고기란 소린가! 그들은 살아오면 서 들어보지 못한 극심한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혹호문도의 격렬한 분노에 정우는 같잖 다는 시선을 보냈다. 돼지고기는 먹을 수 나 있지 이놈들은 살아 있어 봤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주제에 자신들이 사 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칼로 밥 먹고 사는 놈들이 설마 인권 이라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헛소 린 제발 지껄이지 마. 게다가 난 이미 패를 꺼냈어.”
정우는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의미는 명백하다
비록 정당하지 않은 짓을 했다 하나, 수 백의 무인의 죽였다. 이 일이 외부로 홀러 나가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그리고 난 너희를 믿지 않아”
정우는 사람의 입을 믿지 않는다. 특히 억울한 희생양인 양 자기 위주로 해석하 는 놈들은 더더욱 추악한 짓을 일말의 가 책도 없이 저질렀던 놈들이 궁지에 몰렸다 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꼴이라니. 배 알이 꼬일 지경이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여. 그게 편하니
까:’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문주께서 네놈 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혹호문의 문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 이다. 그가 이 사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 고 있었다 혹호마제 박영천은 대외적으론 7급으 로 알려졌지만, 8급에 오른 자다. 무인들 의 신뢰는 당연했다.
“믿음은 좋지.”
하지만 그 믿음이 부서질 땐?
절대적 신뢰가 깨지면 무인도 한낱 인
간에 불과했다
정우는 그러한 광경을 많이 봐왔다. 자 신들이 믿고 있는 신뢰의 정점이 허무하 게 무너질수록 충격은 더 크다. 전생의 천 하제일이었던 무천성의 성주를 베었을 때, 그토록 끈질기게 저항했던 무천성의 단결 된 무인들은 허수아비가 되었었다
‘쉽게 끝나면 재미없지.’
시작부터 치고 들어가지 않고 서서히 숨통을 조이는 이유다. 상대의 패를 알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능력을 드러내야 한 다
‘원하는 만큼만’
굉음은들었다.
발생된 파장이 문파를 혼들었는데, 그 가 못 들었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다. 그러나 여긴 한국을 대표하는 8대 무 문의 혹호문이다. 누가 감히 본문을 해할 수 있단 말인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는 다 해도 마땅히 정리가 되었을 거라 확신 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은 점차 불 신으로 바뀌었고, 분노를 부추겼다.
‘무형의기?’
찰나에 생명력이 사라지며, 털이 곤두
서는 섬뜩한 예기가 불어닥쳤다.
벌떡!
박영천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자 신을 소름 돋게 할 만한 강자는 국내에 흔 치 않다. 8대 무문의 문주, 길드의 장 연 합의 최고위 간부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본문에 쳐들어 오진 못한다.
“대체어떤 놈들이!”
이는 결코 좌시하기 어려운 일이다. 본 문을 무시하고, 마제라 불리는 자신을 깔 보지 않고서는.
그는 즉시 호출했다. 대기 중이었던 혹
호대의 대주 공형수가 들어왔다. 흑호대야 말로 혹호문을 대표하는 최강의 무력부대 다
“철이는 준비됐느냐?”
“아직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