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7화 (47/500)

제1 장 시각의 차이 (2)

빠드득!

당황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정문은 문 파의 상징과도 같다. 습격을 하더라도 정 문으로 침입한다는 것은 깔보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몇 수 아래로 내려다보지 않고서야 정문을 부수고 당당하게 쳐들 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하물며 습격자는 단 1명이었다. 혹호문 을 자기 발아래로 보지 않고서는 하기 힘 든 행위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부글부글!

분노가 용광로처럼 불타올랐다.

무인은 자존심의 결정체다. 속이 하해 와 같이 넓은 부모님이나 부처님이 아니 다. 그야말로 아집과 똥고집으로 옹골차게 들어차 있는 집단이다. 똥개도 자기 집 앞 마당에서는 호랑인 줄 착각하건만, 하물 며 반골 기질이 다분한 혹호문이었다.

“네놈의 껍질을 벗기고, 사지를 분질러

주마!”

적호대주 장세진이 명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적호대 3명이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 다

쌔애앵!

날랜 동작에 살의가 실린다. 겁도 없이 본문을 쳐들어온 애송이에 대한 처벌은 당연했다. 살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혹호문의 정문에 선 자

후비적!

귀를 긁으며.

피식!

웃었다.

그것이 쳐들어가는 적호대원의 동공에 확연하게 비쳐졌다. 구름 사이로 비쳐진 월광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시야를 열어 준 것이다. 그래서 또렷하게 새겨졌다

“이놈이 감히!”

“미치지 않고서야!”

“곧 울게 해주마!”

명백한 비웃음, 귀찮음이 다분했다. 그 외의 해석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뜻이 모 호하지 않고 직선적이어서 화를 돋우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히얍!

기합을 내질렀다. 검은 호랑이의 발톱, 혹호조(黑虎M)를 삼각편대로 취했다. 정면 에서 치고 들어와 얼굴을 잡아채고, 양팔 과 다리를 제압할 심산이다. 간단히 죽여 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또한 배후에 모 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 판단했 다. 흑호문의 정문이 개인에게 파괴되었다 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굴욕이었다.

흑호조가 사내를 채는 것은 찰나의 순 간

0.1 초도 걸리지 않는다.

무방비로 서 있던 사내의 입이 열렸다.

“상황 판단이느려.”

“뭐?”

적호대가 내뱉은 유언이 되었다. 눈으 로 좇기도 힘든 섬광이 동공을 파고들었 을 때, 육체를 부여잡은 영혼의 고리는 맥 없이 끊어졌다. 검은자위가 잿빛으로 물 들어 버렸다.

처적!

적호대원은 몇 걸음 더 걸어가다 제자 리에 섰다

털썩!

힘이 풀린 다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간헐적 파득거림이 멈추기 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멈칫!

불같은 노성을 토해내던 무인들의 기세 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동료의 죽음 이 전에 어떤 수를 썼는지 눈에 담지 못했다. 쇄도해 들어가던 적호대원 3명이 제 스스 로 고꾸라졌을 분이다

‘아니!’

적호대주 장세진의 뒤를 이어 청호대주 연천우도 당도해 있었다. 그들에게도 방금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무엇을? 어떻 게? 인과가 빠져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희미한 빛의 섬광

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빠름, 즉 쾌(快) 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코 납득하기 어려 운 현실이다. 놈이 자신들의 눈을 벗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침 입자는 거구이기는 하나, 나이가 어렸다. 많아 봐야 20을 넘지 않을 것이다.

“네놈은대체 누구냐?”

의문이 담긴 적호대주의 일갈에 적의가 가득담겼다.

정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의문은 현재 중요하지 않았다. 정문을 부수었고, 무인을 죽였다. 답은 명확했다. 자신은 흑 호문의 적이다. 그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제압을 하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 나가되어야 한다.

의문은 그다음이다.

‘머뭇거리면 재미없지.’

무인은 좋은 주먹을 놔두고 주둥이를 나불거려선 안 된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폭력이 최악의 수단이나, 폭력이야말로 무 인의 아름다움을 어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오늘혹호문은 문을 닫게 될 거야.”

불난 데 기름을 제대로 부어주고 있었

다. 정문을 부수고, 동료를 죽였다. 더욱이 문파를 봉문시키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 다. 무인들의 분노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 들었다 덤비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도록.

“알량한 재주로 본문을 능욕하다니! 네놈을 결코 성히 죽이지 않겠다!”

적호대주의 쩌렁쩌렁한 울림에 살의가 팽창되었다. 그의 공력이 낮지 않음을 보 여주었다. 최소 1갑자에 달하는 내력은 웅 장했다. 그의 육신에서 피어오르는 살의 는 형태를 띠며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혹호문이 언제부터 자비로웠다고. 가당 치도 않은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정우는 자비를 베풀 생각이 애초에 없 었다. 그 이유는 수식에 정통한 기호의 등 장으로 해명이 되었다.

“네?…놈이 어떻게?”

굉음을 듣고 달려온 공간, 그 앞에 자리 한 그림자는 기호의 상식을 가볍게 부셔버 렸다. 데리고 와야 할 인질이 아니라, 굴욕 을 안겨 준 악연이 자리했다

‘어째서?’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전이 실 패했다 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본문을 대 놓고 쳐들어올 수는 없다. 기껏 해 봐야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자들의 반응이다. 하물 며 정문을 부수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반가운 얼굴이지, 안그래?”

정우가 아는 체를 했다. 손을 들어 확인 까지 해주니 모른척 할수없다. 내가누 군지 모두에게 밝히라는 명백한 자기 PR 이었다. 마케팅의 기본을 철저하게 따라 주는 센스가 발휘되었다.

“미친, 여기가 감히 어딘 줄 알고!”

“어디긴. 인신매매범의 아지트겠지.”

“네가진정돌아버렸구나!”

“맞아, 내가지금돌아버리기 직전이거

드’’

기호는 당황스러웠다. 정우의 동생을 납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그들은 아 버지의 직속 명령을 받는다. 허튼 자들이 아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정우의 주변으로 익숙한 무복을 입은 자들이 누워 있었다. 하도 당 황스럽고, 놀라서 시야가 좁아졌었다.

‘적호대를 쓰러뜨렸어?’

적호대는 흑호문의 무력 3대 중에 하나 다. 전투력을 인정받은 선별된 자들로 구 성되었다. 더욱이 3명이 달려들었다면 3

각 편대, 즉 삼전살(三戰殺)을 이루어 혹호 조를 펼쳤을 것이다. 이는 적호대가 주로 사용하는 전법이며, 알고도 막지 못할 만 큼 정평이 나 있었다.

“아는 놈입니까?”

적호대주의 질의에 기호는 움찔했다. 도 련님으로 대우를 해주고는 있으나, 대주 급은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학교 에서 당한 굴욕을 제 입으로 토설하고 싶 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 했다.

“놈을 잡으세요. 그것이 우선입니다!”

“이후에 해명을 해주셔야합니다.”

이 공자의 표정만으로 짐작은 간다. 또 한 관련이 있다면 전문학교도 졸업하기 전 인 학생이란 뜻이다. 적호대는 오늘 망신 을 톡톡히 당한 것이다. 위명을 다시 세우 기 위해서는 놈을 사로잡거나, 죽어야 한 다 그. 크구. 그.!

기호와 적호대주의 작당 모의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는지, 정우가 하염없이 웃었다. 하는 꼴들이 참으로 가 소로웠다. 자신은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건방진! 알량한 재주를 믿고 한도 끝

도 없이 설치는……!"

적호대주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허공으로 잡아 채였다.

‘?…설마?’

상상도 못 한 현실에 어리둥절해하다 빠져나가기 위해서 공력을 운용했으나, 무 용지물이었다. 공간 속성의 활용도 불가 능했다. 하려고 하면 할수록 거대한 벽이 가로막았다.

부르르르!

적호대주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자존심을 세워봤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체를 드러낸 상대는 보여주는 것 이상 으로 무서운 자였다. 차라리 속성을 이용 한 수법이라면 납득이라도 되지, 순수한 내공이었다

“설친다고, 누가? 다시 말해 봐.”

‘살?…려!’

두려움이 뇌리를 지배했을 때 현실을 벗어난광경이 펼쳐졌다 우드드득!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환골 탈태 시에도 비슷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지금은 환골탈태와 관계없다. 사방을 조 이는 중력에 버티지 못하고 육체가 찌그러 지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즈르 즈 g I

?I?드트?I?三司

얼마 지나지 않아 적호대주는 둥그런 고기산적이 되어 버렸다. 피로 뭉개진 신 체에선 핏물조차 새어 나가지 못한 채 막 혀 있었다 휘

정우는 쓰레기를 치우듯 적호대주를 휘저었다.

파앗!

벽면에 부딪친 적호대주는 붉은 핏물 을 사방으로 토해내며, 조각조각으로 홑어 졌다 혹호문을 상징하는 무력대주의 최후 라고는 믿기 어려운 허망한 죽음이다 부르르!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무인 들의 동공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경악에도 급이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 다

“말?…도안 돼!”

현실과는 동 떨어진 광경을 납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 는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 을까?

납득할 범위를 벗어날 때의 반응은 범 인이나 무인이나 똑같았다.

“사?…술이다!”

공간 속성이라고 해도 최소 7급은 되어 야 적호대주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 고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속성의 활용도 유니크 등급의 차이가 크면, 강제하지 못 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에 이르러야 속성이 발휘된다. 하물며 적호대주는 유 니크 6급의 실력자였다. 엇비슷한 등급 간 의 실력 차를 감안해도 이토록 허무한 최 후는 어울리지 않았다. 최소한 실력에 걸 맞은 장렬한 최후를 보였어야 했다.

‘착각은 자유지.’

저들의 상식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격의 차이가 크면 어차피 다들 똑같았다.

코끼리에게 개미나 사마귀나 개구리나 그 게 그거인 것처럼. 개미 중에 가장 강하다 고 해서 인간의 상대가 되겠는가.

“사술이든 속성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 니지.”

사술에 당해도, 속성에 당해도 죽음은 매한가지다. 막을 수 없다면 이보다 더 훌 륭한 살인기예가 어디 있겠는가. 적을 기 만하여 죽인다 한들, 그것 역시도 능력이 다. 기만에 속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놈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전투에 수단 방법을 가리다니, 그것이 야말로 무인에겐 사치였다. 무공은 상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수단이지, 예와 형을 익히기 위한 자기 절제의 수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거면 그냥 명상이나 죽 을 때까지 하면 된다.

저벅저벅!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제자리 를 지켰던 정우가 무인들을 향해 걸었다.

수백의 무인이 포위진형을 갖춘 채 쉬 이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적호대주의 허망한 죽음은 층격, 그 자체였다. 거짓말 같은 현실에서 깨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 렸다.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청호대주 연천우의 일갈이었다. 그는 공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육체를 강화 했다. 좌우로 대원들이 검을 봅아 검진을 이루었다. 흑호문의 살검식(殺劍式), 천참만 륙(T-所萬W을 펼쳤다. 시체조차남기지 않 고 갈가리 찢어발기는 살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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