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케이브 코어 (2)
위이잉!
정우의 귀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통로의 끝에 도달하자 강한 바람이 휘몰 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공간은 짙은 암흑으로 뒤덮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 지 않았다 빛이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암 혹이었다.
“다들 적외선 안경 착용해.”
온통 검은 어둠으로 무장이 되었다.
마물의 마기가 감각에 잡혔다.
두웅!
열 감지 센서를 켰다. 그러자 적외선 글 라스에 투영된 붉은 색체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그 엄청난 수효에 정우를 제외한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토록 많은 수의 마물은 처음이었다. 어둠은 붉은빛 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섬뜩함을 배가 시켰다. 경험이 많은 무인마저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압도적인 수효다.
“대형 박쥐네.”
정우는 정체를 파악했다.
크기가 150cm의 마물로, 흡혈박쥐처 럼 생물체의 피를 빨아먹는다. 마물등급 은 5급으로 중급에 속하지만 만만히 봐 선 안 되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데다가, 어 둠 속에서 활동한다. 더욱이 지상마물이 아닌 공중마물이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대상일 수밖에 없다. 자칫 한 번이라도 박 쥐에게 물리면 그 즉시 피가 모조리 빨려 미라가 될수 있다.
스쳐도 문제다. 대형 박쥐의 이빨에서
분비되는 액체는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끼요요요욧!
대형 박쥐가 먹이를 감지하고 소리를 보 냈다. 1만에 달하는 대형 박쥐가 떼를 지 어 진형을 갖추었다. 뿜어내는 소리가 귀 를 찢어발길 듯 시끄러웠다
“너무 많아”
5급마물이 10마리가넘어가면그때부 터는 6급의 유니크도 상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전투 경험이 적은 강우는 피 빨려 죽기 딱 좋았다. 명년 오늘이 제삿날 되기 좋았다.
‘이 파장은좀 위험한데.’
간만에 제법 큰 건이 걸린 것 같다.
정우는 일단 수를 줄이기로 했다. 실전 경험을 늘려 주기에는 박쥐가 많기는 많 았다 수당과 성과급을 받기로 한 이상, 이 씨 형제의 목숨을 지켜줄 의무가 있었다. 두고두고 봅아 먹을 저금통장이니, 잘 간 수해야 했다.
“칼줘 봐.”
“예.”
정우는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칼을 양 용익에게 맡겨 두었다. 양용익의 등에 매 고 있는 칼이 정우의 것이다 칼의 이름은 전생(前生). 케이브에서 발 견한 아크리움이라는 광물로 제조했다.
아크리움의 특성은 단단함이다. 강도와 경도에서 따라올 금속이 없었다. 그로 인 해 녹이고, 주조와 단조를 하는데 꽤나 애 를 먹었다.
“방어진을 취하고 있어.”
칼을 받아든 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 었다. 병기를 들고 싸워 본 지가 한참 되었 다. 칼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베어내는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크크크!
정우의 웃음에 강현과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어야 했다. 동생의 친구
라는 걸 제외하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 는다. 수없이 많은 마물에 둘러싸여 있으 면서도 두려움이라고는 일말도 없다. 간덩 이가 붓다 못해 이미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게분명하다.
그래도 그렇지 저 웃음은 정말로 좋아 하지 않고서는 짓기 어렵다. 순수하고 해 맑아서 섬뜩하게 다가왔다
‘형, 저놈 미친 거 아냐?!’
‘쉿! 듣겠다.’
들었는데 어째.
남의 즐거운 취미를 변태 취급하다니,
아무래도 쓴맛을 봐야 할 것 같다.
그건 그거고 정우는 작금의 상황에 집 중했다.
쌔애행!
빈틈을 확인했다 여긴 대형 박쥐가 지 면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들어왔다. 300 키로미터는 족히 되는 빠른 속도였다. 정 우의 지척에 접근하더니 날개를 펼쳐 좌 우로 흔들었다. 착란을 일으키는 동작이 다
“허튼짓은 하지 마”
정우의 칼은공간을 갈랐다
스왁!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었다. 섬광
이 어둠을 가르자 달려들었던 대형 박쥐 는 반으로 쪼개져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으니.”
정우는 죽어 버린 대형 박쥐로 전체를 유인했다.
피냄새를 맡은 대형 박쥐는 동료의 죽 음에 분개하며 정우를 중심으로 회전했 다 대형 박쥐는 단순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의 수를 보고 진형을 갖추었다. 괴이한 소 리를 내질러 공간을 진공의 상태로 만들 었다. 생명체라면 호흡을 해야 한다. 숨이 막혀 올 때 일제 공격을 하려는 것이다.
휘이이잉!
정우를 중심으로 벽을 형성, 원을 그렸 다 강력한 바람의 벽이 점점 더 좁혀졌다. 그리고 정점에 이르자 대형 박쥐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들었다.
크어어엉!
대형 박쥐의 포효는 전설로 회자되는 백두산의 영물, 백호의 포효를 능가하고 도 남았다. 보통 사람의 심력으로는 받아 들이기 힘든 소름끼치는 기세가 실렸다. 육식동물이 먹이를 잡기 위해 내지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스와아악!
정우의 칼이 허공을 가르고 원래의 자
리로 돌아왔다.
착
칼을 봅고, 다시 꽂은 일련의 과정이 보 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정우의 빠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멈칫!
허공을 장악했던 대형 박쥐의 운집이 멈춰졌다. 포효마저 사라진 채 고요함이 감돌았다 정우와근접거리에 있었던 대형 박쥐의 몸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쩌어억!
정수리에서부터 하체의 끝까지 실금이
가더니 좌우로 벌어졌다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뿐이 아니다 후드드득!
하늘에서 대형 박쥐의 비가 내렸다. 반 으로 쪼개진 대형 박쥐는 생명력을 잃었 다 갈라진 대형 박쥐의 단면엔 예기가 남 아 있어 핏물이 흐르지 않았다.
멍!
강현과 강우, 혹금단은 말문이 막혔다
“저……래도 되는 거야? 대형 박쥐잖 아”
“난들 알겠냐. 저런 장면은 나도 처음
봐;
정우가 케이브를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같이 출 동한 적은 없었다.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강한지 잘몰랐다 웬걸! 대련 때보다 실전이 더 강하고, 차분했다.
‘내 눈에도 보이지 않았어!’
강현은 유니크 7급의 유망주다. 말이 좋아 유망주지, 평범한 유니크와는 현격 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 강현조차도 조금 전의 일도(一刀)는 전율적이었다 만약 자신 이 저 앞에 있었다면 대형 박쥐와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최소한 8급, 어쩌면 그 이상이겠어.’
유니크 최고 등급이 9급이다. 우리나 라엔 1명이 있다고 하지만, 대외적으로 알 려지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 나 몇 명 있을까 말까 한 절대적인 존재들 이다. 속성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 해도, 저 압도적인 전투력을 대조하니 의미 없는 일 이었다.
‘전력이라고할수도 없고.’
보통 박쥐도 아니고, 1만의 마물을 단 숨에 베어버린 칼질이었다. 호흡의 떨림이 라도 있어야 할 텐데. 미세한 변화조차 보 이지 않았다. 전력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게다가 공간을 압도하는 궤적이었다. 빛살보다 빠른 칼의 궤적 안 에 대형 박쥐를 가두어 버린 것이다 고요함이 깃든 공간 속에서 정우의 푸 념이 들려왔다.
“실전에선 처음이라 그런지, 궤적이 매 끄럽지 못하네.”
강현과 강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보이 지도 않는 칼질이었고, 압도적인 위력이었 다 두부를 베듯 간단히 베어진 둣 보이나, 대형 박쥐의 피부는 강철보다 단단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빠른 속도로 회 전하고 있었다. 이를 일일이 찾아가며 칼 질을 해 주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칼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다 니, 자괴감과 괴리감이 전해진다.
‘젠장 저걸 보고 어떻게 배신하라는 거 야?’
‘더더욱충성할수밖에 없잖아!’
양용익과 단원들은 단주의 무지막지함 에 기가 눌릴 때로 눌렸다 금제는 둘째 치 고 저런 괴물을 상대로 배신은 가당치도 않았다. 흑금단 전체가 기습적으로 달려 든다 해도 손끝 하나 건드리기 어려운 극 강 무적의 절대자다. 그런데도 배신하기를 바란다고 하니, 그 의도가 소름끼쳤다. 어 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고통스럽게 죽지 않으려면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
“남은 것 정도는 처리할 수 있지?”
“어디 가려고?”
“저 앞에 뭔가 있는것 같아서.”
“아무것도느껴지지 않는데?”
강현은 감각을 개방했다. 정우에 비해 서는 감각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곤 하 나, 어지간하지 않으면 감지가 가능하다. 더욱이 시간이 걸릴 분이지, 대형 박쥐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기척을숨기고 있어.”
“그럴 리가. 마물은 기의 정교한 컨트롤 이불가능해.”
“등급이 높으면 다를지도 모르지.”
강현은 정우의 실력을 알지만, 위험을 감수하길 바라진 않았다. 실력과는 별개 로 케이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 측하기 어렵다. 케이브는 인간의 탐험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방금도 그렇다. 어 두운 공간은 대형 박쥐에게 유리하다. 마 물은 케이브 안에서 자라고 성장해서 최 적화를 이루었다. 그에 반해 인간은 침입 자다. 전혀 다른 환경과 부딪치며, 마물과 싸워야 한다. 똥개도 제 안마당에서 서푼 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하물며 마물이 었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 다. 속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곤란한 상황 에 처할수 있었다.
“같이 가자”
“그보다는 입구를 지켜. 빠져나가려는 것같으니까”
마물은 상당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정 우를 의식하고 있었다. 기척을 숨기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래 도 대형 박쥐는 전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제물인 듯하다. 좀처럼 진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어디.’
마물의 감지범위를 테스트하기 위해 기 척을 죽이고, 속도를 조절했다.
웅 팟!
강현과 강우는 바로 앞에서 정우를 놓 쳤다. 공력을 이용하면 어둠을 투영하여 사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마물이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어서 감각을 예민하 게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 뜬 장님 이 되어 버렸다. 믿어지지 않을속도였다.
이어서.
쿠우우웅!
폭발과 함께 거센 파장이 몰아쳤다.
서쪽에서 터진 폭발의 진동이 퍼져 나 올 때 반대쪽에서 폭음이 울렸다. 이어서 북쪽, 남쪽에서 연이은 폭발이 일어났다.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오는 기운의 파장은 정우의 것이었다.
“벌써 3km 밖이잖아”
“우리가 가늠할 영역을 넘어섰어.”
강현은 정우의 말대로 통로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대형 박쥐가 몰살당했음에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지며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전 율이 일었다.
“혹금단은 진형을 구축하세요.”
“예, 대공자!”
혹금단은 이중삼중으로 진을 구성해 통로의 틈을 최소화했다.
강현과 강우는 뇌력광마신공을 끌어올 렸다. 신속과 강화 속성을 개방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푸아앙!
폭발은 멈추지 않았고. 위력은 점점 더 강해졌다
강현은 불안했다. 정우가 서두르는 감 이 없지 않아 있었다. 공력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케이브 내에서는 운기가 거의 불 가능하다. 공령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공 력을 다시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 데도 이토록 무지막지한 공력을 쏟아낸다 면 차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 렵다.
‘연락을 취해야겠어.’
강현은 동생을 보내고 난 다음에 생각 을 해 보기로 했다. 자신과 달리 강우는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등급이 높아도 정 우가 있기에 안심을 했는데, 자칫 당하기 라도 한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 다 응?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기감으로 느껴졌다기보다는 직감이었다. 무언가 주 변에 있었다. 대형 박쥐의 제어되지 않았 던 기세와는 현격히 다르다 스멀스멀!
바닥에서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액체가 일어서더니 형태를 갖추었다.
두둥!
강현은 곧장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마물이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는 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불안을 부추 겼다. 등을 보이기에는 늦었다. 하단과 중 단에서 웅크리고 있는 뇌력이 활성화되면 서 전신으로 퍼졌다. 뇌력광마신공이 활성 화되자 불안감은 사라지고 전의가 피어오 른다.
‘먼저 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