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테스트 (4)
리차드 교수에게 마법은 단순한 전공 학과가 아니다. 일생의 목표이자, 자부심 이다. 정우는 조금 전 전음입밀(傳音入密)을 펼쳤다. 무공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지 않 고서는 시전하기 어려운 고등의 정보전달 수법이다. 저 나이에 전음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면 무문에서 인정을 받을 만 한 재능이다. 그런데도 마법을 배우러 왔 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법을 얕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무공이야 아는 분야이기에 따로 배우 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마법은 제가 알 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교수님과 같은 분 을 만나기도 어렵고요.
-마검사라는 감투가 보기엔 좋을지 몰 라도, 어느 하나도 궁극을 이루지 못한 실 패자일 뿐이다.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마법을 배우려 한다면 커다란 착각 이자오만이야
-전문학교는 속성과 전투 스킬을 배워 마물을 퇴치하기 위한 교육기관입니다 저 에게 주어진 능력을 갈고 닦기 위해서 매 진할 따름입니다. 마법이나 무공을 따로 구분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의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리차드 교수로서는 불쾌한 대화였다. 정우가 여전히 마법을 가벼이 여긴다고 봤 다. 마나가 다른 수험생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데, 굳이 마법을 배우겠 다는 것 자체가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마법은 위대하며, 무한했다. 일생을 건다 해도 다가서기 어려운 분야다.
-불합격시킨다면 어쩔 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째서 그리 자신하지?
-평가는 공정해야 하니까요.
마법에 대한 정우의 자세가 마음에 들 지는 않지만 리차드 교수는 수긍할 수밖 에 없었다. 시험은 공정해야 했다. 개인적 인 감정으로 수험생의 일생을 좌지우지해 선 안 되었다. 평가를 함에 공정성을 잃는 다면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법 이다.
-붙을 자신은 있나?
-나름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리차드 교수는 마법학에 대한 포괄적 인 개념과 마나의 상관관계를 물어본 후, 기초수학에서 고등수학, 물리학까지 두루 살폈다. 마법과의 상관관계, 역학관계는 덤이었다 정우는 테스트의 첫 타자로서 성실히 임했다.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이미 공부 했던 내용을 복기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허’
막힘없는 정우의 해박한 지식에 리차드
교수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기존의 선 입견을 깨부수었다. 무인에 대한 평가는 무식함이었는데, 문무(文武)를 겸비했다. 마법에 대한 기반 지식이 튼튼하다 못해 금강불괴급이다.
-대단하구나, 합격이다.
-감사합니다
정우는합격했다는통보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다
‘아주 훌륭해.’
리차드 교수의 마법에 대한 폭넓은 이 해와 자부심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도 알고. 정우는 하루라도 빨리 마법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다
‘괜찮은 녀석이군.’
리차드 교수도 처음과 달리 선입견을 버렸다. 마나는 축복을 받으면 노력 여하 에 따라 수준의 편차가 커진다. 지금부터 라도 마법을 열심히 한다면 훌륭한 마법 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무공보 다 마법이 우위에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정우가 강당을 떠나고 얼마 뒤, 수험생 들의 입에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뭔 시험이 이렇게 어려워!”
“떨어뜨리려고 작정을하지 않고서야!”
기출문제를 달달 외웠던 수험생일수록 끙끙 앓았다.
“인기 없으니까 그냥 접으려는 거 아 냐?!”
“공부 못하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리차드 교수의 능력 검증은 정우로 인 해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가 버리고 말았 다 남경수 교수와 정수원 교수는 깊은 한 숨을 쉬어야 했다.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 해서 어지간하면 봅으려고 하는데, 난이 도를 이렇게 올려놓으면 어쩌란 말인가.
“리차드 교수님, 이러시면 과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조금만 공부하면 아는 문제일세.”
조금이라니, 어디가 조금이야
방금 출제한 테스트 문제는 중학교에서 도 전교에서 노는 녀석들만 겨우풀수 있 었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학과라 재능을 타고난 인재는 지원하지도 않았다. 다들 다른 분야로 빠지거나, 무문이나 길드에 속하려고 했다.
“총장이 학과 지원금을 대폭 줄이겠다 고경고했습니다!”
“그래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짓은 할수
없네.”
망할놈의 형평성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쩌라고?
남 교수와 정 교수는 리차드 교수를 끝 까지 설득해야 했다. 고지식한 것도 정도 가 있었다. 이러다가 진짜로 과가 폐지되 는 수가 있었다. 그럼 하루아침에 길거리 에 나앉는다. 리차드 교수야 마법이 뛰어 나니, 어딜 가도 대접을 받겠지만 자신들 은 어중간했다. 필드에서 뛴 경험도 부족 하고, 그럴 만한 담력도 없었다 말이 쉽지 마물을 처음 보면 입에 게거품 물고 기절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혹, 조금 전 나간 수험생에게 지금처
럼 문제를 낸 겁니까? 반이라도 풀었습니 까?”
“막힘없이 잘만풀던데.”
남 교수와 정 교수는 정우에게 따로 메 시지를 보내, 문제를 조정하기로 했다. 리 차드 교수의 말대로 했다가는 신입생이 2 명밖에 남지 않는다. 정원을 채우기도 힘 들어 죽을 지경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했다.
“잠깐, 그럼 메시지 마법으로 문제를 냈 다는 건가요?”
“그랬지.”
“답은요?”
“전음을 사용하더군.”
남교수와정 교수는납득이 되지 않았 다. 전음은 아무나 막 사용하지 못한다. 적어도 일정 수준의 경지를 개척해야 한 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풀었음에도 심 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이 자리에 무인이 있었다면 경악을 금 치 못했을 것이다. 정우는 입을 움직이지 않고 전음을 펼쳤다. 최소한 내공이 2갑 자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절정의 수법 이다. 마법사라 그런지, 무공의 경지를 자 세히 알지 못했다 실상 메시지 마법은 하 급 마법사도 펼칠 수 있어, 마법사에게 전 음은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유니크 전문학교는 일반 대학교 10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 정우는 버스를 타고 정문에서 내렸다. 후문은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되었다. 기다 린다 해도 나오지 못할 게 확실하다. 나중 에 만나게 되면 기다렸다고 구라치고, 나 오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면 된다.
정문에 강천이 서 있었다. 테스트가 끝 나고 1시간가량 기다려야 했다. 성급하기 가 허기진 멧돼지보다 더한 녀석이라 기다 림은 의외였다.
“너지?”
대뜸 와서 한다는 말이 뜬금없었다. 대 화의 핀트가 벗어나 버렸다 강천은 심증이 아닌, 확신하는 분위기 였다. 정우가 아니고서는 벌어지지 않을 참담한 사건이 테스트 중인 강당에서 벌 어졌다.
“무슨소린지 모르겠는데?”
“박기호, 그새끼 말이야”
강천은 시험장의 참사를 보자마자 정 우를 떠올렸다. 시험 전까지만 해도 멀쩡 한 놈이 갑자기 그랬다는 것 자체가 의심 스럽다.
“뭔일 있었어?”
“시침 떼지 마. 너잖아!”
“증거도 없이 함부로 모함하지 마라;”
“정말 아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우는 확신이 아니면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하고도 모른 척, 했어도 아닌 척 한다. 누구라도 그 사실을 안다면 경중에 따라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정우 의 법칙이다.
“내가 살다 살다 그런 일은 처음 봤다.”
“재미난구경을 했나 보네.”
“재미라고 해야 하나, 더러운 추억이라
고해야 하나?”
강천은 테스트가 끝나고 자신과 견줄 만한 녀석이 있나 살피고 있었다. 때마침 시비를 걸었던 박기호가 대련 중이었다. 상대는 이름도 없는 듣보잡이라, 가볍게 이기고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대련 양상 이 약간 이상했다. 워밍업을 마치기도 전 에 박기호가 식은땀을 육수처럼 줄줄 흘 리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팔팔하다 못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른 놈이, 이상하게 맥을 못 추었다. 그래도 간신히 이기기는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마지막 상대는 8 대 문파는 아니지만 무공일맥을 이은 수 험생이었다. 방심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평상시의 박기호라면 충분히 제압 이 가능하나, 오늘은 좀 이상했다
“박기호의 일갈이 아직도 생생해.”
기호는 무언가가 쫓기듯이 서두르는 티 가 났고, 간간히 움찔거리며 뜻하지 않게 거리를 벌리기도 했다. 힘이 실릴 때마다 느슨해지는 타이밍에 상대가 빠져 나오면 서 반격을 가해 왔다. 결국 상대의 발차기 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다가 대참사가 벌어졌다. 허리를 숙이면 안 되었다. 조여 맸던 신경 근육들이 압박을 받자, 더 이상 은견디지 못했다.
-빠아아아아아앙!
강당을 흔들어 놓는 우레와 같은 소리. 모두가 놀라서 하던 동작 그대로 멈추었 다. 시선이 모였다. 이때 박기호의 엉덩이 가 묵직해지면서 노랗게 물든 나뭇잎처럼 물들었다 거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번 터진 참사는 봇물이 되었다 막아놓은 둑이 터져버린 것이다.
-부지지지직! 부지지지지직!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박기호는 연이어 쏟아내고 말았다. 모 두의 눈이 기호에게 못 박혔다. 강당 안을 울린 폭발음은 핵폭탄급이었다. 게다가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흉포한 악취는 코를 썩게 했다. 암모니아를 100년 동안 끓여 놓은 냄새라고 할까
“아침에 뭘 먹은 건지, 시험이 끝났기에 망정이지 죽을 뻔했다니까.”
“그래서 박기호는 떨어졌어?”
“떨어지긴. 붙었어.”
이건 예상 못 한 일이다. 분명 조절을 했는데 붙다니.
정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떻게‘?”
“그 새끼 속성이 지저분한 독이잖아.
똥독도 독이었던 모양이야.”
박기호의 상대는 냄새에 아주 민감한 여자애였다. 더러워서 도저히 못 싸우겠다 고 기권하는 바람에 박기호는 붙을 수 있 었다. 하지만 대결이 끝나고 나서도 박기호 는 대장에 들어찬 배설물을 쏟아냈다. 아 주 죽을 것 같이 쏟아내는 바람에 테스트 가 30분간중지되었다 실상독속성이 똥 에 가미되기는 했다.
“치울 수가 없어서 방독면 쓰고 옮겼다 더라”
“시험에는붙었으니 다행이네.”
“다행은 무슨. 소문 쫙 퍼질 텐데.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겠어? 나 같으면 쪽팔려서 칼 물고 자살했다”
만약에라도 끔찍한 상상에 강천은 오 한을 맛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팔 려 죽어버리고 싶은 지경이다. 남도 이런 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속성까지 독이라 서 아마 변독(便毒), 박기호로불릴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심보를 곱게 써야 하 는거야”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하나도 와 닿지 않는다.”
강천은 오랫동안 정우와 함께 했지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 다 착하다고 보면 착한 것 같은데, 과정과 결과를 보면 지독했다. 특히 정우와 척을 치고 멀쩡한 놈은 여태 본 적이 없다. 이 인간은 걸어 다니는 누클리어(Nuclear)다.
“와닿을텐데.”
“강?…요는 하지 말자”
강천은 정우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봤다. 저 웃음의 의미는분명하다. 저 자식 이 범인이었다. 그런데도 시치미를 뚝 떼다 니, 안면에 철판을 깔았다 강자는 원래 프 라이드가 강하다고 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더 무섭다.
“이실직고 하시지?”
“거짓말이 늘지를 않네. 티가 많이 나나 봐. 너한테 들킬 정도면.”
애초에 감추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놈 이 할말인가.
“뻔뻔하기가 천하무적이구나!”
“그렇게 심한 말을 나상처받는다”
“상체네가‘? 어이가 없네!”
상처를 받기는 개뿔! 이 인간은 당하고 절대 못 사는 그런 유형이다 어떤 식으로 든 혹독한 대가를 치러 주어야 직성이 풀 렸다.
“왜 그런 거야?”
“독을 쓰더라고.”
독이 =?
정우의 실체를 안다면 독을 쓸 생각을 못한다.
“그 미친 새끼가 죽으려고 용을 쓰네.”
“죽이진 않았다.”
“차라리 죽이지 그랬냐. 아니지 쪽팔려 죽을지도 모르겠다.”
안 봐도 비디오다. 강천은 충분히 짐작 을 하고도 남았다. 자신은 건드리기 어렵 고, 정우를 이용할 심산으로 독으로 금제 를 가한 게 분명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정 우를 건드리다니, 박기호의 참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이제독”
그렇더라도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기호 의 속성도 나브지 않은 수준이다 독을 썼 다면 인지했을 텐데, 전혀 감지를 못 했다 는 점이 이상했다.
“당분간은 거동하기도 힘들 거다”
“끝난거아니었어?”
“끝은 내가 끝났다고 할 때 끝나는 거 야”
태연히 농담하는 정우를 보자, 강천은 소름이 돋았다. 사악함이 천하무적을 넘 어선다. 어쩌면 고금제일무적일지도. 하지 만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독은 아무나 다루기 어렵다. 하물며 평 소에 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 었다. 독에 관한 속성을 가진 박기호라면 자체적으로 면역이 가능할 텐데.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떻게 한 거야?”
“심독.”
“..2”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심독(心毒)이라고 하면 심검(心劍)과 심 도(心刀), 심권(心勞과 쌍벽을 이루다 못해 더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졌을 텐데. 일례 로 검도권(劍刀章)의 고수는 있어도, 독공 의 고수는 좀처럼 나오기 어려웠다. 하물 며 심독의 경지에 이른 고수는 과거에도 찾기 어려웠을 거다. 무협소설에서도 심독 을 사용하는 자는 끝판왕이나 다름없다.
“너 독공도 할줄 알았던거야?”
“O ”
이자식 대체못하는게 뭐야?
남은 하나도 익히기 어려워서 매일 처맞 고 있는데. 마법을 익히겠다고 했을 때, 속 으로 약간은 비웃었었다. 하지만 다시 생 각해 보니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이놈은 대마법사가 될지도 모른다. 무시 무시한 무공에 마법까지 더해지면 이놈을 어떻게 이겨?
‘이 잔인한놈!’
강천은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친구 로서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은 작은 소 망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러다가는 죽는 그날까지 한 대도 때려 보지 못하고 일방 적으로 처맞기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독을 썼으면 걸리는 거 아냐?” 현대 의학을 얕보지 말라고.
강천의 소심한 복수다.
국과수는 세계에서도 알아준다고 들었 다 독을 썼으면 반드시 검출이 된다. 과학 수사대를 본 딴 영화와 드라마에선 한 가 지의 증거만으로도 범인을 밝혀냈다.
“그건좀 곤란하네.”
심독은 의지의 독이다. 마음만 먹으면 용독, 하독이 가능했다. 전생에 무형지독 을 자랑하던 당문의 독제(毒帝)도 정우의 심독에 중독되어 허무하게 녹아 버렸었다. 하물며 박기호 따위야 얼마든지 쥐도 새 도 모르게 죽여 버릴 수 있었다.
‘심독을 검출한다고? 후후후!’
그리고 똥 쌌다고 국과수에 의뢰한 경 우는 역사에도 없다. 국과수가 그리 한가 한 사람들의 모임도 아니고. 받아주지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