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테스트 (3)
“화돋우지 말고 꺼지시지.”
강천이 정우 앞에서나 얌전하지, 온순 한 성격하고는 거리가 멀다. 덩치에 맞게 괄괄하다 움찔!
강천의 엄포에 기세등등했던 박기호와
패거리는 주춤하고 말았다. 살쾡이가 아 무리 많아도 호랑이를 어쩌지 못하는 것 과 같은이치였다.
기세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박기호는 자 존심이 상했다.
“이 자식이!”
“이 자식이 뭐! 그때처럼 또 처맞고 싶 냐?!”
강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전에도 붙어 본 적이 있었고, 잘근잘근 밟아주었 다. 패거리가 있다고 해도 겁나지 않았다. 쭉정이를 암만 모아봤자 쭉정이일 분이었 다. 얌전히 대해줄 때 꺼지는 편이 신상에 이로웠다. 입학도 하기 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빠드득
박기호는 이를 갈았다. 예전에 당한 적 이 있기는 해도, 그때 이후로 절치부심해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다시 만나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강천을 보자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강 천도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지랄하고자빠졌네.”
박기호의 위협에 강천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꼴사납게 빌빌거렸던 주제에 가당키나 한 짓인가. 시선 가리지 말고 저리 꺼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깝죽거리는 것도 마음 에 들지 않았다.
“예전의 내가 아니야.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 게 이로울 거다.”
“내 입 가지고 지껄이든, 말든 네가 무 슨 상관이야!”
강천의 걸쭉한 입담에 정우는 내심 고 개를 끄덕였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많이 늘었다. 이대로만 가면 어디 가서도 말빨에서 간단히 밀리진 않 을 거다. 허구한 날 가르침을 내려준 보람 이 있었다.
“이 새끼가!”
참지 못한 박기호가 부지불식간에 달려 들어 주먹을 뻗었다 착
박기호의 권격은 목적지에 다가서지 못 했다
강천이 박기호의 주먹을 잡아챘다.
부르르!
공력을 끌어올려 저항했지만 꿈쩍도 하 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하는 박 기호에 비해 강천은 느긋하기만 했다. 공 력은 둘째 치고, 신력을 타고난 강천이다.
의도치 않게 힘 대결이 되었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크윽!
박기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천의 솥뚜껑 같은 손에 사로잡힌 주먹 이 으스러질 듯아파왔다.
“아예 부셔줄까‘?”
“안?… 돼!”
“이번에도속성을 써 보시지 그래.”
“그?…만!”
박기호의 속성은 독(毒)이다. 독력을 발 휘하면 고수도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강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독이 통하지 않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육체였다. 불과 물처럼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그래서 더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거기 뭐하는 거야!”
시험장의 감독관 중에 한 분이 소란을 눈치채고 강천과 박기호를 지적했다 서열 싸움이 공인받고는 있지만 테스트 당일 이었다. 시작부터 소란이 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아직은 학교 학생도 아니고.
강천은 기호를 밀치면서 손을 풀었다. 원래 이쯤 하려고 했다. 때마침 감독관이 나타나 주었을 뿐이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알아?!”
“입은살아가지고.”
박기호는 패거리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 다. 그래도 같은 공간이었다. 멀리서 강천 을 계속 노려봤다.
정우는 강천의 대처에 쓴소리를 했다
“어설퍼.”
“가끔 보면 넌나보다 더해.”
건드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작을 했 으면 끝장을 보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 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의미를 두지 않는 다 반성을 하든 갱생을 하든 애초에 시작 하지 말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실수를 하며 성장한다는 전제는 믿지 않는다. 그 리고 어설프게 밟아 놓으면 나중에 꼭 탈 이 난다. 짓밟아 버릴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짓밟아 줘야 개기지 않는 법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기호가 달려들었다는 점은 만만하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럴 때는 정말 섬뜩하다니까?’
듣기에는 별거 아닌 듯 말하지만 실상 은 소름이 돋았다. 적이 되지 않은 것을 다 행으로 여겨야 했다. 7살 때도 괴물처럼 강한 녀석이었고, 권태로운 성격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피아의 구분이 확실했다.
“목마르지 않냐.”
“조금”
“그럼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음료수나 봅 아와”
“ 알았어.”
정우의 부림에 강천은 군말 없이 따랐 다.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괴리감이었다.
‘배 째라고 하면, 배를 가를 녀석이지.’
배짱도 부릴 대상이 따로 있었다. 정우 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신비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설픈 농담을 지 껄이다가 농담대로 비명횡사한 놈들을 목 격한적이 있었다.
‘홉기공의 종류인가‘?’
정우는 찰나에 강천과 기호의 기력 대 결을 읽었다. 공력과 힘 대결에서 기호는 강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기호 가 가진 내공의 종류에 있었다. 성취가 완 전하진 않았어도 흡기공(吸氣功)이 분명하 다. 홉기공은 8대 문파에서 공식적으론 금하고 있었다. 또한 그 성질이 자신이 알 고 있는흡기공하고 다르■다.
‘두고보면 알겠지.’
마법 테스트는마지막순서에 있었다.
정우는 순서를 기다렸고, 강천은 테스
트를 받기 위해 시험장으로 갔다. 강천을
비롯한 속성 등급의 상위권자는 입학이 정해져 있었다. 굳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들어가서 잠재 등급만 확인하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테스트를 보는 이유는 과시욕이었다.
아까 전 벤을 타고 화려하게 등장한 아 이돌만 해도 그렇다. 합격한 것이나 마찬 가지임에도 공정한 테스트를 거쳤다. 이는 보여주기 위한 쇼다. 수많은 아이돌 중에 서 돋보이기 위해서는 자기 PR이 필요했 다. 예브고, 잘생긴 것만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연예계가 아니다.
“이봐”
정우의 시선에 기호와 패거리가 잡혔 다. 끈기는 인정해 주어야 했다. 강천이 시 험장을 갈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나타난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고 있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 다. 단순한 걸로 따지면 강천과 쌍벽을 이 루었다.
여하튼 호랑이를 건드리다 실패한 주제 에 괴물을 건드리고 있었다. 강천이 이 장 면을 봤다면, 살포시 명복을 빌어줬을 거 다 기호는 보는 시선이 많아 당장 수를 쓰 진 않았다. 그러나 강천에게 당한 분풀이 는 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 으면 자신은 웃음거리가 된다
‘이놈을잘만 이용하면 강천, 그 새끼를 조질수 있겠지.’
잠재 등급을 보니 3급의 쓰레기였다 강 천에게 붙어 있는 쭉정이에 불과했다. 유 니크는 평상시와 전투 시의 갭이 커서 측 정이 어렵기는 하나, 잠재 등급의 경우 측 정할 수 있는 기기가 꽤 많이 나와 있었다 측정기의 정확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이었다. 기호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 밴드 식의 측정기는 제법 고가의 제품으로 정 확성이 90% 이상이었다.
유니크 전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등 급 측정기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 잠재 등급과 유니크 등급이 꼭 들어맞지는 않 더라도, 확률이 높았다. 학교 내서열싸 움에서도 측정기가 보급되면서 양상이 달 라졌다 아무래도 등급이 자신보다 높으면 건드리지 않기 마련이다.
“테스트 끝나고 후문으로 나와.”
“내가왜그래야하지?”
정우의 태연한 물음에 기호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강천에게 무시를 당한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등급 쓰레기 주제에 감히 자신의 명령에 토를 달고 있었다. 개 나 소나 다 무시를 한다고 생각하자 울화 가치밀었다
“그 새끼하고 붙어 다니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학교 편히 다니고 싶으면 나오는 게 좋을거야.”
험악한 면상을 들이대며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단순한 협박의 수준이 넘었다. 정 우는 몸으로 파고들어 오는 기운을 느꼈 다
'훗’
자신을 옭아매기 위해서 수를 쓴 모양 인데,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이 런 식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환영하는 바 다
“혹시라도 그 새끼한테 말하면 알지?”
“ 알았다”
정우가 수긍하자, 기호는 만족한듯 돌 아섰다. 등급 쓰레기가 재차 반항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마법학과 테스트가 있을 예정 이니, 수험생은 제8강당으로 모이세요.
스피커에 나오는 안내 메시지에 따라 정우도 8강당으로 향했다 반대편으로 돌 아가는 기호와 패거리를 보며 작게 속삭 였다.
‘기다리마 나올수 있으면. 크크크크!’
마법학과는 정원도 20명 내외였고, 지 원자도 많지 않았다. 속성 등급만 3급이 넘으면 붙는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해 서 유망하지 않다고 볼 순 없다. 마법은 수 학과 과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상 급의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다 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 는 지원 자체를 하지 않겠지.’
설령 마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수학에 젬병이면, 마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고 등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마나를 쌓는 법이 무공 과 비슷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연산과수 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실제로 사용을 하기 가 어렵다. 간혹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 이 태어나기도 하는데, 조절이 되지 않아 폐인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마법학과의 마법사는 3명이 전부다.
주임 마법사 리차드 파커도 나와 있었 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갈색 머리카락에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둔 탁해 보이는 검은 뿔테 안경이 굉장히 스 마트하게 다가왔다. 시험장 안에 모인 수 험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의 눈처럼 날카 로웠다
찌릿!
딱히 속성 테스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리차드 교수는 강당에 모인 수험생을 마나스캔을 통해 마법속성과 마나의 양을 체크했다 지원자의 대부분이 3급을 갓 넘 은 햇병아리 수준이었다. 간혹 보이는 뛰 어난 수험생도 4급은 넘지 않았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재능이 동반되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가급적 재능을 타고난 인재를 찾 으려고 한다. 그렇다 하나 노력하지 않으면 주어진 재능도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반대로 재능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 한다면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호오.’
리차드 교수의 마음에 확연히 와 닿는 수험생이 있었다.
좌측 가슴에 달린 수험표에 채윤정이 라고 적혔다. 한국 이름과 달리 이국적으 로 생겼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황금색 머리카락 늘씬하면서도 볼륨이 살아 있 는 몸매를 지녔다. 서구적인 얼굴임에도 동양적인 매력이 조화를 이루었다. 주변의 여학생들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가공 할 외모의 소유자다. 시기와 질투를 달고 다닐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 리차드의 관심은 외모가 아닌 윤정의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기운에 있었다. 학 생 수준은가뿐히 넘어섰다.
“마나가 정순하구나, 앞으로가 기대되 겠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윤정의 마나는 5륜에 달해 있었다. 천 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 국과 영국에서도 저 나이에 5륜에 이른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다 상급 마법사 중 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자질이었다.
“합격.”
리차드 교수는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마나가 5륜에 이르렀다면 천부적인 자질 을 뒷받침해 줄 가르침을 받았다는 의미 가 되었다. 윤정에게 마법학에 대한 기초 질문은 무의미했다.
‘응?’
마법스캔으로 인재를 찾던 리차드 교수 는 정우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고 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좀 더 세밀한 관찰 을 해 봤다. 한데, 마나의 양과 순도 자체 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다.
‘3급인데.’
스캔을 재차 해 봐도 좀 전과 변화가 없 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원인은 정우의 눈에 있었다. 연륜을 짐작 하기 어려운 무심함에 압박을 받았다. 마 치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는듯한
‘괜찮네.’
정우는 리차드 교수의 마법을 알아챘 다. 숨겨져 있는 마나를 체크하는 속도와 정확성만 봐도 리차드 교수는 보통 수준 의 마법사가 아니다. 대외적으로 중급 마 법사로 알려졌건만, 실제는 상급에 도달 해 있었다. 이런 자를 포섭해 오다니, 우리 정부도 나름 일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금발머리가 입학한 이유가 있었군.’
리차드 교수의 판단대로 윤정은 상당 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마나의 축복을 타고난 것도 있지만, 가르 침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 만한 마나를 생성하기 어렵다. 윤정의 주 변에 마법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마법학교에 입학한 것은 주임 마법사, 리 차드 교수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사는 궁극에 이른 탐구자이자, 구 도자다. 진리를 비롯한 세계의 흐름의 밝 히고, 체득하기 위해 삶의 모든 걸 건다. 리차드 교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임 마법사의 관 심사는 주변의 관심사가 된다 정우는 굳이 오해를 키우지 않기로 결 정했다. 전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알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리차드 교수님.
뇌리를 파고드는 전언. 자리에 앉아서 고심하고 있던 리차드 교수가 두 눈을 부 릅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찌르고 들 어온 메시지였다. 그러나 곧 마법사답게 냉철해졌다. 메시지의 속성을 분석하고 결 론을 냈다.
-혹,무공을 익혔나?
- 그렇습니다
-대단한수험생이 들어왔군.
말투에서 날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