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5화 (5/500)

제 2장 정우 (4)

전생의 나는 나약함을 극도로 혐오했 다. 약하기에 부서지고, 빼앗기고, 능욕을 당한다. 이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였 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고, 강해진 이상 그 힘을 써야 한다. 절대적인 명제였다. 현 재와는 다른 삶이기는 하나, 현실이 다르 진 않다고 본다. 강함의 척도와 가치가 달 라지기는 했어도.

조물조물

정우는 수연의 몸을 한 번씩 만져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이좋은 남매의 장난처 럼 보이나, 실상은추궁과혈(推宮過穴)이었 다. 내공을 컨트롤해 수연의 몸에 쌓인 탁 기를 녹여내고, 기의 흐름이 원활하도록 만들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면역력이 약하 고,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았다. 김 여사 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어 탈이 나진 않아 도 자잘한 병치레는 있기 마련이다. 추궁 과혈은 잔병치레를 차단하고, 면역력을 강 화해준다. 그 결과 굳이 종합예방접종을 맞지 않아도 지나치게 튼튼하다.

푸우우

정우의 매만짐이 5분이 지나자, 수연은 곯아떨어졌다.

수연을 조심스럽게 김 여사에게 넘겼다.

어이쿠!

무겁다. 3살치고 하연은 굉장한 덩치를 자랑한다. 정우도 그 나이보다 큰 편이긴 한데, 수연의 덩치는 3살이 아니라 6살에 육박했다.

수연을 받아든 김 여사가 뾰로통한 표 정을지었다.

“수연이는 오빠가 더 좋은 모양이야 엄 마 너무서운하다.”

김 여사는 정우에게 주었던 나름의 애 정을 수연에게도 쏟아부었다 당연히 엄마 를 더 찾아야 하는데, 오빠를 굉장히 좋 아했다. 잠을 재우는 것도 그렇다. 갖은 노 력을 해도 자지 않아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에 정우는 수연을 안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재웠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네.’

수연은 유치원에 가 있는 오빠를 매일 기다렸다. 정우가 오면 항상 품에 안겼다. 1시간 정도는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 라 여겼는데. 수연은 5분도 되지 않아 곯 아떨어져 버린다. 하루도 아니고 매일이 그러니, 살짝의심이들었다.

‘혹시, 일부러 재우는 거 아냐?’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정우의 나이는 7 세다. 3살 아이를 업는 건 가능했다. 문제 는 수연이 3살 덩치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 다. 30kg이나 나간다. 자신도 수연을 업고 나면 허리가 아파서 아우성을 치고는 했 다. 반면에 정우는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 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각성했나? 아니지, 각성 나이가 평균 17세라고 했잖아. 7세에 각성했다는 소린 들어 보지 못했는데.’

정우는 김 여사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나이가 깡패라고 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한 행동을 해도 7세에 불과했다

‘자유시간은 중요하니까?’

수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 어질수록 효율적이지 않았다. 동생이 귀엽 고, 사랑스러운 것과는 다른 문제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정우는 일의 선후를 분명하게 따지는 스타일이었다.

사분, 사뿐

방으로 걸어갔다. 수연이 생기면서 개인

방을 쓰게 되었고, 혼자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공부도 해야하고.’

정우는 남는 시간에 현 시대를 공부했 다. 엄마가 사주는 책이 대부분 동화책이 어서, 현재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컴퓨터가 있어 검색을 통 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배웠다.

두웅

정우는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현 시대의 놀라운 유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컴 퓨터다. 종잇장보다 얇은 모니터와 지우개 만한 본체. 이 안에 수없이 많은 정보를 담 고 있었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요새 나오 는 새로운 컴퓨터하고 몇 세대 차이가 난 다. 요즘은 홀로그램 영상이 상용화되어 서 들고 다녀도 되었다 검색창에‘인류의 격변’을쳤다

-인류의 진화는 30년 전과 후로 나뉜 다

생명체의 진화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 다는 것이 정론이다. 그런 과학적인 증명 이 30년 전 뒤집혔다. 어떤 이유에서 진화 가 이루어졌는지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인류의 격변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30년 전의 격변을 논리적으 로 해석하기 위해 나섰고, 밝혀만 낸다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인간은새로운유형이 되었다.

형태변환(Type-change), 각각의 인간에 게 부여된 속성마다 다양한 형태로 변환 이 가능해졌다. 속성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으며,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랜덤, 정해지지 않은 형태로 속성이 부여되었다.

-각국은 인류의 변화를 조사했다.

특정한 인간만이 진화를 이루었는지를

살폈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인간은 다 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진화한 자 들이 소수였다면 다수의 인간은 힘을 동 원해서라도 억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이 가진 힘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속성을 부여받았다.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부여된 속성, 각 성 시기는 17세다 또한 부여된 능력에 따 라 등급이 나뉘었다. 인간은 속성을 각성 한 직후 두려움, 놀라움, 희열,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당시엔 세상이 종말을 향해 내달린다고

했다. 10년 후의 멸망을 예언한 자도 있었 으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는 건재했 다

“공평하진 않았을 테고.”

주어진 속성에 따라 등급이 부여받는 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차이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속성을 부여받는다고 해서 당장삶이 변하지는 않았다. 알다시 피 모든 인류가 진화했다. 속성이 차등적 이긴 해도 차이는 크지 않다고 밝혀졌다. 속성을 얼마나 갈고닦을 수 있느냐가 관건 이었다.

동물계, 원소계, 메탈계, 자연계를 비롯

한 다양한 형태의 속성을 각성해도 훈련 하지 않으면 등급은 변하지 않는다.

속성은 9등급으로 나누었고, 1단계 변 환타입은 실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당장 쓸 수도 없다. 속성 능력을 통해 재물과 권력을 얻 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는 법의 체계가 잡혀 있었다. 정해진 체계를 벗어난 행동 에 대해선 강제력이 발동했다. 통제를 위 한 강제이기에 수단이 꽤나 위협적일 수밖 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포기하진 않았겠지.”

쓸모없는 능력이라도 새로운 힘을 가진

인간은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속 성을 활용할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했 다

-미국이 최초로 속성을 강화하는 방법 을 알아냈고, 이는 각 국가의 기밀정보로 취급을 받았다 미국은 처음부터 속내를 드러내지 않 았을 것이다. 세계의 치안을 담당한 미국 은 평화와 안녕을 기치로 내세우지만, 실 상은 현재의 지배권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인류의 격변으로 벌어질 파 장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최대한 정 보를 축소, 은폐시킬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이후의 발표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반 증이었다.

-우리나란 5년이 늦었고, 부랴부랴 따 라가기에 바빴다.

여러 나라에서 속성 능력자를 성장시 키는 방법을 고안한다는 소식이 들려오 고, 실제 생활에서 활용이 되자 한국도 따 라가야 했었다. 그러나 속성 강화의 세부 적인 시스템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독점을 한 상태다.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서는 시스템을 들여와야 했고, 막대한 예 산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속성 최고 등급은 알려지지 않은 채 강대국이 소유하고 있었다.

“발등에 불 떨어졌군.”

속성 능력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준 건 인류 혁명이 이루어지고 15년 후다.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를 했으면 막대한 비 용을 들이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했음 에도 정부에서 예산을 내어주지 않아, 특 허가 일본에 팔렸다.

미국이 시작하자 일본도 뒤이어 나섰 고, 속성 능력 강화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 한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로 인해 국내의 연구 성과와 연구진이 해외 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굴러들어온 복을 제 발로 찼네.”

개발을 해도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 으면 투자를 하지 않았다. 조급함이 나라 를 성장시키는 동력원이 되었던 것은 사실 이나, 현재에 와서는 정보와 소프트웨어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발목을 잡고 있는 실 정이다. 일례로 세계는 지금 특허 전쟁에 돌입해 있는 상태다.

-인류의 격변이 있은 지 20년 후에 차 원이 굴곡이 일어났다. 굴곡은 차츰 격자 형태로 변화를 했고, 그 안에서 이제껏 보 지 못했던 생명체가 쏟아져 나왔다.

미지의 생명체는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피해를 양산했다.

인간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화력을 동원하여 마물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마물은 인간의 화기가 통하지를 않았다. 쏟아부어도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부여된 속성만 효과가 있군.”

마물과의 전투로 속성 등급을 부여받 고 강화된 인간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이들이 바로 유니크(Unique)다. 차원 굴 곡 케이브(Cave)를 탐지할 능력이 있으며,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물을 처리하고 나온 에너지스톤은 인류에게 신(新) 성장동력을 제시했다.

에너지스톤이라 부르는 이유는 뜻 그대 로였다. 에너지로 이루어진 돌이었다. 에너 지스톤은 활용성이 다양했다. 현재의 기 술력으로도 가공이 가능하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었다. 특히 원자력을 대신해 전기를 생산해 냈다.

“뭔가더 있을것같기는한데.”

검색으로 나온 자료는 극히 일부에 불 과했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가 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정우는 인간이 느끼는 체감상의 변화 가 크지 않음을 파악했다.

“우리 집을봐도그렇고.”

아빠는 불, 엄마는 물의 능력자다. 상성 상 아빠는 엄마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거고.

어쨌든 아빠는 불을 활성화할 능력으 로 돈을 벌지는 못 했다. 성냥불 크기의 불을 겨우 켤 수 있었고, 한 번 사용하면 진이 다 빠진다. 희소성이라도 있으면 모를 까. 원소계는 제법 흔한 속성이다 옆집 사 는 순이네 엄마도 불의 능력자다.

벗어난 얘기지만 끓어오르는 화기를 식

히기 위한 순이네 아빠의 노력이 눈물겹 다.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남자는 여성성 이 강해진다. 비실거리는 순이네 아빠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우리 아빠도 다르진 않았다

-부스터 쓰라니까;

-걱정을 말아요. 나만 믿어.

캠핑을 갔을 때 불이 없으면 간혹 대용 으로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능력을 쓰 고 나면 골골거리셨다. 땀을 어찌나 많이 홀리시는지, 엄마는 다신 사용하지 말라 고 신신당부했다.

엄마의 속성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사

막이라면 모를까, 굳이 물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된다. 만들어 내도 문제다. 갈증에 시달린다. 수분을 모조리 쥐어짜내서 물 을 만들어 내고, 그걸로 보충하는 격이 된 다. 한 줌 만들자고 기력 소모하고 나면, 힘이 더 빠진다.

‘수령지체와 화령지체가 흔하긴 해.’

불과 물의 속성을 무공과 혼합시킨다면 효과적일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시도해 봤다는 정보는 검색되지 않았다. 무공에 대해서는 일급 기밀처럼 다루어지는 듯하 다

‘이러면 애한테 큰 힘을 준 거나 다름이

없잖아?’

힘이 있어도 다루지 못하면 말짱 도루 묵이다. 또한 다루지 못한 힘은 위험을 초 래한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나마 안전하지, 무림이었으면 하 루도 피가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떤 능력이 부여될지 궁금하긴 하네.”

엘프는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속성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 다 재수 없으면 전혀 다른 성의 속성이 부 여되기도 한다. 방송에 나오고 있는 탑 게 이, 케이황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 시절부 터 방송을 해왔던 그는 마초적인 남성미 가 부각되었었다. 속성을 개화했을 때까지 만 해도 애써 외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 록 여성성이 부각되어 현재의 탑 게이가 완성되었다.

“속성이 강화될수록 케이브 감지 센서 도 올라간다고 하니, 그건 도움이 되겠다.” 정우는 각성 전까진 무공을 계속 수련 하기로 정했다. 각성을 하려면 아직 10년 이 더 남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 간이다. 현 시대는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더욱이 불과 몇 년 만에 2갑자의 내력

과 환골탈태 직전까지 왔다. 10년이 지나 면 그땐 굳이 속성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속성이 필 요하다기보다는, 궁금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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