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1
제 531화
529.
“……예?”
베르벳은 수혁의 말에 반문했다.
표정에서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라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부 박살 내고 온 겁니다.”
“……!”
수혁의 말에 베르벳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버, 벌써 다녀오셨단 말입니까?”
가장 가까운 마을의 워프 스크롤을 제공하긴 했지만 암당의 지부까지는 수많은 미개척지를 지나야 했다.
몬스터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몇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런데 지부를 괴멸시켰다니?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수혁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수혁의 말대로 지부는 괴멸된 게 분명했다.
베르벳의 반문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예, 그리고 엄청난 정보들을 구해왔습니다. 양이 좀 많아서…….”
수혁은 말끝을 흐렸다.
“가시죠!”
정보라는 이야기에 베르벳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그리고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혁은 베르벳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얼마 뒤 베르벳의 방에 도착했다.
‘다 꺼낼 수 있겠네.’
베르벳의 방은 조직 수장의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텅 비어 있었다.
지부에서 획득한 수많은 상자를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상자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베르벳은 수혁이 상자를 내려놓자 바로 상자 안에 담긴 서류들을 읽었다.
“……!”
그리고 서류를 읽던 베르벳의 표정에 놀람, 당황, 경악 등 다양한 감정이 나타났다.
하기야 엄밀히 말해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혁도 서류를 읽으며 놀랐는데 내부인인 베르벳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내 모든 상자를 내려놓은 수혁은 베르벳을 보았다.
베르벳의 인상은 크게 구겨져 있었다.
“아.”
수혁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베르벳은 탄성을 내뱉으며 구겼던 인상을 풀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수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퀘스트 ‘페이드씬’을 완료하셨습니다.]
[특별 보상을 획득합니다.]
[황궁 보물 창고 열쇠를 획득합니다.]
‘창고 열쇠였나…….’
특별 보상 때문에 상자를 건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했던 수혁의 표정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인 로일에게 창고 열쇠를 여러 개 받았다.
이미 인벤토리에는 열쇠가 5개나 있었다.
“뿌리를 거의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
베르벳이 말끝을 흐리며 다시 서류를 보았다.
“전혀 아니었군요.”
“…….”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베르벳의 말을 경청했다.
“수혁 님 덕분에 이번에는 뿌리를 완벽히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류에는 암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한 명, 한 명, 한 곳, 한 곳 아주 자세히 쓰여 있었다.
거기다 암당에서는 혹시 모를 배반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 놓았다.
이들이 어떻게 암당과 관련이 있는지,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자세히 쓰여 있었다.
배반을 할 경우 정보를 흘려 매장시키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베르벳이 감사를 표했고 수혁이 답했다.
이후 수혁은 베르벳의 배웅을 받으며 페이드씬에서 나왔다.
그리고 황궁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꽤 읽을 수 있겠네.’
* * *
스아아악!
“……”
기로스는 말없이 빛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부가 있던 곳이었다.
지부에 있던 당원들과 달리 기로스가 홀로 지부 근처에 남은 것은 폭발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됐을까.’
폭발이 일어나기 전 수혁이 지부로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수혁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수혁은 마법사.
폭발 직전 워프 마법을 통해 피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굳이 피하지 않고 보호막으로 제 몸을 보호했을 수도 있다.
스윽
이내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직접 가서 확인을 할까 했지만 근처에 수혁이 있을 수도 있다.
기로스는 확인을 포기하고 품에서 워프 스크롤을 꺼내 본부로 워프했다.
본부에 도착한 기로스는 바로 보고를 하기 위해 아소멜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당주님, 기로스입니다.”
방 앞에 도착한 기로스는 노크와 함께 외쳤다.
“들어와!”
안에서 아소멜의 답이 들려왔고 기로스는 바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됐어?”
아소멜은 기로스가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지부장 아길림에게 간단히 보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자세한 상황이 궁금했다.
“들으셨겠지만 수혁이 왔었습니다.”
기로스가 답을 시작했고 아소멜은 경청했다.
“본부와 관련된 서류들을 소각한 후 수혁이 오고 있단 이야기를 듣고 결국 플랜 b를 실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믿고 맡겨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라도 똑같이 했을 거야.”
기로스의 자책에 아소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수혁이었다.
아소멜이라 하더라도 기로스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기로스는 말끝을 흐렸다.
아소멜이 기로스에게 집중했고 기로스가 이어 말했다.
“녀석이 폭발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호? 폭발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아소멜은 탄성을 내뱉으며 반문했다.
“예, 녀석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워프로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면…….”
말끝을 흐린 기로스는 빛의 기둥을 떠올리고 이어 말했다.
“분명 피해를 받았을 겁니다. 크게 다쳤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폭발에 휘말렸어도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폭발 마법진의 폭발은 흑월대의 수장 에리멘도 죽이지 못한다.
그런데 수혁을?
어림없는 소리였다.
* * *
“이야…….”
장경우는 탄성을 내뱉었다.
“볼 때마다 탄성만 나오는구나…….”
수혁은 항상 놀람과 탄성을 선물해줬다.
“생각보다 더 빨리 진행되겠는데…….”
페이드씬에서 지부를 찾아낸 것은 장경우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거기다 수혁이 지부에서 확보한 정보들을 페이드씬에 넘겼다.
페이드 제국에서는 정보를 토대로 암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 조직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암당은 지부에 남아 있던 모든 것들이 깔끔히 날아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수혁이 정보를 전했다는 것을 모른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할 테고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손발이 전부 잘려나간 상황이 될 것이다.
원래 머나먼 훗날 진행될 일들이었는데 크게 앞당겨졌다.
지금 당장 에피소드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후에 있을 에피소드에는 아주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당분간은 도서관에 있을 테고…….”
현재 수혁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당장 할 일이 없으니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책을 읽을 것이다.
“빛의 마탑장은 누구로 임명하려나?”
조만간 수혁은 마탑의 길을 전부 통과할 것이고 중앙 마탑장이 된다.
즉, 빛의 마탑장 자리가 다시 공석이 된다.
중앙 마탑장이 없을 때는 빛의 대회를 통해 빛의 마탑장을 선출한다.
그러나 중앙 마탑장이 있을 때는 아니다.
중앙 마탑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간다.
물론 아무나 임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혁이 과연 누구를 마탑장 자리에 앉힐지 궁금했다.
장경우는 키보드를 두들겨 빛의 마탑장 후보가 될 NPC들을 확인했다.
“……오호?”
후보를 확인하던 장경우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주 잘 숨어 있었구나.”
장경우가 탄성을 내뱉은 이유는 후보 중 암당의 끄나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수혁이 잘못 뽑는다면?
다시 빛의 마탑은 흑월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 * *
“오늘 온다고 했지?”
대지의 마탑장 카코가 반문했다.
“예, 준비되는 즉시 도전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카코의 반문에 부마탑장 레톨이 답했다.
현재 카코와 레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제는 수혁이었다.
수혁은 대지의 길이 준비되는 대로 도전하겠다고 했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통과 확률 말이야.”
“아아.”
레톨은 카코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100%라고 봅니다.”
이미 빛, 독, 물, 환상, 바람 5개의 길을 통과한 수혁이었다.
그런 수혁이 대지의 길을 통과하지 못한다?
다른 길들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는 대지의 길을?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아니, 0이었다.
“오늘 어둠이랑 전기에도 도전하겠지?”
“그때도 물, 환상, 바람에 도전했으니까요.”
바로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카코와 레톨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이어 문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마탑장님이 오셨습니다.”
레톨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레톨은 빛의 마탑장 수혁을 볼 수 있었다.
레톨은 수혁을 발견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던 카코가 미소를 지으며 수혁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수혁은 카코의 인사에 답했다.
“도전하시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리고 이어진 카코의 말에 수혁은 방으로 들어와 카코의 반대편에 앉았다.
“…….”
“…….”
자리에 앉은 뒤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하실 이야기가…….”
정적을 깬 것은 수혁이었다.
어둠의 길, 전기의 길이 남아 있었다.
수혁은 한시라도 빨리 대지의 길에 도전하고 싶었다.
물론 빨리 도전하려는 이유가 두 개의 길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복하려면 빡빡한데…….’
수혁이 빨리 도전하려는 이유는 황궁 도서관 때문이었다.
이제 황궁 도서관에는 반짝이는 책이 거의 없었다.
빠르면 오늘 정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황궁 도서관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페이드 제국에는 여전히 많은 도서관이 남아 있었다.
수혁은 애매하게 남겨두는 것보다 오늘 정복을 하고 새로운 도서관을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수혁의 말에 카코가 입을 열었다.
“로스탱에 대한 이야기에요.”
카코가 궁금한 것은 바로 예전에 괴멸당한 ‘로스탱’이었다.
“로스탱의 수장 하비와 마주하셨다고 들었어요.”
마법사들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비.
하비는 마탑장들도 마주하기 껄끄러운 존재였다.
“하비를 어떻게 상대하신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런데 수혁은 하비를 잡았다.
어떻게 상대한 것인지 궁금했다.
“…….”
수혁은 카코의 물음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하비가 마법사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잡았다고 하면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다.
“아티펙트 덕분이었습니다.”
수혁은 결국 거짓을 섞기로 결정했다.
“아티펙트요?”
카코는 수혁의 답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모든 마탑이 아티펙트를 만들지만 대지의 마탑은 다른 마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티펙트들을 만들어낸다.
카코 역시 하비의 능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예, 어느 유적에서 운 좋게 얻은 아티펙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