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5
제 525화
523.
그리고 파괴됨과 동시에 저 멀리 하늘에서 놀고 있던 풍이 다가왔다.
-아빠! 저기 있는 거 먹어도 돼요?
풍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악몽의 핵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응.”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악몽의 핵을 흡수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확인이 됐다.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
풍은 수혁의 말에 재빨리 동상의 잔해로 향했다.
그리고 파괴된 악몽의 핵을 꿀꺽 삼키고 돌아왔다.
‘이미 속성이 추가돼서 그런가.’
처음과 달리 아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환상 속성이 이미 추가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갈까?”
-네!
풍은 수혁의 말에 전보다 더 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수혁은 풍과 함께 다음 동상으로 향했다.
[악몽의 동상 - 죄악의 마왕 가이오반이 깨어납니다.]
세 번째 동상의 주인공은 7마계의 마왕 가이오반이었다.
“섬광.”
[섬광의 쿨타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 * *
“이야…….”
장경우는 감탄을 내뱉었다.
감탄을 내뱉는 장경우의 표정에는 어이없음이 가득했다.
“섬광에 벌써 몇이나…….”
장경우가 어이없어하는 이유는 수혁이 행하는 일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당하라고 만든 애들이 아닌데…….”
현재 수혁은 6마계를 돌아다니며 동상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6마계의 동상들은 마왕들의 모습을 본떴으며 7~9마계 마왕 동상들은 40%의 힘을, 3~5마계 마왕 동상들은 30%의 힘을 1, 2마계 마왕 동상들은 20%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왕만큼 강한 것은 아니지만 수천 명의 유저들이 모여 레이드를 해야 할 정도의 강함을 갖고 있는 게 바로 악몽의 동상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수혁은 홀로 동상들을 파괴하고 다녔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많은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도 되지 않았고 마법 역시 섬광 하나로 충분했다.
오히려 이동 시간이 더 걸렸다.
더 이상 동상 파괴를 지켜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장경우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모니터에 해피의 상태가 나타났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해피는 현재 엄청난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텟을 올리기 위해 칭호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었으며 장비 역시 하나하나 영웅 등급에서 전설 등급으로 바뀌고 있었다.
압도적인 스킬 덕분에 사냥을 경시하고 PK에 미쳐 있던 해피가 갑자기 스펙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물론 수혁을 만나 궁금증을 해결했던 것처럼 해피를 만나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수혁은 특별하다.
유저들에게 개입을 하지 않기로 한 장경우의 신념에서 예외가 된 유일한 유저였다.
장경우는 다시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모니터에 메인 에피소드들에 대한 정보가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메인 에피소드들.
그러나 장경우는 모든 메인 에피소드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수혁에 의해 변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메인 에피소드는 다섯 번째 메인 에피소드 ‘드래고니아’의 마지막 챕터 ‘도망친 장로들’뿐이었다.
“아직도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드래고니아의 수장인 폴리니아는 장로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은 더욱더 커져갔다.
그리고 장로들 역시 폴리니아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마지막 챕터가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내분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건 수정 좀 해야겠어.”
장경우는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분위기를 바꾸기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내분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들의 끝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 드래곤 일족의 수장인 라스칼이 드래고니아의 장로들을 찾고 있었다.
드래곤 킬 웜 때문에 직접 나서서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수많은 라스칼의 수족들이 쫓고 있으니 조만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라스칼은 위치를 알아내는 대로 수혁에게 전할 것이다.
즉, 드래고니아의 장로들은 수혁을 상대해야 한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최후를 맞이하도록 챕터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혁에게 죽을 운명이지만 그 전에 자멸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한 챕터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경우는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 * *
[악몽의 동상 - 역병의 마왕 게로비느가 깨어납니다.]
“섬광.”
수혁은 5마계의 마왕 게로비느가 움직이자마자 섬광을 시전했다.
[악몽의 핵을 파괴하셨습니다.]
쿵! 쿵! 쿵!
[악몽의 동상 - 역병의 마왕 게로비느가 파괴되었습니다.]
앞서 파괴된 동상들과 마찬가지로 게로비느 역시 섬광 한 번에 파괴가 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풍이 동상의 잔해로 날아가 악몽의 핵을 먹었다.
악몽의 핵을 먹은 뒤 풍은 수혁에게 돌아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다음은 어디예요?!
수혁은 풍의 등에 올라탄 뒤 세계 지도 창을 보았다.
이미 세계 지도 창에는 나머지 동상들의 위치가 전부 나와 있었다.
“동쪽으로 쭉 가자.”
-네!
풍은 수혁의 말에 답하며 바로 동쪽으로 날아갔다.
한시라도 빨리 악몽의 핵을 먹고 싶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빠른 느낌이 들었다.
수혁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악몽의 마왕 자라바라켄>
6마계는 악몽에 갇혀 있다.
악몽을 파괴하고 진짜 6마계에 진입하라!
[악몽의 동상 : 6 / 8]
퀘스트 보상 : 퀘스트 - 악몽의 마왕 자라바라켄2
‘이제 2개 남았네.’
벌써 8개 중 6개를 파괴했다.
‘어떻게 생겼으려나.’
남은 것은 혹한의 마왕 마르, 그리고 크라스였다.
앞서 다른 마왕들의 생김새를 확인한 수혁은 남은 두 마왕의 생김새가 너무나 궁금했다.
특히 크라스의 생김새가 궁금했다.
-아빠, 저기 있어요!
얼마 뒤 풍이 외쳤다.
수혁은 풍의 말에 퀘스트 창을 닫고 전방을 보았다.
“……?”
그리고 전방을 확인한 수혁의 표정에 당황이 나타났다.
‘뭐야?’
동상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너무나 특이했다.
앞서 만났던 동상들 모두가 특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특이하긴 해도 생명체라는 느낌은 들었다.
그런데 이번 동상의 생김새는 생명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동글동글해?’
이번 동상은 거대한 구체였다.
‘누구지?’
수혁은 동상을 보며 생각했다.
남은 것은 마르, 크라스뿐이었다.
과연 둘 중 누가 저런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르이려나?’
느낌은 마르였다.
마왕들의 수장인 크라스가 동글동글한 구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 아냐?’
문득 든 생각에 수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배덕의 마왕 레이오느 동상과 공간의 마왕 레비오니스 동상은 다른 동상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오느는 수십 개로 분열을 했다.
분열된 녀석들 중 악몽의 핵을 가지고 있는 녀석을 찾는 데 섬광의 지속 시간을 전부 사용했다.
다른 동상들에 비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런데 그나마 레이오느는 상대하기 쉬웠다고 할 수 있는 편이었다.
섬광으로 스윽 긁어버리면 되었으니.
하지만 레비오니스는 아니었다.
공간의 마왕이란 이름에 걸맞게 레비오니스 동상은 시작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로 텔레포트!
레비오니스의 특별한 능력은 바로 텔레포트였다.
덕분에 처음으로 공격을 받았었다.
방어력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공격력이 약해서 그런 것인지 티가 살짝 날 정도의 데미지밖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조금 놀랐었다.
섬광도 먹히지 않았다.
광선이 닿을만하면 텔레포트를 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풍을 역소환시키고 파멸의 빛을 사용해 끝냈다.
“풍아, 잠시 돌아가 있자.”
수혁은 이번에도 풍을 역소환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풍을 역소환시킨 수혁은 동상에 다가갔다.
[악몽의 동상 - 혹한의 마왕 마르가 깨어납니다.]
얼마 뒤 메시지가 나타났고 수혁은 동글동글한 동상의 주인공이 혹한의 마왕 마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대가 얼어붙습니다.]
[이동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공격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받습니다.]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주변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마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마르의 능력은 레이오느나 레비오니스의 능력에 비하면 골치 아픈 능력이 아니었다.
그저 일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뿐이니.
다른 유저들에게는 마르가 더 골치 아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수혁에게는 아니었다.
“섬광.”
수혁은 섬광을 시전했다.
광선이 눈보라를 뚫고 마르 동상에 작렬했다.
수혁은 손을 움직이며 어딘가에 있을 악몽의 핵을 찾기 시작했다.
[악몽의 핵을 파괴하셨습니다.]
쿵! 쿵! 쿵!
[악몽의 동상 - 혹한의 마왕 마르가 파괴되었습니다.]
얼마 뒤 악몽의 핵이 파괴되었고 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눈보라가 사라졌다.
수혁은 마르의 잔해를 보며 풍을 소환했다.
풍은 소환됨과 동시에 동상 잔해로 다가가 악몽의 핵을 먹고 돌아왔다.
이어 수혁은 풍과 함께 바로 마지막 악몽의 동상 ‘토피앙 크라스 동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흑월의 수장이자 수많은 마왕의 수장이며 판게아 메인 에피소드의 최종 보스로 추정되는 크라스의 생김새가 너무나 궁금했다.
기괴할까? 아니면 평범할까?
상상에 잠겨 있던 수혁은 곧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크라스의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특이하지는 않네.’
거대한 뿔 세 개와 등 뒤에 날개 다섯 쌍이 달려 있는 것 빼고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란브니스나 마르처럼 특이한 모습일까 살짝 기대했던 수혁은 풍을 역소환시킨 뒤 동상으로 다가갔다.
[악몽의 동상 - 대마왕 토피앙 크라스가 깨어납니다.]
[토피앙 크라스가 영역 - 흑월을 선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나타났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수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두웠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 사이에 더욱더 어두운 구체가 떠 있었다.
메시지에 나온 ‘흑월’이 분명했다.
‘무슨 효과일까.’
영역이 선포되었다는 메시지만 나타났다.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어두워지는 것뿐인가?’
영역 선포는 디버프든 버프든 특별한 효과를 동반한다.
그런데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흑월의 특별한 효과는 주변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혁은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날개를 팔락이고 있는 크라스 동상을 향해 오른손을 들며 외쳤다.
“섬광.”
스아악!
오른손에서 시작된 광선이 동상으로 향했다.
[악몽의 핵을 파괴하셨습니다.]
쿵! 쿵! 쿵!
[악몽의 동상 - 대마왕 토피앙 크라스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내 악몽의 핵이 파괴되었고 동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무너져 내리는 동상을 보며 수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동상이라고 해도 역시 수장이라는 건가?’
섬광을 시전하며 느꼈다.
여태껏 섬광으로 파괴한 동상들은 칼로 두부 자르듯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크라스 동상은 아니었다.
질긴 고기를 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대되네.’
과연 본체는 얼마나 강할까?
수혁은 언젠가 있을 크라스와의 전투를 기대하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리고 완료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는 퀘스트 ‘악몽의 마왕 자라바라켄’을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