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7
제 487화
485.
“하실 말씀이라도…….”
“그게…….”
모아쿠이는 호빌의 반응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자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힐끔거리는 것일까?
거기다 허공을 힐끔힐끔 보는 호빌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네가 모아쿠이 공작이냐?”
호빌이 바라보던 허공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르륵
그리고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
모아쿠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누, 누구냐!”
모아쿠이는 사내에게 외치며 생각했다.
‘암살자? 아니야, 그럴 리가.’
암살자인가 싶었지만 이곳은 키룬이었다.
모아쿠이가 키룬에 온 것을 아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거기다 외관을 보아 암살자 같지 않았다.
사내는 암살자라고 하기에는 고급스러우면서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
“정말 괜찮겠니?”
파비앙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걱정 마세요.”
수혁은 파비앙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우리도 바로 시선을 끌게.”
“예.”
그리고는 인사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온 수혁은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리고 방금 전 파비앙에게 받은 퀘스트 ‘가장 빠른 길’을 확인했다.
<가장 빠른 길>
로쿤 왕국에서 키룬으로 무수히 많은 병력을 보냈다.
파비앙은 로쿤 왕국의 병력이 돌아가는 길을 막아설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일단 대화를 나눌 생각이지만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파비앙.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파비앙은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로쿤 왕국 조사대를 이끄는 모아쿠이 공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라!
퀘스트 보상 : ???
참으로 모호한 퀘스트였다.
완료 조건이 무엇인지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수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꺼낸 것이 수혁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동화.”
건물 밖으로 나온 수혁은 동화를 시전했다.
동화를 시전한 후 반투명해진 자신의 몸을 확인한 수혁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경계를 서고 있는 로쿤 왕국의 병사와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화를 시전한 상황이기에 기사와 병사들은 수혁을 볼 수 없었고 수혁은 아무런 방해 없이 그대로 로쿤 왕국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로쿤 왕국의 영역에 들어온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와 병사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에 있을까.’
수혁이 만나야 할 이는 로쿤 왕국 조사대를 이끌고 있는 모아쿠이 공작이었다.
바로 그때 수혁의 시야에 다급히 걸음을 옮기는 기사가 나타났다.
‘움직이신 건가.’
파비앙이 움직였고 움직임을 보고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수혁은 기사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수혁은 곧 3층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건물을 오가고 있었다.
사령부가 분명했다.
기사의 뒤를 따라 수혁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내 기사가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수혁은 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도 기사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문밖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쿠레 백작님! 마탑의 마법사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출발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수혁이 목적했던 공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어진 대화에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뭐? 일단 시간을 끌게! 공작님에게 보고를 드릴 테니!”
“옙!”
수혁은 문에서 비켰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기사가 다급히 왔던 길을 돌아 뛰어갔다.
이어 쿠레 백작이 나와 3층으로 향했다.
따라서 3층으로 올라간 수혁은 모아쿠이 공작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다렸다가 들어가야겠다.’
수혁은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이내 쿠레 백작이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어 안에 있던 또 다른 누군가 나왔다.
마법사였다.
수혁은 마법사가 내려가는 대로 바로 진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기던 마법사가 걸음을 멈췄다.
그것도 수혁의 바로 앞에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수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그런가?’
상황을 보아 들킨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재빨리 마법사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아니, 시전하려 했다.
털썩!
마법사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수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수혁의 의아함은 이어진 마법사의 말에 해결됐다.
“마법사 호빌,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수혁은 호빌이 무릎을 꿇은 이유를 알게 됐다.
호빌은 어째서인지 수혁을 드래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거…….’
수혁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잘만 이용하면 손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작을 만나야겠다.”
생각을 마친 수혁은 호빌에게 말한 뒤 동화를 시전했다.
호빌은 난감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수혁은 호빌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창문 앞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모아쿠이가 분명했다.
“호빌 님?”
“고, 공작님.”
“하실 말씀이라도…….”
“그게…….”
수혁은 말끝을 흐리며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호빌을 보며 나설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네가 모아쿠이 공작이냐?”
“누, 누구냐!”
“고, 공작님!”
호빌은 모아쿠이의 외침을 듣고 다급히 외쳤다.
“……?”
모아쿠이는 호빌의 부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위대한 존재십니다.”
“……!”
그리고 이어진 호빌의 말에 모아쿠이의 표정에는 경악이 가득 나타났다.
“환상의 눈.”
수혁은 스킬 ‘환상의 눈’을 시전했다.
혹시나 방 안에 숨어 있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없네.’
수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암당의 누군가가 모아쿠이 근처에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숨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다다다다닥!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성스러운 보호막.”
스아악 퉁!
수혁은 보호막을 시전했고 보호막이 나타나자마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이곤 기사단장!”
모아쿠이가 외쳤다.
“걱정 마십쇼! 침입자는 제가!”
아이곤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아니, 그게 아니…….”
모아쿠이는 다급히 외쳤다.
“매직 미사일.”
그러나 수혁의 매직 미사일이 한발 빨랐다.
스악! 쾅!
검을 휘두르려던 아이곤은 바로 앞에서 시전된 매직 미사일을 피하지 못했고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벽에 부딪히고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호오, 안 죽었네.’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수혁은 아이곤의 생명력에 속으로 감탄하며 다시 모아쿠이와 호빌을 보았다.
모아쿠이와 호빌은 그저 놀란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피를 볼 것인지 아니면 그냥 길을 열 것인지 선택하라는 뜻이다.”
“…….”
수혁의 말에 모아쿠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공작님, 승산이 없습니다.”
모아쿠이가 말이 없자 호빌이 조용한 목소리로 모아쿠이에게 말했다.
“……길을 열겠습니다.”
호빌의 말을 들은 모아쿠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가장 빠른 길’을 완료하셨습니다.]
“다시 찾아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메시지를 본 수혁은 모아쿠이에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모아쿠이의 답을 들으며 뒤로 돌아섰다.
“동화.”
방에서 나온 수혁은 바로 동화를 시전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재빨리 건물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깊은 관계가 아닌 건가?’
암운에게 잡힌 암당의 당원을 생각하면 키룬에 암당이 온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호위 하나 붙이지 않은 것을 보면 서류에 나왔던 것처럼 깊은 관계는 아닌 듯했다.
‘어디에 있으려나.’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암당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 * *
‘어떻게 된 거지?’
오렉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히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로쿤 왕국에서 길을 열어 주었다.
함정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길을 열었다.
배에 도착할 때까지 로쿤 왕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오렉은 배에 도착한 후 파비앙에게 물었다.
“수혁이가 힘 좀 썼지.”
파비앙은 히죽 웃으며 답했다.
“…….”
오렉은 파비앙의 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뒤로 휙 돌아 선실로 돌아갔다.
파비앙은 오렉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항해사에게 외쳤다.
“돌아갑시다.”
“옙.”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레 나타난 군선 때문에 심장을 졸이던 항해사는 재빨리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비앙은 고개를 돌려 수혁을 보았다.
수혁을 바라보는 파비앙의 눈빛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정말 고생했다.”
파비앙은 애정이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수혁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말이 잘 통하는 상대라 쉬웠어요.”
솔직히 말해 호빌이 드래곤으로 착각해주지 않았다면 이리 쉽게 일이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수혁과 파비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
“마탑장님, 전방에서 무수히 많은 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원 하나가 파비앙에게 다가와 말했다.
“……?”
수혁과 파비앙은 선원의 말에 선원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선원의 말대로 수많은 배가 지평선에 나타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로쿤 왕국의 배는 아니었다.
깃발이 제각기 달랐다.
깃발이 없는 배도 있었다.
“어디지?”
파비앙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배가 가까워졌고 갑판 위에 있는 사람을 본 수혁은 어떤 배인지 알 수 있었다.
‘유저들이네.’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의 머리 위에는 대부분 길드 마크가 달려 있었다.
로쿤 왕국 군선의 뒤를 쫓은 게 분명했다.
‘골치 좀 아프겠네.’
수혁은 피식 웃으며 모아쿠이를 떠올렸다.
이제 곧 키룬에 수많은 유저가 들이닥칠 것이다.
* * *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소멜은 로쿤 왕국의 국왕 페스타의 말에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이라니요?”
-모아쿠이 공작의 말로는 드래곤이라고 하더군.
-정말 몰랐던 건가?
-철수를 한 이유가 드래곤 때문이 아니고?
“아닙니다! 저희가 철수를 한 이유는…….”
아소멜은 수혁 때문이라 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설마 수혁을 드래곤으로 착각한 건가?’
문득 든 생각에 아소멜은 미간을 찌푸렸다.
페스타가 말하는 드래곤이 혹시 수혁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확실했다.
수혁의 마나를 생각하면 충분히 착각할 수 있다.
-왜 말을 못 하는 거지?
-드래곤 때문인 게 진짜인 건가?
-도대체 왜 우리한테 말을 하지 않은 거지?
-암당에서 몰랐을 리 없을 텐데 말이야.
-나만 우리 관계를 깊게 생각했던 건가?
아소멜이 말을 멈추자 페스타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페스타의 말에 아소멜은 생각했다.
‘미치겠군.’
수혁이 로쿤 왕국과 충돌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생겼다.
어찌 보면 수혁과의 충돌보다 더 큰 문제였다.
중요한 아군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소멜은 변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