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
제 393화
391.
“마나의 저주요?”
“예, 녀석은 주변의 모든 마나를 부정합니다.”
“설마 없앤다는 건가요? 마나 번 같은?”
수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몸 안에 흐르는 마나까지 태워 없앤다는 점이죠.”
“……!”
케일의 말에 수혁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를 불태우는 스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나 번이라는 스킬이 있다.
‘마나 번을 사람한테까지?’
그러나 마나 번은 생명체의 마나를 불태우지는 못한다.
태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생물 혹은 자연에 떠다니는 마나뿐이었다.
‘하긴 이상할 것 없지.’
로스탱은 어중이떠중이 조직이 아니다.
마탑을 전복시키려는 조직이 바로 로스탱이었다.
그런 곳의 수장인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당분간 탑에서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케일이 말했다.
“음…….”
수혁은 케일의 말에 침음을 내뱉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어 물었다.
“당분간이 어느 정도죠?”
하루, 이틀 정도면 탑에 머물 생각이 있다.
어차피 소나무 도서관에 가야 됐으니.
하지만 그 이상이라면 곤란했다.
12마계 도서관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케일은 말끝을 흐렸다.
얼마나 있어야 이 일이 해결될지 알 수 없다.
정말 빠르게 끝날 수도 있고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확답을 줄 수 없었다.
“그럼 제 안식처가 있는데 그곳에 가 있겠습니다.”
수혁에게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아공간이 있었다.
아공간에 간다면 그 누구도 수혁을 공격할 수 없다.
오히려 마탑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할 것이다.
“아, 항상 계시던 그곳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케일은 수혁의 말에 탄성을 내뱉으며 물었다.
위치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안식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케일이었다.
“예.”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은 평소 하던 대로 리더 길드에 넣을까요?”
“네, 리더 길드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옙.”
케일의 답을 들은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바로 휴식을 취하러 가보겠습니다.”
수혁의 말에 케일은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부디 조심하시길.”
“네, 조심하겠습니다.”
케일의 말에 답하며 방에서 나온 수혁은 바로 아공간으로를 시전했다.
“아공간으로.”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아공간에 도착한 수혁은 일단 12마계의 도시 ‘마코드르’로 이동했다.
급히 오느라 도시 ‘로스캄텔’의 워프 게이트를 등록하지 못했다.
‘딱 도착하겠네.’
현재 시간을 보니 로스캄텔에 도착하면 자정이 될 것 같았다.
이내 마코드르에 도착한 수혁은 풍을 소환해 로스캄텔로 이동했다.
이동을 하며 수혁은 친구 창을 열었다.
‘아직도 접속을 안 했네.’
연중은 여전히 오프라인 상태였다.
‘무슨 일 생겼나?’
접속을 하겠다고 했던 연중이었다.
그런데 접속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로스캄텔에 도착한 수혁은 풍을 역소환시키고 도시 중앙으로 이동했다.
워프 게이트를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곧 워프 게이트에 도착한 수혁은 게이트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마코드르처럼 아무런 창도 뜨지 않았다.
하지만 등록은 됐을 것이었다.
수혁은 게이트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회의 결과가 어떻게 됐으려나.’
지하 감옥을 습격한 로스탱 때문에 마탑장 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
‘퀘스트를 또 주면…….’
만에 하나 로스탱을 잡는 퀘스트를 준다면?
‘아니야, 이번에는 잠수.’
잠시 고민해본 수혁은 결정을 내렸다.
퀘스트를 꼭 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잠수를 타겠다고 말을 한 수혁이었다.
연락에 응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마탑에는 인재가 많다.
굳이 수혁이 아니더라도 일을 할 사람은 있었다.
그것이 NPC든지 유저든지 간에 말이다.
도서관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캡슐에서 나와 연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미안.
이내 컬러링이 끝났고 수혁은 연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부모님이 오셔서.
그리고 어째서 연중이 접속을 하지 않은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아, 그랬구나?”
-응, 미안.
“아니야.”
-어떻게 됐어?
-배그가 한 거 맞아?
“아니.”
수혁은 연중의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배그가 아니라 로스탱이라는 조직이야.”
-로스탱? 거긴 또 어디야?
“마탑을 전복시키려는 결사대.”
-그런 곳도 있었어?
* * *
“…….”
“…….”
마탑장들은 서로의 눈치를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마탑장들이 눈치를 보는 이유.
그것은 바로 코단의 배후 세력 ‘배그’와 이번에 지하 감옥을 습격한 ‘로스탱’ 때문이었다.
회의 결과 배그뿐만 아니라 로스탱 역시 정리를 하기로 결정됐다.
문제는 로스탱을 맡으려는 이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로스탱은 마탑장들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조직이었다.
바로 로스탱의 수장 ‘하비’ 때문이었다.
마나의 저주를 받은 하비는 마법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즉, 로스탱을 선택하는 마탑은 아주 큰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역시 맡으려는 사람이 없네.’
파비앙은 눈치만 보는 마탑장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시간도 잘 끌었고.’
솔직히 말해 파비앙은 로스탱을 맡겠다는 마탑장이 나오질 않길 바랐다.
‘미리미리 조사를 하길 잘했어.’
이미 독의 마탑에서는 로스탱에 대한 조사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훗날 로스탱과의 전면전이 시작될 때 요긴하게 써먹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생각을 마친 파비앙은 입을 열었다.
“저희가 하비를 맡겠습니다.”
어필을 하기 위해 로스탱이 아닌 하비를 강조했다.
“……!”
“……!”
마탑장들은 파비앙의 말에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파비앙을 보았다.
“뭐 다들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 독의 마탑에서 부담을 하겠다 이 말입니다.”
파비앙은 마탑장들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을 마쳤다.
“……괜찮겠나?”
치유의 마탑장 카츄가 물었다.
“예, 어차피 저희야 이미 시작을 장식했으니까요. 충분히 할 만큼 했고.”
카츄의 물음에 파비앙이 답했다.
배그의 지부를 찾아내 괴멸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미 독의 마탑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역사에 기록될 때 시작은 독의 마탑이 차지할 것이었다.
“이 일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배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파비앙의 말대로 배그도 중요하지만 로스탱이 더욱 중요했다.
“…….”
“…….”
“…….”
날이 선 파비앙의 말에 마탑장들은 다시 침묵했다.
파비앙은 마탑장들을 한 번씩 응시하고는 이어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준비할 게 많아서. 유언도 써놔야 하고.”
말을 마친 파비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맞다.”
마법진으로 향하던 중 파비앙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로 돌아 카츄에게 말했다.
“배그에서 로스탱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꼭 알려주시고요.”
로스탱에서는 코레몬드를 죽이고 사라졌다.
그리고 코레몬드는 코단과 관련이 있는 자였다.
즉, 코단의 배후 세력 배그와 로스탱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네.”
카츄가 답했고 답을 들은 파비앙은 마법진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머로트 공작,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요?”
라만 왕국의 왕 파피론 라만 3세가 물었다.
파피론의 물음에 머로트는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지금 최대한 빠르게 알아보는 중입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거군요.”
머로트의 답에 파피론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필 이런 일이 또.”
파피론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참으로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만 왕국은 마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만약 마탑에서 라만 왕국이 배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다면?
더욱더 척을 지게 되는 것이다.
“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겠군요.”
파피론은 왕이 된 직후 할아버지이자 라만 왕국을 건국한 라만 1세의 마탑 지부 학살 사건으로 인해 망가진 마탑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팔카론 님 마탑에서는…….”
파피론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라만 왕국의 왕궁 마법단장 팔카론에게 물었다.
“정보를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협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마탑과 척을 지게 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협력을 원한다니 다행이었다.
“근데 좀 무리한 요구들이 있습니다.”
“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은 다 들어 주세요. 이번 기회로 마탑과의 관계를 완전히 개선해야겠습니다.”
“그게…….”
팔카론이 말끝을 흐렸다.
“……?”
파피론은 팔카론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카론의 표정에는 곤란함이 가득했다.
어떤 요구를 했기에 이리 곤란해 하는 것일까?
“왕궁 내부 수색까지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머로트가 외쳤다.
왕궁 내부 수색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요구를 할 수는 없다.
너무나 무례한 일이었다.
스윽
파피론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머로트가 입을 다물었고 파피론이 이어 말했다.
“들어주세요. 오히려 이런 요구를 들어준다면 관계 개선에 더욱 도움 될 겁니다.”
* * *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기로스가 들어왔다.
기로스의 손에는 서류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
아소멜은 말없이 서류 더미를 바라보았다.
“후.”
그리고 서류 더미가 책상 위로 올라온 순간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바로 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확인했다.
“……?”
서류를 확인한 아소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이 안 먹혀?”
아소멜은 미간을 찌푸렸다.
서류에는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독을 안 쓴 거 아니야?”
이번에 라만 왕국으로 보낸 독은 엄청나게 강한 독이었다.
피 대신 독이 흐른다고 불릴 정도로 독에 강한 블랙 드래곤들도 중독이 될 정도였다.
아무리 수혁이 독에 대한 면역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독을 썼다면 분명 중독이 됐어야 했다.
“아닙니다. 분명 독을 썼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지부에서 온 마지막 보고가 수혁이 독을 먹었다는 보고였다.
“……그럼 말이 안 되잖아! 왜 못 죽인 건데?”
아소멜은 짜증이 가득 깃든 목소리로 외쳤다.
“…….”
기로스는 아소멜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하겠는가?
“끙.”
아소멜 역시 기로스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속으로 화를 죽이기 시작했다.
화를 가라앉힌 아소멜은 기로스에게 물었다.
“위치는?”
“독의 마탑에서 사라졌습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수혁은 갑자기 사라졌다.
이미 사라졌음을 예상하고 있던 아소멜은 말없이 다음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후, 그나마 다행이군.”
아소멜의 입가에 은은히 미소가 나타났다.
라만 왕국에서의 계획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유도한 대로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