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
제 333화
331.
“예, 공간 이동을 당해서…….”
수혁은 말끝을 흐리며 크라노손을 잠시 응시하고는 이어 물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아, 그게…….”
크라노손은 수혁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11마계가 정리가 됐는지 발록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결국 후퇴를 했습니다.”
발록들이 쳐들어왔다.
그것도 왕까지 왔다.
왕이 왔다는 것은 발록들의 손에 11마계가 완전히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조만간 10마계로 녀석들이 쳐들어올 것 같습니다.”
전초기지를 습격했던 발록들.
그 많던 발록들이 전부 10마계로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적은 수가 포탈을 통해 넘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조만간 전초기지에서 마주했던 발록들과 그들의 왕이 넘어올 것이었다.
수혁은 크라노손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뭐야? 아직 말 안 했나?’
이제 곧 발록들의 총공격이 시작된다.
그런데 크라노손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천막 안에 계실 텐데?’
수혁은 천막을 보았다.
분명 사냥왕은 크라노손의 천막에 있다.
그것도 연중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둘이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것일까?
이 중대한 정보를?
바로 그때였다.
천막에서 연중과 사냥왕이 나왔다.
“그렇군요.”
일단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라노손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 크라노손에게 물었다.
“잠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 좀 가져도 될까요?”
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인지, 도대체 천막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입니다.”
크라노손은 수혁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천막으로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천막 앞에 도착한 후 크라노손은 수혁에게 말하며 먼저 천막으로 들어갔다.
“말 안 하셨어요?”
크라노손이 들어가자마자 수혁이 입을 열었다.
“네,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그리고 사냥왕이 수혁의 물음에 답했다.
발록들의 총공격은 퀘스트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즉, 크라노손에게 발록들의 공격을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수혁은 사냥왕의 답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끄덕임을 멈춘 수혁이 말했다.
“일단 들어가죠.”
* * *
“후아.”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키보드를 두들기던 장경우는 이내 손가락을 떼며 기지개를 켰다.
“처리할 게 너무 많단 말이지…….”
현재 장경우는 버그를 처리하고 있었다.
원래 버그 처리는 장경우가 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버그가 일어난 장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그를 처리하고 있었다.
“11마계만 아니었어도 그냥 맡겼을 텐데.”
버그가 일어난 곳은 바로 11마계였다.
물론 버그라고 해서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소환된다거나 아니면 몬스터들의 생명력이나 공격력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나거나 또는 나와선 안 되는 몬스터가 나왔다거나 드랍돼서는 안 될 아이템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에휴, 그나마 마족들도 많이 죽어서 다행이지.”
장경우가 처리하고 있는 버그는 NPC들의 인식 충돌이었다.
유저는 암살 의뢰를 받은 암살자에게 죽거나 혹은 NPC들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관계가 초기화된다.
암살자에게 죽는다면 상관이 없다.
특수 NPC를 제외한 모든 NPC들과의 관계가 초기화되기에.
문제는 두 번째 경우 NPC의 눈앞에서 죽었을 때다.
서로를 알고 있는 유저, NPC B와 C가 있다.
B의 눈앞에서 유저가 죽는다면?
유저와 B의 관계는 초기화가 된다.
하지만 유저와 C의 관계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여기서 B와 C의 인식 충돌이 일어난다.
C는 유저를 기억하는데 B에게 유저는 처음 보는 이가 되는 것이다.
보통은 슈퍼 컴퓨터 ‘판게아’가 알아서 잘 처리를 하지만 처리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직접 처리를 해야 했다.
“후딱 끝내자.”
장경우는 휴식을 끝내고 다시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끝!”
장경우는 활짝 웃었다.
“이제 또 상황이나 확인해볼까.”
버그를 처리할 때와 달리 장경우는 느긋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내 모니터에 여러 정보가 뜨기 시작했다.
“수혁이 도착했으니 버그는 안 일어나겠네.”
발록들의 침공이 이제 곧 시작된다.
하지만 수혁이 거점에 도착했다.
포탈은 하나.
수혁이 그 포탈을 지키고 있는다면?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나오는 족족 수혁에게 죽을 것이다.
“근데 얘는 왜 여길 가 있는 거야?”
장경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록들의 왕 에르테.
에르테는 현재 11마계의 도시 ‘라필렌’에 가 있었다.
“로비스랑 같이 가야 그나마 위협이 될 텐데.”
장경우는 에르테의 행보가 너무나 아쉬웠다.
2인자인 로비스와 함께 훈련한 발록들.
그들과 함께라면 수혁이 포탈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뚫어낼 수 있다.
아니, 수혁에게 첫 죽음을 안길 수도 있다.
에르테는 발록들의 정점이었고 2인자인 로비스와 함께 훈련한 발록들은 마법에 특히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수혁이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죽음을 안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데…….”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장경우는 중얼거렸다.
“또 먼저 가지는 않겠지?”
* * *
[퀘스트 ‘침공을 막아라!’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한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포탈에 다녀오겠습니다.”
“예.”
그리고 크라노손의 답을 들으며 천막에서 나왔다.
천막에서 나온 수혁은 포탈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퀘스트 창을 열어 ‘침공을 막아라!’를 확인했다.
<침공을 막아라!>
포탈을 통해 발록들이 주기적으로 넘어오고 있다.
크라노손은 조만간 발록들의 본대가 10마계로 넘어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발록들의 침공을 막아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침공을 막아라!’는 말 그대로 발록들의 공격을 막는 것이 완료 조건인 퀘스트로 퀘스트 ‘발록들의 침공’과 똑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떻게 할 거야?”
수혁의 뒤를 따라 나온 연중이 물었다.
“뭘?”
“막을 거야? 아니면 갈 거야?”
연중은 수혁의 반문에 재차 물었다.
방금 전 받은 퀘스트 ‘침공을 막아라!’도 그렇고 ‘발록들의 침공’도 그렇고 발록들의 공격을 막는 퀘스트였다.
하지만 꼭 발록들의 공격을 이곳 거점에서 막을 필요는 없다.
전에도 그랬듯 11마계에 가 발록들을 잡아도 된다.
“음…….”
수혁은 연중의 물음에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막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발록들이 쭉쭉 넘어온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다.
포탈 주변에 범위 마법을 깔아두면 넘어오는 족족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마법을 뚫고 나오는 발록이 있다고 해도 괜찮다.
어둠의 자식들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
‘마족들도 강해졌고.’
10마계 내부 전쟁이 끝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11마계와의 전쟁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족들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전에는 일반 발록 하나를 잡는데 상급 마족 둘, 셋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상급 마족 혼자서 일반 발록을 둘 이상 상대할 수 있었다.
즉, 막는다면 매우 안정적으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문제는 시간.
포탈을 통해 한 번에 넘어올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다.
모든 발록들이 넘어올 때까지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시간을 생각하면…….’
안정을 생각하면 막아야 하고 시간을 생각하면 가야 한다.
‘그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수혁은 입을 열었다.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수혁의 선택은 전처럼 쳐들어가는 것이었다.
“혼자서.”
전과 마찬가지로 같이 갈 생각은 없다.
“또?”
“응.”
연중의 반문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 많을 겁니다.”
그러자 사냥왕이 걱정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다 에르테까지 있을 텐데…….”
퀘스트 ‘발록들의 침공’의 완료 조건을 보면 발록들의 왕 에르테는 이번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으로 쳐들어가게 된다면?
에르테를 상대해야 할 수 있다.
“진짜 쎄다. 빠르고.”
사냥왕의 말에 연중 역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테를 겪어본 연중은 유저들 중 그 누구보다 에르테를 잘 알고 있었다.
“음…….”
수혁은 연중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
‘에르테…….’
연중에게 에르테의 빠름과 강함을 들었다.
‘어차피 잡아야 할 녀석인데.’
지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에르테와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가서 한 번이라도 전투를 겪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그래도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갔다 오겠습니다.”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수혁의 답에 연중과 사냥왕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포탈에 도착한 수혁은 연중과 사냥왕에게 인사했다.
“다녀올게. 정리되면 귓 드리겠습니다.”
“응!”
“옙.”
수혁은 연중과 사냥왕의 답을 듣고 포탈로 걸음을 옮겼다.
[11마계에 입장하셨습니다.]
[경고!]
[상급 발록 아무라스가 나타났습니다.]
[경고!]
[상급 발록 켈로비니아스가 나타났습니다.]
.
.
11마계에 도착하자마자 무수히 많은 메시지들이 수혁을 반겼다.
“독룡 소환.”
메시지를 보며 수혁은 바로 독룡을 소환했다.
스아악!
마법진에서 독룡이 모습을 드러내 똬리를 틀었고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혁은 또다시 메시지 폭탄을 받을 수 있었다.
[레벨 업!]
[상급 발록 아무라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상급 발록 켈로비니아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상급 발록 레비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레벨 업!]
.
.
수혁은 상급 발록들의 죽음 메시지와 레벨 업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다 주변에 모여 있나?’
처음 11마계에 왔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긴 이제 곧 침공인데.’
생각을 해보니 침공 시간이 다가왔다.
모여 있는 게 당연했다.
수혁은 걸음을 옮기며 캐릭터 창을 열었다.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했다.
레벨 : 591
경험치 : 1%
생명력 : 109400
마나 : 460800
포만감 : 85%
힘 : 30
민첩 : 19
체력 : 1088 [544]
지혜 : 23040 (+2550)
맷집 : 10
보너스 스텟 : 465
레벨을 확인한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속도면.’
그리고 계속해서 상승하는 경험치를 보며 확신했다.
‘충분히 달성하겠어.’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닌데 591이 되었다.
즉, 이번에 600을 찍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어떤 속성을 개방해야 하나.’
남은 속성은 총 4가지.
물, 전기, 빛, 대지 중 어떤 속성을 개방할지 고민됐다.
바로 그때였다.
“……?”
고민에 잠겨 있던 수혁은 시야에 들어온 것들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