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
제 320화
318.
“벌써 이렇게 죽였어?”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해피가 죽인 NPC, 유저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시작의 마을 ‘오렌’과 비교해 유저들이나 NPC들의 수준이 더 올라갔을 텐데 어떻게 이리 많이 죽인 것일까?
장경우는 해피의 캐릭터 정보를 확인했다.
소속 : 페이드 제국
직업 : 광인
레벨 : 97
경험치 : 15%
생명력 : 26350
마나 : 1960
포만감 : 39%
힘 : 885 (+530)
민첩 : 140 (+90)
체력 : 350 (+140)
지혜 : 98 (+50)
살의 : 59
“엄청 올랐네.”
레벨과 스텟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물론 레벨이야 워낙 낮았기에 이해가 됐지만 스텟은 아니었다.
장경우는 해피의 장비 상태를 확인했다.
“장비를 샀구나.”
장비 상태를 확인한 장경우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올 영웅 등급이라…….”
해피는 무기부터 시작해 투구, 갑옷, 신발 등 방어구는 물론 장신구까지 전부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러니 쉽게 죽이지.”
물론 레벨에 상관없이 착용이 가능한 것들이라 영웅 등급이라 해도 엄청난 옵션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해피의 레벨대에서는 충분히 사기적이었다.
“근데 아무리 값이 싸졌어도 상당할 텐데 돈이 많나.”
얼마 전 수혁이 전설 등급의 장비를 대거 경매했다.
그로 인해 영웅 등급 장비 시세가 꽤나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졌다고 해도 이미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던 영웅 등급의 장비들이었다.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 해피의 정보를 훑어보던 장경우는 이내 해피의 정보를 닫았다.
그리고 이어 메인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며칠 안 남았군.”
며칠, 며칠만 지나면 이제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의 마지막 챕터가 시작된다.
대미를 장식할 때가 된 것이다.
“리더 길드나 제왕 길드는 계속 있으려나?”
리더 길드와 제왕 길드는 여전히 10마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가 시작될 즈음 11마계 퀘스트가 진행된다.
과연 두 길드의 선택은 어떨까?
* * *
“그럼 이따 밤에 끝나는 거야?”
-응.
“생각보다 빨리 완성됐네.”
-그치, 1주일밖에 안 걸렸으니까.
11마계로 가 발록들을 정리한 지 어느새 1주일이 지났다.
다행히도 1주일 동안 발록들은 단 한 번도 10마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리더 길드와 제왕 길드의 도움으로 거점 공사는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이 되어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내일 바로 시작이지?”
-응응, 내일 언제 들어올래?
“9시까지 들어갈게.”
-알았어. 근데 아직도 도서관이야?
“응.”
수혁은 연중의 물음에 답했다.
1주일 전 발록들을 정리한 이후 수혁은 판게아에 단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다.
오재용이 보내 준 책들을 다 읽고 난 뒤 수혁은 소나무 도서관에 와 계속해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구! 내일 보자.
“그래.”
수혁은 연중과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책장으로 향했다.
수혁은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정복이네.’
책장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읽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지금 읽지 않은 것은 손에 쥔 책이 끝이었다.
책장을 하나 정복한 것이다.
물론 책장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는 수많은 책장이 존재했다.
‘다행이야.’
다음 책장으로 넘어온 수혁은 진열된 책들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책장에 진열된 책들 중 읽은 것들도 있었지만 읽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읽지 않은 책이 많다는 것에 절로 안도감이 들었다.
수혁은 새로운 책장에서 읽지 않은 책 몇 권을 꺼냈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언제 또 오게 될까.’
내일부터 11마계 퀘스트가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당분간 도서관에 오지 못하는 것이다.
방에 도착한 수혁은 책상으로 향하며 다짐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자.’
퀘스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최대한 빠르게 진행을 하자고.
‘최상급 발록도 어렵지는 않으니까.’
한 마리를 놓치긴 했지만 한 마리는 매우 쉽게 잡았다.
즉, 예상한 대로 전쟁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짐한 대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짐을 마친 수혁은 책상에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 * *
“역시!”
장경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혁이 접속을 했다.
“거점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던 건가?”
아무래도 수혁이 접속을 하지 않았던 것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하긴 도서관이 없으니.”
수혁의 접속 시간은 매우 많다.
그 많은 시간 중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리고 현재 포탈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수혁이 접속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잠깐.”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장경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진짜 게임 하는 주 이유가 책 때문인가?”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니었다.
수혁이 도서관에 갔을 때마다 떠올랐던 생각이다.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책을 읽으려고 게임을 하겠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에서 신빙성이 느껴졌다.
“…….”
장경우는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띠링!
스피커를 통해 알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장경우는 알림이 울린 이유를 확인했다.
“시작됐군.”
이유를 확인한 장경우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대미!”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 ‘키메라’의 마지막 에피소드 ‘진정한 배후, 독산’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 * *
아침 운동 후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8시 30분이라.’
약속 시간까지 30분이 남아 있었다.
‘슬슬 접속해볼까.’
9시에 맞춰 접속을 하면 늦는다.
수혁은 11마계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약속 장소인 10마계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야 했다.
생각을 마친 수혁은 바로 캡슐로 들어갔다.
판게아에 접속하자 1주일 전 보았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뀐 게 없네. 한 번도 안 온 건가?’
수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발록들의 거점은 1주일이 지났음에도 딱히 변화가 없었다.
거점을 복구 중이면 한 번 더 휘젓고 가려 했던 수혁은 아쉬운 표정으로 포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탈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10마계로 돌아갔다.
[10마계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야.’
10마계에 도착함과 동시에 수혁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진짜 크네.’
발록들의 거점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석벽이 포탈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꽤나 많은 수의 마족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누군가 나타났다!”
“준비!”
마족들은 수혁을 발견하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중지! 중지! 수혁 님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혁을 알아본 한 마족이 외쳤고 그의 외침에 마족들은 재빨리 공격 자세를 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계하는 마족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내려와 다가왔다.
“수혁 님을 뵙습니다. 상급 마족 코스트펠이라고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코스트펠의 인사에 답한 수혁은 이어 말했다.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수혁의 말에 코스트펠은 격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크라노손 님께 안내해드릴까요?”
“아닙니다. 그 전에 동료들을 만나기로 해서요.”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크라노손을 만나기 전에 연중과 사냥왕을 만나야 했다.
“알겠습니다!”
코스트펠은 수혁의 말에 앞장서 입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입구까지 수혁을 안내해준 코스트펠이 인사를 하고는 다시 석벽 위로 올라갔다.
수혁은 친구 창을 열어 연중과 사냥왕의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당일이라 그런지 약속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연중과 사냥왕은 접속해 있었다.
-수혁 : 어디야?
-수혁 : 어디 계세요?
수혁은 연중과 사냥왕에게 차례대로 귓속말을 보냈다.
-연중 : 나 지금 가는 중! 10분 내 도착!
-사냥왕 : 지금 거점에 있습니다! 혹시 도착하셨습니까?
둘에게서 바로 답이 도착했다.
-수혁 : 그럼 나 사냥왕 님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 이따 봐.
-수혁 : 예, 지금 포탈 석벽 입구입니다.
-연중 : 응!
-사냥왕 : 제가 그럼 포탈 쪽으로 가겠습니다!
-수혁 : 옙!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귓속말을 마친 수혁은 사냥왕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메인 에피소드 ‘키메라’의 마지막 챕터 ‘진정한 배후, 독산’이 시작됩니다.]
메시지가 나타났다.
“……?”
사냥왕이 어디에서 오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수혁은 메시지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챕터?’
메시지에는 현재 판게아의 핫이슈인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독산?’
의아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던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월이 아니라?’
수혁은 이번 키메라 사태의 배후를 알고 있었다.
바로 흑월이었다.
‘뭐야…….’
그런데 메시지에는 ‘독산’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즉, 이번 배후는 수혁이 알고 있는 것처럼 흑월이 아니라 ‘독산’이라는 곳이었다.
‘분명 흑월이라고 하셨는데.’
수혁은 파비앙, 케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파비앙 그리고 케일은 이번 사태의 배후를 흑월로 지목했고 꼬리까지 잡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위장? 후예?’
혹시나 독산이 흑월로 정체를 위장했던 것일까?
본인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아니면 흑월의 후예인 것일까?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호기심이 물밀듯 몰려왔다.
“수혁 님!”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사냥왕이 달려오고 있었다.
“보셨습니까?”
사냥왕은 꽤나 상기된 표정으로 수혁에게 물었다.
방금 전 나타난 메시지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예, 봤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수혁은 사냥왕의 말에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냥왕은 수혁의 반문에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혹시 중간계에 다녀오실 건지 아니면 바로 11마계에 가실 건지…….”
솔직히 사냥왕은 메인 에피소드보다 11마계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하지만 수혁은 다를 수 있다.
11마계보다 메인 에피소드에 관심이 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수혁이 없을 경우 11마계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발록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지금 능력으로 가능할까?
상급 발록까지는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 위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혁의 선택이 중요했다.
“아.”
사냥왕의 말에 질문 의도를 파악한 수혁은 바로 답을 해주었다.
“저야 11마계죠.”
“그렇군요.”
수혁의 답에 사냥왕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짧게 숨을 내뱉고는 씨익 웃었다.
“그럼 가시죠!”
사냥왕은 히죽히죽 웃으며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