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
제 296화
294.
-그때까지는 나도 이 일을 보류하겠다.
클레인이 말했다.
“예.”
그리고 아소멜의 답을 끝으로 수정구에서 초록빛이 사라졌다.
아소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정구를 제자리에 가져다 둔 뒤 방에서 나와 부당주 기로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끼이익
집무실에 도착한 아소멜은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엇! 당주!”
기로스는 아소멜을 보고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려고 했는데.”
아소멜은 기로스의 손에 들린 엄청난 양의 서류를 보았다.
뭔가를 찾은 게 분명했다.
스윽
“뭔데?”
아소멜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기로스는 아소멜의 반대편에 앉아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 좀 보십쇼.”
아소멜은 기로스의 말에 서류들을 확인했다.
수혁의 행적에 다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보시면 미개척지에 엄청나게 갔습니다.”
기로스가 이어 말했다.
“처음에는 눅눅한 습지대의 독을 가지러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라누스의 패인이 죽은 곳도 미개척지 ‘눅눅한 습지대’였고 혹시나 눅눅한 습지대의 독을 수집하러 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흔적은 눅눅한 습지대에서 그치지 않았다.
흔적을 조사해보니 수혁과 연중은 계속해서 이동을 했다.
“도대체 왜 미개척지에 간 것일까? 뭘 찾으러? 라는 생각에 그 주변에 있는 지역들을 싹 훑었습니다.”
수혁이 어딜 간 것인지 궁금했다.
거기다 혼자 간 것도 아니고 리더 길드의 마스터 연중과 함께였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걸 발견했습니다.”
결국 기로스는 찾아냈다.
“뭔데?”
이야기를 듣던 아소멜이 물었다.
스윽
기로스는 아소멜의 물음에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아소멜은 서류를 보았고 이내 동공이 확장됐다.
‘마계?’
서류에 쓰여 있는 것은 마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마계와 연결된 ‘차원의 문’에 대해 쓰여 있었다.
“설마 마계의 입구를 찾았다고?”
아소멜이 고개를 들어 기로스에게 물었다.
“예, 찾았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확인만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기로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수혁이 마계에 갔었단 소리야?”
“예. 가서 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계에 간 게 분명합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확인만 되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한 기로스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답했다.
“……마계라.”
아소멜은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러면 설마 계약을 한 건가?’
클레인의 말에 따르면 수혁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마탑장인 파비앙을 넘어섰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마족과의 계약이었다.
계약이라면 1년도 안 된 수혁이 파비앙을 넘어선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마왕급이겠지?’
물론 파비앙을 넘어설 정도라면 보통 마족은 아닐 것이다.
아소멜은 적어도 마왕급 마족과 계약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거 마족들과 잘만 엮으면…….”
기로스는 말끝을 흐리며 아소멜의 눈치를 살폈다.
아소멜은 기로스의 말뜻을 이해하고 씨익 웃었다.
“굳이 우리 힘을 쓸 필요가 없겠지.”
마왕과 계약한 마법사.
아니, 굳이 수혁이 마법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마왕과의 계약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시나리오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작업할까요?”
기로스가 물었다.
“아니.”
생각에 잠겨 있던 아소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면 계획에 너무 큰 변수가 생겨. 일단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클레인 님에게 맡기자고.”
시나리오대로 하면 굳이 흑월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혁을 없앨 수 있다.
거기다 오히려 무너트려야 할 이들의 힘을 대폭 소모 시킬 수도 있다.
수혁을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할 테니.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태까지 진행한 일들이나 앞으로 진행할 일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혁을 하나 잡자고 모든 일에 변수를 줄 수는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소멜의 말에 기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여기는 어쩐 일로…….”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수혁에 대한 조사를 다시 해야겠어.”
아소멜은 기로스의 물음에 답했다.
“녀석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인간관계까지 싹.”
* *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이람 왕국의 왕 엘릭 아이람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얼마 전 루칼 왕국에서 서신이 왔다.
서신에는 루칼 왕국에서 일어난 2차 키메라 사태의 배후가 아이람 왕국이란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엘릭은 코웃음을 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다른 국가들 역시 루칼 왕국과 아이람 왕국의 관계를 알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1차 키메라 사태로 수많은 국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많은 국가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이람 왕국은 1차 키메라 사태 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물론 아이람 왕국만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2차 키메라 사태가 문제였다.
1차와 2차 키메라 사태가 겹쳐 루칼 왕국의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신빙성을 얻어 버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거짓이 진실이 될 것이고 사이가 좋거나 나쁘지 않았던 국가들과의 관계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루칼 왕국, 스펜 공국과 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 적이 더 늘어나면 좋을 게 없었다.
쇠퇴의 길을 걷고 말 것이다.
그래서 조사를 명했다.
키메라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배후가 누구인지.
“라슨 자작이 진짜 그랬단 말입니까?”
그런데 조사 결과를 듣고 나니 충격 그 자체였다.
“예…….”
외무대신 아소리스 공작이 착잡한 표정과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아소리스의 말에 엘릭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거짓이 아니었다.
“라슨 자작이 어떻게 키메라를 아니, 그것보다 공허의 정을 어떻게 구한 겁니까?”
이번에 나타난 키메라들은 공허의 정을 가지고 있었다.
라슨 자작이 키메라를 만들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공허의 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허의 정이 무엇인가?
극악무도한 제작 방법에 제작이 금지되었으며 이미 제작된 것도 사용이 불가능한 언급조차 껄끄러운 것이 바로 공허의 정이었다.
국가 단위로 관리되는 공허의 정을 라슨 자작이 어떻게 구한 것일까?
“지금 조사 중입니다.”
아소리스가 답했다.
하지만 답을 한 아소리스의 표정에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키메라 사태의 주범인 라슨 자작이 사라져 조사에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엘릭은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피할 수 없겠군.’
이제 곧 루칼 왕국에서는 공표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공표에 반박을 할 증거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루칼 왕국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라슨 자작으로 꼬리를 자를 수도 없다.
자작이 이런 짓을 꾸민 것이라 하면 누가 믿겠는가?
이대로 가면 최악의 상황이 오고 말 것이다.
아니, 이미 최악의 상황이었다.
분쟁은 끝났다.
생각을 마친 엘릭이 말했다.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 *
가져온 책을 다 읽은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을 반납하러 가며 귓속말을 보았다.
“……음?”
귓속말을 본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연중 : 메시지 봤어?
연중에게서 귓속말이 와 있었다.
‘메시지?’
수혁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
.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시야에 지혜가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가득 들어왔다.
수혁은 스크롤을 움직여 메시지를 쭉 확인했다.
“어?”
그리고 이내 탄성을 내뱉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메인 에피소드 ‘키메라’의 두 번째 챕터 ‘배후, 전쟁’이 시작됩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수많은 지혜 상승 메시지 사이에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호오, 두 번째 챕터가?’
바로 메인 에피소드 ‘키메라’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배후, 전쟁이라…….”
수혁은 챕터 명을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전쟁으로 가는구나.’
얼마 전 특수 키메라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루칼 왕국에서 공표를 했다.
이번 특수 키메라의 배후가 아이람 왕국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특수 키메라에게서 공허의 정이 발견된 것 등 충격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공표였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챕터 명을 보아 결국 전쟁으로 가는 것 같았다.
‘흑월이겠지?’
루칼 왕국의 말대로 아이람 왕국이 진짜 배후는 아닐 것이다.
1차 키메라 사태의 배후는 ‘흑월’이란 단체였다.
흑월에서 아이람 왕국에 누명을 씌운 게 분명했다.
-수혁 : 방금 봤다. 전쟁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거야?
수혁은 연중에게 답을 보냈다.
그리고 책을 반납 후 책장으로 향했다.
책장에 도착했을 때 연중에게서 답이 왔다.
-연중 : 지금부터! 루칼 왕국에서 전쟁 선포했어. 그리고 인접해 있는 국가들도 전쟁 선포하고. 막 군사들 움직이고 용병 지원받고 장난 아니다.
-연중 : 어떻게 할 거야?
-연중 : 참여할 거야?
연중의 물음에 수혁은 다시 메시지를 보았다.
‘재미는 있겠지만…….’
흥미가 돋았다.
판게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고 분쟁이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전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첫 전쟁인 것이다.
거기다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할 큰 전쟁이었다.
스윽
수혁은 고개를 들어 책을 보았다.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수많은 책들이 보였다.
책들을 보며 수혁은 연중에게 답을 보냈다.
-수혁 : 아니, 그냥 도서관에 쭉 있을 거야.
흥미가 돋기는 했지만 전쟁이란 게 휙휙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잠깐 참여해도 되지만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 많았다.
거기다 전쟁은 상황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중 : 알았다!
이미 이런 수혁의 답을 예상했던 연중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수혁 : 넌? 참여할 거야?
-연중 : 아마 참여할 것 같아. 궁금하기도 하고 글도 올려야 하고!
수혁은 이후 연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귓속말을 마쳤다.
그리고 수혁은 책장에서 책들을 꺼낸 뒤 책상으로 돌아가 독서를 시작했다.
* * *
장경우는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니터에는 수혁에 대한 정보가 출력되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장경우는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쟁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 건가?”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1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수혁은 여전히 마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중간계로 가지 않았다.
혹시나 전쟁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일까?
장경우는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입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