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제 271화
269.
허공에 나타난 얼굴은 분명 수혁이었다.
어째서 라스칼이 수혁에게 관심을 준 것일까?
‘설마 눈 밖에 난 건 아니겠지?’
거대한 마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했다.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인 파비앙의 생각이다.
드래곤인 라스칼의 입장에서 거대한 마력을 가진 인간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아는 자군.”
라스칼은 파비앙의 반응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
파비앙은 라스칼의 말에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제자입니다.”
“……!”
라스칼은 파비앙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라스칼의 반응에 파비앙의 긴장 역시 한층 더 증폭됐다.
“엄청난 제자를 뒀군.”
이내 라스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스칼의 미소와 분위기에 파비앙은 안도할 수 있었다.
나쁜 의미로 수혁에 대해 물은 게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실 부탁이 무엇인지…….”
파비앙은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라스칼이 온 이유는 부탁 때문이었다.
이제 그 부탁이 무엇인지 들을 차례였다.
“아, 그렇지.”
라스칼은 파비앙의 말에 자신이 온 목적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타락한 동족이 있다.”
“……!”
파비앙은 라스칼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스칼의 동족이 타락했다는 것은 드래곤이 타락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타락이라니?’
재앙 중의 재앙이었다.
“아직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10년 뒤 성룡이 되면 통제가 불가능해지지.”
라스칼이 이어 말했다.
10년 뒤 아서르는 3천 살이 되어 육체와 정신의 진화가 일어난다.
물론 드래곤 킬 웜이 기생하고 있기에 정신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타락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전에 자연의 품으로 보내주려 하는데 문제가 있다.”
“문제요?”
“드래곤 킬 웜을 아나?”
“……!”
라스칼의 말에 파비앙의 표정에 다시 한 번 놀람이 가득 나타났다.
파비앙은 드래곤 킬 웜을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비앙이 연구하고 있는 궁극의 독 마법이 바로 드래곤 킬 웜과 관련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드래곤 킬 웜 자체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고 드래곤 킬 웜이 드래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연구하고 있었다.
“설마 타락한 이유가 드래곤 킬 웜 때문입니까?”
“그래.”
파비앙의 물음에 라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신다는 부탁이…….”
라스칼의 끄덕임에 파비앙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라스칼이 할 부탁이 뭔지 예상이 됐다.
* * *
“동족인가?”
수혁은 길을 막고 서 있는 사내의 말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뭔 소리야?’
동족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저, 길 좀…….”
수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사내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러자 사내가 사과를 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아니에요.”
수혁은 그대로 사내를 지나쳐 독의 마탑에서 나왔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5분 남았네.’
아직 아공간으로의 쿨타임이 끝나지 않았다.
‘뭘 할까.’
수혁은 5분 동안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기에 5분이란 시간은 너무나 적은 시간이었다.
‘책이라도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때 책이 있었다면 기다리며 책을 읽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바로 그때.
‘……잠깐.’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혁은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바로 불의 마탑이었다.
불의 마탑으로 가는 이유는 책 때문이었다.
각종 고서들을 모아둔 불의 마탑!
코델이라면 분명 고서를 빌려줄 것이다.
이내 불의 마탑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코델을 만났다.
제지하는 이들은 없었다.
브리니스의 증표를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독의 마탑뿐만 아니라 불의 마탑 마법사들에게도 이미 얼굴이 알려진 수혁이었다.
“헛, 수혁 님!”
불의 부마탑장 코델이 수혁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수혁 역시 코델에게 인사를 하며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혹시 고서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코델의 반문에 수혁이 물었다.
“고서라면 저희가 모아둔 그 고서들 말입니까?”
“네.”
“전부를 말씀하시는 건 아닌 것 같고…….”
말끝을 흐린 코델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가시죠.”
그리고 이내 앞장서 고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혁은 코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다다닥!
그렇게 코델과 수혁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나타났다.
“어? 분명 수혁 님이 왔다고 했는데…….”
바로 불의 마탑장 브리니스였다.
수혁이 왔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곧장 움직였다.
“어디 계시지?”
하지만 수혁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벌써 가신 건 아니겠지?”
브리니스는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부마탑장 코델의 방으로 향했다.
* * *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고서를 모아둔 방으로 향하며 코델이 물었다.
“딱히 찾는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읽고 싶어서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
수혁의 답에 코델은 탄성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키메라와 관련된 고서를 찾으시는 건가?’
현재 수혁은 키메라 때문에 마탑에서 아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물론 측정불가의 재능으로 전부터 뜨겁긴 했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더욱 뜨거웠다.
수혁이 고서를 찾는 이유가 바로 이번 키메라 사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코델은 생각을 끝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아, 넵!”
수혁은 코델의 말에 답하며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말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고서들 대부분이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고서들이 하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퀘스트는 없구나.’
고서이기에 혹시나 퀘스트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수혁은 살짝 떠오른 아쉬움을 떨쳐내고 걸음을 옮겨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언어에 상관없이 오로지 두꺼운 고서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내 두껍다 못해 무기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고서 5권을 꺼낸 수혁은 코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앞에 있는 책상에 고서들을 내려놓은 뒤 말했다.
“이것들을 빌릴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코델은 수혁의 말에 고서들을 쭉 확인했다.
‘다 반출 가능한 것들이군.’
다행히 외부로 반출이 불가능한 고서들이 아니었다.
확인을 끝낸 코델이 수혁에게 말했다.
“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델의 답에 수혁은 활짝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고서들을 넣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고서들을 획득한 수혁은 인벤토리에 자리 잡고 있는 고서 다섯 권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겠어.’
어딘가를 이동할 때 멍하니 있지 않아도 된다.
고서를 읽으면 된다.
‘얼마나 오를까.’
책의 두께에 따라 오르는 지혜의 양이 달라진다.
과연 지혜가 얼마나 오를지도 기대가 됐다.
수혁은 인벤토리를 닫았다.
“언제까지 반납해야 할까요?”
그리고 코델에게 물었다.
“다 읽고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너무 늦지만 않게요!”
코델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넵! 다 읽는 대로 반납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수혁은 코델의 답에 인사를 한 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바로 가볼까.’
고서를 빌리는 동안 아공간으로의 쿨타임이 끝났다.
이제 마계의 도서관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아공간으로.”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 * *
[레벨 업!]
[레벨 380을 달성하셨습니다.]
[스킬 ‘현신’을 습득하셨습니다.]
“……흐.”
레벨 업을 한 연중은 메시지를 보고 짧게 웃음을 내뱉었다.
“드디어 배웠구나.”
1시간 뒤 월요일이 된다.
이제 헤르타나와의 전투를 치러야 되는 것이다.
그 전에 스킬 ‘현신’을 배우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연중은 스킬 창을 열어 스킬 ‘현신’을 확인했다.
쿨타임과 지속 시간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신>
숙련도 : 초급 1단계(0%)
특수 효과 : -
생명력 : 3000
마나 : 3000
쿨타임 : 3분
지속 시간 : 2분
“오오.”
스킬 정보를 확인한 연중은 탄성을 내뱉었다.
쿨타임 3분에 지속 시간 2분으로 초급 1단계임을 감안하면 아주 괜찮았다.
“빨리 실험해보고 싶다.”
연중은 스킬 창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스킬 ‘현신’은 홀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스킬 ‘현신’은 스킬 ‘수호자’의 대상이 된 유저에게 사용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내일이면 가능하겠지.”
연중은 현신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을 둘러싼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 * *
도시 ‘키라드’의 창고.
[골드 드래곤의 정수 상자를 획득합니다.]
[기여도가 850만 감소합니다.]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수 : 0]
[더 이상 아이템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골드 드래곤의 정수를 획득한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장비 ‘무(無)’의 레시피를 꺼내 확인했다.
착용 중인 마술사 라이언의 투명 지팡이와 공허의 정, 블랙 드래곤의 정수를 제외한 모든 아이템들이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두 개 남았다.’
앞으로 공허의 정과 블랙 드래곤만 모으면 된다.
블랙 드래곤의 정수야 창고를 돌아다니다 보면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공허의 정은 특수 키메라들이 움직이면 얻게 될 것이다.
즉, 시간만 좀 지나면 장비 ‘무(無)’를 제작할 수 있다.
“후.”
수혁은 짧게 숨을 내뱉으며 레시피를 넣고 인벤토리를 닫았다.
그리고 창고에서 나와 연중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수혁 : 어디야?
-연중 : 왕궁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혁 : 금방 갈게.
-수혁 : 근데 사냥왕 님은 도착했어?
-연중 : 아직. 3분 정도 걸리신대.
수혁은 연중과 귓속말을 나누며 만남의 장소인 왕궁 입구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왕궁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연중과 사냥왕 그리고 레아와 윤진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수혁과 연중 그리고 사냥왕 파티는 크라노손이 있는 중앙 궁전으로 향했다.
* * *
“…….”
헤르타나는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헤르타나 님, 마로스입니다.”
“들어와.”
마로스의 목소리에 헤르타나는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끼이익
그러자 마로스가 들어왔다.
“아밀레타 파벌의 마족을 붙잡았습니다. 이곳 역시 들킨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니.”
헤르타나는 마로스의 말을 잘랐다.
“더 이상 도망은 없어.”
헤르타나는 고개를 내려 주먹을 보며 이어 말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직 육체가 완벽히 안정되지는 않았다.
헤르타나는 불안정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