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제 256화
254.
“드디어 공허의 정을!”
라모스가 부르르 떤 이유, 그것은 바로 서신에 공허의 정 제작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들을 깨울 수 있는 건가?”
대륙에 큰 혼란을 몰고 온 키메라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진짜’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했던 수많은 실험에서 만들어진 실험작들이었다.
공허의 정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진짜’들을 깨울 때가 되었다.
“20개는 확보해야겠군.”
만들어 둔 ‘진짜’들은 10마리.
진짜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허의 정이 2개씩 필요했다.
바로 그때였다.
“…….”
미소를 짓고 있던 라모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스르륵
라모스의 말에 허공에서 에리멘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라뇨. 당연히 전해드릴 것이 있고…….”
에리멘은 말끝을 흐리며 책상 위의 서신을 본 뒤 히죽 웃으며 이어 말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지 않나요?”
“…….”
라모스는 에리멘의 말에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에리멘은 2개의 서신을 꺼냈다.
빨간색 서신과 보라색 서신이었다.
에리멘은 먼저 빨간색 서신을 내밀며 말했다.
“마스터께서 보낸 서신입니다.”
“마스터께서?”
라모스는 반문을 하며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흐음.”
라모스는 서신을 읽으며 침음을 내뱉었다.
서신에는 향후 라모스가 해야 할 일들이 쓰여 있었다.
‘바로 시작해야겠군.’
시간이 촉박했다.
‘그나마 공허의 정이 완성돼서 다행이야.’
이내 서신을 다 읽은 라모스는 파이어를 시전해 서신을 불태웠다.
에리멘은 기다렸다는 듯 보라색 서신을 내밀었다.
“이건 암당에서 보낸 서신입니다.”
“암당?”
라모스는 에리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재빨리 에리멘에게서 서신을 받아 펼쳤다.
“큭큭, 크하하핫!”
서신을 읽은 라모스는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웃었다.
암당에서 보낸 서신에는 라모스의 숙적이자 증오의 대상인 파비앙에 대해 쓰여 있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군.’
라모스는 암당을 통해 함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파비앙이 함정에 걸려들었다.
‘얼마나 버틸지 기대가 되는군.’
라모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파이어를 시전해 서신을 불태웠다.
그리고 에리멘을 보았다.
에리멘을 보니 절로 기분이 나빠져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다.
라모스의 시선에 에리멘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공허의 정 필요하시죠?”
“……그래.”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20개.”
“20개나요?”
웃고 있던 에리멘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생명력이 강한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수천 단위를 제물로 바쳐야 만들 수 있는 것이 공허의 정이었다.
그런 공허의 정이 20개나 필요하다니?
“설마 그것들을 쓸 생각입니까?”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생각을 한 에리멘은 이내 떠오른 생각에 라모스에게 물었다.
키메라이지만 새로운 종족이라 해도 무방한 그것들.
“그래, 마스터께서 내린 명령을 수행하려면 필수적이다.”
“……알겠습니다. 20개. 가져다 드리지요.”
마스터가 언급됐기 때문일까?
에리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끌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 도착하지?”
라모스가 물었다.
에리멘은 라모스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3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이곳으로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아니.”
라모스는 에리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2개는 라일 평원 비밀 기지로.”
“아소스 산맥 근처에 있는 라일 평원 말씀하시는 거 맞죠?”
“그래.”
“알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은?”
에리멘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없다.”
“그럼 다음에 뵙죠.”
라모스의 말에 에리멘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흐흐.”
에리멘이 가자마자 라모스는 음흉하게 웃었다.
바로 암당에서 보내온 서신.
파비앙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나온다 하더라도 죽게 될 거다. 파비앙.”
* * *
파비앙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생각했다.
‘이상하단 말이야.’
이곳 아소스 산맥에 흑월의 꼬리가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미개척지이며 흑월이 있어 위험했기에 파비앙은 직접 왔다.
‘이 정도로 뒤졌으면 흔적이라도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데 흑월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산맥 안쪽에 자리 잡은 건가?’
파비앙은 비교적 안전한 산맥의 외곽지역을 돌아다녔다.
산맥 안쪽은 너무나 위험했고 그런 곳에 숨어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위험을 감수하고 산맥 안쪽에 숨은 것 같았다.
‘하긴 라모스라면…….’
아소스 산맥이 위험한 것은 몬스터 때문이 아니었다.
독, 수많은 독초와 독충 그리고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독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에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는 라모스라면 방법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어쩔 수 없군.’
결국 결정을 내린 파비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산맥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위이잉!
-위잉!
얼마 지나지 않아 독벌들이 나타났다.
파비앙은 다가오는 독벌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보라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독벌들을 습격했다.
툭. 툭.
보라색 연기에 닿은 독벌들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툭. 툭. 툭.
파비앙은 계속해서 독벌들을 죽이며 전진했다.
‘벗어났나?’
20분 정도 걸었을까?
더 이상 독벌이 나타나지 않았다.
독벌의 영역을 벗어난 것 같았다.
저벅!
그리고 파비앙은 걸음을 멈췄다.
앞에 늪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뭐지?’
늪을 보던 파비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력한 독성을 머금고 있는 늪이었다.
‘왜 여기에 안 살고…….’
독으로 이루어진 늪은 독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독벌들이 독의 늪에 살지 않는 것일까?
‘설마 천적이 있는 건가?’
혹시나 독벌들의 천적들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파비앙은 마나를 퍼트려 주변을 확인했다.
‘한 마리도 없어?’
주변을 확인하던 파비앙의 표정이 굳었다.
단 하나의 생명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적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왜…….’
바로 그때였다.
“……!”
의아해하던 파비앙이 움찔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왼쪽을 보았다.
‘뭐야 이 마나는?’
몸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마나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파비앙은 미간을 찌푸렸다.
‘망할!’
탐색을 느꼈는지 거대한 마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파비앙은 재빨리 보호독으로 몸을 보호하고는 독의 늪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마법 ‘독개구리의 눈’을 시전해 주변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녀석들인가?’
흑월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마나가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고블린?’
하지만 이내 나타난 존재에 파비앙은 당황했다.
거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고블린이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느낀 게 아니다.
고블린은 엄청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파비앙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
고블린이 이리 거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이런 망할!’
아니, 분명했다.
‘이래서…….’
어째서 주변에 독벌이나 몬스터들이 없는지 이해가 됐다.
드래곤의 영역인지라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야. 큰일 날 뻔했군.’
파비앙은 독의 늪에 마나가 풍부한 것에 안도했다.
만약 마나가 없는 평범한 늪이었다면?
고블린의 모습을 한 드래곤은 분명 파비앙이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독벌들인가?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파비앙은 긴장했다.
만에 하나 걸린다면 좋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악
허공에서 오크가 나타났다.
고블린보다 더 강렬한 마나가 느껴졌다.
오크 역시 드래곤임이 분명했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든 드래곤을 둘이나 보게 되었지만 파비앙은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로켄 님이셨습니까?
고블린이 오크에게 물었다.
-응? 뭐가?
오크는 고블린의 물음에 반문했다.
-아, 아닙니다.
고블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로드께서 찾는다.
-로드께서요? 저를?
오크와 고블린의 대화를 들으며 파비앙은 희망을 가졌다.
‘가라, 제발.’
고블린이 간다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어, 3일 뒤에 찾아오라 하셨다.
하지만 이어진 오크의 말에 파비앙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가길 바랐는데 갈 것 같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고블린이 답했고 오크가 사라졌다.
-3일이라…….
오크가 사라지고 고블린은 중얼거리더니 이내 뒤로 벌러덩 누웠다.
‘이런 개…….’
파비앙은 잠을 자기 시작한 고블린을 보고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다.
하필 왜 이곳에서 잠을 잔단 말인가?
‘블랙 드래곤이 분명한데…….’
한참 욕을 퍼붓고 파비앙은 생각했다.
아소스 산맥은 온갖 독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런 환경에 레어를 만들었다면 블랙 드래곤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나갈 수가 없었다.
파비앙이 가장 잘 다루는 마법은 독 마법이었다.
블랙 드래곤은 독에 강력한 저항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잘 다루지 못하는 물 속성 마법이나 대지 속성 마법이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 버텨봐?’
파비앙은 고민했다.
고블린은 3일 뒤 떠난다.
즉, 3일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다.
‘그래, 최대한 버텨보자.’
파비앙은 결정을 내렸다.
3일 정도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 * *
“키라드 파벌의 도시와 마을이 나와 있는 지도입니다.”
크라노손이 지도를 내밀며 말했다.
[키라드 파벌 지도를 획득합니다.]
수혁은 재빨리 지도를 챙겨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번에도 개인적으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크라노손이 물었다.
“예, 그럴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조심하시길.”
수혁의 답에 크라노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크라노손의 걱정에 답한 수혁과 연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택에서 나오자마자 수혁은 크라노손에게서 받은 키라드 파벌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연중과 함께 지도를 보았다.
“워프로 갈 거야?”
지도를 보며 연중이 물었다.
수혁과 연중의 목적지는 수도 ‘키라드’였다.
알린에서 키라드 사이에는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있었다.
분명 워프 게이트가 있을 것이고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면 바로 수도 ‘키라드’에 갈 수 있다.
“아니.”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면 키라드에 빨리 도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혁과 연중보다 먼저 워프 게이트로 도망을 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헤르타나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러면 헤르타나는 가만히 수혁과 연중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분명 준비를 할 것이다.
더구나 헤르타나에게는 아스만의 목걸이가 있다.
마왕이 된 헤르타나를 아스만의 영역 안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최대한 숨어서 갈 생각이야.”
준비할 틈이 없게 수혁은 키라드까지 최대한 은밀히 이동을 할 생각이었다.
지도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