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제128화
126.
‘대박이네.’
최고의 상황이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던 상황이 찾아왔다. 수혁은 일단 브리니스가 내민 책을 들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브리니스에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벌써 가시게요?”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브리니스가 움찔하며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요.”
브리니스의 물음에 수혁은 책을 보고 히죽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따 뵙겠습니다.”
그리고 브리니스에게 인사를 한 수혁은 방에서 나왔다.
* * *
불의 마탑에서 나온 수혁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상당히 얼떨떨했다.
‘일단.’
수혁은 마탑 근처에 비치되어 있는 공용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퀘스트 창을 열어 2번 목록을 열었다.
<스킬 퀘스트 - 파이어 필드>
조건을 달성해 완료하라!
[불의 돌 : 0 / 30]
[3등급 마나석 : 0 / 5]
[하급 마족의 영혼석 : 0 / 3]
[불도마뱀의 심장 : 0 / 20]
퀘스트 보상 : 스킬 – 파이어 필드
<스킬 퀘스트 – 헬 파이어>
조건을 달성해 완료하라!
[불의 돌 : 0 / 30]
[불의 눈 : 0 / 30]
[상급 마족의 영혼석 : 0 / 5]
[2등급 마나석 : 0 / 5]
[지옥 사자의 불꽃 심장 : 0 / 1]
퀘스트 보상 : 스킬 – 헬 파이어
.
.
.
2번 목록을 열자 무수히 많은 스킬 퀘스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다. 많아.’
수혁이 배운 불 마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파이어 볼,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월, 파이어 스톰, 플레임, 불놀이가 끝이었다.
‘이 많은 것 중 몇 개를 빼고는 다 배울 수 있단 말이지…….’
몬스터를 잡아야 하거나 다른 특별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퀘스트가 있었다. 그런 몇몇 퀘스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수혁은 퀘스트를 보며 메모지에 필요한 것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끝.’
얼마 뒤, 필요한 아이템들을 메모지에 전부 적은 수혁은 퀘스트 창을 닫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자리에서 일어난 수혁은 다시 불의 마탑으로 향했다. 불의 마탑에 들어온 수혁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갔고 반대편에 있는 3층 계단으로 다가갔다.
“헛. 안녕하십니까.”
3층 계단을 지키고 있던 이는 아까 보았던 마법사였다. 수혁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마법사는 재빨리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마탑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수혁은 따라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말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법사는 수혁의 말에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혁은 마법사의 뒤를 따라 5층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코델이 나타나지 않았고 마법사는 아까와 달리 목적지까지 수혁을 안내할 수 있었다.
똑똑
“마탑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브리니스의 방 앞에 도착한 마법사는 노크와 함께 외쳤다.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니스가 나왔다. 그리고 수혁을 본 브리니스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혁 님?”
이렇게 빨리 다시 찾아올 줄 예상치 못했기에 놀란 듯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수혁은 브리니스의 중얼거림에 답을 해 주었다.
“들어오세요!”
브리니스는 수혁의 말에 놀람을 지우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수혁을 안내했다.
“막히신 부분이 생기신 건가요?”
수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브리니스가 물었다.
“아, 그건 아니구요.”
브리니스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수혁의 답에 브리니스의 얼굴에 물음표가 나타났다. 막혀서 온 게 아니라면 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설마.’
문득 든 망상에 브리니스의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물론 브리니스의 망상은 말 그대로 망상이었다.
“여기…….”
수혁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망상을 하고 있던 브리니스는 수혁이 메모지를 내밀자 의아한 표정으로 메모지를 보았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린 채 메모지를 바라보던 브리니스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수혁에게 말했다.
“혹시 벌써……?”
“예.”
혹시와 벌써. 두 단어만 말했을 뿐이지만 수혁은 브리니스의 말뜻을 이해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
브리니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수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브리니스는 감탄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엄청난 재능이세요! 저도 이해하는 데에만 3일이 걸렸는데!”
브리니스는 정말 감탄했다. 수혁에게 준 책은 브리니스도 마법을 배울 때 읽었던 책으로 이해하는 데에만 3일이 걸렸다.
그런데 수혁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해함은 물론 마법을 시전하려 하고 있었다. 감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수혁이 마법을 처음 배우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불 마법과 독 마법의 체계가 다른 것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브리니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수혁은 브리니스의 말에 조금 어색한 미소로 감사를 표했다.
“언제쯤 준비가 될까요?”
그리고 이어 물었다.
‘내일이 제일이지만…….’
수혁이 이렇게 다급히 온 것은 시간 때문이었다. 오늘을 기준으로 3일 뒤, 수혁은 던전 탐사를 가야 한다. 그리고 2일 뒤에는 연중과 점심 약속이 잡혀 있다. 즉, 아무런 약속이 없는 내일이 제일 좋았다. 그러나 하루 만에 준비를 다 할 수 있을까?
“음, 준비하는 데 조금 걸릴 것 같네요. 지금 당장은 안 될 것 같고…….”
메모지를 보며 브리니스가 말했다.
“혹시 내일 시간 되시나요? 내일이면 전부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 올 수 있습니다.”
내일이 제일이라 생각하던 수혁이었다. 수혁은 브리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 올까요?”
수혁은 브리니스에게 재차 물었다.
“내일 점심 이후……. 아, 아니다. 점심 먹기 전에 뵙죠. 11시쯤?”
“알겠습니다. 내일 11시에 뵙겠습니다.”
브리니스의 말에 답하며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브리니스가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
브리니스의 물음에 수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브리니스가 이어 말했다.
“차라도…….”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말을 마친 브리니스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아, 네. 마시고 가겠습니다.”
그런 브리니스의 표정에 수혁은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기엔 브리니스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브리니스의 말을 거절하기는 찝찝했다.
수혁이 앉자 브리니스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어떤 차 좋아하세요?”
* * *
불의 마탑의 부마탑장 코델의 방.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방의 주인인 코델은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끙…….”
계속해서 돌아다닐 것 같던 코델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니겠지?”
코델은 두 시간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브리니스를 만나기 위해 온 수혁. 그리고 수혁을 본 브리니스의 표정.
“……후.”
브리니스의 표정을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코델이 안절부절못하고 방 내부를 돌아다니며 한숨을 내뱉은 이유, 그것은 바로 브리니스 때문이었다.
“표정을 보면 분명 사랑에 빠지기 직전인데…….”
오랜 시간 브리니스를 보필해 온 코델은 브리니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수혁을 바라보던 브리니스의 표정은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만약 빠진 거면…….”
코델이 걱정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브리니스가 이전에 보여 온 행동 때문이었다. 코델은 과거 브리니스의 행동을 떠올렸다.
“또 퍼 주겠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퍼 주던, 주지 않아야 될 것까지 퍼 주던 브리니스. 당시 브리니스의 퍼 줌으로 인해 불의 마탑은 빚의 마탑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혁이 측정불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독의 마탑장의 제자라는 점이었다. 앞서 사랑에 빠졌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때 우리 마탑으로 왔으면 좋았을 텐데.”
예전 수혁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때는 빠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측정불가의 재능이고 소속이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혁은 독의 마탑 소속이었다.
수혁이 독의 마탑이 아닌 불의 마탑으로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수혁이 불의 마탑으로 왔다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너무나 아쉬웠다.
“만약 상황이 최악으로 흐르면…….”
코델은 아쉬움을 달래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또 다시 그 개 같은 별명을 얻게 되겠지.”
빚의 마탑이란 별명을 다시 얻게 될 것이다. 필히 얻게 될 것이다. 아니, 어중이떠중이들과는 급이 다른 수혁이었다.
측정불가의 재능이며 독의 마탑장의 제자. 웬만한 것에는 느낌도 없을 테니 아마도 브리니스는 엄청난 것들을 퍼 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재정 악화로 마탑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런 걸 넙죽넙죽 받을 정도로 생각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론 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때의 이야기다. 브리니스뿐만 아니라 수혁 역시 생각이 없을 때의 이야기. 코델이 보기에 수혁은 생각이 있는 사내였다. 최악의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끼이익
노크 후 곧장 문이 열렸다. 부마탑장인 코델의 방을 이렇게 노크 후 곧장 열 수 있는 사람은 불의 마탑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브리니스 님?”
바로 브리니스였다.
“여긴 어쩐 일로…….”
코델은 불안한 눈빛으로 말끝을 흐리며 브리니스에게 물었다.
“아아,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이요?”
부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불안감은 더욱 크게 증폭됐다.
“여기.”
그런 코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리니스는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
코델은 브리니스의 말에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보았다. 브리니스의 손에는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일단 코델은 메모지를 받았다.
‘뭐야, 이것들은?’
메모지에 적혀 있는 것들을 본 코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고개를 들어 브리니스에게 물었다.
“내일까지 준비할 수 있겠어?”
브리니스는 그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했다.
“예?”
당연히 코델은 반문했다. 갑자기 내일까지 이것들을 왜 준비한단 말인가?
“준비할 수 있지?”
브리니스는 코델의 반문에 재차 물었다.
“네, 준비할 수 있긴 합니다만…….”
코델은 말끝을 흐리며 메모지를 힐끔 보고는 다시 브리니스를 보며 이어 말했다.
“어디에 쓰시는 건지…….”
“친구님이 필요하대.”
“친구요?”
브리니스의 말에 코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라니?
“수혁 님!”
코델의 당황스러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일까? 브리니스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
브리니스의 환한 웃음에 코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없이 브리니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화, 대화를 나눠야 돼.’
수혁과 대화를 나눠야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