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제117화
115.
수혁은 적당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제가 묻고 싶은 말이네요.”
그리고 로미안에게 말했다.
“…….”
로미안은 수혁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뭘 보는 거지?’
말이 없는 로미안을 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수혁은 미간을 좁혔다. 로미안의 행동 때문이었다.
로미안은 수혁의 눈치를 살피며 힐끔힐끔 주변 땅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주변 땅을 확인하는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휙!
로미안이 망치를 휘둘렀다.
퍽!
목표는 로미안이 힐끔힐끔 확인하던 땅이었다.
쑤우욱…….
땅에 망치가 작렬했고 그 부분이 그대로 꺼졌다.
‘함정?’
그 순간 수혁은 함정을 떠올렸다. 아무 이유 없이 땅을 쳤을 리 없다. 거기다 땅이 저렇게 꺼질 이유도 없다.
그런 수혁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꾸구궁…….
수혁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쩌저적…….
천장에 금이 가고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수혁이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천장이 무너졌다.
쿵! 쿵! 쿵!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돌덩어리들. 수혁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가득 채운 돌덩어리들을 보며 생각했다.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대화를 하려 했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이러면…….’
“파이어 스피어.”
수혁은 앞을 막아선 돌들을 치우기 위해 파이어 스피어를 시전했다.
쾅!
폭발과 함께 돌들이 사라졌다.
“……!”
그리고 수혁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로미안을 볼 수 있었다. 수혁은 전과 달리 싸늘한 눈빛으로 로미안을 바라보았다.
“그…….”
싸늘한 눈빛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한 짓이 있기 때문일까? 로미안은 아까와 달리 입을 다물고만 있지 않았다. 변명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말을 하기 위해서인지 입을 열었다.
“포이즌 스피어.”
하지만 수혁은 그런 로미안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먹었다. 로미안의 말에 흔들릴 수 있다. 수혁은 흔들림을 원치 않았다.
퍽!
로미안에게 포이즌 스피어가 날아갔고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크억!”
포이즌 스피어에 적중당한 로미안은 고통스런 비명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로미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퀘스트 ‘로미안의 진심’을 완료하셨습니다.]
-쇠망치 1개
-강철 정 1개
로미안이 고개를 숙이자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함께 드랍 창이 나타났다. 로미안을 죽이는 것 역시 선택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뭘 부수려고 했던 거지.’
메시지를 보던 수혁은 고개를 돌려 드랍 창을 보았다. 드랍 된 아이템은 로미안이 들고 있던 망치와 정이었다.
로미안은 망치와 정을 이용해 벽을 두들기고 있었다. 도대체 왜 벽을 두들기고 있던 것일까? 수혁은 드랍 된 아이템을 습득하고 로미안이 두들기던 벽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있을 거야.’
하지만 로미안이 괜히 벽을 두드렸을 리 없다. 뭔가 있을 것이다. 수혁은 확인을 위해 걸음을 옮겨 로미안이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
로미안이 있던 자리에 도착한 수혁은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벽에 글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증명된 자 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증명 중인 자 문을 쉽게 열 수 있을 것이다.
-증명되지도 증명 중이지도 않은 자 온 힘을 쏟아 부어도 문을 열기 힘들 것이다.
-문을 연 자는 나의 보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문? 이게 문이었어?’
글귀뿐만이 아니었다. 벽에는 미세한 실금들이 있었고 실금은 사각형으로 문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냥 벽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수혁이었다. 문을 보던 수혁은 다시 글귀를 주시하며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몇 걸음 옮기자 글귀와 실금이 사라졌다. 수혁은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자 다시 글귀와 실금이 나타났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니고.’
보이지 않았던 글귀와 실금이 나타났기에 혹시나 위치에 따라 다른 글귀 혹은 다른 실금이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수혁은 글귀를 바라보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동굴 탐사>
대도 켈타의 비밀 동굴. 동굴 탐사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동굴을 탐사할 차례. 동굴의 끝으로 가 대도 켈타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라!
퀘스트 보상 : ???
‘보물인 걸 알게 됐는데 완료가 안 된 걸 봐서는…….’
퀘스트 ‘동굴 탐사’의 완료 조건은 대도 켈타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귀를 통해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완료가 되지 않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보물을 직접 봐야 되는 것 같았다.
‘이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을까.’
수혁은 또다른 퀘스트를 확인했다.
<특수 퀘스트 - 켈타의 유산>
대도 켈타, 피붙이 하나 없던 켈타는 평생 훔친 보물을 비밀 장소에 숨겨 두었다. 그 비밀 장소를 찾아라!
퀘스트 보상 : ???
바로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이었다. 대도 켈타가 평생 훔친 보물을 숨겨 둔 비밀 장소를 찾는 퀘스트.
현재 수혁이 있는 이곳은 대도 켈타의 비밀 동굴이었다. 비밀 장소가 만약 이곳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 역시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증명은 뭘까.’
퀘스트를 보던 수혁은 퀘스트 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글귀를 보았다. 글귀에 나와 있는 증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부수려고 했던 걸 봐서 로미안은 세 번째인 것 같고.’
로미안은 망치와 정을 이용해 문을 부수려 했다. 부수려 한 것을 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아니다. 증명이 되었다면 알아서 문이 열렸을 것이고 증명 중이라면 쉽게 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세 번째려나?’
일단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 것을 보아 첫 번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 번째일 것 같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세 번째.
‘일단…….’
그래도 혹시 모른다.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을 받은 상태가 증명 중인 상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혁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밀면 되나?’
문이라고 하지만 벽이었다. 잡아당길 만한 손잡이가 없었기에 수혁은 힘을 주어 벽을 밀어 보았다.
끼기긱…….
그러자 거친 소리가 나며 벽이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열린다고?’
혹시나 하고 밀었다. 하지만 막상 열리니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증명 중이라는 거야?’
글귀에 따르면 증명하는 자는 문을 쉽게 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문이 너무나도 쉽게 열리고 있었다.
‘설마 퀘스트?’
혹시 증명 중이라는 게 관련 퀘스트를 받으면 되는 것일까? 그게 퀘스트 ‘동굴 탐사’인지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쿵!
이내 안으로 쭉쭉 들어가던 벽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새로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저벅
수혁은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통로의 끝은 길지 않았고 곧 수혁은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
통로의 끝에 도착한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수혁은 멍하니 통로 밖 광경을 바라보았다.
“와…….”
멍하니 통로 밖 광경을 바라보던 수혁은 이내 감탄을 내뱉으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도 켈타의 보물을 발견하셨습니다.]
[퀘스트 ‘동굴 탐사’를 완료하셨습니다.]
통로에서 나옴과 동시에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수혁은 메시지에 시선을 줄 수 없었다.
“우와…….”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감탄을 내뱉었다.
‘이게 다 보상이라고?’
안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들이 있었다. 보물의 종류는 보석, 검, 창, 방패, 귀걸이 등 다양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보물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골드만 해도 동산급인데?’
보석, 무기, 방어구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골드만 모아도 작은 동산을 이룰 정도였다.
‘이게 다 얼마야?’
전부 처분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얻게 되는 것일까?
‘골드만 해도 족히 수백만은 나올 것 같은데.’
작은 동산을 이룰 정도다. 아무리 못해도 수백만 골드는 나올 것이다.
‘보석도 장난 아니고.’
문제는 골드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진짜 완전 좋아 보이는데…….’
보석도 많았고 귀걸이, 반지 등 각종 장신구와 검, 창 같은 무기들 갑옷, 장갑, 신발 등의 방어구들 역시 너무나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게 전부 보상이라고?’
수혁은 순간 든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이렇게 큰 보상을 받을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는데…….’
전율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찝찝함 역시 느꼈다.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의 보상을 받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찝찝함 때문일까? 문득 든 생각에 수혁은 미간을 좁히며 메시지를 보았다.
‘특수 퀘스트가 완료 안 됐다는 건.’
완료된 퀘스트는 ‘동굴 탐사’뿐이다.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은 완료되지 않았다.
‘여기가 비밀 장소가 아니라는 소리인데.’
특수 퀘스트 ‘켈타의 유산’의 완료 조건은 켈타가 평생 훔친 보물을 숨겨 둔 비밀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완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곳이 퀘스트에 나온 비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이것들은?’
켈타가 평생 훔친 보물들은 비밀 장소에 숨겨져 있는데 이곳은 비밀 장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이 많은 보물들은 무엇일까?
‘평생 훔친 보물에 끼지도 못할 티끌 수준인가?’
설마 이곳에 있는 보물들은 비밀 장소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티끌 수준인 것일까?
‘일단…….’
티끌인지 아닌지 굳이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
‘빨리빨리 줍자.’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이거 다 주우려면…….’
수혁은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보물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로그아웃 시간 넘기겠네.’
전부 습득하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스윽
수혁은 보물을 회수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혁의 손이 골드에 닿은 그 순간.
스아악!
밝은 빛과 함께 골드가 사라졌다.
“어?”
수혁은 당황했다.
“뭐야?”
골드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 어디 갔어?”
문제는 골드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야에 가득 들어왔던 보석, 무기, 방어구 등의 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사라진 것이다.
‘설마…….’
이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하던 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맛보기가 이런 맛보기야?’
문득 들어오기 전 보았던 글귀가 떠올랐다. 마지막 줄에 자리 잡고 있던 글귀. 보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란 글귀!
“…….”
글귀의 의미를 깨달은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