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더 읽는자-64화 (64/553)

# 64

제64화

라이노는 분명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 마법사가 없다고. 하기스의 말에 바알이 말했다.

“흐음, 이상하네? 분명 독의 마탑 로브라고 했는데.”

NPC도 아니고 유저다. 유저가 독의 마탑 로브를 입기 위해서는 무조건 독의 마탑에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독의 마탑 로브를 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교환 불가 아이템이 아니던가? 구매한 것도 아니다.

“로켄이 잘못 본 건가?”

설마 독의 마탑 로브가 아닌데 착각을 한 게 아닐까?

“근데 헤이든까지 잘못 봤을 리 없는데…….”

잠시 생각한 바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로켄만 보았다면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헤이든 역시 독의 마탑 로브로 보았다. 잘못 보았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근데 말이야…….”

하기스는 바알의 중얼거림에 입을 열었다.

“모르는 게 아닌 것 같아.”

“……?”

바알은 하기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는 게 아닌 것 같다니?”

“알고 있는 눈치였어.”

대화를 나누며 하기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뭐?”

바알이 반문했다.

“확실한 건 아니야.”

하기스는 바알의 반문에 재빨리 이어 말했다.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저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흐음…….”

바알은 침음을 내뱉었다.

“네 말대로라면…….”

말끝을 흐린 바알은 이어 말했다.

“쉽게 건들 수 없는 위치에 있거나 우리보다 더 돈독한 사…….”

바로 그때였다. 바알이 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

그런 바알의 반응에 하기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말을 왜 멈춘단 말인가? 무언가가 생각이 난 것일까?

“어이가 없군.”

이내 바알이 중얼거렸다.

“왜?”

하기스가 물었다.

“그게…….”

바알은 다시 한 번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귓속말을 보았다.

-라코 : 지금 길드 하우스 입구에 수혁이 나타났습니다! 길드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미친 새끼군.’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바알은 귓속말에서 시선을 돌려 자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하기스에게 말했다.

“지금 밖에 수혁이란 녀석이 와 있다는데?”

“뭐?”

바알의 답에 하기스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미친 새끼 아냐?”

이곳이 어디라고 온단 말인가?

스윽

하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

원래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까웠고 하기스가 직접 움직여야 될 정도의 거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방에서 나온 하기스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길드 하우스에서 나왔다. 길드 하우스에서 나온 하기스는 입구를 가득 메운 초록색 안개를 볼 수 있었다.

‘……독 안개?’

초록색 안개를 보며 하기스는 생각했다. 길드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독 안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 안개야?”

하기스는 근처에 있던 길드원에게 물었다.

“네.”

길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 마법이나 불 마법 있는 사람 없어?”

하기스는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재차 물었다. 불 마법이나 바람 마법으로 독 안개를 치워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하지만 답하는 길드원이 없었다. 하기스는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길드원들의 손에 검 혹은 창 등의 무기들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뚫고 가야 되나.’

아무래도 그냥 독 안개를 뚫고 가야 될 것 같았다.

[블러드 트롤의 독에 중독되셨습니다.]

[1분 동안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뱀독에 중독 되셨습니다.]

[1분 동안 오한 상태에 빠집니다.]

[모든 속도가 10% 감소합니다.]

[유저 ‘수혁’에게 공격받으셨습니다.]

[유저 ‘수혁’과 적대 상태가 됩니다.]

독 안개에 들어오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 상태인 출혈과 오한에 빠졌다는 메시지에 하기스는 독 안개 밖으로 빠르게 달리며 생명력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생명력을 확인한 하기스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생명력 포션을 꺼냈다. 엄청난 속도로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션을 복용하며 독 안개 밖으로 나온 순간 하기스는 또다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건 또 뭐야!’

거대한 불의 회오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기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독 안개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포션을 복용하며 길드 하우스로 돌아갔다.

“엇, 부길장님?”

독 안개 때문에 입구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길드원이 하기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다시 돌아왔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기스는 길드원의 의아함을 해결해 줄 상황이 아니었다.

하기스는 해독 포션을 꺼내 출혈과 오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있을 바알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하기스 : 미친, 야. 난리 났다.

-바알 : 무슨 소리야?

-하기스 : 입구에 독 안개 깔리고 밖에 불 회오리 있고 장난 아니야!

-바알 : 뭐? 파이어 스톰?

-하기스 : 어! 제길, 일단 헤르딘에 보낸 애들 좀 불러 줘. 이거 헤르딘에 보낸 애들 있어야 돼!

-바알 : 알았다.

스아악

바알과의 귓속말을 끝낸 순간 독 안개가 사라졌다. 하기스는 입구 밖을 보았다. 독 안개로 되돌아오게 만든 불의 회오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스는 재빨리 입구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둘러 본 하기스가 인상을 구겼다.

‘망할.’

수많은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모든 시체 위에는 악마 길드 마크가 둥둥 떠 있었다.

65.

* * *

“당신은 이번 여행 어땠어?”

지성의 물음에 지수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았지! 따로 준비할 것도 없고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됐으니까!”

“역시! 나도 그랬는데!”

만족스러워하는 지성과 지수를 보며 수혁은 생각했다.

‘확실히 여태까지의 여행과 비교해서 편하긴 했어.’

판게아에서의 가족 여행은 이때까지의 가족 여행과 달랐다. 확실히 현실에서의 여행보다 편하긴 편했다.

‘악마 길드 새끼들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물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악마 길드만 아니었다면 더 나은, 더 좋은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새끼들이 사과는 커녕 척살령을 내려?’

생각할수록 화와 짜증이 치밀었다.

“전 이제 들어가 볼게요.”

수혁은 사과를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3시간.’

평소라면 로그아웃 시간까지 3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

‘어떻게 할까.’

수혁은 캡슐을 보며 생각했다. 접속을 할지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는 건너 뛸지 고민이 됐다.

‘그래.’

고민을 하던 수혁은 이내 고민을 끝내고 캡슐로 들어갔다.

스악

판게아에 접속과 동시에 수혁은 밤바다를 볼 수 있었다.

“이야, 진짜 밤바다를 꼭 봐야 된다더니.”

“절경이야! 절경!”

해변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있었다. 물론 수혁이 접속한 목적은 지금 해변에 있는 이들처럼 밤바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수혁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로 걸음을 옮기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면이 있었다.

‘이번엔 곰 가면을 써볼까.’

그제는 붉은 여우 가면을 사용했다. 다른 가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또 붉은 여우 가면을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악마 길드원들은 붉은 여우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 유저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수혁은 자연스럽게 곰 가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곧 워프 게이트에 도착했다. 밤바다를 보기 위해서일까?

많은 유저들이 워프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었고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한 줄도 꽤나 길었다.

“야, 그 이야기 들었냐?”

“무슨 이야기?”

“고독 길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던 수혁은 앞에 있는 유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이번에 대표 길드 된다며?”

“얼마 전 있었던 악마 길드의 학살을 막은 게 크게 작용했나 봐.”

“그거 말고도 골드를 어마어마하게 뿌렸다는데?”

유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혁은 생각했다.

‘대표 길드가 된 건가.’

악마 길드의 학살을 막은 고독 길드는 결국 헤르딘의 대표 길드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수혁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 이야기는 들었냐?”

“무슨 이야기?”

“학살을 의뢰한 게 고독 길드라는…….”

“야, 음모론 좀 그만해라. 미쳤다고 고독 길드가 그러겠냐?”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학살의 의뢰자가 고독 길드가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의뢰한 게 고독 길드라면…….’

수혁은 고민했다. 처음에는 고독 길드가 학살을 의뢰한 것이라면 악마 길드처럼 괴롭힐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고독 길드를 괴롭히는 것은 악마 길드를 괴롭히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우선 그 강함이 달랐다.

고독 길드는 최강 길드인 독고 길드의 길드원들이 나와 만든 길드였다. 악마 길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유저들이 많은 편이었다.

‘범죄자 수치가 쫙쫙 오를 텐데.’

거기다 악마 길드원들과 달리 고독 길드원들은 범죄자 수치가 높지 않다. 죽일 경우 수혁의 범죄자 수치가 끝없이 올라 갈 것이다.

‘대표 길드인 것도 부담되고.’

거기다 헤르딘의 대표 길드가 되었다. 이제부터 헤르딘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즉, 고독 길드를 괴롭히기 위해서는 헤르딘의 힘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모든 건 가정일 뿐이다. 고독 길드가 학살을 의뢰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미리 고독 길드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어디로 가십니까?”

이내 수혁의 차례가 되었다. 수혁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며 악마 길드의 거점인 하드락으로 이동했다.

“악마 길드 새끼들 이야기 들었냐?”

“그제 있었던 일?”

“어.”

“길드 하우스 앞에서 개 털렸다며? 킥킥, 븅신들. 내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드락의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수혁은 유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악마 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악마 길드의 관심뿐만 아니라 다른 유저들의 관심까지 끈 것 같았다.

‘하긴.’

악마 길드는 이곳 하드락에서 수위를 다투는 길드였다. 비밀리에 일어난 일도 아니고 대놓고 일어난 일이니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었다.

“이 개새끼가! 여우 가면 쓰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이 미친놈아! 내가 이 가면을 쓰든 말든!”

얼마 뒤, 수혁은 전방에서 다투고 있는 두 유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근처에 있는 유저들은 둥글게 서 자리를 만들어 준 상황이었다.

‘악마 길드?’

다투고 있는 두 유저 중 하나는 악마 길드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유저는 수혁이 이틀 전 사용했던 붉은 여우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악마 길드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악마 길드원의 성난 반응을 보니 어쩐 일인지 궁금해졌다. 수혁은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주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