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제30화
그렇게 아딜로가 고민하는 사이 사내가 지나쳐갔다. 사내를 따라 고개를 돌리던 아딜로는 뒤쪽에서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싸한 느낌의 정체를 확인했다.
앞쪽으로 이동한 김혁이 쳐다보고 있었다. 김혁의 눈빛에 아딜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사내의 뒤를 쫓았다.
‘일단 물어보자.’
혹시나 용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그냥 알려줄 수도 있다. 사내의 뒤를 쫓으며 아딜로는 일단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엄청 빠르네.’
1층에 도착한 아딜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급한 일이 있는 것일까? 사내의 걸음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저기 있다!’
아딜로는 북쪽으로 향하는 사내를 발견하고 재빨리 뒤쫓았다.
“저기요!”
그리고 이내 북쪽 입구를 나와 사내의 뒤를 잡은 아딜로는 사내의 어깨를 잡으며 사내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사내의 물음에 아딜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까 케르자의 책상에서 뭘 하신 건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
아딜로의 물음에 사내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딜로는 사내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싫습니다.”
그리고 아딜로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사내는 뒤로 돌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아딜로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어.’
당연한 결과였다. 누가 알려준단 말인가?
‘일단 지금 돌아가 봤자 갈굼만 받을 테니까.’
지금 돌아가면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 번 갈굼을 받을 것이고 너무 빨리 포기한 게 아니냐고 두 번 갈굼 받을 것이며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냐고 세 번 갈굼 받을 것이다.
‘미행하자.’
아딜로는 사내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되지만 혹시나 뒤를 밟다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진짜 궁금하네.’
사내의 뒤를 밟으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나눈 거지? 그 서류는 뭘까?’
케르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단 한 번 보았다. 그리고 그때 케르자와 대화를 나눈 유저는 현재 준랭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죽여 볼까? 서류가 나올 수도 있잖아.’
여러 생각이 들었다.
* * *
도서관 앞에 도착한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걸릴 게 없다. 퀘스트도 없고 해야 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왜 쫓아 온 건지는 알겠지만…….’
물론 살짝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했다. 바로 중앙 마탑에서부터 이곳 도서관까지 쫓아온 사내였다.
‘신경 끄자. 알아서 가겠지.’
사내가 쫓아온 이유를 수혁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질문에 답해 줄 생각이 없는 수혁이었다. 수혁은 사내에 대해 신경을 끄고 도서관 건물로 들어갔다.
32.
“여기 있습니다.”
건물로 들어온 수혁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서 NPC에게 증표를 건네고 곧장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역시.’
여전히 도서관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도서관에 아늑함을 느낀 수혁은 걸음을 옮겨 반짝임이 가득한 책장으로 향했다.
‘몇 달이나 걸리려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며 수혁은 생각했다. 과연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1년?’
마탑 도서관의 책은 정말 많았다. 물론 오렌의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많아 중복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긴 했지만 그 책들을 제외하더라도 많았다.
‘아니야, 1년은 안 걸리겠지.’
1년이 떠올랐지만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1년까지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책 다섯 권을 꺼낸 수혁은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책상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책을 펼쳤다.
.
.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첫 번째 책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 책까지 전부 읽은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 40분. 한 권당 20분이네.’
다섯 권의 책을 전부 읽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 두께들은 6권씩 읽어야겠어.’
책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평범한 두께의 책이었다. 수혁은 앞으로 책의 두께가 보통일 때에는 6권씩 가져오기로 결정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귓말 왔었네?’
연중에게 귓속말이 와 있었다.
-연중 : 뭐하냐?
-연중 : 왜 답이 없어?
-연중 : 설마 책 읽냐?
언제 온 것인지는 시간이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수혁은 친구 창을 열어 연중의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나 연중은 접속해 있었고 귓속말 거부 상태도 아니었다. 수혁은 친구 창을 닫고 연중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수혁 : 왜?
귓속말을 보낸 수혁은 연중에게서 답이 오길 기다리며 책을 들었다. 그리고 반납함으로 다가갔다.
-연중 : 징한 놈, 30분 지나서 답이 오냐?
반납함에 책을 반납한 순간 연중에게 답이 왔다. 연중의 귓속말에 수혁은 귓속말이 언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무려 30분 전이었다.
-연중 : 길드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연중의 말에 수혁은 어째서 연중이 귓속말을 보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길드, 길드 창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수혁 : 벌써?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전, 졸업식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길드 이야기도 했다.
길드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설 조건이 빡빡하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준랭커와 랭커의 사이를 오가는 연중의 입장에서도 결코 만만히 볼 조건들이 아니었다.
당시 연중도 계획만 잡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나눈 지 고작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창설이라니?
-연중 : 운 좋게 조건 충족했어. 그런데 귀찮은 일이 생겨서 바로 가입은 못 시켜 줄 것 같다.
-수혁 : 귀찮은 일?
-연중 : 응, 독고 길드 알지?
-수혁 : 당연히 알지. 최초 길드잖아.
유저가 창설한 최초의 길드. 랭킹 1위와 3위, 10위 등 수많은 랭커들이 길드원으로 있는 막강한 길드였다.
-연중 : 거기랑 시비 붙었어.
-수혁 : 뭐? 왜?
-연중 : 사냥이랑 사람 문제 때문에. 거점이 다르니까 전쟁까지 갈 정도는 아닌데 험한 말이 오갈 정도? 그래서 당장 가입은 못 시켜 줄 것 같아. 혹시나 PK 당할 수 있으니까.
수혁의 직업이 특수 직업인 대마도사의 후예고 지혜가 높다고 해도 PK의 위협에서 안전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고 길드의 길드원 대부분이 특수 직업이었다. 거기다 수혁의 지혜는 어디까지나 수혁의 레벨에 비해 높은 것이지 랭커와 비교하면 부족하다. 즉, 독고 길드에서 마음만 먹으면 수혁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혁 : 알았다.
수혁은 연중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지금 당장 길드에 가입을 해야 되는 건 아니다. 나중에 가입을 해도 된다.
‘아쉽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연중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스킬 퀘스트 좀 도와달라고 할라 했는데.’
바로 스킬 퀘스트였다. 수혁에겐 수많은 스킬 퀘스트가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의 수혁이 혼자서 깰 수 없는 퀘스트도 있었다.
수혁은 그런 퀘스트를 깨기 위해 연중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스킬 퀘스트도 당장 급한 게 아니었다. 스킬 퀘스트가 삭제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천천히 완료해도 된다.
‘어차피 책 읽으려고 했으니까.’
거기다 어차피 수혁은 당분간 도서관에 박혀 책만 읽을 생각이었다.
-연중 : 미안.
-수혁 : 아니야, 그런데 길드명은 뭐냐?
미안하다는 연중의 말에 답하며 수혁은 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입을 하게 될 길드다. 길드명이 궁금했다. 수혁이 귓속말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중에게서 답이 왔다.
-연중 : 리더
* * *
“그런 것도 못 알아 옵니까?”
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딜로는 김혁의 말에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기다리기까지 했잖아요? 그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고작 알아 온 것이 행선지 하나라뇨?”
이미 갈굼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많은 갈굼을 받는 아딜로는 김혁의 갈굼을 참을 수 있었다.
“야, 저기 봐.”
“그러게, 미친. 킥킥킥”
하지만 주변 유저들의 중얼거림과 비웃음은 참기 힘들었다.
‘시발.’
유저들의 중얼거림과 비웃음에 아딜로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참자. 참아.’
하지만 분노를 표출할 수는 없었다. 참아야 했다. 김혁이 없다면 모를까 이곳에는 김혁이 있지 않은가?
‘일단 도서관에 가야겠지?’
김혁의 갈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딜로는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사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딜로는 알고 있었다.
이 갈굼이 끝나면 김혁은 로그아웃을 할 것이다. 아딜로는 그 후 사내가 있는 도서관으로 갈 생각이었다.
‘근데 다른 곳으로 갔으면 어떻게 하지?’
물론 사내가 계속해서 도서관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아오, 언제 끝낼 생각이야? 끝날 때도 된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딜로는 한시라도 빨리 김혁의 갈굼이 끝났으면 싶었다.
“박대리.”
“예.”
그렇게 갈굼이 끝나길 기다리던 아딜로는 김혁의 부름에 답했다. 드디어 갈굼이 끝나는 것일까?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습니까? 얼마나 말을 못했으면 그걸 안 알려줘요?”
“……죄송합니다.”
끝나나 했는데 아니었다.
“특별한 정보라 말로 안 되면 골드라도 줘서 공유를 받아왔어야죠. 골드가 그렇게 아깝습니까?”
한동안 김혁의 갈굼은 계속되었고 지나가던 주변 유저들은 계속해서 킥킥거렸다. 유저들의 웃음소리와 중얼거림을 들을 때마다 아딜로의 분노는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으면 합니다.”
“예, 죄송합니다.”
드디어 기나긴 갈굼이 끝났다.
“후…….”
김혁이 로그아웃을 했고 아딜로는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를 표출한 아딜로는 사내를 떠올렸다.
‘지금도 있으려나?’
그리고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발 있어야 할 텐데…….’
사내가 케르자와 무슨 대화를 나눴던 것인지 서류는 무엇인지 아딜로는 너무나 궁금했다.
‘만약 그게 진짜 대박 정보면…….’
아딜로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만났어?”
양주혁이 물었다.
“음, 그게…….”
장율은 양주혁의 물음에 말끝을 흐렸다.
“……?”
말끝을 흐리는 장율을 보고 양주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불안하게.”
양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율의 자리로 다가갔다.
“……?”
그리고 모니터를 본 순간 양주혁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도서관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