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제13화
50골드는 쉽게 벌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고레벨이 되었다면 모를까 저레벨에 50골드는 거금이었다.
특히나 튜토리얼 지역인 오렌이라면 더욱 더 큰돈이라 할 수 있다. 그 큰돈이 들어갔으니 아까워서라도 책을 읽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꼼꼼히 읽을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는 건 더 힘든 일 아닌가?’
골드를 버는 것도 힘들지만 그 많은 책들을 꼼꼼히 읽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리 돈이 아까워도 꼼꼼히 책을 읽는다? 처음 한두 권이라면 모를까 천권이 넘는 책을? 스텟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오랜 시간을? 그래서 칭호를 만들었음에도 획득할 유저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와, 진짜 미쳤네요.”
장율이 감탄하며 말했다.
“둘째 날부터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는데요?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양주혁은 장율의 말에 생각을 끝내며 입을 열었다.
“둘째 날부터?”
양주혁의 표정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책 읽으려고 게임 하나?”
마치 책을 읽기 위해 판게아를 시작한 것 같았다.
“근데 이 유저 이 레벨에 이 스텟이면…….”
모니터를 바라보던 장율이 말끝을 흐렸다.
“스텟이면?”
양주혁이 반문했고 말끝을 흐렸던 장율이 이어 말했다.
“그 조건 달성한 거 아니에요?”
“조건?”
이어진 장율의 말에 양주혁은 또 다시 반문했다. 조건이라니?
“무슨 조건?”
지금 스텟이라면 달성한 조건이 너무나 많다. 장율이 말한 조건이 그 많은 조건 중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했다.
“오렌의 도서관을 정복하는 유저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만든 직업 있잖아요.”
“……!”
장율의 말에 양주혁은 놀랐다. 그리고 장율의 말이 끝난 순간 양주혁은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대마도사의 후예.”
대마도사의 후예, 1등급 직업이었다. 1등급 직업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최고, 최강의 직업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마도사의 후예가 다른 1등급 직업과 비교해 육성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전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전직 조건은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다. 공개된다면 왜 이런 직업을 만들었냐고 관상용이냐며 항의가 들어올 것이 확실할 정도다.
그럼에도 이런 직업을 만든 것은 오로지 오렌의 도서관을 유저가 정복했을 때 그것도 그냥 정복한 게 아니라 효과적으로 정복했을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성한 유저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
선물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기억 저편에 묻은 채 잊고 있었다. 양주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지혜가 1000을 넘었으니 첫 번째 조건은 달성했고.”
양주혁이 말이 없자 장율이 말했다. 대마도사의 후예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한데 그 중 첫 번째 조건이 지혜 스텟 1000을 넘기는 것이었다. 이미 수혁은 첫 번째 조건을 달성한 상황이었다.
“아니야!”
장율의 말에 입을 다물고 있던 양주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를 안 할 수도 있잖아?”
두 번째 조건, 그것은 바로 마법사라는 직업이었다. 대마도사의 후예는 마법사에서만 전직이 가능하다. 그것도 일반 마법사만 전직이 가능하다. 마법사 계열의 특수 직업은 전직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일반 마법사만 전직할 수 있다.
“에이.”
양주혁의 말에 장율이 말했다.
“이 스텟으로 마법사로 전직 안 하면 뭐로 전직해요?”
“…….”
“누가 봐도 마법사 대박 터질 스텟인데.”
압도적인 지혜, 마법사에 최적화된 스텟이라 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마법사로 전직하라고 추천해 줄 스텟이었다.
“그, 그래도! 마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잖아.”
세 번째 조건, 그것은 바로 전직 장소였다. 대마도사의 후예로 전직할 수 있는 장소는 마법사들의 연합인 마탑이었다.
대마도사의 후예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마탑으로 가야 한다. 정확히는 마탑에 있는 특정 건물에 가야 한다.
하지만 마법사는 꼭 마탑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국가에서도 마법사로 전직은 가능했다.
“요즘에는 왕국이 더 키우기 좋다고 유저들 의견이 모아졌잖아.”
거기다 처음과 달리 최근에는 마탑보다 국가에서 시작하는 마법사 유저들이 많아졌다. 육성이 더욱 쉽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마탑에서 시작하면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면요?”
하지만 혹시나는 존재하는 법이다. 만에 하나 마탑에 가고 대마도사의 후예 전직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마탑 도서관에 간다면?
“괜찮아.”
장율의 말에 양주혁이 답했다. 양주혁의 표정에는 처음과 달리 침착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침착함이 자리 잡은 이유는 생각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 스텟으로 마법사 전직하면 2, 3등급 직업들 주려고 마탑 NPC들이 러브콜을 보낼 거야.”
수혁의 스텟은 어마어마하다. 마탑에서 마법사로 전직한다? 전직과 동시에 수많은 마탑 NPC들이 수혁을 탐낼 것이다. NPC들 눈에는 수혁이 천재로 보일 테니까.
“특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다 거절하고 도서관에 간다고? 말도 안 되지.”
유저라면 특수 직업에 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무시하고 대마도사의 후예가 될 수 있는 도서관에 간다? 말도 안 된다.
“특수 직업으로 전직하면 그걸로 끝이고.”
특수 직업으로 전직할 경우 대마도사의 후예로 전직할 수 없다. 즉, 안심해도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시해 봐.”
양주혁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장율에게 말했다.
“네.”
장율의 답을 듣고 양주혁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은 양주혁은 생각했다.
‘2, 3등급 직업을 얻어도 문제 아닌가?’
대마도사의 후예와 비교하면 차이가 나는 직업들이지만 2, 3등급 직업들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직업이었다.
‘스텟이 일단 말도 안 되는데.’
거기다 스텟이 말도 안 되는 유저 아닌가?
‘일반 마법사여도 특수 직업 발라먹을 스텟인데.’
특수 직업이 아니라 일반 마법사여도 다른 직업들을 압살할 것이다.
‘……끙.’
이러나저러나 참으로 난감했다.
‘왜 도서관에서 책만 읽은 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도서관에서 책만 읽은 것일까? 아니, 읽더라도 사냥을 통해 레벨을 좀 올리고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진짜 책 읽으려고 게임하는 유저는 아니겠지?’
양주혁은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업무를 시작했다.
* * *
[지혜가 1 상승합니다.]
“후아.”
수혁은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책장에 도착한 수혁은 반짝이고 있는 책들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주구장창 책을 읽었고 그 결과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5권이구나.”
아직 읽지 못해 반짝임이 남아 있는 책은 5권뿐이었다. 앞으로 5권만 읽으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시간도 딱 되고.”
책을 꺼낸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읽을 시간은 충분했다. 수혁은 책을 가지고 책상으로 돌아와 독서를 시작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첫 번째 책을 읽었을 때 지혜가 올랐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두 번째 책을 읽었을 때도 지혜가 올랐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세 번째 책을 읽었을 때에도 역시나 지혜가 올랐다.
‘잘 오르네.’
네 번째 책을 펼치며 수혁은 생각했다. 책을 가져오기 전 두 번과 이번 세 번을 포함해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지혜가 올랐다.
지혜가 잘 오르긴 했지만 천 권을 넘게 읽은 여태껏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지혜가 오른 적은 없었다.
즉, 신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스윽
네 번째 책을 전부 읽은 수혁은 책을 덮었다. 아쉽게도 신기록 갱신은 다섯 번에서 끝나고 말았다.
‘드디어 마지막.’
이제 남은 책은 단 한 권뿐이었다. 수혁은 마지막 책을 펼쳤다. 그리고 여태껏 그래왔듯이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나갔다.
스윽
이내 마지막 줄을 읽고 수혁은 책을 덮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책을 덮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혜가 상승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메시지는 하나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오렌의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으셨습니다.]
[칭호 : 오렌의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이어 두 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
메시지를 본 수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칭호?”
두 메시지에는 획득 조건과 획득한 칭호가 무엇인지 쓰여 있었다.
“모든 책을 읽어야 획득이 가능하다라…….”
획득 조건을 본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획득한 칭호 ‘오렌의 도서관 정복자’의 획득 조건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아주 힘든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칭호의 효과는 보통이 아닐 것이다.
수혁은 칭호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캐릭터 창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칭호창에 들어가 칭호의 효과를 확인했다.
15.
-오렌의 도서관 정복자 (지혜 +10)
“…….”
칭호 ‘오렌의 도서관 정복자’를 확인한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칭호의 효과를 보며 생각할 뿐이었다.
‘책을 다 읽어야 되는 것 치고는 좀 그렇지 않나.’
획득 조건이 모든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지혜 10이라니? 획득 조건과 비교해 칭호의 효과가 상당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수혁은 칭호창을 닫았다. 그리고 캐릭터 창을 확인했다.
레벨 : 8
경험치 : 51%
생명력 : 2540
마나 : 26420
포만감 : 40%
힘 : 14
민첩 : 15
체력 : 48
지혜 : 1321
“1321이라…….”
힘, 민첩, 체력과 같은 주스텟임에도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지혜를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정보를 확인한 수혁은 캐릭터 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어 인벤토리를 열었다. 50% 이하로 떨어진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남을 줄은 몰랐는데.”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딱딱한 빵 2개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2개를 꺼냈음에도 인벤토리에는 딱딱한 빵이 3개나 남아 있었다.
“그때 한차례 더 받았던 게 컸나?”
도서관에 오기 전 구비해 두었던 빵들이 아니다. 그때 구비했던 빵들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전부 먹어 치웠다. 이후 한차례 더 빵들을 구하러 다녔다.
‘이제 여기도 안녕이네.’
수혁은 빵을 먹으며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에는 반짝임이 가득했던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모든 책을 읽어 반짝임을 흡수한 지금은 단 하나의 반짝임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