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504화
“머리 아프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이나? 그 녀석들이 우리의 움직임 을 알게 되면 분명 기를 쓰고 방해 하려고 들 텐데……
필연적으로 마장기가 움직여야 하 는 까닭에 별동대를 구성해 숨어서 접근할 수도 없었다.
“제가 여신의 이름으로 골드 스트 리안을 설득해볼까요?”
“세리너스의 힘에 조종되는 녀석인
데?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아뇨. 그냥 가만히 있을게요.”
호가 고개를 숙이는 라헬을 쏘아 보았다.
리그너스 대륙의 여신이라더니만 어째 대륙에 영향력이 없다시피 한 녀석이었다. 대륙의 여신이 아닌 천 족의 신으로 불리는 게 맞는 표현 같았다.
뭐, 리그로우의 움직임을 알아챈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칭찬은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라헬에 대한 앙 금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는 터 라 호는 본인의 입으로 라헬의 칭찬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바로 병사들을 소집할까 요‘?”
“선제 전격전으로 선택의 신전까지 드워프의 영토를 뚫어버린다면 기간 이 얼마나 걸릴까? 아……. 제길.”
벨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꺼냈던 호 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 었다.
채광, 제련, 제작과 같은 금속 관 련 일에 환장을 하는 드워프들이 대 륙의 남부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 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그너스 대륙 의 험한 산맥과 높은 산 대부분이 대륙의 남부에 몰려 있기 때문이었 다. 당연히 드워프들이 사랑하는 광 산들이 굉장히 많았다.
한 마디로 기동과 기습이 중요한 전격전을 펼치기에는 지형상의 조건 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비행이 가능한 천족의 마장기가 다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천족의 마장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알르 드의 사정상 굉장히 힘들었다. 투항 한 천족 영웅들을 믿을 수 없기 때 문이었다.
“그렇다면 함대를 동원하는 것은 어떨까요? 드워프들의 시선을 피해 남부에 대규모 병력을 수송해서
“선택의 신전이 있는 리그너스 대 륙의 남부 바다는 거친 폭풍우와 커 다란 소용돌이가 많이 생겨나는 곳 이에요. 함대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 을 겁니다.”
한시진이 의견을 내놓았다가 곧바 로 무산되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대응책이 나왔지만, 딱히 효용성이 없는 방법 들뿐이었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 나였다.
“결국 전면전으로 선택의 신전까지 길을 열어야 한다는 거로군.”
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 기’의 설정 상 드워프들은 방어전과 산악전에 굉장히 능했다.
호전적인 마족과 수인 왕국을 양옆 에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의 영토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방어전에 얼마 나 뛰어난지를 알 수 있었다.
연이어 전쟁을 치르는 것도 제법 부담이었기에 드워프 왕국과의 전쟁 은 벌써부터 험난함이 예상되고 있 었다.
“멍멍. 영지의 상황이 제 예상보다 훨씬 괜찮군요?”
“알르드의 분들이 킴벌리를 발전시 키는 동안 저희 정령들도 놀고만 있 지는 않았습니다. 알르드가 에아니 안의 특산품인 축복받은 정령 가루 를 필요로 한다는 말에 정령 여왕께 서 직접 에아니안을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저희들에게 내리셨거든요.”
에아니안의 영주인 상급 정령이 미 소와 함께 답했고, 로우덴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희귀한 특산 품인 까닭에 축복받은 정령가루는 제법 비싼 값에 알르드로 팔려나갈 거고, 그 돈은 최근의 전쟁으로 경 제가 엉망이 된 정령 왕국의 재정에 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알르드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간을 많이 절 약할 수 있겠어, 멍멍.’
에아니안 영주의 도움을 받아 도시 의 상황을 홅어본 결과, 로우덴은 빠르게 특산품 생산과 관련된 견적 을 짜낼 수 있었다.
대충 자신과 팀 심시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두 달 내에는 시제품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s등급의 마장기와 관련된 연구도 본 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다.
이미 본국에서는 신록의 강철과 관 련된 연구를 팀 갈공이가 진행 중이 라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호 님! 제가 곧 가겠습니다, 멍!’
정령 왕국의 특산품 생산 업무 때 문에 로우덴은 벌써 몇 달째나 자신 의 주군을 뵙지 못했다. 그리고 그 런 호에 대한 그리움은 곧 일에 대한 열정으로 변했다.
“멍멍! 가자, 얘들아!”
로우덴이 팀 심시티의 멤버들을 향 해 외쳤다.
그런 군단장의 말에 심시티의 영웅 들이 한숨을 내쉬며 미적미적 몸을 일으켰다. 오늘 에아니안에 도착했 는데,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시 작하야 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축복받은 정령가루를 생산하고 알르드로 돌아가자! 멍!”
로우덴은 앞으로 한 달 보름 안에 에아니안에서 축복받은 정령 가루의 시제품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로우덴 보고는 바로 디르 시나에 머무르고 있던 호에게 전해 졌다.
“어? 생각보다 빠르게 특산품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겠는데?”
보름 전, 디아린 상단을 통해 신록 의 강철이 디르시나에 도착할 수 있 었다.
그리고 현재 신록의 강철을 필요로 하는 S등급 마장기와 관련된 연구가 엘 브릭의 주도 아래에 진행이 되고 있었다.
연구 난이도가 제법 높기는 했지 만, 팀 ‘갈공이’의 효과와 많은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인지 연구 가 진행되는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 이었다.
“만약에 축복받은 정령 가루가 생 산이 된다면 두 달 후에는 본격적으 로 마장기 연구에 들어갈 수 있겠 어.”
이미 선행 연구는 진행 중에 있었 고, 파생된 연구 목록은 또 다른 연 구팀인 ‘드라코’가 개발 중에 있었 다. 호와 함께 있던 한시진이 물었 다.
“그러면 마장기의 생산까지는 얼마 나 걸릴까요?”
“빠르면 반 년. 늦으면 십 개월 정 도?”
“평균을 생각하면 8 개월 정도 걸 리겠네요?”
시진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면서도 내심 그보다 더 빠 른 시일 내에 S등급의 마장기를 생 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알르드에는 유능한 영웅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차라리 이렇게 되 면……
호가 눈을 깜빡였다.
라헬의 말에 의하면 공허의 괴물이
리그너스 대륙에 도착할 때까지는 약 9 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 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빠르면 반 년 내에 S등급의 마장기를 제작 해 낼 수 있었다.
물론, 알르드의 유능한 영웅들이 그와 관련된 일에 모조리 투입된다 는 조건하에서였다.
“잘하면 S등급의 마장기로 구성된 편대로 리그로우와 공허의 괴물들을 상대할 수도 있겠는데……?”
거기에 호가 살펴봤었던 S등급 마 장기 관련 연구 목록 중에는 ‘윙 스 러스트’라 불리는 비행기술이 따로 존재했었다.
마장기사의 마력을 기체 후면부에 장착한 윙에 사용해 비행 능력과 뛰 어난 기동성을 확보한다는 연구 기 술이었다. 그리고 신록의 강철을 필 요로 하는 이 기술은 현재 드라코가 연구에 진행 중에 있었다.
만약 비행기술을 지닌 마장기를 손 에 넣을 수 있다면 드워프 왕국의 험한 지형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 다.
‘그렇다면 굳이 지금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 에아니안으로 로우덴을 도울
내정형 영웅들을 보내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리고 림드 산맥을 비 롯한 알르드의 산업 지대에서는 S등 급 마장기의 생산과 관련해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알르드와 천족과의 전쟁이 끝난 이 후, 잠시지만 리그너스 대륙은 평화 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아직 드워프 왕국과 알르드의 전쟁 은 진행 중에 있었지만, 아크칸이 지휘하던 군단이 ‘바리안스의 대지’에서 호에게 대패를 한 이후, 드워 프들은 전선을 뒤로 크게 물리고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르드 또한 본격적인 공세를 취하 려다가 다시금 내정에 힘쓰는 모습 이었다. 하지만 이는 알르드의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아니 제자리 걸음일 뿐이었다.
띵동.
-전리품 수급이 끝났습니다.
-SSS등급의 던전 ‘환영의 성채’에 서 313152141리스와 8160921441의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 2……1. 결산 완료. 이번 전투의 등 급은 S 랭크입니다. 경험치를 9231750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 니다.
-‘배신자와 손을 잡은?’의 업적 보 상으로 카오스 큐브 10개를 획득합 니다.
-‘신들의 학살자’의 업적 보상으로 신의 파편을 획득합니다.
메시지가 호의 눈앞을 가득 메우며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알바트로스 의 조종석에서 내리는 호의 옆으로 고대신 라헬이 넋이 나간 얼굴로 정 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괴물 의 시체가 있는 방향이었다.
괴물의 이름은 아쉬리아트.
방금 전, 호가 지휘하는 알르드 군 의 마장기사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고대 신이었다.
반신의 격을 지닌 강력한 괴물이었 지만, 아쉬리아트는 알바트로스에 탑승한 호를 포함해 브로리,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 한시진 둥 알르드의 에이스 군단을 상대로 두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전투 시간은 길었지만 알르드 군의 일방적인 승리나 다름없었던 전투였 다.
그 증거로 아쉬리아트와의 전투에 서 호가 입은 피해는 라이온레인 두 기 완파와 아보르 비테 한 기 반파 가 전부였다.
“마, 말도 안 돼……. 그래도 반신 의 격을 지닌……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라 헬을 향해 호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 었다.
“그러면 다음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지?”
“네, 네? 히끅!”
호의 물음에 라헬이 화들짝 놀라고 는 숨을 들이키며 호를 바라보았다.
차원 너머에서 소환된 무시무시한 이 영웅은 리그너스 대륙 아니, 이 행성에 있는 고대 신들의 씨를 말려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헬은 그런 호에게 고대신 의 위치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대 신 들끼리 서로 간에 통하는 무언가가 있던 터라, 스스로 봉인을 하거나 숨어 있는 이들의 위치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라헬이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더니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엘프 왕국의 북쪽 신전에 ‘애쉬드라’가 봉인되어 있어 요.”
“대체 몇 놈이나 되는 거야?”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였기에 호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 행성에서 자취를 감춘 고대 신 들의 숫자는 호의 예상 이상으로 굉 장히 많았다. 라헬이 바로 생각해 낸 고대신만 하더라도 무려 열 개체가 넘었다. 게다가 알리우스와의 싸 음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 들도 몇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이제 보니 완전히 재앙의 대륙이 었네.”
깨어나기만 하면 대륙을 초토화시 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제법 많이 대륙에 숨어 있거나 봉인이 되 어 있었다.
하지만 호는 그런 고대 신들의 힘 이 딱히 두렵다거나 무섭지는 않았 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알르 드의 전력도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 이었다.
여러 놈들이 동시에 깨어나 알르드 와 대적하는 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라헬의 말에 의하면 고대 신들은 개개인의 독립성이 엄 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함께 손을 잡 을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지들이 소설에서나 나오는 드래곤 이야 뭐야? 아니, 리그너스 대륙에 서 드래곤은 따로 있지 않나? 그들 의 조상이라고 되는 건가?’
알리우스와의 전쟁 또한 행성이 소 멸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해 함께 손을 잡은 것뿐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런 전투에서 조건을 만
족시킬 수 있는 황금색 재능의 영웅 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네.’
다만, 황금색으로 진화할 수 있는 영웅이 있다면 고대신을 물리치면서 승급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을지 도 몰랐다.
그러나 아쉬토를 마지막으로 호는 알르드에서 황금색 재능을 지닌 영 응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칠 제이자 천족의 여왕인 라이프린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를 EX등급으로 승급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라헬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하게도 라헬은 황금색이 아닌 한시진과 똑 같은 백금색의 재능이었다. 당연히 카오스 큐브 열 개가 아까워 그에 대한 정보는 확인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