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503화
“크윽!”
호가 자신의 무력 능력을 한껏 끌 어 올리며 과감하게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의 압박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장기 조종술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건만. 상대도 실력이 만만치 않 았기에 도저히 우위를 점할 수 없었 다. 전투 경험 역시 상당한 터라 방 심이나 일정한 패턴의 움직임을 유 도하기도 힘들었다.
이게 바로 검신의 힘이라고요!
“시진이 너 인간적으로 너무 몰아 붙이는 거 아니야?”
입에서 그런 투덜거림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시진은 무자비하게 호를 압박했다. 덕분에 호는 그런 시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 다. 반격은 꿈도 꾸기 힘들었다.
마장기의 스펙 차이가 있는데도 불 구하고 말이다. 그 생각이 들자 호 는 괜시리 자존심이 상했다.
‘이러다가는 지겠는데?’
이미 온 몸의 마력이 들끓고 있었 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결국 상황을 반전시 키려면 지금 승부를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호가 자신의 마력을 응집시 키고는 단숨에 폭발시켰다.
“파멸의 돌격!!!”
S등급의 마장기, 알바트로스의 신 영이 붉게 달아올랐다. 반신의 격을 지닌 고대신 마저도 단숨에 끝장을 내버린 강력한 공격이었다.
후, 훈련인 거 까먹었어요?!
마력을 폭발적으로 내뿜기 시작하 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에 한시진의 당황한 목소리가 통신구를 타고 전 해졌다. 하지만 호는 자신의 마력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승부에 서 이길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어차피 데스 사이더 성능과 한시진 의 능력이라면 파멸에 돌격에 얻어 맞아도 큰 부상은 입지 않을 터!
콰드드득!
그러나 막 돌격을 시작하려는 찰나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호는 자신이 탑승한 알바트로스의 시선이 하늘로 살짝 뜨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조종석의 붉 은 경고등.
어느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데스 사이더가 창을 쥔 알바트로스의 손을 위로 꺾어 올리고 있었다. 곧이 어 데스 사이더의 커다란 동체가 알 바트로스를 업어 메쳤다.
콰아앙!!!
몸이 붕 뜨며 조종석에 허리를 부 딪친 호가 고통으로 입술을 질끈 깨 물었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그냥 막혀버리고 말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통솔형이 아닌 무력 능력에 보너스를 받는 클 래스로 전직을 하는 건데……
그래봤자 천재라 불리는 한시진에 게 이길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 지만……. 지금 당장의 심정을 그랬다.
우우우웅.
알바트로스의 창과 연결되었던 마 력이 끊어지면서 파멸의 돌격 역시 무효화가 되었다. 그렇게 대련은 호 의 패배로 끝이 났고, 호가 힘겹게 해치의 문을 열고 조종석에서 빠져 나왔다.
“괘, 괜찮아요? 오빠?”
“으으……. 안 괜찮아.”
몸 보다는 남자의 자존심이 아파오 고 있었다. 하지만 호는 애써 미소 를 지어보이며 시진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따가 누가 간호를 해주
면 아픈 게 조금은 나을 것 같은 데?”
“히히. 제가 또 한 간병하거든요? 오늘은 침대에서 하루 종일 보낼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게요.”
거기에 간호사 복장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성으로 돌아가면 바로 서큐버스 애들에게 준비를 하 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시진의 눈동자가 알바트로스에게 향했다. 대련의 결과치고는 서로의 마장기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다 들 전투 능력이 뛰어난 터라 한 번 부딪치면 공격이 치명적으로 작용했 다. 그리고 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수리비용이 제법 들긴 하겠네. 드 워프 이 인방이 뭐라고 하겠어.”
“존스 홉킨스 씨하고 레온 바티스 타씨 말하는 거 맞죠?”
u O ”
호오
알르드에서 임관 햇수가 가장 오래 된 드워프 영웅인 그 둘은 연구, 건 설, 재정 등 여러 보직을 거쳐 현재 는 알르드의 기술 장관으로 활동하 고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마장기의 제작 및
수리.
드워프의 제작 욕구를 한껏 만족시 킬 수 있는 자리라 그런지 둘은 현 재 자신들의 보직에 굉장히 만족하 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훈련으로 부 서진 마장기를 보면 예술품을 망가 뜨렸다고 종종 화를 내곤 했었다.
“……그나저나 새롭게 제작된 데스 사이더 개조형은 어때?”
“좋은 것 같아요.”
오늘 호가 한시진과 대련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한시진의 새로운 마장기 ‘데스 사이더-헬’의 능력을 시험하 기 위해서였다.
세리너스의 힘에 지배당했던 쉐르 난비체와의 대결에서 시진은 실력으 로는 이겼지만, 마장기의 성능에서 차이가 나는 바람에 결국 승부를 가 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호는 볼 붸르니체스에게 엘릭서를 건네주는 대가로 마족의 마장기 기술을 전부 건네받을 수 있 었고, 며칠 전 한시진의 전용기나 다름없는 데스 사이더를 완벽히 개 조할 수 있었다.
계속된 전투로 망가졌던 부품들도 전부 새것으로 교체했다.
“아, 원래의 세계에서 타던 기체와
비교하면 어때? 거기도 마장기가 있 다고 하지 않았어? 화랑이라고 했던 가?”
“어라? 기억하시네요?”
“당연하지. 네가 살던 곳인데……. 어떤 곳인지 한 번 가보고 싶긴 해.”
“그러게요. 집에 가지 못한지도 벌 써 수년이나 지났네요. 뭐, 가면 오 빠도 좋아할 거예요.”
의외로 그녀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라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 았다.
동생인 시연도 비슷한 생각이려나?
그러고 보니 시연이의 얼굴을 못 본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굉 장히 많거든요.”
한시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얼굴을 보며 호는 자신의 표현 을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원래의 세계라고 하니까 왠지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던 탓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행 성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외계일 텐데…….
‘큐브 상점에 우주선도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있었던 것 같 았다.
유니버스급 함선-발록. 구입에 필 요한 카오스 큐브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점과 우주라는 뜻을지닌 ‘유니버스’급이라는 단어를 본다면 분명 우주선이 틀림없었다. 성능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구 입할 수 있다면 이 행성을 떠나 지 구 혹은 한시진이 살던 행성으로 돌 아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봤자 카오스 큐브가 부족하 니……
부족한 개수를 생각해보면 알리우
스와 고대신을 전부 때려잡아야 구 입을 할 수 있을까 말까했다.
천족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알르드 는 새롭게 병력을 재편성했다. 기사 왕이 이끄는 3군단이 ‘바리안스의 대지’에 주둔하며 드워프 왕국의 북 부 전선을 맡았고, 브로리의 2 군단 이 바우 왕국을 보호하며 동부를 압 박했다.
EX등급이지만, 왠지 EX등급 같지 않은 수왕 아쉬토는 켐벨에 남겼다. 혹시 모를 루베릭 대륙의 도발을 대 비하기 위해서였다. 루베릭 대륙에 원한이 깊은 아쉬토 본인도 그것을 원했다.
라헬과 함께 투항한 천족 영웅들은 충성도의 관리 없이 최대한 부려먹 는 중이었다.
어차피 발전시켜야 할 영지들은 많 았고, 천족들에게 시킬 일 또한 산 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어차피 라헬 이 있는 이상 천족 영웅들이 자신을 배신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임무 완료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실버 문들의 훈련 을 부탁해.”
화려한 날개를 한 천사가 호의 명 령 아닌 명령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족들의 여왕 라이프린. 대륙에 명성을 떨쳤던 칠제 중 한 명이자 SSS등급의 영웅인 그녀를 호는 적 재적소에 배치에 잘 부려먹고 있었 다. 워낙 능력이 좋은 영웅인지라 여기저기에 배치해도 평균 이상은 하고 있었다.
“저기, 오빠. 저 천사 얼굴이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휴식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요?”
휴식은 무슨 휴식. 천족들이 알르 드를 괴롭혔던 것을 생각하면 밤새 도록 부려먹어도 시원치 않았다.
“나중에 라헬이 알아서 주겠지. 쟤 네들은 신앙심으로 움직이는 애들이 라 휴식 같은 거 안줘도 돼.”
그래봤자 멕시코에 이어 OECD 노동시간 2위에 빛나는 한국의 노동 자들을 생각하면 저 정도 고생은 아 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의식주에 대해서는 완벽하 게 지원하고 있었다. 단지 일만 조 금 더 시킬 뿐이었다.
“회사에 일하러 한 번 갔다가 며칠 밤새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수 년 정도 반복해야지, 고생 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결혼이 뭐고, 연애가 뭐야?”
“그, 그런가요?
알 수 없는 호의 대답에서 왠지 모를 어둠의 기운을 느낀 시진이 기 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나흘 뒤, 라이프린을 부려 먹으며 디르시나에서 시간을 보내던 호에게 환한 빛과 함께 여신 라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신을 가장한 고대신답게 체면이 라도 차리려는지 신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라헬의 얼굴은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굉장히 창백해져 있었다.
“크, 크, 큰일 났어요!”
디르시나의 집무실에서 호를 발견 한 라헬이 여신이라는 체면도 잊은 채 크게 소리를 질렀다.
“리, 리그로우가 선택의 신전에 있 어요! 큰일이에요! 당장이라도 그를 막아야 돼요!”
“잠시 진정 좀 하지?”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말을 내뱉 는 라헬의 모습에 호가 옆에 있던 시진에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푸 차를 가지고 왔다.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엘프들의 특산품이었다.
“선택의 신전에 리그로우가 있다 고?”
그리고 라헬의 행동이 진정되는 것 을 본 호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택의 신전을 찾아가봤는데, 리그로우가 그곳에서 선택의 신전을 움직이고 있었어요.”
“……신전을 움직이다니? 그게 무 슨 의미지?”
“행성의 마력을 이용해 다른 차원 혹은 외우주의 존재들을 불러오려는 것이에요.”
“소환자를 불러 온다고?”
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알리우스의 뜻을 대신할 소환자들을 불러와봤자 아무 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새로 운 소환자들이 성장하는 동안 알르 드는 리그너스 대륙을 통일하고, 알 리우스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을 테 니까.
하지만 라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호가 생각했던 존재가 아니었다.
“공허의 괴물들. 리그로우는 공허 의 괴물들을 이 대륙으로 불러오려 고 하고 있어요/
“알리우스의 괴물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시진이 소 리치듯 말했다.
호도 얼굴을 찌푸렸다. 은하계에 공허를 퍼뜨리려는 오염된 괴물들. 수억, 수십억이 넘는다는 그 괴물들 을 리그로우가 불러오려는 모양이었 다.
“……몇 마리나 대륙에 도착했지?”
알르드의 전력을 동원하던 그리고 다른 종족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수 천만 단위까지는 해볼 만했다.
억 단위는 조금 힘들 것 같았고, 그 이상은 필패였다. 사실, 수천만도 아슬아슬했다.
리그로우가 나섰을 때는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네? 0마리요.”
그리고 이어지는 라헬의 대답에 호 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 신이 알던 라헬의 이미지가 조금씩 부서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 신이 그런 의도로 물었냐고 라헬을 구박하려는 찰나, 한시진이 다시 말 했다.
“아직까지 공허의 괴물이 나타난 것은 아니네요? 그러면 언제 도착하 나요?”
“아! 으음……. 시간이 제법 걸리 기는 할 거에요. 강한 괴물들 그것 도 먼 외우주의 괴물들을 불러오는 게이트를 열어야 하니까……. 그래 도 행성의 마력을 생각하면 일 년은 걸리지 않을 거예요.”
“ 빠르다면?”
“리그로우의 힘을 감안하면 9 개 월? 그 정도면 선발대가 리그너스 대륙에 도착할 것 같아요.”
9개월이라……. 굉장히 짧은 시간 이었다. 특히 리그로우를 상대할 비 장의 무기를 준비하기에는 더더욱 말이었다.
“지금이라도 군대를 움직여야 할까 요?”
“이왕이면 S등급 마장기 편대를 갖 추고 난 후에야 알리우스를 상대하 고 싶었는데……
한시진의 말에 호가 손가락을 까닥 이며 말을 받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리고 호의 시선이 라헬에게로 향했 다.
“그래서 리그로우가 있다는 선택의 신전은 어디에 위치한 거지?”
“어, 그게……
라헬은 잠시 말이 없었다. 왠지 자
신과 한시진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 였다. 설마 루베릭 대륙에 있는 것 도 아니고.
“리그너스 대륙의 남쪽 끝에 있어 요. 그러니까……
“하필이면.”
대답을 들은 호가 얼굴을 구겼다. 라헬이 말하는 위치는 드워프 왕국 의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그리고 드워프 왕국의 대족장인 골드 스트 리안은 세리너스의 마력에 세뇌당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