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502화
“이제 며칠만 지나면 킴벌리에서 드디어 신록의 강철을 생산하겠군 요.”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진짜 이런 촌 동네가 다 있었다니……
“마족과의 접경지역이라 정령 왕국 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모 양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 지 모든 부분에서 저희들이 손을 대 어야 했으니까요.”
“정령 왕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 럴 만했다 봅니다. 호전적인 마족의 성격상 전쟁도 잦을 테고, 그럴 때 마다 도시의 발전된 건물이 무너지 는 것은 순식간이지 않습니까?”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된 알르드 영 웅들의 대화를 들으며 로우덴은 자 신이 확인해야 하는 서류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도 귀가 쫑긋 움직이 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의 말대로 킴벌리에서 곧 신록의 강철을 생산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심을 가지 고 지켜봐야 할 시기였다.
희귀한 특산품인 신록의 강철을 만 들어 내려면 앞선 1, 2, 3차 공정이 이뤄져야 했고, 그에 필요한 수많은 자원과 특산품들이 킴벌리에 원활하 게 공급이 되어야만 했다.
그에 맞춰서 특산품들의 유통 계획 을 철저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겨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서류를 전부 확인 한 로우덴이 영웅들의 대화에 끼어 들며 물었다.
“멍멍. 디아린 상단에서의 연락
킴벌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로우
덴의 말에 알르드의 엘프 영웅이 대 답했다.
“보름 전쯤, 디아린 상단주가 정령 왕국의 수도 유드라실에 도착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마 상단의 이 동 속도를 생각해 보면 닷새 내에는 이곳 킴벌리에 도착할 것 같습니 다.”
“주변 치안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 가 없겠지? 멍멍?”
“마족이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이 근방은 드래곤 라이더 부대가 꽈 악 잡고 있습니다, 로우덴 군단장 님.”
머리를 짧게 친 인간 영웅이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말했다. 할든이라는 이름을 지닌 영웅이었는데, 매일 얼 룩덜룩한 녹색의 복장만을 입는 까 닭에 정령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풀 냄새가 난다며 놀림을 받는 영웅이 었다. 그래도 정령들의 놀림은 관심 의 표시였다.
로우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든의 말마따나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와 드래곤 라이더 부대가 킴벌 리에 주둔을 시작하면서 킴벌리는 물론이고, 이 주변의 치안이 안전해 진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중 형 몬스터 무리라도 드래곤 라이더부대에 걸리면 작살이 나는 것은 순 식간이 었다.
그리고 디아린 상단도 자신들을 호 위하는 병력과 함께 이동하고 있을 터. 딱히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군단장님. 정말로 천족과 의 전쟁이 끝난 겁니까?”
갑자기 할든이 물었다.
그는 알르드의 깃발 아래에서 기사 왕의 휘하로 천족과 전쟁을 치렀다 가 토갈론 요새로 이동을 명령 받았 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령 왕국의 킴벌리 수비를 위해 다시 전출된 영웅이 었다.
“멍멍?”
그런 할든의 말에 로우덴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 호에게서 받은 편지가 있었다.
“멍. 그렇다. 위대하신 패왕 윤호 님께서 몸소 알바트로스를 이끌고 나서 여신 라헬과 그녀를 따르는 멍 청한 비둘기 놈들을 전부 휘하에 거 둬들였다고 한다.”
“역시 호 님. 이렇게 되면……
“정말 알르드가 이 대륙을 통일하 게 되는 거 아닙니까?”
로우덴의 대답에 영웅들이 쑥덕거
렸다.
리그너스 대륙에 알르드의 깃발이 올라간 것은 기껏해야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알르드 패왕인 윤호는 엄청 난 전략적, 전술적인 능력을 발휘해 수백 년이 넘게 리그너스 대륙의 패 권을 다퉈왔던 일곱 종족 중 인간, 수인 왕국을 무너뜨렸고, 이제는 천 족까지 자신의 휘하에 거둬들이기까 지 했다.
그 뿐인가? 대륙에서 가장 이름난 영웅이라는 칠제 중 셋이 그리고 그 보다 더 강한 괴물 소녀가 윤호를 돕고 있었다.
“멍멍. 그건 호 님의 뜻에 달린 거 다. 단지 우리는 호 님의 명령에만 따르면 되는 것뿐이야. 그리고 다른 종족들의 앞에서는 그런 말을 조심 하는 게 좋겠군.”
“아,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조심하겠습니다.”
로우덴의 경고에 영웅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령 왕국이 아무리 알르드에 큰 호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면전 앞에 서 우리가 너희들을 흡수 통일할 것 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로우덴이 보기에 알르드의 지배자인 윤호는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 는 것 같았다.
그리고 뛰어난 머리를 지닌 로우덴 은 윤호가 보고 있는 대상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고대신……
과거 창조신과 대치하며 리그너스 대륙을 지배하려고 했던 이 행성의 반신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기 록조차도 남아 있지 않는 그 괴물들 이 최근 들어 몇 번이나 알르드의 앞에 나타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패왕 윤호와 알르드의 뛰어난 영웅들이 나서서 고대신을 쓰러뜨렸고, 이 대륙에 평 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중에는 로우덴도 함께한 적이 있었다.
‘멍멍.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 다.’
그러나 창조신과 대적했다는 고대 신들이 전부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호의 손에 운트리온, 파이가론 그 리고 카리운이 쓰러졌지만, 대륙의 방랑자였던 로우덴이 알고 있는 고 대신의 숫자는 총 여섯이나 되었다. 무려 셋이나 더 남아 있는 것이다.
언제 그들이 리그너스 대륙을 그리 고 알르드를 노리고 모습을 드러낼 지 몰랐다.
“평화로울수록 더욱 전쟁을 준비해 야 하는 법.”
그리고 킴벌리에서 생산되는 신록 의 강철은 앞으로 있을 큰 싸움을 위한 중요한 준비물이었다.
휘하 영웅들이 했던 말대로 디아린 이끄는 디아린 상단은 나흘 뒤, 킴 벌리에 무사히 도착했다. 신록의 강 철 생산에 필요한 자원과 특산품을 가득 싣고 있었다.
“호 님께서도 로우덴님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실 겁니다. 열악했던 킴 벌리를 이렇게나 크게 발전을 시키 시다니 요?”
오랜만에 킴벌리를 방문한 디아린 은 변화한 도시의 모습에 눈을 휘둥 그레 떴다.
예전의 깡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대륙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발전된 도시가 눈앞에 나타나 있었 다. 이게 불과 몇 달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호 님의 은혜와 디아린 상단의 도 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멍멍.”
디아린의 시선이 로우덴에게 향했
다.
언제나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흘리 고 있지만, 패왕 윤호의 군사이자 알르드의 몇 안 되는 군단장인 이 견인은 정말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지 니고 있는 영웅이었다.
유능한 인재들이 다수 포진한 알르 드에서도 로우덴과 비교될 수 있는 영웅은 한시진과 기사왕을 비롯한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면 이번 상행위부터는 신록의 강철을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멍멍.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리 많 은 양은 아닐 겁니다.”
킴벌리에서도 처음으로 생산을 시 작하는 특산품이다. 장인들의 숙련 도를 생각하면 품질도 그리고 생산 량도 좋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로우덴의 대답에 디아 린은 안도의 한숨과 함게 가슴을 쓸 어내릴 수 있었다.
“후우, 다행이네요. 최근 림드 산맥 의 폐하께서 신록의 강철과 축복받 은 정령가루의 생산에 큰 관심을 보 이고 계세요. 하루라도 빨리 연구에 들어가야 한다나?”
“머엉? 그렇군요.”
로우덴이 고개를 주억였다. S등급
의 마장기. 그와 관련된 연구를 말 하는 게 틀림없었다.
하기야 고대신과 같은 무시무시한 괴물을 상대하려면 A등급 마장기보 다도 더욱 강력한 전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S등급의 마장기는 충분히 그 대체제가 될 수 있었다.
“멍멍. 신록의 강철 생산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바로 에아니안 으로 출발해야겠군요.”
로우덴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령 왕국의 영지 중 하나인 에아니안은 S등급 마장기 연구와 관련된 축복받 은 정령가루를 생산할 수 있는 리그 너스 대륙 유일의 영지였다.
“여기가 선택의 신전인가?”
태양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건축물의 심장부. 그 한가운데서 상 의를 입지 않은 근육질의 남성이 팔 짱을 끼고는 주위를 둘러다 보고 있 었다.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의 빛이 캄캄한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역시 라헬이 말한 대로야. 이 신 전은 행성의 에너지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 게 틀림없어.”
그 증거로 푸른색의 입자들이 신전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탐욕스러 운 눈으로 푸른 입자들을 보는 남성 이 입맛을 다셨다. 행성의 강력한 에너지는 자신이 지닌 힘의 원천이 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리그로우. 창조신이 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던 그가 선택의 신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리그로우는 행성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선택의 신전을 찾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에너지를 쓰기 위해 선택의 신전을 방문했다.
“빌어먹을 놈!”
비록 한 번 뿐에 불과하지만 자신 과 마주한 적이 있던 인간의 얼굴을 떠올린 리그로우가 분노로 얼굴을 붉혔다.
리그너스 대륙의 세력 중 하나인 알르드. 그리고 그런 알르드를 지배 하는 패왕 윤호. 그는 이 대륙의 반 신 격 존재인 고대신을 견제하기 위 해 리그로우와 세리너스가 라헬에게 명령해 행성의 힘을 통해 불러온 이 방인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미개한 존재에 불과했던 녀 석이 차츰차츰 자신의 힘과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하더니만 지금은 알 리우스인 자신마저도 무시할 수 없 는 세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실수로 알바트로스 도 윤호에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하다니……
알리우스의 무기인 알바트로스를 가지고 있는 윤호 개인의 힘은 딱히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신 여럿 을 쓰러뜨린 그가 지닌 강대한 세력 은 아무리 알리우스라도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그렇기에 리그로우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알르드를 무너뜨릴 생각이 었다.
“공허의 괴물들.”
리그로우의 눈동자에 어두운 마력 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주를 떠돌 고 있는 알리우스의 부하들. 그들을 불러 알르드를 공격할 생각인 것이 다.
그리고 공허의 괴물들로 인해 알르 드가 혼란스러워지는 틈을 타 리그 로우는 윤호의 목숨을 빼앗고, 그가 가지고 있는 알바트로스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리그로우가 있던 자리 에서 마력의 회오리가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어두웠던 선택의 신전 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 다. 행성 에너지를 사용해 다른 차 원의 생명체들을 불러올 수 있는 선 택의 신전이 가동되기 시작하는 것 이다.
“거기 누구냐?!”
그렇게 리그로우가 자신의 힘을 끌 어 올리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리그로 우가 일갈과 함께 자신의 손을 쭉 뻗었다. 곧바로 마력의 창이 형성되 어 리그로우의 손이 가리키는 장소 로 쇄도했다.
콰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위가 산산조 각 나며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A등급 마장기도 단숨에 부술 수 있 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니 인기척 을 낸 이 또한 무사하지는 못할 터!
“으음???????”
그러나 리그로우의 눈에 들어온 것 은 신전을 이루는 바위의 조각들뿐 이었다.
“괜한 착각이었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리그로우는 계 속해서 마력을 선택의 신전에 불어 넣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력이 행성 에너지와 합쳐지면서 공허의 괴물들 을 불러오는 차원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먼 우주의 강력한 존재들을 불러오 는 일인 만큼 시간은 제법 걸리겠지 만, 차원의 문이 열리게 된다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공허의 괴물 들을 동원해 순식간에 알르드를 무 너뜨릴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의 행동을 방해할 적도 없었다.
그 때를 떠올리며 리그로우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시각, 겁 많은 여신이 창백해진 얼굴로 빠르게 선택의 신 전을 벗어나고 있었다.
“미, 미쳤어. 미쳤다고. 진짜 공허 의 괴물들이 이 대륙을 침입해 올 거야.”
여신 라헬. 선택의 신전에 벗어난 그녀가 향하는 장소는 리그너스 대 륙의 중앙부에 위치한 알르드의 수 도, 림드 산맥의 디르시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