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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94화 (494/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94화

아니나 다를까, 미쳐 버린 쉐르난 비체는 마족의 전력을 총동원해서 알르드로 집결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정령 왕국과 드워프 왕국의 국경에 배치된 수비 군단까지도 빼 내는 모습이었다.

이쯤이면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한 판 붙자는 말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텅텅 비어버리다시피 한 마족의 후

방을 정령 왕국이 견제해 주면 좋으 련만.

정령 여왕 아르넨 리네는 여전히 부상 중이었고, 고대신과 파신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정령 왕국의 군대 역시 타국을 침공할 여력이 없었다. 드워프들은 기대조차 할 수도 없었 다.

이쯤이면 자칭 창조신이라는 알리 우스와 파신 그러니까 루베릭 대륙 의 카테지나가 서로 손을 잡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뇌라는 게 무섭긴 무섭네요.”

“그러게. 리그너스 대륙에서 가장

강한 단일 세력이 이런 식으로 전력 을 총동원해서 쳐들어 올 줄이 야……

“그런 것치고는 크게 걱정하지 않 는 모습인데요?”

자신을 바라보는 미소에 호는 장난 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충분히 겁을 먹고 있다고.”

쉽게 생각할 상대는 아니었다. 하 지만 알르드의 전력과 EX등급의 힘 은 마족의 대대적인 공세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수비전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대륙전기’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되는 결과가 있었다.

‘변수만 없으면.’

커티삭에서 쉐르난비체에게 좌절을 안겨다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족의 군대가 커티삭의 국 경을 넘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리그너스 대륙의 강철 병기, 마장 기들로 이루어진 편대가 묵직한 발소리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 주위로 단단히 무장을 한 마족 의 병사들이 마장기를 호위하듯 배 치되어 행군하고 있었다.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지.”

그렇게 이동하는 마장기 중에 검붉 은 색으로 도색된 데스 사이더급 전 용기가 한 기 끼어 있었다.

데빌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마족의 신성이라 불리는 영웅인 리스티 든 이었다.

쉐르난비체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그는 최근 만마의 지배자께서 내리 는 명령에 대해 조금씩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알르드에 대한 공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 다. 마족이 리그너스 대륙을 통일한 강력한 적을 견제하는 행위라 받아 들이면 되니까.

그러나 알르드를 공격하기 위해 국 경을 지키는 수비대까지 빼내는 것 은 냉철한 쉐르난비체의 판단이라고 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 명령이 쉐르난비체의 입에 서 직접 나온 것이 아니었다면, 결 코 믿지 않았을 명령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니까.”

하지만 루비 아이는 물론이고, 신 기인 카시아움이 쉐르난비체를 따르 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가 거짓일 리 없었다.

그렇게 리스티 든은 쉐르난비체의 명령을 받아 정령 왕국의 국경을 지 키던 수비 군단을 커티삭으로 이동 시키고 있었다.

이미 알르드의 국경도 넘은 후였 다. 그리고 반나절 거리의 후방에서 는 쉐르난비체가 직접 이끄는 마족 의 친위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적들의 움직임은 포착된 게 없 나?”

리스티 든의 통신에 잠시 지지직거 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통신 을 받은 그의 부관이 대답했다.

“공중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있 습니다만 딱히 그런 움직임은 없습 니다. 아무래도 알르드 군은 커티삭 에서 저희들을 맞이할 생각인 모양 입니다.”

“그런가?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 은 없지. 볼 붸르니체스 군단장이 커티삭에서 크게 혼쭐이 나고 패배 했어.”

그렇게 말하며 마족의 신성은 카메 라를 통해 밖을 바라봤다. 사방에 어둠이 컴컴하게 내리고 있었다.

“뭐, 알르드의 군사력이 상당하다 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 까‘?”

부관의 통신에 리스티 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쉬운 전투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특히, 패왕 윤호의 전술적인 능력 은 무조건 조심해야 했다. 그가 이 끄는 병력에 패한 리그너스 대륙의 영웅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 다.

다행히 적들의 움직임이 레이더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서너시간 남짓 이동한다면 커티삭의 성 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 다.

그렇게 리스티 든이 안심하며 레이 더에서 시선을 돌릴 때였다.

삑!

레이더에 순간적으로 붉은색의 점 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만약 다른 곳에 정신을 놓고 있었 다면 몰랐을 정도의 미약한 신호였 다. 하지만 마족의 신성은 마침 레 이더를 보고 있었고, 그의 눈은 적 기의 등장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경계 태세! 적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마장기들이 움직임을 멈추고는 경계를 시작했 다.

병사들도 자신들의 무기를 빼내들 었다. 누구라도 나타나면 당장에 달 려들 기세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잔혹한 녹색 빛이 모습을 드러내었 다.

-아, 아닛?!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상대의 공격 은 갑작스러웠다.

어느새 아군에게 접근한 적기는 단 숨에 쿠슬뱅 급 마장기의 목을 따버 렸다. 마장기가 파괴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야를 완전히 잃었으니 파괴 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 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윽……

병사들이 내지르는 소리, 통신을 타고 들려오는 마장기사들의 다급한 고성, 사방에서 날아드는 불빛들로 인해 리스티 든은 정신이 없었다.

레이더에는 적기의 움직임이 나타 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 다. 그만큼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치, 침착해라! 적은 한 기다!”

리스티 든이 외쳤다. 문제는 한 기

의 적기가 보이는 움직임이 무척이 나 신출귀몰하다는 것이었다. 최소 한 적의 에이스급 오너 혹은 군단장 급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어둠 속을 꿰뚫던 빛 줄기가 자신에게 향하는 모습에 리 스티 든은 빠르게 자신의 무기를 들 어 올렸다.

카카카칵!

“크, 크윽???????!”

묵직한 압력이 조종간을 잡은 리스 티 든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 결과 적기의 움직임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적기의 정체를 확인한 리스티 든의 눈동자 가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사신의 낫을 주무기로 하는 검은색으로 도색된 마장기.

아군을 공격한 마장기는 마족의 A 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 급 마장 기였다. 바로 통신을 타고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시진! 알르드의 한시진입니다! 패왕 윤호의 최측근이자 알르드의 맹장으로 유명한 소환자입니다!”

“ 오호……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알르드의 영웅 중 한 명이 아군에게서 노획한 데스 사이더를 자 신의 전용기로 사용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리스티 든이 혀 로 자신의 입술을 적셨다.

“실력이 제법이잖아?”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의 덩 치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고도 빠 른 기동력으로 아군을 기습한 상대 의 실력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 다.

“바로 이 녀석이 알르드의 한시진 이란 말이지……?”

똑같은 데스 사이더의 오너로 호승

심이 치밀어 올랐다. 눈앞의 적은 최소한 마족의 군단장급 이상의 실 력을 지니고 있었다.

둘 중 누가 강한지 여기서 당장 겨뤄보고 싶었다.

“내가 상대하겠다!”

그렇게 외친 리스티 든이 저돌적으 로 적기에게 달려들었다.

마력탄과도 같은 빠른 움직임이었 다.

육안으로는 감히 측정할 수 없는 속도. 하지만 시진은 쉽게 리스티 든의 공격을 받아쳤다. 아니,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 넘겼다. 검신의 능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노오오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낫이 여러 갈래로 휘둘러 지며 한시진의 기체를 노렸다.

마력이 실린 낫에 살짝 스친 데스 사이더의 장갑이 연기와 함께 우그 러졌다. 그 모습에 시진이 입 꼬리 를 말아 올렸다.

“그래도 전용기까지 지니고 있는 녀석이라 이거지?”

확실히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른 움 직임이 었다.

알르드에서도 에이스 급에 속하는 녀석들이나 상대가 가능할 것 같았 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검신으로 전직한 한시진의 능력은 이런 리스티 든의 공격을 가뿐하게 피해낼 수 있었다.

한시진의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에 데스 사이더의 낫이 계속해서 하늘 을 가르기 시작했다.

“나를 놀리는 것이냐?!”

그런 상대의 움직임에 광분한 리스 티 든이 더욱 거칠게 달려들었다. 마력 낫을 휘두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 낫을 이루는 마력의 칼날 또한 길게 늘어지고 있었 다.

그렇게 몇 번이나 서로가 부딪쳤지 만, 리스티 든의 공격은 한시진이 조종하는 마장기의 장갑을 살짝 긁 는 정도에 불과했다.

“카아아아악!”

그리고 분노에 찬 리스티 든이 자 신의 몸을 크게 움직이려던 때였다. 눈에 띌 정도로 생겨난 커다란 빈틈 을 시진은 놓치지 않았다.

콰아앙!

데스 사이더의 발길질에 날아간 리 스티 든의 기체가 땅바닥을 뚫고 파묻혔다.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 일격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리스티 든이 정신을 잃고 기 절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 다시 정리를 해볼까?”

순식간에 적의 대장을 무력화시킨 시진이 조종간을 움직이기 시작했 다.

눈에 보이는 적군의 숫자는 약 2 만 정도.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상 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커티삭의 성벽 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적 마장기 전력의 무력화였다.

콰아앙!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키마라이 급 마장기를 향해 시진이 움직이려고 할 때, 두 마장기의 사이로 커다란 검이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사방이 고요해지며, 거대한 마력이 시진의 주위를 잠식하기 시 작했다.

“……금방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 는데, 언제 여기까지 왔대?”

시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뒤 로 뺐다.

검의 정체는 분명 마족의 신기 카

시아움. 쉐르난비체의 전용기인 루 비 아이가 근처에 있었다.

그런 루비 아이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 터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쩝.”

그래도 새롭게 얻은 힘을 시험하느 라 적군의 대장을 처리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적기 또한 대여섯 기밖에 파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정도면 알르드를 공격하려는 마족들에게 경고 정도는 날려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림자처럼 상대에게 접근

한 것처럼 한시진의 마장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많네.”

망원경을 통해 마족의 병력을 확인 한 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까만 점들이 바글바글하게 움직이고 있었 다.

커티삭의 국경을 넘어선 마족의 군 대는 60만이 넘었다. 문제는 이 숫 자 이상의 병력이 계속해서 국경을 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마의 지배자가 자신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 실 때문인지 찌를 것 같은 적군의 살기가 유형화되어 느껴질 정도였 다.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 리를 거뒀던 알르드의 위명에 마족 들이 겁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았 다.

“선제공격?”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커티삭에 배치된 방어시설의 도움을 받는 게 적들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자신들의 목적은 수비였다.

다만, 요격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비 에 나선다는 것뿐이지 선제공격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처럼 마족이 제대로 된 움직임 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먼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누가 호전적인 놈들 아니랄까 봐.”

적군의 진영에 마장기들이 집결하 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이다!”

커티삭에서도 마족의 움직임을 감 지했다. 지휘 영웅들의 명령에 따라 커티삭의 방어 시설들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저격이 가능한 마장기들 도 자신들의 위치에서 적군을 노리 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왕의 전용기이자 붉은 용 의 적대자라 불리는 루비 아이가 하 늘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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