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89화
“커티삭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파괴되는 루미넌 포탑을 뒤로 하며 거대한 덩치를 한 미노타우르스 영 웅이 말했다.
마족의 용장이자 만마의 여제인 쉐 르난비체에게 상급의 위를 받은 영 웅 볼 붸르니체스였다.
또한, 그는 마족의 동부군을 맡고 있는 군단장이기도 했다.
그런 볼 붸르니체스가 이끄는 동부
군은 현재 알르드의 국경을 넘어 커 티삭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16개의 마장기 편대와 54만의 병 력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대군이었 다.
“저 언덕만 넘으면 커티삭 평원입 니다. 이 속도로는 두 시간이면 커 티삭의 성벽이 보일 겁니다.”
부하의 대답에 볼 붸르니체스는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급 마족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했다.
자신들이 공격하고 있는 알르드는 현재 리그너스 대륙의 세력 중 최강 이라 부를 수 있는 국가였다.
그들의 군사력은 파신과의 전투를 비롯해 여러 종족과의 싸움에서 이 미 증명이 된 바 있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아니, 진행 중이기도 한 천족과의 전쟁에서도 큰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그런 알르드를 갑자기 공격하라 니……
솔직히 말해 마족의 동부군을 이끄 는 볼 붸르니체스는 알르드에게 좋 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알르드의 패왕인 윤 호가 원래는 마족의 소환자였다가 배신으로 독립 을 한 것이 그가 알르드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그때의 사건으로 인해 볼 붸르니체스는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를 탈취당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강함만큼은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만마의 여제이자 그가 모시는 쉐르 난비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알르드 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작스럽게 마왕성에 서 알르드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 어졌다. 그것도 만마의 여제께서 직 접 나설 예정인 전쟁이었다.
“만마의 여제께서 심경의 변화가
바뀔 일이 대체 뭐가 있었을까?”
볼 붸르니체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딱히 마족과 알르드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정기적으로 쉐르난비 체를 찾았던 저번 달 초, 파신을 물 리친 그들의 성과에 찬사를 보냈었 던 마왕이었다. 그러나 명령은 이미 떨어진 상황이었다.
콰아앙! 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방어 포탑이 불타올랐다. 알르드의 방어 시설이 었다.
돈이 얼마나 썩어 넘치는지 커티삭 의 중요한 길목마다 최상급의 방어 시설이 건설되어 있었다.
그런 탓에 마장기가 직접 동원이 되어 방어 시설을 처리해야 했다. 일반 병사들에게 맡겼다가는 피해가 크기 때문이었다.
“이놈의 방어탑은 왜 이렇게 많아? 취엑.”
마족의 마장기사가 투덜거리며 말 했다. 제대로 된 전투는 아직 시작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나 출 전을 나가고 있었다.
그런 탓에 커티삭에 도착하기도 전
에 마장기의 마력석을 새것으로 교 체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방어 시설을 이렇게 중구 난방으로 세워놨으니, 커티삭 내에 는 방어 시설이 많지 않을 수도 있 겠어.”
“취익. 그러면 다행이지만……
동료의 말에 마장기사는 여전히 질 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 다.
가뜩이나 홀로 동떨어진 방어 시설 임에도 불구하고 등급이 이상할 정 도로 높아서 마장기를 탑승하고도 파괴를 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 었다.
예전 쉐르난비체에게 점령당했던 아픈 과거가 있는 커티삭은 호와 커 티삭의 영주인 칸디르가 심혈을 기 울여 방어선을 구축한 요새 도시였 다. 그리고 그 튼튼함은 알르드 내 에서도 수위에 손꼽혔다.
“이런 염병……
그리고 평원을 지나서 커티삭에 도 착한 마족의 병사들은 다들 굳은 얼 굴을 펼 수가 없었다.
높디높은 성벽과 셀 수도 없을 정 도로 많은 방어 시설들.
SSS랭크의 병사들이 성벽을 가득 메운 것은 물론이고, 중간중간에 엎 드려 쏴 자세로 MLC를 겨누는 엑 스칼리버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격이 특기인 놈들이라 수성전에 서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마장기였 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 었다.
리그너스 대륙에서 유일하게 알르 드만이 건설할 수 있는 마동포 이제 르론이 커티삭의 성벽 뒤로 무려 네 기나 보이고 있었다.
“쿠흐흐흐. 저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방어선을 만들 어 놨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볼 붸르니체스의 부관이 난감한 표 정으로 물었다.
이대로 커티삭을 상대로 한 공성전 이 시작되면 병사들의 피해가 엄청 날 것이라는 건 안 봐도 알 수 있 는 일이었다.
도저히 도시를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무지막지 한 방어선이었다.
“만마의 여제께서 내리는 명령은
절대적이다. 나의 마장기를 준비시 키고, 병사들에게도 성을 공격할 준 비를 하라고 일러라.”
하지만 충성스러운 동부군의 수장 은 적들의 단단함에 굴복하지 않았 다.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뚫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적들의 공세가 시작될 것 같습니 다.”
“총원 전투 배치! 마력포를 충전해 라!!!”
마족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것과 동시에 커티삭의 병사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탑에 병사들이 올라탔고, 마력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궁병들이 성곽에 자리를 잡 았고, 실버 문들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옆에 섰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엑스칼리 버의 MLC도 장전을 마쳤다.
커티삭의 영주인 칸디르도 직접 마 장기를 끌고 나섰다.
그녀의 전용기는 예전의 전쟁에서 부서진 터라 이번 전투에는 B등급 인 엔젤 가디언급을 타고 나섰다.
알르드에 배치된 몇 안 되는 천족
마장기 중 하나였다.
그렇게 커티삭의 전투 준비를 하는 동안 통신병은 커티삭과 인접한 영 지인 안테 로리와 아멘드마에 지속 적으로 통신을 보내고 있었다.
마족의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통신이었다.
또한, 지원군을 요청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여러 전쟁으로 인해 계속해서 병력이 불려 나갔던 커티 삭에는 현재 칠만의 병사만이 주둔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적들을 바라보는 칸디르의 목소리
에는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보름 전, ‘붉은 핏빛의 대지’에 배 치되어 있던 마장기사 여섯과 병력 들이 정령 왕국으로 떠났다.
정령 왕국과 마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 같다는 로우덴의 보고 때 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족의 대군 이 향한 곳은 바로 커티삭이었다.
“이제르론은?!”
“바로 충전을 시작했습니다만, 이 십 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 다.”
“알았다.”
칸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
도의 시간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 다.
적들 사이에 만마의 여제라도 있지 않는 이상 커티삭이 쉽게 무너질 일 은 없었다.
아니, 칠제가 있다 해도 충분히 막 아낼 자신이 있었다. 커티삭은 그것 을 위한 요새 도시였다.
‘그리고 적들의 지휘관은 쉐르난비 체가 아니다.’
마족은 알르드의 정보력에도 감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삽시간에 병력 을 준비시키고, 공격해 들어왔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각해 봤을 때
저들의 지휘관은 동부군의 수장 볼 붸르니체스가 틀림없었다.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마족의 군단 장인 미노타우르스 영웅은 준비 행 동이 굉장히 빠르고 긴밀한 녀석이 었다.
“공격!!!”
잠시 후, 마족의 병사들이 접근을 시작하면서, 칸디르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가장 먼저 충전이 완료된 마력포들 이 불을 내뿜었다. 궁병들보다 사거리가 긴 방어 시설이었다.
이어서 브뤼헤아 비쉬의 광역 마법 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역시나 성벽에 배치된 궁병들보다 사거리가 길었다. 안타깝지만 알르드의 궁병 들은 드랭크에 불과했다.
“쏴라!!!”
포탑에 배치된 병사 중 가장 높은 계급을 지닌 병사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애당초 요새 도시로 발전시 킨 커티삭이라 영지의 창고에는 마 력 포탄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 다.
그렇기에 방어 포탑의 병사들은 포
탄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듯 적들을 향해 난사했다.
그럴 때마다 지면의 흙들이 크게 튀어 오르며 마족들의 피가 흩뿌려 졌다.
“적 마장기 접근합니다!!!”
“루미넌 포탑 가동 준비! 이제르론 의 충전은?!”
“지금 막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칸디르의 질문과 동시에 부관의 대 답이 들려왔다. 곧바로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통나무 굵기의 마력포가 발사되며 성벽을 향해 접근하는 마족의 마장기들을 가로로 긁고 지나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커다란 폭발이 터지며 땅이 흔들렸다.
대륙의 최강 병기라는 명성답게 어 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비록 C등급이지만 단단한 장갑으 로 무장된 전차형 마장기인 기즈린 들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하지만 커티삭에 준비된 이제르론 은 한 기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어 서 또 다른 죽음의 광선이 전장을 파괴했다.
“음무워어! 마장기사들은 흩어져서 적의 성벽을 공격한다!”
이제르론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볼 붸르니체스가 재빨리 대응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려 세 개의 기즈린 편대가 증발해 버렸다. 동부군의 마장기 전력 20%가 순식 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제길! 저게 무슨……
엄청난 피해에 군단장인 볼 붸르니 체스가 구시렁댔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당하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그만큼 커티삭의 방 어 전력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전투 종족이라는 마족의 이
름값이 있었다. 이대로 피해만 입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마장기의 손해는 컸어도, 적들의 가장 강력한 병기인 이제르 론도 이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시간이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볼 붸르니 체스가 움직이는 데스 사이더와 키 마라이급 마장기들이 커티삭의 성벽 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티삭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대체 이놈들은……!”
커티삭에서 급하게 날아온 보고를 확인한 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서신 을 확 구겼다.
마족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 다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화가 났는 지 절로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을 진짜!”
차라리 군사를 일으키려면 파신과 손을 잡은 천족이나 공격하던가. 오 히려 파신을 쓰러뜨리고 리그너스 대륙의 평화를 지킨 자신들을 향해 무기는 겨누고 있었다. 정말 배은망 덕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대응은? 전황은 어 떻지?”
“‘붉은 핏빛의 대지’에 비상이 걸 렸습니다. 그리고 ‘바리안스의 대지’ 를 다스리는 군주인 리셴르나 님께 서 지원에 나섰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각 영토에 배치된 전 력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전선에 나서 있는 주력이 움직여야 했다.
일단 헤븐즈 요새 전선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천족들의 움직임을 틀 어막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 문이었다. 기사왕도 빼낼 수 없었다.
천족의 여왕 라이프린을 포함해 오 호신장과 신의 군대, 행여나 라헬까 지 나타나게 되면 EX등급의 영웅인 기사왕 정도가 되어야만 그들을 막 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켐벨의 전력을 빼자 니……’
기분이 싸했다.
왠지 그쪽의 정규군을 빼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랜드 라인이 사 라지고 루베릭 대륙의 대대적인 공 세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쪽의 병력은 조
금도 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김유진에게 말해 토갈론 요새의 병력을 남하시킨다. 림드 산맥을 포 함해 중부(과거 블루 스케일의 영 토)지방에 배치된 병력도 총 동원한 다.”
각각의 영지마다 몇천에서 만 사이 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으니, 그 인 원들을 전부 모으면 적어도 몇십만 의 대군은 모일 터였다.
하지만 그들을 지휘할 총대장이 없 었다. SSS등급, 아니, 쉐르난비체의 강함을 생각하면 EX등급의 영웅이 필요했다.
“이 지역의 안정화는 나대신 메크 링거에게 맡기겠다.”
메크링거는 SS등급의 만능형 영웅 이었다. 원래는 쿠투스 평원을 다스 리는 군주였지만, 골든 크로우를 비 롯해 새롭게 차지한 영토들을 안정 화시키기 위해 호가 직접 이곳으로 소환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메크링거의 능력이라면 시간 은 제법 걸리겠지만, 무난하게 이 땅의 안정화를 해낼 수 있었다.
이어서 여러 지시를 내린 호는 이 틀 뒤,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커티 삭으로 출발했다.
여러 전선에 대군이 투입되어 있는 알르드의 상황상 전쟁이 더욱 확산 되기 전에, 커티삭에서 마족을 막아 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EX등급의 영웅인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